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호세아 강해

호세아書 : The Book of Hosea

에반젤(복음) 2019. 9. 25. 17:17




호세아書 : The Book of Hosea

 

 

[영] The Book of Hosea 구약성서 중의 1서. 12소선지서 중의 하나로도 알려지고, 분량으로는 소선지서 중 최대의 것이다.

 

1. 본서의 위치.

 

히브리어 성서에 있어서 본서는 예언서 중 후예언서에 속하는 글로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다음에 12소예언서의 처음에 위치하고 있다.


 

2. 본서의 저자

 

호세아와 그 시대. 선지자 호세아의 이름 뜻은 [구원한다]이고, 그는 [브에리]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 가계도 출신지도 불명이다. [브에리]를 대상 5:6의 르우벤 사람[브에라]와 동일시하기도 하고 잇사갈 지파 출신이라는 전설도 있는데, 어느것도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또 호세아라는 명칭을 가진 사람이 달리 4명(→별항 호세아)이나 있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선지자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가정 생활에 관한, 약간 상세한 기술 외에는, 추측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전793-753혹은786-746),남왕국 유다의 웃시야에서 히스기야왕(전 790-686년혹은783-687)치세 동안에 활약했다(호 1:1). 예후왕조(전 842-745)몰락의예언은(호 1:4), 전 752년살룸에의한사가랴왕 살해 이전에(왕하 15:10), 호세아가 예언활동을 시작한 것을 보여주고, 애굽과의 관계의 언급은(호 7:8이하 기타), 북왕국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 호세아의 정책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며, 사마리아 형벌의 예언은(호 13:16), 전 722년의사마리아공략직전에 행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호세아의 선지자 활동의 주요 시기는, 전 약 755년에서725년경으로볼수 있다.

북왕국의 정치, 문화, 지명에 대한 많은 언급에서 보아,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주민이든가, 적어도, 그 예언활동의 무대는 이스라엘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의 시점은, 단지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남왕국 유다의 유사한 상황에 주목하여, 호세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것과 한가지로 유다에도 경고를 주었다.

 

이 시대의 남북 양왕국은, 정치적 격동기에 있었다. 특히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서방원정에 따른 양국의 움직임은 극히 황급 부산하다. 여로보암 2세의 치세 중, 앗수르는 북의 우라르투(Urartu-고대 왕국으로, 아시아 터키 동부의 곳) 왕국에서의 위협 및 내부의 불통일 등 떄문에, 팔레스티나라든가 아람지방에 세력을 확대치 못하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왕국은 지금까지 없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경제의 번영은 불행하게도 종교적, 도덕적, 사홰적 부패를 가져와, 유다왕국 출신의 아모스에 의한 통렬한 비난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여로보암의 사후, 왕국은 약체화되기에 이르렀고, 왕위 쟁탈전으로 인해 왕조는 어지러움에 빠졌다. 그 위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 3세(전 745-727년)의서진(西進)에 의해, 이스라엘 왕 므나헴은, 앗스르에 조공을 바치지 않을 수 없는 굴욕을 받았다. 다음의 이스라엘 왕 베가(전 752-732,혹은737-732)는, 아람 왕 르신과 반 앗수르 동맹을 맺고(시리아와 에브라임 동맹), 남왕국 유다(요담왕, 아하스왕)에게도 가맹을 호소했으나, 응하지 않자 전 733년경양국은유다에침공했다. 유다의 아하스 왕은 선지자 이사야의 권고를 무시하고, 앗수르에 윈조를 구하였는데 그 결과로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습격하여, 많은 영토를 점거했다. 엘라의 아들 호세아는, 베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친 앗수르 정책을 취함으로써 겨우 나라의 멸망을 막았다. 또한 앗수르는 다메섹에 침략하여 이곳을 정복했다(전 733).디글랏빌레셀의죽음을 틈 타,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은, 애굽에 원조를 구하여 앗수르를 배반하였는데, 마침내 앗수르왕 살만에셀 및 사르곤 2세의 맹공을 받아, 수도 사마리아는 함락되기에 이르렀다(전 722년).남왕국유다는,아하스 왕의 친 앗수르 정책에 의해, 앗수르의 속국과도 같은 입장에서 겨우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다음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에서의 자유를 구하여 배반하고, 많은 고난에 직면했다. 선지자 호세아의 활동은, 실로 이러한 위기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다.


 

3. 본서의 내용.

