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미가 강해

선지자 미가

에반젤(복음) 2019. 9. 30. 20:28



 1. 선지자와 그 시대적 배경
   미가는 주전8세기 무렵 책을 기록했던 위대한 4명의 선지자들 중 맨 나중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그는 요담(주전 742-735)과 아하스(주전 735-715), 히스기야(주전 715-687) 시대에 자신의 선지자 임무를 수행하였다(1:1). 이 시대에 유다가 처해 있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제24과 에서 언급한 바 있다. 미가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고향이었던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아모스의 고향인 드고아와는 동일한 지역에 속해 있었다. 그의 책에서는 아모스의 사상이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미가서 에서는 아모스서나 호세아서 그리고 이사야 에서도 뽑아볼 수 있는 몇 가지 강조 점들이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미가서는 선지자 미가가 농부 출신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압제받는 자와 세력이 없는 자 그리고 특별히 냉혹한 대지주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가난한 농부들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나섰던 용감한 대변자였다. 그는 당시 사회곳곳에 독버섯처럼 돋아나 있던 경제적인 부패상을 바라보면서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더욱이 그의 울분을 터뜨리게 한 것은 나라 안의 암담한 종교적 상황이었다. 각종 종교 "의식"들이 성대히 거행되기는 했었지만 그 기본적인 "윤리"는 완전히 질식상태에 있었다. 제사장과 선지자, 재판장, 상인은 모두 이권을 얻는 일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미가는 이러한 상황들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분연히 일어나 솔직하면서도 예리한 공격의 화살을 그들의 가슴을 향해 사정없이 쏘았으며, 아무리 훌륭한 종교 의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때묻은 손을 가지고 드려질 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예루살렘과 그 성전에 대해 말했던 부분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의 말과는 약간 다른 듯한 느낌이 있다. 즉 이사야는 시온이 앞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무너질 수도 없다고 선포했지만, 미가는 시온이 "밭 같이 갊을 당하게 될 것이다"(3:12)고 말하였다. 그러나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두 선지자가 동일한 것을 말했다고 볼 수 있다. 이사야는 영원한 예루살렘을 미가는 그 당시의 현실적인 예루살렘을 각각 염두에 두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가 선지자의 메시지에는 장차 임하게될 비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하나님)와 이스라엘을 언약 관계로 굳게 연결시킨 확고한 사랑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했기 때문이다. 미가서의 히브리어 원본은 잘 보존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호세아서에 못지 않게 큰 난제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 내용 연구

* 미가가 전한 메시지 요약 *

1. (1:1-3:12)-비참한 최후의 날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

2. (4:1-5:15)-약속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

3. (6:1-7:7)-비참한 최후의 날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

4. (7:8-20)-약속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



 
1) 비참한 최후의 날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1-3장)
   이 부분에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있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사악함에 대해 공격했던 메시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서두의 메시지는 언약을 깨뜨린 당사자들을 법정으로 끌어들여 송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심판하려고 오시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다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것"(1:3,4)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어법은 화산이 터져 용암이흐르고 지진이 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둘 다 범죄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둘 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사마리아는 단지 그 기초만 남겨지게 될 것이며 또한 창기의 소득으로 사들였던 그 안의 모든 장식품들도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사마리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통하고 애곡하면서 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1:1-8)

   사마리아는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실은 이 병이 예루살렘에까지 전염되었다는 것이다(1:9). 미가는 예루살렘을 파괴시키려고 "정복자"(1:15)로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하여 블레셋과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성읍들의 동음이의의 화법을 적용하였다. 여기에서 선지자는 당시의 통상적인 침입로였던 남서쪽으로부터 점점 예루살렘으로 접근해 들어오는 경로를 따라 차례로 성읍의 이름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오심은 너무도 확실하고 그가 오시는 것은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미리 자녀들을 위해 전통적인 장례식 절차를 마쳐 놓고 마지막 결과를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그들의 자손들은 이제 곧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1:9-16).
   2장에서 미가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질식케 만들고 있는 죄들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예루살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침상에서 악을 꾀하고 간사를 경영하며 날이 밝으면 그것을 행하려고 하였다(2:1). 또한 힘과 권세를 가진 자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가난한 자들의 소유물을 탈취하려고 하였다(2 : 2). 이것은 특별히 부귀 영화에 최대의 가치를 부여하고 오직 그것만이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성스러운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던 그 당시의 사회에서는 실로 가증스러운 죄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는 자들은 그 죄악의 울타리에서 쉽사리 빠져 나오지를 못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정녕 그들에게 임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타인에게 억지로 탈취했던 토지들을 다시 빼앗아 앗수르인들끼리 나누도록 하실 것이다!(2:3-5)

