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시편 강해

시편 94편 연구

에반젤(복음) 2019. 9. 9. 08:12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94]

[내용개요]

본시편은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에 대한 시로서, 악한 세력이 관영하는 시대에 부당한 핍박을 당하고 있는 한 시인의 비탄과 호소, 그리고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 내용상 구분파면 악인에 대한 고발(1-7),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부분과(8-11)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믿음의 고백(12-23)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본시편이 수리아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부른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드러난 이스라엘의 원수는 이방 국가로 볼 수 없고 이스라엘 민족 중의 압제자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신빙성이 없다. 사실 우리는 본시의 구체적인 배경에 대해 알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가 악인의 압제와 찬탈 속에서 붕괴되고 있는 상황을 목격한 시인이 극도의 위기 의식을 가지고 썼다는 점을 짐작할 뿐이다. 이처럼 비관적인 상황에서 저술된 본장은 의인의 부당한 처지를 간절하게 호소하는 '비탄시'로 분류할 수 있다.

[강 해]

시인은 하나님을 보수하시는 자로 묘사하면서 주의 백성과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악인들의 횡포를 고발하며 악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공의로 심판하셔서 악인을 멸하시며 의인을 구원하신다는 확신 있는 믿음 가운데 여호와가 자신의 산성이시요 피할 반석이심을 찬양하였습니다.

1 .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을 구함

1) 교만한 자에 대한 심판

시인은 하나님을 보수하시는 하나님으로 부르면서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내리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곧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시어 하나님과 그 백성을 훼방하는 악인들을 멸하실 것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수하심은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32:35)라는 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무례히 행하는 자입니다. 시인이 교만한 자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나님만이 심판자가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므로 겸손히 행하라는 교훈입니다(참조, 4:11-12).

a. 행위대로 갚으심(7:8)

b. 공의대로 판단하심(35:24)

2) 악인의 교만함

시인은 하나님께 악인의 자긍함과 교만에 대해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하였습니다. 악인들이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고 고아를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공평한 법 집행을 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연약한 존재로서 보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와 같은 법을 어기면서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악행을 보지 못하실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시길 구하였습니다.

a. 교만에 속한 자(1:3)

b. 오만한 말을 함(삼상2:3)

3) 악인에 대한 심판 경고

시인은 하나님께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심판을 구하고는 악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눈과 귀를 만드신 분으로서 악인들의 말처럼 그들의 악행을 보지 않으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행위와 심령을 감찰하시어 그 행위에 따라 합당한 보응을 하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고 반드시 징벌하실 것임을 경고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a. 소위와 사상을 알고 계심(66:18)

b. 매일 분노하심(7:11)

2.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1)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심

여호와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시인의 고백은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께 징벌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자는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회개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채찍을 맞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사 환난 날에 벗어나게 하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징계의 채찍을 드시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 언약 성취는 성도에게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a.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심(3:12)

b. 버리지 아니하심(9:17)

c. 크신 이름을 인하여 버리지 아니하심(삼상12:22)

2)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께서 의로 판단하시므로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게 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도와주시지 않았다던 자신의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게 죄었을 것이라고 진술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악인의 손에서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또한 자기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자기 영혼을 즐겁게 한다는 시인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외부의 적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내면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근심을 제거함으로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성도에게 담대함과 평안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모든 성도는 악한 사단의 세력에 의해 압박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성도는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 에 처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써 영생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a. 탄식을 듣고 도우심(12:5)

b. 의인을 요동치 않게 하심(55:22)

3) 악인을 끊으시는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의 율례를 빙자하여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에 대해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백성의 생명을 빼앗고 재물을 착취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음은 하나님께서 징벌하여 멸하시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의인의 영혼을 무고히 해치고 무죄자를 거짓으로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의인의 산성이 되시며 피할 바위가 되시어 악인을 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대한 믿음 때문에 의인이 고난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아 정직히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확고한 ale음을 지닌 자에게 함께하시며 영생 복락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a. 악인에게 임할 심판(3:11-12)

b. 악이 악인을 죽임(34:21)

c. 다 흩어 버리심(92:9)

결론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지 않는 자들은 현실 속에서 악의 세력과 타협하고 악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행하여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험과 대적의 핍박 속에서도 성도를 지켜 보호하여 주시어 최후의 승리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단어해설]

1. 보수하시는. 원어<t/mq;n]:네카모트>는 마지막 하나까지 완전히 복수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행위를 그대로 갚으시고 심판하심을 의미한다.

2. 일어나사. 원어<aceN:hi:힌나세>는 하나님께 악인에 대한 심판이나 자기 백성의 구원을 요청할 때 사용된다.

4. 오만히. 하나님의 가르침을 경멸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내세우는 태도를 말한다.

5. 파쇄하며. 원어<ak;D::다카>는 힘없는 자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핍박하는 것을 의미한다.

7. 생각지 못하리라. 악을 행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악인들의 태도를 말해 준다.

8. 지혜로울꼬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겠느냐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1. 허무함. 원어<lb,h,:하벨>'호흡, 연약함'을 뜻하며 특히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연약함이나 허무함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12. 징벌. 원어<rs'y::야사르>'징계하다, 교훈하다'라는 뜻으로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내리는 징계를 가리킨다.

13. 구덩이. 짐승을 잡기 위한 함정으로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

17. 적막. '침묵의 세계' 곧 죽은 자들이 거하는 음부를 가리킨다.

18. 인자하심. 언약 백성에 대해 변치 않으시고 보호하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가리킨다.

[신학주제]

재판장으로 묘사된 하나님.

본시는 드라마틱한 재판 광경을 연상케 해 주는데, 여기서 시인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악인의 범행을 낱낱이 고소하는 검사의 입장에 서 있다. 그는 먼저 악인의 범행에 대해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고발하고 이어서 공의의 심판에 대한 소망을 피력한다. 특히 악인에 대한 복수의 정신이 매우 고조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비복음적 요소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본시에 나타난 시인의 복수심은 개인적인 원한에 대한 앙갚음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인은 악인의 압제로 인해 언약 공동체가 붕괴되는 상황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에 해가 된다는 관점에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복수심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의분이라고 볼 수 있다. 93편에서 하나님이 왕으로 묘사되었던 반면, 본장에서는 재판장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 같은 상이한 묘사는 당시 이스라엘의 신정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의 정치 형태와는 달리 행정권과 사법권이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사나 왕이 전권을 행사했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왕과 재판장은 한 하나님의 두 가지 기능을 반영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영적교훈]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던 시인은, 악인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조목 조목 질책하면서 악인들을 우준한 자와 무지한 자라고 부르고 있다. '우준한 자'라는 호칭은 그들의 잔인한 범행에서 기인하고, '무지한 자'는 이런 범행을 담대하게 행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시인은 악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살해하는 범행을 서슴지 않았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아무리 은밀하게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죄악들은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항상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을 올바로 알아 무지한 자들처럼 죄악을 행치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