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열왕기상,하 강해

역대기 강의 - David Pawson 강의 녹취번역

에반젤(복음) 2019. 8. 19. 19:19



역대기 영어강의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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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구약 분류가, 영어성경 장르 분류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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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를 통독해 나갈 때,

항상 두 곳에서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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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걸리는 곳은 <레위기>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멈추지요.

왜냐면 갑자기 스토리들이 사라지고, 별로 상관 없는 율법과 의식만 잔뜩 나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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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멈추게 되는 곳이 바로 <역대기>입니다.

전에 저희 교회에서 단숨에 성경 통독을 했어요.

성도님 두 세 분이 아주 불쌍하게도 <역대기>의 첫 아홉장을 읽게 배당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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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아시지만 <역대기>의 첫 아홉장 전부가 족보를 얘기합니다.

이름에 이름에 또 이름이 연속적으로 나오는데, 또 영어발음으로도 읽기가 꽤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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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 몇 분이 아주 불쌍하게, 15분간을 읽게 되었어요.

모두 히브리 이름이고, 반복적으로 누구는 누구를 낳고 했는데, 다른 말은 없고,

계속하여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면서, 아홉장이나 모두 족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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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를 읽어나갈 때, 또 다시 반복해서 읽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앞에서 금방 <열왕기서>를 읽었는데,

역대기에서 지금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반복해서 읽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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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왜 같은 기간의 이스라엘 왕국 역사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성경에 설명했는지를 의아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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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는 <열왕기상하>에서 이미 기록되었는데,

<역대기>에서 동일한 왕과, 동일한 사건을 다시 한 번 저술 했는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대기>를 공부를 시작하면서, 먼저 이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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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국인이 가진 어려움 중 한 가지는,

영어성경에는 책의 순서가, 옛날 히브리 구약성경의 순서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도표로 여러분께 설명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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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에서, 왼쪽 첫째 칸과 둘째 칸 절반이 히브리 구약성경의 순서이고,

영어구약성경 순서는, 둘째 칸 나머지 절반과 오른쪽 칸인데,

여기서 몇 가지 다른 점을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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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각 권의 분류 방식이 다릅니다.

히브리 성경은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율법, 선지서, 성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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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부활 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들에게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24:44

해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성경을 세 부분으로 나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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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영어성경은, 히브리 성경 분류와 아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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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브리 성경에서 첫 5권은, 그 외 나머지 권들과 완전히 다르게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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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은 율법서, 바로 토라입니다.

이것은 창조주가 주신 기본 지침서이며, *성경 중에서도 가장 근본 바탕이 되는 성경

토라 또는 모세 오경 Pentateuch 라고 부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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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5를 뜻하니까, 그래서 율법5권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책 두루마리에서 첫 몇 글자로, 각 책의 이름을 부르는데,

창세기는 <태초>

출애굽기는 <그들의 이름>

레위기는 <그가 부르시기를>

민수기는 <광야에서>

신명기는 <말씀들이라>고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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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히브리 제목들은, 두루마리를 펼치면, 첫째 줄의 몇 글자인데,

그래서 이 두루마리는, 어느 성경책이라고 알았습니다. *책에 원래 제목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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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율법> 다음에는 <선지서>가 나옵니다. *역사사가 아니라요

선지서에는 또 두 그룹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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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선지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인데,

히브리 구약성경에서 사무엘상/하는 한권이고, 열왕기상/하도 한권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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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음만 사용하고, 모음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글의 숫자가 절반만 되어서, 책의 분량이 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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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고,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글자 수가 아주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를 두 권의 책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모음이 보태지니, 문장의 길이가 배로 늘어나서, 너무 길다는 이유로, 한권을 두 권으로 나누었어요.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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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성경은, 4권의 책을 전 선지서라고 부릅니다. *former prophets

제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서 이미 설명했는데,

이 책들이 역사서가 아니고, ‘선지자의 시각에서 본 역사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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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은 왕국 초기의 중요한 선지자입니다.

왕국 시대에 많은 선지자가 있었고, 많은 역사서를 선지자들이 기록하였으며,

그들은 거기에 해석을 더하여,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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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것은 후선지서인데, *latter prophets

이는 영어성경의 선지서와 똑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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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법 LAW 토라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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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지서 PROPHETS 네비임

전 선지서 :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후 선지서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은 성문서), 12소선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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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문서 WRITING 케투빔

시편, 욥기, 잠언, , 아가, 전도서(설교자), 애가(어떻게),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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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으로는 <성문서>이고,

율법과 선지서를 외에 나머지 모두는 다 이 카테고리에 포함됩니다.

시편도 여기에 속하는데, 시편은 히브리 책명으로 찬양입니다.

