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아가서 강해

[스크랩] 8: 8-14(순결한 사랑 성숙한 삶)

에반젤(복음) 2019. 9. 21. 10:42




8장8-14(순결한 사랑 성숙한 삶)

성경본문 : 아가서8:8-14

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9. 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 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14.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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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임현수목사

 

 

우리는 그 동안 아가서 묵상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끼며 배웠습니다.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사랑의 표현 방법, 사랑의 전달 방법의 무지 때문에 사랑의 기갈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가서는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사랑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하는지를 아름답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본문에서 우리는 술람미 여인의 오라버니들이 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직 미숙한 자매를 돕고자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표현들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도 한절 씩 묵상하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절에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 유방이 없다”는 말씀은 아직 혼인기에 이르지 못한 미성년 未成年을 말하는 표현으로서 영적으로는 "미성숙한 신자"를 말합니다.

 

지금 오라버니가 어린 동생을 생각 하듯이 교회 내에서도 믿음이 어려서 넘어지기 쉬운 미숙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잘 돕는 것이 먼저 믿은 자들의 할 일 입니다.

 

미숙한 어린 신자들을 잘 돌봐주지 않으면 교회의 성장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밥을 먹여도 안됩니다. 젖을 먹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비결은 부모들이 먼저 바로 서는 것 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의 일거일동을 보고 배우며 그대로 따라 가므로 모든 면에서 본을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서 믿음생활을 배웠느냐 어떤 교회를 다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입니다.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또 감사"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도전 받은 것은 초신자들의 모습이 너무 특이했기 때문 입니다. 이 교회는 개척된 지 이제 3년 되는 교회인데 300명의 성도가 LA에서 두 번째로 선교 많이 하는 교회가 되었는데 그것도 95%가 새신자들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들이 수없이 많지만 특별하게 쓰시는 특이한 교회들도 많습니다. 이번에 LA를 방문하면서 4개의 모임을 잘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모임을 하는 중에 짬짬히 한국 교회를 방문해서 목사님들을 만나 뵙고 교제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교회는 개척된지 3년 밖에 안 되는 어린 교회였지만 너무나 깜작 놀라운 것은 전 교인이 단기 선교하는 교회 전 교인이 십일조 하는 교회 전 교인이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작은 교회가 작년 1년 동안 드린 선교헌금이 7.2 밀리온(720만 불) 입니다. 이것은 LA에 있는 대형 교회들의 선교 헌금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은 액수라고 합니다.

 

이 교회에는 최초의 선교사이셨던 최찬영 선교사님과 풀러의 박기호 교수님이 영적 지도를 해 주시고 캔초이라는 1.5세 담임 목사님이 아름답게 이끌고 나가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 만들어 내는 모험을 좋아하는 교회입니다.

 

장도원 장로님과 옥우원 집사님을 비롯해 남편들은 1년에 몇차례씩 선교 다니고 부인들이 회사와 가게를 운영해 가고 있는 특이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선교부터 배웁니다. 그래서 선교 갔다 와서야 세례 받고 영접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되었지만 참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우리 큰빛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교회 신자들은 교회 나온 지 일주일도 못되어서 캄보디아 중국으로 단기 선교를 떠납니다. 그리고 선교 다녀와서 예수 믿고 세례 받습니다. 십일조는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전 교인이 십일조합니다. 왜냐하면 개척하신 장로님과 몇 집사님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 입니다. 특별히 장도원 장로님 내외 분의 모습을 보며 신앙생활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본입니다.

또 어린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잠 22: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신자 때 바르게 가르쳐야 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대 일 교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자녀를 위한 눈물의 기도는 반드시 자녀를 바른 길로 돌아 오게 하는 것 입니다.

 

유방이 없다는 것은 젖을 내어 자녀를 기를 수 없다는 뜻이며 이 말은 영적으로도 믿음의 후배들을 기를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말 입니다. 성숙하지 않고는 자녀를 기를 수 없습니다.

 

엄마의 젖이 안 나오면 엄마도 힘들고 아기도 힘든 것 입니다. 줄 것이 없는데 무엇을 주겠습니까? 저수지에 물이 없는데 어떻게 전답에 물을 대 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고 부탁하십니다.

