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시 75장]
[내용개요]
본시편은 종국에 있을 악인에 대찬 심판과 의인의 영광스러움에 대한 확고한 기대를 드러낸 시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가 정한 시기에 명백히 드러남으로써 그의 주권이 절정에 이를 것이며(1-3절), 심판의 때에 악인은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 멸망하나 의인은 영광에 다다를 것임을(4-10절) 대조적으로 언급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강 해]
본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주의 자연 질서와 윤리적 질서를 유지하시고, 때가 이르면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에 대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시의 구성상 실제적인 찬양은 1절과 마지막 두 절, 즉 9-10절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간에 있는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대한 언급 역시 이런 맥락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본시를 찬양시라고 합니다.
1 . 주께 감사함
1) 감사하는 이유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이 가깝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우신 섭리와 은총의 배려가 우리 성도들에게 가까이 있다는 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영예와 권세가 향상된 것과, 하나님이 자기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여 주신 많은 질에 대하여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될 것은 시인이 두 번씩이나 감사를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강렬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a.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시75:1)
b. 구원하심(시34:18)
2) 주의 기사를 전파함
시인은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지만 대적자들에게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악한 세력을 쳐부술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통쾌한 승리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며 사람들에게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주를 찬양하고 그 기사를 전파한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a. 전심으로 감사함(시9:1)
b.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함(고후2:14)
3) 정의로 판단하심
시인은 말하기를,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정의로 판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자기에게 관련되어 있는 것을 완성시키리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말씀하신 것을 지혜와 능력으로써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절대 공정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의나 부정도 범하지 않으시는 지극히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셔서 공의로 판단하십니다.
a. 공의로 심판하심(벧전2:23)
b. 행위대로 판단하심(벧전1:17)
2. 오만한 자에 대한 경고
1) 하나님의 심판 약속
시인은 때가 되면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만한 자들과 행악하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거역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망할 때에 함께 망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바로 임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모르시거나 방관하고 계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의인은 그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면서 언제나 진리를 파수해야 합니다.
a. 유일한 재판장이심(약4:12)
b. 망령되이 행하는 자를 낮추심(대하 28:19)
2) 악인에 대한 경고
시인은 오만한 자더러 오만을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면서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뿔은 힘과 권능을 상징하는데 이는 동물이 뿔을 높이 들어 자신을 과시하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거듭 거듭 반복하여 주는 교훈은 악인에게는 미래도 없고 소망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악을 뿌리는 자가 거두게 되는 열매란 재앙뿐이며 그들을 위해 예비된 나라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a. 이미 심판을 받은 자임(요3:18)
b. 생명책에서 지우심(출32:33)
3) 죄의 근원인 교만
모든 죄악 가운데서 교만만큼 물리치기 힘든 죄악은 없습니다. 교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으로 스며들어서 자신을 붕괴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교만은 인간의 원죄를 낳게 했으며 인류를 파멸로 인도한 무서운 죄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만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대적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교만이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는 것, 분량 밖의 자랑을 하는 것, 스스로 높이는 것들을 표현하는 말로서 주님은 이에 대해 여러 번 경고하셨습니다.
a.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짐(마23:12)
b.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추심(사13:11)
3. 하나님을 찬양함
1) 의로운 재판장
사람이 아무리 스스로 높아지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게서도 말미암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밝힌 것입니다. 즉 모든 권세와 권력의 근원이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에도 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원칙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잘 나타났습니다(참조, 빌2:6-11).
a. 성도를 위해 행하심(렘20:11)
b. 악인은 마귀의 자식임(행13:10)
2) 하나님의 손에 있는 잔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쏟으시는 진노를 여호와의 손에 있는 잔의 술로 비유하여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에 든 잔에 있는 술을 쏟으시면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술거품이 있는 잔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고 섞은 것이 가득하다는 말은 독한 술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응의 신속성이 얼마나 빠른가 하는 것을 독한 술이 머리 속에 퍼지는 속도와 힘 그리고 취하게 되는 것을 비유해서 말한 것입니다. 시인은 현실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면서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임박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것입니다.
a. 악인을 치시고 의인을 드심(시75:9-10)
b. 주의 의로 높이심(시89:16)
3) 하나님을 찬양함
시인은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시인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인하여 찬양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드러나서 교만한 악인이 멸망을 당하고 겸손한 의인이 영광을 누리는 그날의 소망으로 인해 기뻐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시인의 고백처럼 장차 이루어질 영광의 때를 바라보며 주께 찬양해야겠습니다.
a. 하나님께서 인정하심(시1:6)
b. 그의 뿔을 높이심(시89:17)
결론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선한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악인에게는 반드시 징계하시는 분입니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며 그분은 지극히 공의로우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가 당신을 온전히 믿고 따를 때에 남녀 노소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단어해설]
1절. 감사하고. 원어<WnydI/h:하디누>는 '고백하다, 경배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그에게 경배를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7절. 재판장이신 하나님. 행위에 따라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8절. 잔. '축복' 또는 '저주'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교만한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
[신학주제]
역사적 배경.
많은 학자들은 본시가 히스기야 왕 통치 때 앗수르의 침입과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고대의 어떤 주석가들은 이 시편이 다윗 시대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다윗 시대에 앗수르가 침략한 것 같은 어려운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런 학설은 성립되기 어렵다. 이외에도 본시를 역사적 사실과는 관련 없이 단순히 종말론적 예언으로만 보려는 시도가 있는가 하면, 이 시가 해마다 거행되는 여호와의 즉위식에 관한 축하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본시의 시대적 배경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요소와 종말론적인 요소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즉 시인은 당면 한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조망함으로써 현재의 고통받는 의인들에게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교훈]
성도의 현실적인 고통은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 없으며 단지 하나님의 정한 때가 오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성도는 항상 이것을 명심하고 항상 참된 기쁨으로 감사를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