 

본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아모스에 이어서 나타난 선지자 호세아의 예언집으로서, 북왕국의 예후 왕조 제4대왕 여로보암의 2세의 때이고, 이것을 남왕국으로 말하면 유다의 웃시야 왕에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까지의 4대왕 때, 그리고 앗수르의 위협 아래놓여져 있는 때이다. 선민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남편으로 하여 섬기고, 정절을 지키야 할 것인데, 도리어 불신 부정에 빠져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 우상을 예배하고, 허무한 사신을 섬기는 죄에 빠져 도저히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류이다. 이것을 호세아는 자기의 부정한 아내에 대한 쓰라린 체험에서 통감하고, 곧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경고했다. 우상 숭배는 여러 선지자에 의해 배격되고 있었는데, 그 선두를 이룬 통찰력 뛰어난 선지자가 호세아였던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는 바알 숭배를 공격했는데, 다른 우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의의 선지자로 말해지는 아모스라 해도 우상 예배의 죄를 지적하고는 있으나, 단도직입적은 아니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등이 우상 숭배를 힐난 했지만 모두 호세아의 뒤를 이어 받은 것이다. 호세아는 다만 우상숭배를 배겨했을 뿐 아니라, 여호와 숭배라 해도 형식만을 다만 정중히 하는 것은 실은 우상숭배적이라하여 이것을 탄핵하였는데 실로 그 인식이 깊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호세아 선지자에 의해 쓰여진 본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제1부는 호세아의 생애, 특히 비극적인 가정생활의 경험으로써, 이스라엘의 배신 타락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속죄애를 말한 것(1-3). 즉 최초의 제1부인 1장-3장은 호세아서 전체를 푸는 열쇠(a key, the clue)인데, 여기서 이스라엘인의 불신실과 하나님의 인내깊은 사랑이, 호세아의 간음한 아내와의 비교로 나타나 보여지고 있다.

 

제2부 당시는 부패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호세아의 예언을 모은 것(4-14장)이다.

4장은 이스라엘 인민의 죄악과 제사장들의 책임을 책망한 말.

5장은 이스라엘에 임하는 하나님의 징벌, 회개 이외에 그것을 면할 수 없다는 것.

6장은 이스라엘의 회개의 얕음과 진실성의 결핍.

7장은 이스라엘 내부의 부패 타락과 대외정책의 잘못됨에 의한 결과.8장은 하나님의 심판의 절박.

9장은 이스라엘 인민에 임하는 포로의 슬픔과 그 원인.

10장은 이스라엘 인민의 종교적 타락과 그 보응.

11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회개의 요구.

12장은 이스라엘 인민의 죄와 선조 야곱과의 관계. 13장은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 심판 형벌의 불가피성.

14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회개의 요구와 축복의 약속.이들 예언은, 대체로 북왕국 말기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무정부 혼란상태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그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배신타락, 특히 여호와 하나님(출 6:5,7-3:14)에 거역하고, 바알 예배에 빠진 결과인 것으로서,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언하여 이스라엘 인민의 회개를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호세아서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호세아의 가정적 체험(1-3장)

(2) 이스라엘의 여러 가지 죄(4:1-6:3)

(3) 이스라엘의 죄와 그 형벌로서의 앗수르의 침입(6:4-10장)

(4)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최후적인 심판(11-13장)(5) 회개의 권고와 하나님의 구원(14장)


 

4. 본서의 문체.

 

1장과 3장을 제외하고 보면, 호세아의 예언에서는 여호와께서 당신을 1인칭으로 말하고 있는 편이, 3인칭의 경우보다 많다. 이 사실은 호세아에 있어서는, 외적(밖)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다기보다, 내적(심령적인 하나님)의 속삭임으로써 계시를 받았음을 의미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생생한 비유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호세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내적으로 아주 리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5. 본서의 목적.

 

본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불변하는 사랑의 예언이다. 호세아는 그들이 가나안 사람의 우상숭배에 오염되고 있음을 말하여, 회개하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복귀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의 예언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죄, 포로, 회복의 네 단계이다. 호세아서 전체를 통하여, 그는 이들 주제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다루고 있다. 그는 예언적으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는 아내처럼, 곧 버려지나, 결국 속량되어 성결해지고 회복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부정한 아내와의 결혼에 의해 생겨난 아이에게, 자기의 예언의 주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름을 주었다. 즉 예후 왕조의 멸절을 나타내는 것으로 첫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예후가 피를 흘린 잔인한 도시-왕하 10:1-14), 앗수르에의 포로에의 예언으로서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 국민의 최후적 회복의 약속으로서 암미(내 백성)라고 이름을 붙였다(호 1:1-2:23).