다음에 나오는 성벽은 방어와 수비를 목적으로 존재 하는 것으로 여자의 정조를 잘 지키는 견고한 인격을 비유합니다. 사랑에 민감한 사춘기 시기에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항상 순결을 지키도록 도와 줍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3)

건전한 자아상이 순결을 지키도록 도와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16)

 

비전이 순결을 지키도록 도와줍니다. 책임감이 순결을 지키도록 도와줍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순결을 지켜 주십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 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사랑은 우리로 성숙한 삶을 살게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11)

 

다음에 망대가 나옵니다. 망대는 감시하는 곳으로서 어린 자녀들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는 것을 말 합니다. 부모의 감시가 잠시만 소홀해져도 아이들의 삶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과 접촉 하는 시간이 적고 무관심하게 되면, 잠깐 동안에 술 담배를 배우고 마약에 손대고 잘못된 집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 문이 나옵니다. 문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으로서 백향목 판자로 두르겠다는 것은 방종하게 드나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책임감 있는 봉사를 말합니다.

 

성경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청년이여…. 마음의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 하실 줄알라…”(전 11:9)

 

마음을 여는 것은 좋지만 분별없이 세속적인 것을 아무것이나 다 받아 들이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 입니다. 특별히 누룩과 같은 이단 사상이나 신비주의, 신신학, 세속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이런 것들이 못 들어 오도록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행한다 할지라도 성경에서 떠난 것이면 조심해야 합니다.

마 24:24 10절은 오라버니들에 대한 응답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성벽이냐 문이냐 하는 오라버니들의 말에 대하여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같다 고 합니다.

 

나는 성벽이라는 말은 인생 성벽이 잘 자라서 안전하다는 뜻 입니다. 강한 성벽처럼 자신을 유혹하는 모든 시험을 물리쳤다는 뜻 입니다. 이것은 성숙을 말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나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엡 4:15) 그리스도의 신부 되기에 적합한 자는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켜 성벽같이 동요됨이 없어야 합니다.

 

나의 유방은 망대같다 함은 방종하지 않고 정절을 잘 지키는 망대같이 성숙했다는 것 입니

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7) 어머니가 젖을 내어 자녀를 기름같이 술람미 여인은 성숙 하였다는 것 입니다. 신령한 젖으로 성도들을 잘 먹일 때 교회는 바로 자라고 교회는 화평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다”고 한 것은 믿음의 성숙의 결과를 말하는 것 입니다. 성벽이 견고 하고 망대에서 적을 잘 살펴 방어 함으로써 성안은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믿음이 성숙 할수록 성도는 염려를 주께 다 맡겨 드리므로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빌립보 중심의 지리적 배경… 빌립보라는 도시의 특징은 막강한 방어벽에 있었습니다.

/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는 주님 때문에 우리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는 것 입니다. 빌4:6-7“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을 때 우리는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롬 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성벽과 같이 견고한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11절부터 보시면 신부는 왕에게 오라버니들을 부탁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의 은총을 얻습니다. 왕 앞에서 존귀한 지위를 얻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 소유의 포도원을 가졌습니다.

 

솔로몬은 비옥한 땅으로 알려진 수넴에서 가까운 평원 지대인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술람미 여인의 오라버니들에게 맡기어 수확기에 은1,000 세겔을 세로 바치게 하였고, 그들에게는 은 200세겔 씩을 지불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솔로몬을 그리스도로, 포도원을 교회의 모형으로 볼 때, 지키는 자들은 교회의 일군들로서, 마지막 날에 솔로몬과 회계 하였듯이 하나님도 성도들과 결산하는 날이 있을 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님의 포도원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고전 3:8절에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에 감격해서 교회를 봉사하면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함이고,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 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 되면 썩을 양식을 위하는 것 입니다.

 

악한 농부가 되어 주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 이라고 주님은 경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 세상 만물은 결국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는 자의 것이 됩니다. (고전 3:21-23)

 

이제 마지막 두절은 아가서의 결론으로서 신랑과 신부의 노래의 화답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너 동산에 거 한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13)

 

성도의 영광은 동산에서 주와 함께 동거 하는 것 입니다. (히13:14)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전도보다 우선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삶이 풍성하여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은 다른 곳에서의 천 날 보다 낫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이런 삶을 살게 되면 동무들이 왕궁의 소식을 들으려고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 입니다.

