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호세아 강해

[스크랩] 호세아서 파노라마

에반젤(복음) 2019. 9. 25. 17:15




호세아서 파노라마

 




호세아 선지자는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패망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세우신 선지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가리켜

0시의 선지자, 상한 마음의 선지자”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을 목격해야만 했듯이 호세아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직접 목격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인 1-3장은 이스라엘이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정부(情夫)를 따라간 음부(淫婦)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둘째 부분인 4-10장에서는 그들이 어찌하여 심판을 받아 마땅한가를 말씀합니다.

그런대 마지막 부분인 11-14장에서는 그들에게 회복의 소망을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장가들라) 명하시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정결한 처녀가 아니라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그런대 왜 그렇게 명하시는 것일까요?

이 나라(이스라엘)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 함이니라”(1:2)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란 절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으로 끝나고 있지 아니합니다.

다음 장에서 하나님은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2:19)하고 소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에게 장가들라 하심과 하나님이 네게 장가들겠다는 것이 대칭(對稱)을 이루고 있는

구조(構造)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이 함의(含意)되어 있는데

하나님과의 연합(네게 장가들어)과

하나님의 나라건설(영원히 살되)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 지는가 하는 이루시는 방도(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가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장가들겠다고 말씀하시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창녀와 같은 “네게”장가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인 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지고(至高)지선(至善)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이상은 없습니다.

장가들겠다”는 뜻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묘사인데

이를 가리켜 연합교리라고 말합니다.

부부 됨은 가장 가까운 것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조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는 분리되었고 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하고 어떻게 연합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값을 주고 사오는(3:1-2) “구속”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호세아의 사랑을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아들을 대속제물로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속하여주실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13:14) 그래서 장가드심이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이는 의문(儀文)이 아니라 복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부 같은 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하시면서

내 마음이 네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히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11:8)하십니다.

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불붙듯 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만 하셨다면 장가드심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그러므로

호세아서를 상고할 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점은 서론이라 할 수 있는 1-3장에

절망과 소망”이 여러 번 교차하고 있음을 깨닫는 일입니다.

이를 놓치게 되면 핵심적인 주제에서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와 결혼하여

이스르엘,로루하마,로암미”라는 “음란한 자식들”을 낳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낳은 자식들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장가들어”낳게 될 자식들은 어떤 자식들일까요?

이 대조(對照)가 이름을 통해서 계시되어 있습니다.

① “이스르엘이라 하라”(1:4)즉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하십니다

이것이 사람이 낳은 자식입니다

이는 절망입니다

그런데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라”(1:11)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낳은 자식 즉 이루심입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로루하마라 하라”(1:6)즉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하십니다

이는 절망입니다.

그런데 

부정하는 “로”를 떼어버리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2:1)하십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로암미라 하라“(1:9) 즉 내 백성이 아니라 하십니다.

이는 절망을 뜻합니다.

그런데

너희 형제를 암미라 하라”(2:1)하십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2:2)하십니다.

이는 절망입니다.

그런가 하면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2:19)하십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또다시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이”(3:4) 지낼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절망의 기간을 의미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3:5) 구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변덕이 많은 분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중심으로 보면 절망 그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은총과 긍휼히 여기심 즉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소망이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호세아서의 중심적인 주제입니다.

통일 왕국이 분열왕국이 되었을 때에 북쪽 이스라엘에는 예배드릴 성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배드리려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왕상12:28-29)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북 왕국은 우상숭배의 토대 위에 세워진 나라였던 것입니다.

벧엘이란“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다가 금송아지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에서는 벧엘이라 하지 않고 “벧아웬”(4:15,5:8,10:5)

즉 “사악한 집”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섬기기 시작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바알과 아스다롯 이라는 이방 신들을 섬기기에 이르렀고 , 정치적으로는 하나님 중심에서 두리번거리는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애굽을 의지하는 자와 앗수르를 우지하는 자(7:11)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즉 우상숭배와 하나님보다 이방을 의지하는 것을 간음,행음,음란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의 핵심은

그 왕 다윗을 구하고:(2:5)한 데 있습니다

죽은 지 수 백년이나 된 다윗 왕을 구한다는  것은 영적 다윗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명백한 약속인 것입니다.

1:11절에서는 

이에 유다 자손과 잇라엘 자손이 한 두목(頭目)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하고 “두목”즉 대표자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에서 착각하지 말아야할 점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1:10)는 말씀을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방인을 택하신 양 말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을 로마서 9:26절에서도 인용하고 있는데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하신 (그 곳)이란

어떤 지점(地點)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행위로는 절망한 지점인 것입니다.

그 절망한 지점에서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율법의 행위로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

오직“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된다”(롬3:24)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다가”(롬10:3) 부딪쳐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는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14:9)는 말씀으로 끝맺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하겠습니다.

첫째는누가 이를 전파하여 깨닫게 하고 듣고 믿게 할 것이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를 설교할 때에 교훈만을 가르칠 것이 아나라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저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시켜 줄 사명이 설교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처럼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 진리를 증거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닫고 믿어 구원을 얻을 것인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도”즉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1:18)라고 말씀한 대로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즉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말씀하십니다.

형제여!

이런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이런 사랑을 알게 해주셔서 하나님과 화복하게 하여주시고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 신부가 되게 하여주신 참으로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십시다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 하여 주께 드리나이다”(14:2)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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