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호세아 강해

[스크랩] 호세아 11장 복음은 인간적인 계책을 다 내려놓게 하는 은혜다. /김형익목사

에반젤(복음) 2019. 9. 25. 21:22




호세아 11장 복음은 인간적인 계책을 다 내려놓게 하는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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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복음은 인간적인 계책을 다 내려놓게 하는 은혜다.

1. 본문은 호세아 선지자의 일곱 번째 설교다. 이 설교는 이스라엘의 인위적인 계책을 지적한다(6). 12장에서 야곱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이 설교의 핵심과도 관계가 깊다. 야곱은 인간적인 계책이 많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랑했고 그는 돌이켰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부어주셨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어린 시절, 즉 출애굽 당시로 청중들을 데리고 간다(1).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어린 장자를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불러내신 사건이다. 여기 ‘사랑하여’라는 표현은 ‘선택하여’라는 신학적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할 때, 이 표현이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말 1:3).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 없는 ‘아들’이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는 점점 더 멀리 도망을 가서 바알을 섬기고 우상에게 분향하기만 했다(2). 이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 증명된 일이다. 그들이 도망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3).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스라엘)을 걸음마부터 가르치셨고 피곤하면 팔로 안으셨고 아프면 고쳐주셨는데, 그들은 그 사랑을 몰라서 하나님이 다가오면 부담을 느끼고 도망을 갔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어가시는데, 그 목적은 저들 목에 메워진 멍에를 벗기시고 저들을 먹이시려는 것이다(4). 사람의 줄이라고 한 것은 짐승을 매는 줄과는 구별될 필요가 있는 사랑의 줄이다. 저들은 이미 앗수르의 손에 넘겨져서 애굽으로도 못 가고 그들을 구원할 다른 인간적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싫어한다(5). 그러니 하나님은 저들의 성읍이 칼로 침을 당하게 하고 빗장이 깨뜨려지게 하실 것이다(6). 그들이 끝까지 인간의 계책(꾀)을 의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때리면서 돌아오라고 부르시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결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돌아오는 자가 하나도 없다(7).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은 위를 향하여 부르짖으라는 것이고 하늘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말씀이며 부정적으로는 이 세상의 것, 땅의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말씀이다.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한 것은(골 3:5) 바로 이 말씀이다. 땅의 것에 마음을 둔 자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고, 하늘의 것을 찾을 수도 부를 수도 없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들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가 없다(8).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하여 사라진 도시의 이름이다(신 29:23). 하나님을 도무지 청종하지 않는 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속에서 불붙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노하여 심판하지 않으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시기에, 그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 중에 거하시면서도 그들을 진노로 심판하지 않으시는 길을 택하실 것이다(9). 그 지혜와 능력은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미 사자가 새끼들을 부르듯이 큰 소리로 자기 자식들을 불러모으실 것이다(10). 그러면 믿음을 가진 남은 자들은 여호와를 따르게 될 것이다. ‘따른다’는 말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청종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애굽과 앗수르에서도 나오게 될 텐데, 새와 비둘기 같이 떨면서 나올 것이고 하나님은 저들을 각 집에 머물게 하시고 평강을 더하실 것이다(11). 그러나 여전히 저들을 큰 소리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거짓과 속임수로 나오는 시늉만 하는 자들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12).

3. 하나님이 불러도 하나님께 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오해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당신께서 그들을 어떻게 불붙는 긍휼로 사랑하시는지를 증명하고 싶어하신다. 호세아 선지자는 오직 이 메시지를 위하여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해야 했다.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파는 여인을 값을 주고 또 찾아와야 했다.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그런 음란한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이 불붙는 긍휼함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아무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랑 받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존재들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아름다운 신부로 만드시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시려고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그렇게 하셨다.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오셔서 죄인들의 심령 속에 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9).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모든 계책을 내려놓게 된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여 불붙는 긍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본다. 참 회개는 자기의 방법, 자기의 수단, 자기의 계책을 다 내려놓는 것이다. 또 세상과 땅에 속한 것에 당신의 마음이 붙어있는 한, 당신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점점 떠나게 될 것이며 결코 위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지혜, 당신의 계책, 인간적인 모든 수단,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당신을 향한 불붙는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을 뵈옵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라. 당신의 모든 계책을 내려놓고서. 복음은 인간적인 모든 계책을 다 내려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여정으로 데리고 가심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는데 왜 내가 내 인생을 위한 계책을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4.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향하여 불붙는 긍휼을 가지신 아버지의 사랑을 더 알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선하심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앞에서 저희의 모든 인간적인 지혜와 수단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혜만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