 

친구는 술람미 여인의 고향 친구들을 말 합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납니다. 그런데 자기 친구가 왕비가 되어 고향에 돌아오니 그의 옛 친구들이 모여서 술람미의 말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신령한 은혜의 생활을 하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많아집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이것을 보고 기뻐 한다고 베드로 사도는 말 합니다. (벧전 1:12)

 

그러나 성도의 영광은 주께서도 그의 소리를 듣기 원하신다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어떤 소리를 듣기 원하실까요?

 

주님은 성도의 기도 소리를 듣기를 즐겨하십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고넬료를 기억 하시고 축복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기도하는 다니엘을 기억 하시고 사

자굴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잠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신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시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주께서는 성도의 회개하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겔 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 18: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겔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주께서는 성도의 찬송소리를 듣기 원하시며 주안에서 열심히 모이는 것도 기뻐하십니다.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마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제 마지막 절입니다.

마지막 신부의 노래는 사랑하는 신랑을 빨리 오라고 부르는 마음의 열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는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가르칩니다.

주님의 재림은 성도들에게는 최후의 승리와 영광이 되며 구원의 완성이 됩니다.

 

주님 재림 하실 때 먼저 죽었던 성도들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고 살아있던 성도들도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 입니다.(롬 8:23)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향기로운 산들”은 하나님의 나라 신천신지의 모습을 가르키며 주님은 그곳에서 성도를 위하여 향기로운 중보의 대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빨리 달리라는 신부의 소원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며 주님 오심을 갈망하는 성도의 기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 하심으로 성도는 영원히 주와 함께 동거하는 삶을 살게 될 것 입니다.

 

계 7: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아가서는 주님과 입맞추는 것으로 시작해서 깊이 사귀다가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스런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응답 할 뿐 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늘 소망하는 가운데 잘 준비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러분은 이렇게 불평하실 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이 왜 아직도 안 오십니까?" 예수님의 초림이 때가 찬 시각에 일어졌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의 사건도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가 다를 뿐 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각을 하나님의 비밀에 붙여 둠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실존적으로 결단하며 살게 되는 것 입니다.

 

필리핀이 잠시 일본군에 점령되어 있던 2차 대전 당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을 떠나면서 남겼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다시 돌아 올 것 입니다.”

 

I shall return!

2년 후 필리핀의 레이트 만 해안에 상륙하면서 맥아더 장군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나는 다시 왔습니다” As I promised you I came!

성실한 한 인간이 자기 개인의 명예를 걸고 그가 다시 온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우리의 구세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그 분이 약속을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일세기에 일어난 역사적인 놀라운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로마 제국 이탈리아의 베스비우스 라는 산 중턱에 위치한 한 2,000명 정도가 사는 마을에 주후 63년 어느 날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등장했습니다. 그 노인은 자칭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방탕과 주지 육림의 부도덕한 생활속에 빠져 있던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했습니다.

“저 화산은 폭발할 것이요. 살길은 두 가지 밖에 없소. 하나는 당신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거나 아니면 이사 가시오”

 

아무도 이 미친 노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미쳐버린 광적인 노인의 망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꼭 16년이 지나간 어느 날 A.D 79년 8월 24일 베스비우스의 그 유명한 화산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2천명의 마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건지지 못하고 다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로마의 장군이요 역사가이며 그 지역의 통치자인 플리니Pliny 라는 사람도 이 마을에 왔다가 같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예언자의 얘기는 플리니의 아들이며 나중에 소아시아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 2세에 의해서 역사의 한 조각으로 기록됩니다. 그것이 바로 폼페이의 멸망입니다.

 

다가오는 그날이 오고있습니다. The day after ! tomorrow !

이 결산의 날 이 심판의 날을 바라보면서 오늘 이라는 삶의 순간을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베드로 사도는 무엇보다 기도하라! 그리고 사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기도하에 깨어 있는 사람, 사랑하며 주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주의 재림은 가장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시간이 될 것 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응답 할뿐 입니다. 이것은 평소에 주님의 재림을 늘 소망하는 가운데 잘 준비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 입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