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미가 강해

[스크랩] 미가서 연구

에반젤(복음) 2019. 9. 30. 20:26




                      미가서 연구


  *. 이름의 뜻을 통한 주제 / 하나님 같으신 분은 그 누구이신가? (7:18)

  *. 미가서의 주제 / 메시아 왕국을 성취하시는 소망의 하나님

  *. 미가서의 주제절 /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로다"(7:7)


Ⅰ. 예언자 미가

   미가는 농촌인 모라셋 출신의 예언자이며 이사야보다 약간 늦게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이사야가 수도인 예루살렘 출신인데 반하여 미가는 아모스와 같은 농촌 출신입니다. 그리하여 미가도 아모스처럼 빈부의 심한 차이와 부자나 권력자들의 불의를 실감하였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사방의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는데 유다는 앗수르와 애굽 양대국가 사이의 완충 지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여러 왕의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Ⅱ. 내용과 주요 사상

   미가의 사상은 대 예언자들에 못지않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에 대하여 동정하였고 부자들의 횡포와 불의에 대하여 예민하였다.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불의를 공격한 것은 아모스와 흡사합니다. 미가도 불의한 개인과 민족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미가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그 범죄 때문에 머지않아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리라고 내다보았고 또한 그와 꼭 같은 운명이 남 왕국 유다에게도 임할 것을 확실히 예견하였습니다.

 

  미가는 억압과 불공평한 재판으로 신음하는 빈민대중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전답을 저당 잡히고 심하면 자녀들까지 저당 잡히는 빈민들을 위해서 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가를 분노와 위협만 선포하고 구원과 회복은 선포하지 않은 예언자라는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메시야의 오심에 중심을 둔 구원을 선포한 예언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Ⅲ. 내용 분해


1.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경고 1 : 1 - 2 : 13

  1) 표제 1 : 1

  2) 사마리아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1 : 2 - 16

  3) 하나님의 분노의 이유 2 : 1 - 13


2. 심판 후에 따르는 회복 3 : 1 - 5 : 15

  1) 백성의 죄와 예루살렘의 파괴 3 : 1 - 12

  2) 하나님의 나라 건설 4 : 1 - 5 : 1

  3) 새로운 왕과 왕국의 탄생 5 : 2 - 15


3. 법과 하나님의 최후의 자비 6 : 1 - 7 : 20

  1)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불만 6 : 1 - 16

  2) 꾸지람과 약속 7 : 1 - 20



Ⅳ. 내용 강해

 

  미가가 활동했던 배경을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웃시야가 빠져 있는 것을 보아 이사야보다는 조금 늦게 활동을 개시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가 죽던 해에 소명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미가는 웃시야가 죽고 난 후에 사역을 개시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가는 주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향해 증거하실 것이라고 합니다(1:2). 이렇게 하시는 것은 성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전은 자기 이름을 둔 곳인데 이제는 그 곳을 자기 이름을 둔 곳이라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 이름을 둔 곳이 아니면 그 곳이 무엇입니까? 그 곳은 산당이 되어 있습니다(1:5). 혼합 종교적인 양상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음행이라고 하십니다(1:7). 이로 인하여 사마리아는 물론 유다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재앙을 내리실 것을 계획하시기 때문입니다(2:3). 여호와의 회중이 깨어질 것입니다(2:5).

 

  이들의 죄악상은 이러합니다. 그들은 자기 침상에서 악을 도모하며 날이 밝으면 나와서 그것을 실행합니다. 그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웃의 밭들을 탐하여 빼앗습니다. 집들을 탐하여 취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을 학대합니다(2:1-2).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기를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하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욕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2:6). 악을 행하면서도 악행을 치고 그로 인하여 심판이 임할 것을 말했을 때에 그들은 그것을 자기들을 욕하며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으니 강도짓을 하고 폭도가 되어 빼앗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2:8-9). 이러니 열락을 즐기도록 말해주는 자를 선지자로 삼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누리는 것을 말해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2:11).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타락한 백성에게서 사람들을 택하여 남겨서 한 처소에 두고 번성하게 하며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왕이 되어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2:12-13).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이어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백성의 두령들과 치리자들은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3:2-3). 권력자들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선지자는 백성을 유혹하는 자들입니다. 백성을 옳게 인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가도록 유혹하는 사람들이 선지자들입니다. 이들도 재물을 탐하기에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에 물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라고 합니다(3:5). 그러므로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밥 곧 영적인 밤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3:6-7)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므로 묵시를 읽지 못하는 선지자만큼 비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선지자는 세상의 것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묵시가 없으니 세상 것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는 세상 것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신으로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합니다. 세속화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을 하는 것이 세움 받은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신은 이것을 위해서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워줍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호와의 신은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패한 시대에 여호와의 신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한 마디로 총체적입니다. 두령과 치리자는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합니다. 불의로 통치하니 약한 자를 죽이고 죄악을 쌓습니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합니다." 그리고 "뇌물을 얻기 위하여 재판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돈을 탐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마음은 공의보다는 재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도 삯을 위하여 교훈합니다. 선지자 역시 돈을 위하여 점칩니다. 그러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는 채 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니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 선지자들이 말하는 여호와는 그들의 돈을 위하여 이용해먹는 여호와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거짓 평화를 가르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3:9-12).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장 높이실 것입니다. 그 시기는 끝날입니다. 이것을 여호와의 전의 산을 모든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세운다고 말합니다.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을 높이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전 있는 시온산과 이스라엘이 동의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전 또는 시온산은 이스라엘과 동의어입니다. 성전이나 시온산은 이스라엘이라는 인격을 가리킵니다. 성전이나 시온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이스라엘에 대한 뜻을 성전 또는 시온을 통해서 나타내실 것입니다.

