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역대상,하 강해

[강해설교] 손상률목사/언약궤의 운반 (대상 15:11-15)

에반젤(복음) 2019. 9. 16. 23:28



손상률목사/언약궤의 운반 (대상 15:11-15)     
 
 
구약의 사건과 인물들은 멀리 신약 시대에 펼쳐질 교회 운동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돌비를 담은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부터 그 민족과 애환을 같이 했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후 이 언약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다윗이 이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중심으로 성소에서 봉사하는 레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다윗이 도읍지로 정한 이곳 예루살렘은 하나님 나라의 심장부로서 언약궤가 있어야 될 위치입니다. 언약궤를 운반해야하는 당위성과 그 상징성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합니다.


1. 하나님의 언약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여행을 하는 동안 성소를 중심으로 생활을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소 가운데서 특별히 지성소(至聖所)로 구별된 곳에 언약궤를 안치하게 하였습니다.


1) 언약궤의 구조

출애굽기 25:10-11에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라고 하였습니다. 언약궤의 재료는 조각목과 순금입니다. 조각목은 일명 아카시아라고도 하는데 사막의 떨기나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렘 17:6). 시내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척박한 토양에서 좋은 재목을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시가 앙상하고 결이 거칠어 재목으로 가치가 없는 나무를 재료로 하고 거기에다가 순금을 입혀서 존귀한 기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는 세상 가운데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범죄, 타락하여 버림 받은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2) 언약궤의 내용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들게 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새겨 주신 증거판 곧 십계명의 돌비를 보관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 25:21). 본래는 볼품없는 조각목의 구조물이지만 거기에다가 순금으로 싸서 고귀한 궤로 만든 것은 그 안에 담기는 물건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4에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언약궤에 담긴 내용물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십계명의 돌비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으로 말씀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나타냅니다(요 5:39). 항아리에 담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은 하늘의 양식인데(신 8:3), 이는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요 6:35).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예표입니다(민 17:10).


3) 언약궤의 권위

언약궤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의 상징입니다. 언약궤를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무엘상 6:19에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언약궤를 만들 때 조각목의 안과 밖을 순금으로 싸고 그 모서리에 테를 두르게 한 것은 궤의 권위와 비중이 컸기 때문입니다.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도 순금으로 입히고 거기에다가 양쪽으로 날개를 편 그룹을 만들어 얼굴을 마주하게 하였습니다. 이 궤를 성막 가운데 지성소에 안치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임재하여 모세와 만나신다고 하였습니다(출 25:10-22). 조각목이나 순금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곳에 임재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기구가 되는 것입니다.


2. 언약궤의 수난

언약궤를 취급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서 언약궤가 존귀하게 여김을 받기도 하고 천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언약궤가 존귀하게 되었을 때는 백성들이 복을 받았지만 언약궤가 멸시 당할 때는 백성들에게 재앙과 징벌이 내렸습니다.


1) 언약궤와 이가봇

여호수아 이후 사사시대 말까지 언약궤는 실로에 있었습니다(수 18:1). 실로의 지명은 ‘통치자의 지팡이(笏)’라고 하여 신약적으로는 예수님의 통치권을 상징합니다(창 49:10). 그런데 엘리 제사장 말기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 전투에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가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언약궤가 없어진 실로의 성소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홉니와 비느하스 두 제사장은 전사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나이 많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때 아이를 낳던 비느하스의 아내는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것과 시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가봇’이라는 한마디를 외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삼상 4:19-22). ‘이가봇’이라는 말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2) 언약궤와 재앙

언약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것을 전쟁에서 이기고 얻은 전리품으로 생각했다가 큰 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기나라 다곤 신의 도움으로 승리를 했다고 하여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바쳤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다곤의 우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려져서 머리와 손목이 끊어진 채 몸뚱이만 남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아스돗 사람들 모두 온 몸에 독한 종기가 나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곤욕을 치른 아스돗 사람들이 언약궤를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보냈는데 그곳 사람들도 독종의 재앙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에그론으로 보내려 하였습니다. 에그론 사람들은 언약궤가 오기도 전에 길을 막고 못 오게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보내게 되었습니다(삼상 5:1-12).


3) 언약궤와 축복

언약궤가 블레셋 지경에서 일곱 달을 머무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로 엄청난 재앙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보내기 위하여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매어보지 않은 두 암소에게 수레를 끌고 가게 하였습니다. 인도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수레를 메고 가는 암소는 이스라엘 경내의 벳세메스까지 언약궤를 운반해 주었습니다. 언약궤를 돌려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럇여아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하고 그 집 아들을 구별하여 지키게 하였습니다. 훗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다가 실패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사무엘하 6:11에 “여호와의 궤가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3. 언약궤를 메어 올려라.

다윗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놓고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고 하였습니다(12절). 여기 다윗이 마련한 장소는 훗날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질 모리아 산입니다(대하 3:1).


1) 언약궤 운반의 목적

다윗이 언약궤를 운반하려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신명을 걸었습니다. 그가 처음 골리앗을 보았을 때 그 할례 없는 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에 분개했습니다(삼상 17:36). 그가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도읍지로 삼았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서원하였습니다(삼하 7:2)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권위와 임재의 상징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은 위치에 안치되어야만 합니다. 그동안 백성들의 과오로 언약궤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 온갖 멸시와 모욕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며 그 권위와 영광을 짓밟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받게 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은 훼손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진력하여야 됩니다.


2) 언약궤 운반의 방법

언약궤는 긴 채를 고리에 꿰어 제사장이 메고 가야 됩니다(출 25:14). 본문 13절에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첫 번째 언약궤를 운반하다가 실패하게 된 원인입니다. 그때는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제사장 웃사가 새 수레에 싣고 가다가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현장에서 죽었습니다(삼하 6:7). 웃사는 언약궤를 제사장이 메고 가도록 규정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사람이 메고 가는 것보다 소가 끌고 가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위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3) 언약궤 운반의 결과

언약궤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이방인의 손에 끌려 다녔거나 오랜 세월 사가에 방치되어 있을 때 이스라엘에는 이가봇 현상의 암흑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언약궤가 시온산 성소에 자리 잡게 됨으로 명실공히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모리아 산에다 성전을 건축하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구별된 지성소(至聖所)에 언약궤를 안치하였습니다(출 26:34). 열왕기상 8:6-11에 보면 제사장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한 다음,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름 그대로 평화의 도성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누리게 될 영원한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