***신구약 성경강해***/- 하박국 강해

[스크랩] 하박국 파노라마

에반젤(복음) 2019. 9. 30. 21:09




하박국 파노라마

 

 


                       주제 :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형제는 기도하다가 지쳐서 낙망(落望)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불의(不義)가 득세(得勢)하고 오만한 자의 형통함을 인하여 갈등하면서

 “공의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신정론(神正論)에 의문을 품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하박국서는 이에 대한 답변(答辯)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서는 독특한 구조(構造)를 가지고 있는데,

선지자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답변하시는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니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1:2) 하고 탄원합니다.


1장

하박국이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시기는

본문의 내용으로 볼 때에 유다 말기(末期)로 여겨집니다.

 유다의 마지막 선한 왕인 요시야 때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고, 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자 옷을 찢고 개혁운동을 전개했던 것(왕하 22:11)도 잠시 일뿐 그가 죽자 유다는 종말적인 상황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지자는,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고”(1:4) 있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대도 하나님은 침묵(沈?)만 하고 계시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불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첫 질문(質問)에

하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1:6) 하십니다.

즉 바벨론을 들어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유다를 징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답변은 선지자로 하여금 또 다른 의문(疑問)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눈이 정결하심으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 하시나이까”(1:13) 하고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런 뜻입니다

. 아무리 유다가 타락했다 하더라도 바벨론보다야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악한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징벌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맞는 일이냐는 것입니다.


2장

이렇게 두 번째 질문을 하고는,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2:1)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終末)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2:2-3) 하십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새기라는 의미는 이 묵시는 반드시 응하여진다는 보증서(保證書)와 같은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을 하고 회의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체되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정녕 응하리라” 하십니다.

그러면 하박국 선지자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크고 명백하게 기록한 “묵시”가 무엇인가?

이는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징벌하고, 종래는 바벨론도 심판하시리라는 것이 전부(全部)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여긴다면 하박국서가 우리와는 무관한 옛날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이점이 요절이라 할 수 있는 2:4절에 농축이 되어 있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두 부류(部類)의 사람이 있는데, “교만한 자와, 의인”입니다. 

“교만한 자”라고 지칭한 부류는 바벨론에 국한된 것이 아닌 불신 세계 전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러면 이들과 대비되는 “의인”(2:4)은 어떤 사람인가? 시편 1편에서는,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합니다.

 여기 “의인과, 악인”이 대조되어 있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의인과, 악인”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물론 불신자들 가운데도 선한 사람이 있고, 신자들이 의로운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이 불신자를 악인이라 하는 것은 그가 속(屬)해있는 진영의 대표자(代表者), 그가 추종(追從)하는 자가 악한 사탄이기 때문이요,

같은 원리로

믿는 자들을 “의인”이라 함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의로운 진영(陣營)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부류는 창세기 3:15절에서부터 갈라지게 되었으며 성경역사는 두 부류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시대에도 영적 논리로 하면 두 부류의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1:5-11절까지는 “교만한 자”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自己)로 말미암으며”(1:7), 한마디로

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神)을 삼는 자”(1:11)라 합니다.

7절과, 11절의 “자기”(自己)라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기가 심판주요, 자기 힘이 그들이 믿는 신(神)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2:6-19절 속에는 5번의 “화 있을 진저”가 나오는데,

어찌하여 화를 받을 자가 되는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교만”(2:4, 11)이고

둘째는,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2:18)“우상숭배”입니다. 이로 인하여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과 대비되는 신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십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란

신념(信念)과 달라서 홀로는 성립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념이란 자기를 믿는 것이지만

성경적인 믿음은

누구를 믿는가 하는 믿음의 대상(對象)이 있고,

무엇을 믿는가 하는 믿음의 내용(內容)이 있어야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언약을 믿는 것이요,

세워주신 언약이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입니다.


오직 “메시아언약”을 믿는 믿음만이

 멸망에 이르지 아니하고 “살리라” 한 생명에 이르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점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신약성경에서 중요하게 세 번(롬 1:17, 갈 3:11, 히 10:38)이나

 인용되어 있는 것이 뒷받침해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에게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명백하게 새기라” 한 묵시는 “메시아언약”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살리라” 하신 “영생, 구원, 소망”은 오직 메시아언약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말씀을 드린다면

메시아언약을 믿음으로만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당한 죄인들의 절체절명의 숙원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의롭다함을 얻어야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난제(難題)는 사람의 행위로는 의롭게 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데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점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부하던 박해자 바울을 통해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 3:20) 하고 증거케 하십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닙니다.

 “그의 앞에서”, 즉 하나님 앞에서는 의로운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본문말씀을 조명하여주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칭의교리를 확립케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을 통해서 로마서를 기록케 하신 성령께서는, “루터, 칼빈” 등에게 임하여 복음을 상실하여 암흑시대가 된 중세에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 2:4절 말씀을 “종교개혁의 어머니”라 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6-19절까지의 말씀,

 즉 5번이나 강조하고 있는 “화 있을 진저”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즉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이 당하게 될 화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한 후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天下)는 그 앞에서 잠잠 할지니라”(20) 하십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는 뜻입니다.


3장

3장은 하나님의 답변을 통하여 깨우침을 받은 선지자의

“기도, 찬양, 고백, 승리”의 노래입니다.

 먼저 선지자는 “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2) 하고 간구합니다.

그러니까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마시고 속히 회복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3-7절에는 대적은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은 구원하러 “오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말을 타고, 구원의 병거(兵車)를 몰고”(8) 오시는 전사(戰士, 8-15)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13상), 대적은 “집 머리를 치시며, 머리를 찌르셨나이다, 밟으셨나이다” 하고 승리하는 장면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한 원복음의 성취인 것입니다.


이를 깨닫게 된 선지자는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17) 합니다

. 그러면 그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즉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할 수가 있다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결론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19) 합니다.          

형제여,

우리에게는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명백하게 기록된 언약의 말씀이 성경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고 정녕 응하리라”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는 “믿음으로 사는” 기간입니다. “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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