   선지자 미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였기 때문에 많은 동조자들을 얻지 못하였다. 오히려 입을 닫으라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왜냐하면 그의 메시지는 그들의 귀에 몹시 거슬렸기 때문이다(2:6,7). 그들은 미가가 예언하는 말들이 장차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2:6). 미가는 이에 구애됨이 없이 끝까지 그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유다의 권세가들은 가난하고 무죄한 자들, 무기력한 자들에게서 겉옷을 탈취하였다(2:8)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소중히 여기시는 가련한 부녀자들과 아이들에서도 온갖 것들을 빼앗아 갔으며(2:9),급기야는 유다를 평화롭게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로 끌려가도록 조처하실 것이다(2:10). 백성들은 한사코 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허망히 행하며 거짓을 말하는" 선지자가 되어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예언"하려고 하였다(2:11).

   그 다음 회복에 대한 예언의 메시지가 뒤따라 나오고 있다(2:12,13). 이 부분은 문맥상 예외적인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이 언젠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하늘의 목자와 왕이 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의 면전에 안전히 거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운과 파멸에 대한 주제가 또 다시 3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미가는 유다에서 권세를 쥐고 있는 자들이 자기 마수에 걸려든 무고한 백성들을 마치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썰고 자르듯이 취급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3:1-3). 그러나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멀지 않아 자신들도 비참한 경지에 빠지게 될 것이며 여호와께 도움을 청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3:4).

   이러한 대재난이 일어나게 된 것은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입에 무엇을 넣어 주어야만, 좋은말을 하였다. 또한 그들은 무엇인가를 채워주지 않는 자들에게는 혹독한 욕설을 퍼부었다(3:5). 하나님께서는 정녕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들에게는 흑암과 수치와 애곡이 뒤따르게 될 것이며,그 때에 그들과 하나님 사이는 완전히 단절될 것이다(3:6,7).

   미가 선지자는 이 부분 에서 특히 유다에서 탐욕을 일삼는 지도급(두령, 재판관,제사장,선지자)을 공격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았다.그들에게서는 공의와 동정을 쁹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허위와 위선만 이 있었다. 그들은 입버릇 처럼 나라는 견고하며 예루살렘으 안전하다고 말했다(3:9-11) 그들은 예루살렘이 앞으로 경작지 안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가 되고 성전이 지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알지 못하였다.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3:12).

   이 구절은 한 세기가 지난 후 예레미야가 예루살렘과 그 성전에 관해 미가와 비슷한 예언을 하고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인용되었다(렘26:18,19). 몇몇 장로들이 예레미야의 이 말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냄으로 다행히 예레미야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미 1백년이 지난후에도 이 구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인용했던 것을 보면 미가가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그들이 받은 충격이 어떠했을 것인가는 짐작할 수 있다.



 2) 약속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4-5장)

   이 부분에는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미래와 다윗 왕국의 회복에 관한 예언들이 수록되어 있다.

   후기 시대에 에루살렘은 존귀히 높여지고 모든 민족들의 예배 중심지로 삼아질 것이다. 그 날이 임할 때 비로소 오랫동안 염원하는 세게 평화는 찾아오게 될 것이다.(4:1-4, 2:2-4) 그 날에는 저는 자들과 붸겨난 자들, 그리고 사로 잡혀 갔던 자들이 시온 산으로 함께 모여와서 여호와이 면전에서 영원토록 거하게 될 것이다.(4:4-6)

   그 다음 부분에서는 유다가 가까운 장래에 참고 견뎌야 할 수치와 고통이 언급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수치와 고통은 마지막 승리의 날에 그들이 처하게 될 상황과 서로 비교,대조되고 있다(4:9-5:1). "이제"라는 말이 3회나 언급되고 있는 사실에 유의하라(4:9-11:5:1). 사실상 고통과 추방의 그림자가 어두운 구석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나 그 건너편에는 영광의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다는 드디어 그 원수들을 쳐부숨과 동시에 곡식을 터는 소와 같이 그들을 발 아래 짓밟고 다닐 것이다(4:11-13).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계통의 "온전하신 왕"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그는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닌, 초라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게 될 것이다. 그는 오셔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의도하시는 바와 완전히 부합되게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글은 해산의 고통을겪으면서 아이의 출생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처럼 그의 오심을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5:2-4). 백성들은 능히 앗수르인들을 그들의 땅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5:5,6). 많은 백성들 중에 "남아 있는 자"가 5장 7절 -9절의 주제가 되어 있다. 이 남은 자는 약자가 아닌 강자로 백성 중에 거하게 될 것이며, 자신들을 기꺼이 영접하려는 자에게는 축복을, 영접치 않으려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게 될 것이다. 남은 자는 사자로 비유되고 있는 반면, 다른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막강한 힘 앞에 속수무책인 양으로 비유되고 있다.