 

 

6. 본서의 특징

 

1,3장 외에는 대체로 시형인데, 과격하고, 부드럽고, 그러면서 아름답고, 생생한(활기에 넘치는) 표현을 하고 있다. 아모스의 정신이 이사야에게 계승되었다고 하면, 호세아의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자가 크고, 건장하다면, 후자는 적고, 예리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호세아서에 있어서, [긍휼](호 2:19,10:21). [인내](4:1, 6:4,6)로 역된 히브리어 명사 [헤세드 ds,j,(chesed)]라는 말은, 호세아서에 특징적인데 이것은 성실한 불변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 진실한 사랑을, 형식적인 희생 제사보다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서 호세아는 자기 아이에게 예언의 주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름을 주기도 했다. 첫아이의 이름은 [이스르엘]이라고 했다(1:4-5). 이스르엘은 예후가 피흘린 잔인한 도시이고(왕하 10:1-14), 이스르엘 계곡은 오래된 전쟁터로 여기서 왕국은 거의 붕괴 되었다. 호세아는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으로써 왕과 백성에게 심판이 올 것을 예언했다. 둘째 아이의 이름은 [로루하마](호 1:6)로서 [이제는 긍휼이 없다]는 뜻인데, 유다(남국)에는 유예가 있었으나, 이스라엘에게는 없었다(호 1:1). 세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호 1:9)로서, [내 백성이 아니라]라는 뜻인데, 앗수르에 의한 포로에의 예언이고, 국민의 최후적 회복의 약속으로서 암미(호2:1), 즉 [로]를 빼고 [내 백성이다]라는 [암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7. 본서의 주제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호 12:3-)이다. 자기 중심적인 야곱이 이스라엘로 되어 축복을 받은 것같이, 너희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자로 되라는 호세아의 권고이다. 참된 축복은 형식적인 벧엘의 예배가 아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인내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하나님을 바라봄에 있음에 말해져 있다.

 

 

[文獻]

 

W.R. Harper: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on Amos and Hosea, 1905;

T.H. Robinson:Die Zwolf Kleinen Propheten Hosea bis Micha, 1936;

H. Schmidt:Die Ehe des Hosea, in Z A W,1924;프란시스코회 성서연구소:호세아서, 1964;

M. Ward:Hosea, A theological commentary, 1966.

 

-----------------------

 

호세아:Hoshea(인명)

 

(['vE/h, Hoshea)[그] @Wshe(Hosee) 「구원」

 

[1]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서 여호수아의 원 이름이다(민 13:8,16). 그는 모세에의해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여호수아'로 개명되었다.

 

[2]엘라의 아들이다. 그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묵허(默許)를 얻어 이스라엘 왕베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베가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왕하 15:30). 그의 치세는 9년간(BC 730-722) 계속되었으나, 하나님 앞에서 행악하였다. 그러나그 때까지의 왕들보다는 비교적 선하였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은 그를 치려고 원정해왔다. 그는 이 침략자를 격퇴하지 못하여 조공을 하였다(왕하 17:3). 그러나 강대한애굽 왕국이 그 국경에 앗수르가 접근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기미를 알고, 그는 애굽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그는 원군이 곧 올 줄 믿고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왕하17:4). 살만에셀은 다시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범하여 호세아를 감금하고 사마리아를포위하였다. 사마리아는 극심한 궁핍에 빠졌지만 3년 동안은 버티고 견디었다. 그 3년의 끝 무렵에 살만에셀이 죽었다. 그러므로 사르곤이 사마리아 점령의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는 주민의 지도 계급에 있는 사람을 사로잡아 할라와 고산하볼 강가, 그리고 메대 여러 고을에 두었다(왕하 17:5,6).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10지파의 포로'라고 불리우고 있다. 일이 여기에 이른 것은 호세아 왕이 특별히 나빴던 탓이 아니고, 수 세기에 걸친 이스라엘의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이며, 그의 죄악은 한 방울 물에불과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북조의 멸망의 표면상 이유는 외교 정책의 실패라 할 수 있으나, 기실은 배신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 동쪽에는 앗수르, 남쪽에는 애굽이 있어 이 양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 신세였다. 이렇게 양대 세력에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중립적 독립을 유지했어야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세아는 처음에는 앗수르를 섬기다가 이를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하여 마침내 앗수르의 노를 사게 되었던 바 이것이 멸망의 근인(近因)이 되었다. 즉, 무모한 양면 외교가 멸망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근본적 멸망의 원인은 역대 왕과 백성 등의 배신(背神)과 우상숭배에 있었다. 즉, 그들은 ⓧ 우상숭배를 했으며, ⓨ 율법을 포기했으며,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왕하 17:723).

 

[3]에브라임 자손 아사시야의 아들인데, 다윗 왕 시대에 에브라임의 관장이었다(대상27:20).

 

[4]느헤미야 시대에 율법 준수의 계약서에 날인한 사람 중 하나이다(느 10:23).

 

[5]브에리의 아들로서 선지자이다. 그는 유대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치세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치세에 예언 활동을 하였다(호 1:1).