우리는 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찬양이라고 부릅니다. *, 테힐림

히브리어 테힐림을 헬라어로 살모이로 번역했는데 거기서 영어 psalms가 나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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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잠언이 모두 성문서에 속하지요.

룻기는 선지서에 속하지 않고, 성문서이며,

이렇게 히브리 성경의 분류는, 영어성경의 분류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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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도 성문서에 속하고,

전도서가 성문서에 속하지만 *도를 전하는 책

히브리어 책명에는 전도서를 <설교자>라 부릅니다. *, 코헬렛 pr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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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도 성문서에 속하는데, 히브리 책명은 어떻게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책의 처음 단어가 어떻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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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와

다니엘도 성문서인데,

다니엘서가 선지서에 속하지 않고, 성문서에 속하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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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면 크게 쓸데없어 보이는 <히브리 구약성경 분류>를 길게 논한 이유가

아래에 이제부터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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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와 다니엘서가 성문서이고, 그 다음에

히브리 구약 성경의 마지막 순서에 <역대기>가 배치됩니다. *역대기가 성문서입니다.

역대기의 히브리 책명은 그 날의 말들인데, 이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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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하면, 열왕기와 역대기는 사실 성질이 완전히 다른 책입니다.

열왕기는 <선지서>이고, 역대기는 <성문서>인데, *이것 설명하려고, 히브리 성경 분류를 앞서 길게 설명

우리 조금 있다가 이 이유를 얘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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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구약 성경의 마지막 단어가 알리야인데,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go, 알라하

<역대기>의 마지막 문장이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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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샤 왕 고레스가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 대하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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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돌아가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 때로부터,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돌아갈 때 나는 알리야를 한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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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히브리식 성경배열이, 영어성경의 배열순서보다 더 좋아요.

왜냐면 구약 영어성경의 마지막 글자는 저주로 끝납니다. *4:6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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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말라기>를 읽을 때, 그 마지막 절을 절대로 읽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저주의 말로, 끝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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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후에 <말라기>를 공부할 때,

그들이 어떻게 하였는지, 자세히 얘기 하겠습니다.

그런데 배열 순서를 보십시오.

누가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열어서 설명하신 방식이, 유대인들의 구약처럼,

율법서, 선지서와 성문서(시편)형식으로, 자신에 관한 성경말씀을 설명하셨습니다.

*24:44절의 예수님의 방식으로 볼 때, 히브리식 구분이 더 올바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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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성경은, 구약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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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성경의 구약 구분

1) 역사서 : 창세기~ 에스더

2) 시가서 : 욥기~아가

3) 선지서 : 5 대선지서, 12 소선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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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성경에서 구역 맨 앞의 성경들을 <역사서>라고 부르지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역사서로 분류하며,

거기에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도 추가시키는데,

이는 이것이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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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역사서>,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이렇게 역대기를, 열왕기서 바로 뒤에 붙여 놓습니다. *히브리성경은 역대기가 맨 마지막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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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역대기><열왕기>의 중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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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역대기는, 열왕기서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책입니다.

역대기는 선지서가 아닙니다. *성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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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이 연속해서 배열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열왕기서>를 읽으면, 이미 다 읽었다고 생각하여 <역대기>를 건너뛰는데,

그러면 이 책의 메시지를 놓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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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역사서로 분류하지만,

히브리 성경에는 이를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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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스더서를 역사서의 마지막 권으로 놓고,

그리고 그 아래 몇 권을 시가서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시가서에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인데,

이렇게 시가서가 역사서 다음에 나옵니다.

그 결과, 우리(영어성경), 연대기 순서를 모두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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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지서인데, 우리는 아주 다르게 구분하지요.

우리는 선지서를 전선지서’ ‘후선지서로 나누지 않지요.

우리는 그저 대선지서’ ‘소선지서로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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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의 대선지서와 12권의 소선지서이며, <다니엘서>를 대선지서로 분류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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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역대기>는 교인들에게 거의 잘 모르는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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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 이방인들이 성경분류에 있어서 많이 오해하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구약성경 분류>에 있어서, 히브리 성경과 다른데요,

우리는 <열왕기><역대기>를 같은 장르의 책으로 보는데,

만약 자세히 연구하지 않으면, 당연히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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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대기는, 우리가 잘 인용하는 딱 두 구절만 압니다. *그 외 나머지는 거의 모릅니다.

1) 그중 한절이 대하7: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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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20년 동안, 크리스천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만약 나의 백성이>라는 뮤지컬이 있는데, 완전히 이 구절에 근거하여 만들었는데,

아쉽게도 문맥은 무시하고, 그 구절만 떼 내었지요.

