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바람을 잡으려는 인생아, 돌아와라.
1. 12장은 11장에서 시작한 일곱 번째 설교의 계속이다. 이스라엘의 인간적 계책을 계속 지적한다. 이스라엘은 본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의 인도 아래 푸른 초장에서 꼴을 먹어야 했지만, 그들의 허황된 생각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겠다는 것이다(1). 바람은 헛되고 공허하다. 동풍은 성경에서 아라비아 광야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으로서 대개 파괴적인 힘을 가진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가령 집을 날려버리고(욥 27:21), 바다의 배들을 깨뜨리며(시 48:7), 그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전쟁터처럼 황폐해진다(렘 18:17). 그러므로 동풍을 가슴에 품는 자는 허황되어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자다(욥 15:2). 그러니 그들의 행위는 거짓과 폭력이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적 계책으로 애굽이나 앗수르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가지고 간 공물은 올리브 기름은 이스라엘의 값진 상품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이스라엘)의 행위대로 벌을 주실 것이다(2). 유다와 논쟁한다고 하심은 유다는 아직 이스라엘만큼 죄악이 차지 않았다는 말이고, 이스라엘을 여기서 야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상 야곱이 가졌던 인간적인 계교를 쓰는 성격을 지적하려는 의도다. 본문은 야곱의 세 가지 점을 지적하는데, 첫째는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 뒤꿈치를 잡고 나온 것이고(3a) 둘째는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룬 것이며(3b) 세째는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한 것(12)이다. 첫째는 태어날 때의 일이므로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천성이 어떤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는 말씀에서 ‘장년’은 인간적 성숙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힘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야곱이 자기 힘으로 천사와 겨루어 이기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는 자기 힘을 믿고 살다가 결국 하나님께 붙잡히는데 거기서도 지지 않으려고 천사(그리스도의 현현)와 힘을 겨루었다. 그가 ‘이겼다’는 표현은 그가 마침내 돌이켜 울며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4). 비록 야곱은 계교를 쓰는 자였지만, 하나님께 울며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렇다면 야곱의 후손인 이 자손도 역시 하나님께 울며 회개하고 나올 때 소망이 있다. 4절에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는 말은 미완료형으로 비록 옛날 한 순간에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여전히 그 자손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질책하신다(5).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일은 분명하다. 그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성품인 인애와 정의를 드러내며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다(6).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에는 하나님께 와서 그 안에서 살며 그 안에서 쉬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사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고생인가를 알라는 것이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가 너무나 확연하게 보는 사실이 아닌가! 하나님의 품 안에 쉬고 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자신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삶은 항상 하나님을 우러러 살고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견디며 구원을 기다리고 장래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을 가리켜 ‘상인’ 즉 장삿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장삿군이라는 말이 아니라 본래 가나안 사람들이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었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본래 가나안 사람들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풍자하여 말하는 것이다(7). 거짓 저울로 속인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가나안의 삶 곧 세상의 삶의 방식이었다면, 이스라엘이 이를 똑같이 행했다는 것이다. 속인다는 말은 거의 강탈과 같은 말이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으로 자기는 부자라고 떵떵거리면서도 자기에게서는 죄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8). 그들의 양심은 실로 화인 맞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시 장막에 거하게 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이 하리라고 하신다(9). 이는 심판의 말씀이면서도 동시에 은혜의 말씀이다. 다시 장막에 거한다 함은 이스라엘이 광야의 고생스러운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을 의미하지만, 명절날에 하던 것 같이 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초막절에 일주일 동안 장막에 거하는 것처럼 일시적인 하나님의 징계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징계는 비록 고난의 형식을 통해서 오지만, 사실 변장한 축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많이 말씀하셨다(10). 하지만 이스라엘은 회개치 않고 계속해서 길갈과 길르앗으로 대표되는 우상숭배의 도시에서 불의와 음란을 행했다(1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3. 설교의 결론부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다시 야곱의 이야기를 꺼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서 아람들로 도망했다(12). 하나님께서 그 들에서 야곱을 보호하고 인도하셨듯이, 이스라엘도 그렇게 인도하고 보호해주셨다(13). 그런데 지금 에브라임(이스라엘)은 여전히 자기 계책을 의지하고 범죄하면서도, 조상 야곱처럼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있지 않은가? 조상 야곱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받았던 은혜를 생각하고 다시 너희도 돌아오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결국 자기 힘, 자기 꾀를 믿고서 허황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내려놓지 않는 한,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 문제는 허황된 것이 허황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허황된 것을 추구한다. 그것이 자기를 파멸하게 될 줄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니 거기에는 거짓과 세상 방식이 난무하고 거기서 부를 축적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 품에서 살고 안식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임을 아는 자는 복이 있다. 야곱은 결국에 그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어떠한가?
4.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허황된 것을 잡으려고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거나 저희 자신을 파멸과 비참함에 이르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행하며 하나님만을 바라고 살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이르지 못할 것, 사라질 것을 바라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쇠하지 않는 가치를 위해서 살며 오직 하나님의 품에서 살며 안식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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