   5장 10절-15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멸망을 당하게 될 사실로부터 이스라엘 자체를 정화시키는 일에로 화제가 바꿔지고 있다. 백성들은 온전히 여호와를 신뢰해야만 하며 이를 방해하는 것에서부터 제거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사상들은 이사야서의 중요한 주제를 이루었는데, 이사야는 사람이 무기를 신뢰하는 것은 여호와께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더우기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예배생활을 정화시키심과 동시에 불순종하는 민족들을 벌하실 것이다.



 3) 비참한 최후의 날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미 6:1-7:7)

   미가서 6장 1절-8절은 8세기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전형"으로 종종 불리워지고 있다. 이 부분은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는 언약의 범법 문제를 법정 소송 형식으로 다룬 1장의 서론적 메시지와 매우 흡사하다. 그 현장에는 우주적인 차원의 법정이 설치되어 있으며, 산과 언덕, 그리고 땅의 기초가 증인으로 소환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검사와 판사의 역활을 하고 계시며,이스라엘은 피고가 되어있다(6:1,2).

   여호와께서는 소송을 제기하고 계신다(6:3-5).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위해 출애굽에서부터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친히 행하셨던 구원적인 행동들을 차례로 열거하셨다.그리고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일도 말씀하셨다(6:5;민22장-24장). 싯딤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그 동편에서 마지막으로 진을치고 있었던 곳이며,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고 난 후 맨 처음으로 진을 친 장소이다. 그러므로 5절 하반절은 요단강을 건너간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여호와께서는 줄곧 큰사랑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보살피셨다.여호와께서 하신 일은 모든 면에서 의로우셨다.그런데 이스라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들은 변명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蝡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죄악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피고인 이스라엘이 변명할 차례가 되었다(6:6,7).하나님은 실제로 어떤 제사를 원하셨는가? "번제물"은 제사장이나 제물을 드리는 자가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불로 태워졌었다. "일년된 송아지"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어린 짐승들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번제물은 부자만이 드릴 수가 있었다. "맏아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한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두 몫의 분깃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고대 근동지방에는 맏아들은 신들에게 속한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신들에게 제물로 드려져야만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모세 율법에서는 그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대로 시행된 적이 있었다(왕하 16:3, 21: 6).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질문에 답하고 계신다. 그는 그들의 형식적인 예배에는 관심도 없으셨다. 그는 내적인 정결만을 눈여겨 보셨다. 그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릇된"일에만 마음을 기울였다.이에 대하여 여호와 께서는 참으로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 주셨는데, 특히 이 내용은 주전 8세기 선지자들의 교훈을 요약한 구절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무엇보다도 아모스는 공의와 의를, 호세아는 불변적인 사랑을, 이사야는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용어들은 사람들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행하는 것과 이웃을 섬김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입증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비극적인 최후에 대해서는 6장 9절-16절에서도 계속 언급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사마리아가 악했던 것처럼 점차로 악해지고 있다. 그들은 마땅히 멸망 당해야만 한다. 예루살렘의 상인들은 백성들의 것을 무자비하게 탈취하는 악당들이었다. 백성들의 대부분은 정직하지 않았다. 심지어 저울과 자에도 속임이 있었다. 유다의 생활은 오므리나 아합 시대의 그것과 같았다. 그들에게는 저축한 물건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앗수르인들이 그들이 가진 것들을 모두 빼앗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비관적인 생각은 7장 1절- 7절에서 또 재현되고 있다. 그는 성안에서 의인 한 사람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 사람이 추수가 끝난뒤 열매를 얻기 위해 과수원에 들어갔으나 포도알 하나, 무화과 한 개도 얻지 못한 비유로 소개되고 있다. 이제 유다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혼란 그 자체 였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 그랬다(7:5,6).



 4) 약속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미 7:8-20)

   지금까지의 어조가 여기서 다소 바뀌어지고 있다. 형벌 이후에는 회복이 있게 될 것이다. 유다는 무너지지만 또 다시 일으켜 세워질 것이다. 유다는 장차 임하게 될 심판을 마땅히 받아야 하지만 여호와께로부터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돌보심을 의심하던 이방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로잡혀 갔던 자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돌보심을 의심하던 이방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로잡혀 갔던 자들이 돌아오게 되고 예루살렘은 보다 더 넓은 터전 위에 재건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도 각 처에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자비와 용서로 그의 백성들을 또 다시 그 주변으로 불러 모으실 것이며 그들을 조롱하던 자들의 입을 막아 버림과 동시에 그가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래로 나타내 보이셨던 신실함과 불변적인 사랑을 또 다시 그들에게 베푸실 것이다. 정녕 그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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