 

  끝날에 하나님은 시온을 높이시며 이 시온으로 이방이 모여들 것을 말씀하십니다. 율법이 시온의 성전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들으러 몰려 들 것이라고 하십니다(4:1-2). 그리고 여호와의 판결에 의하여 만방에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4:3-4). 여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인 "우리"가 있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자신을 비롯한 현재의 이스라엘 중에서도 말일의 세계적인 "우리"에 참여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4:5).

 

  그 날에 이루어질 이스라엘인 "우리"를 형성할 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저는 자와 쫓겨난 자와 하나님이 환난을 받게 한 사람들입니다(4:6-7). 아무 힘을 쓸 수 없어 저주받은 자로 여겨지던 자, 힘 있는 자에게 집과 토지를 빼앗기고 멀리 쫓겨났던 자, 여호와로 인하여 환난을 받은 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인 "우리"를 이룰 것입니다. 여호와가 이들을 다스리므로 예루살렘의 통치권이 시온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다스림은 시온의 회복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에 있을 시온의 미래입니다. 그러나 시온은 죄를 지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을 하기 위하여 바벨론까지 가야합니다(5:3참조). 거기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현재의 시온이 이방인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이러한 구원 곧 여호와의 속량하심을 입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이 바벨론까지 가는 것은 오히려 시온이 이방들을 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4:9-13). 말일에 이방들은 시온에게 침을 당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온을 다스릴 자가 유다 족속 중에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은 가장 작은 자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상고에 영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분입니다. 곧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서서 자기 양떼를 먹이고 평안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다스림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칠 것입니다(5:4). 그 분은 새 이스라엘 "우리"의 평강이 될 것입니다. 그는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고 구원을 베풀 것이며(5:5-6) 따라서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능력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5:7-9). 하지만 그날에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온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5:10-15).

 

  따라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한 약속을 저버리는 하나님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산들 앞에서 쟁변하십니다(6:1-2). 변하지 않는 산들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도 언약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묻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네게 무슨 일로 괴롭게 하였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것은 구원 사건들이었습니다(6:3-4). 그러므로 이 사실들을 기억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해롭게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이 사건들을 의롭게 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아는 자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해롭게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여호와를 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도 구원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이스라엘의 허물과 죄를 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6:6-7).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하나님을 아는 자는 공의와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사죄하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낮아지신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래에도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공의와 사랑과 겸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바로 완전한 지혜입니다(6:9). 그러므로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죄하시고 구원하실 미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악인은 돌이키지 아니하고 죄악 중에서 행할 것입니다(6:10-16). 친구와 집안 식구와 품의 아내까지도 믿을 수 없습니다(7:1-6). 이들은 결국 거리의 진흙같이 밟힐 것입니다(7:10). 그렇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도하며 여호와의 심판의 진노를 당할 것입니다. 결국은 그는 하나님의 의 즉 이스라엘의 사죄와 구원을 볼 것입니다(7:7-9).

 

  이스라엘은 흩어졌던 곳 땅 끝에서도 돌아와서 약속의 땅에서 홀로 거할 것이요 여호와가 그들을 먹이실 것입니다(7:11-13). 긍휼히 여기셔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바다에 던지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결국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7:18-20).

 

  이와 같이 미가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조상들과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미가서는 이것을 강한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선하심은 언약의 실실함에 대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란 언약의 신실함에 기초하고 있고 언약에의 신실함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선하심을 아는 자가 고난 속에서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하심 때문에 우리에게도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은 의지합시다. 이러한 신앙이 있을 때 고난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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