호세아 선지는 북조 이스라엘의 시민이었다. 그가 그 나라의 선지 사역을 60년, 혹은 65년 동안하는 중에 북조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예후의 집을 거스려 예언하였다(호 1:4). 그는여로보암의 치세 동안 적어도 12, 3년간 예언하고, BC 722년 사마리아의 붕괴를 보기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학자는 그의 예언자로서의 봉사는 40년간이었다고말하고 있다.

호세아는 남조 유다에서 활동한 이사야와 동시대(호 1:1,사 1:1), 즉그가 예언 활동을 했을 때의 여로보암 Ⅰ세와 웃시야는 동시대였으나, 호세아의 예언활동 개시는 이사야의 그것보다도 빠르고, 또 그 끝도 이사야가 그 활동을 끝맺기 훨씬 이전인 것 같다. 그는 또 북왕국에서 예언한 아모스, 남조에서 예언한 미가와도 동시대였다.

호세아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참혹하고 비극적인 것이었는데, 인간 존재를 근저(根底)에서부터 뒤집어 엎을 정도의 극렬한 것이었다. 따라서 호세아의 선교는 다른 선지자들보다도 매우 개인적 색채 시랑, 진노, 배신과 이탈에 대한 정열적인 생각 , 즉이율배반적인, 이것인가 저것인가라는 갈등이 특징이다.

호세아는 이 격정을 하나님의말씀에서 받았으며, 환언하면 여호와께서는 호세아를 여호와 자신의 페이도스(Pathos) 안에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호세아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은 작열적(灼熱的)인사랑인데, 이것이 호세아의 예언 전체의 특징으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다하지 않는 사랑을 호세아는 `결혼'이라는 영원한 비의(秘義)를 이스라엘 사상 처음으로 써서 표현했다. 여호와께서는 이반(離反)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을 심판으로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편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광폭(狂暴)하지 않고 여호와 자신이 진노를 사랑으로 극복하신 `거룩한 하나님'으로 되신 것이다. 그러면 이하나님의 사랑이 구현되는 방법, 즉 인간의 존재 그것에 달라붙는 죄책과 심판으로 빠지는 일 없이 자유로운 주체성을 회복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호세아는 해결을 주지 않고 있으나 내면적인 투쟁을 통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 마침내 가장 심오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체득하게 되었으며, 호세아의 현대인에 대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죄에 떨어져 죽음으로 넘겨진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는가에 대해 호세아는 우선 `회개'를 제기했다(호 5:15,6:6).

호세아의 회개의 내실(內實)은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향기를 뿜고, 단순히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정신 계보를 계승하여 그것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정신을 계승하는 호세아의자세에는 극히 다양한 색채가 있다. 가나안적 요소를 `유사 치료(類似治療)'적으로 수용(受容)하면서 극복하여 여호와 신앙에 기본을 둔 변용(變容)을 내측에서부터 수행하고 있다. 레위적 초기 신명기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제사의 문란, 그리고 그릇된 제사 행위를 제거하여 제사의 순수하고 진실한 의미를 회복하려고 한 호세아는, 예언자인 동시에 좋은 뜻으로 정치가였다. 결국 다윗 왕조에게 이스라엘을 종속시키고 난 다음 민족 전체의 통일을 생각했다.

호세아는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자세를 확인하려고 했다는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격적인 생(生)의 확인(호 11:1)이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다는 것이다(호 12:9,13:4). 모세와 광야 시대의 청순한 관계(호 9:10)는 바알 제사에 접하고, 또 옥토 문화의일상적인 행복을 맛본 이래 소실되어 버렸다(호 9:10,11:1-,13:5-8).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탈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하여 오는 것은 심판이다. 아드마나 스보임과 같은멸망(호 11:8)이 있을 뿐이고, `출애굽'은 소실하고, 또 노예 상태로 떨어져 간다(호9:1-6,11:1-7). 구원의 가능성은 진실한 `회개' 뿐이다(호 5:15,6:6). 이스라엘을 그와 같은 회개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은혜이다(호 10:2-13). 인간은 이미자기만으로 죄책에서 해방되지 못한다(호 13:12-). 그들의 `악한 행위'는 모두 하나님 앞에 드러나기 때문이다(호 6:11-7:2). 이렇게 호세아는 하나님에 의한 `구원'에의 가능성과 확신을 품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게 역사하여 결단적인 행위,곧 인간 존재의 근저로부터의 회개를 가능케 한다. 이것이 호세아의 도달한 `구원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호 12:2,9).

호세아는 이 신앙의 원천을 이스라엘의 토지 취득 이전을 회고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취하신 `새 시작'의 구체적 방법이 사실은 호세아 2:14-23의 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