그래서 그 구절을 영국에 적용해서 그 땅을 고칠지라하면,

영국이나 미국에 인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뮤지컬이 미국에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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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구절에서 가리키는 땅은 이스라엘 땅이고,

이 구절을 다른 땅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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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말씀이 아주 멋있는 구호가 되었어요. 아시죠

지난 20년 동안, 이 구절을 문맥에서 떼 내서, 이 한 구절만 왜곡해서 사용하여

이 구절이 아주 유행했는데, 요즘은 그다지 유행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디에 가든지 아직도 인용하는 사람이 아직 있어요. “내 백성이..”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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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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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대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또 다른 구절은,

여호사밧이 왕일 때, 세 나라가 연합하여 공격을 했어요.

그 세 나라는 이 작은 유다 나라를 쓸어버리려고, 여호사밧에게 진군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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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이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고, 그 선지자가 말하기를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찬양대를 군대 앞서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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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찬양대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니, 적군이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역대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두 번째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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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예수 행진 Jesus March 운동, 이 구절에 근거하여 사역을 펼쳐나갔고,

사람들은 경배 찬양을 앞세우기만 하면, 언제든지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사람들이 이 두 구절을, 모두 문맥을 왜곡하여 인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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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여호사밧의 전쟁에서 인용된 구절로 찬양도 즐겨 부르는데요.

전쟁은 주님께 속했고, 승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는 찬양을 부르지요.

우리도 어젠가 오늘인가,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이 찬양을 들어본 적 있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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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위 두 구절 말고는, 나머지 <역대기>의 내용은 통 모릅니다.

참으로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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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이 강의를 통해 여러분께 보여드릴 겁니다.

역대기는, 자체적인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한 구절만 딱 떼 내서 사용하고, 그 외 나머지는 무시해버리는 가벼운 책도 아니며,

우리는 역대기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 메시지는 <열왕기>와 아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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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와 열왕기는 많이 다릅니다.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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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어떤 내용은, 중복되어 나오는데, 예를 들면, <창세기>에서

창조 기사를 두 번 언급했지요. 한번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또 한 번은 인간의 시각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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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4권의 책에서 예수님을 설명하는데, 이 설명들은 서로 보완되지요.

사복음서에서 어떤 이야기는 들으면 똑같아 보이는데, *그래서 중복할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사복음서 저자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사실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저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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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복음서에 동일하게 나오는 비유라도, 그 메시지가 전혀 다르지요.

<누가복음>에서의 잃은 양 비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으므로,

길을 잃은 양은 세상 죄인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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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태복음>에서의 동일한 비유는, 마태복음은 신자들이 보라고 기록한 것이라서,

거기서 잃은 양, 믿음에서 넘어진 신자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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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동일한 이야기라도 각기 다른 의미가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책에 있기 때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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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다윗, 솔로몬, 여호사밧 그리고 히스기야의 이야기가

비록 <열왕기><역대기>에 중복 기록되었지만,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완전히 다른데, 이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권의 차이점을, 반드시 연구해서 명확히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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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강의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을, 다시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모든 역사는 어떤 각도에서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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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역사를 기록할 때, 자기 개인적 관심을 배제하고 기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어난 모든 사건 들 중에, 자신이 관심 있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만 선택하고,

그렇게 선택된 사건들 사이에 연결성을 찾는데, 이 사건이 저 사건으로 연결시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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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이 기록한 사건을 평가하거나 설명하고,

또한 이 선택된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평가합니다.

그 역사가 선한 역사였는가, 아니면 악한 역사였는가를, 평가해야 하는 것이지요.

*역사란, 단순한 사건의 사실적 기록뿐만 아니라, 그 사건의 평가까지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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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사학자들의 첫 걸음은 선택이고, 두 번째는 연결성을 찾고,

세 번째는 평가거나 해석인데, 이 단계에서 도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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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1066>이라는 제목의 옛날 역사책을 아시죠

이 책에는, 모든 사건에 항상 도덕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이 사건은 영국 나라에 좋은 것이었고, 저 사건은 나라에 나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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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이 보시면, <열왕기>에서의 도덕적 판단이, <역대기>와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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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핵심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열왕기>의 강조점은 열왕들의 악행에 두었지만,

<역대기>의 강조점은 열왕들의 선행에 두었어요. 이렇게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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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을 얘기할 때, 말하기를 구약 성경을 주신 목적은

우리에게 이 사건에서 뭔가를 배우라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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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열왕기>는 왜 모든 열왕들의 악행을 말하고 있고,

<역대기>는 모두 열왕들의 선행을 말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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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에 나타나는 그림이 아주 다른데,

<열왕기>에는 모두 죄인들이고,

<역대기>에는 모두 성자들인데, 이는 과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두 권의 강조점이 왜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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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부터 열왕기와 역대기를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조금 있다 앞으로 나와서 차트를 보시면, 더욱 똑똑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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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사람을 놀랍게 하는 사실은,

영어성경에는 <열왕기><역대기>를 붙여서 배열했는데,

히브리 성경에는 두 책을 서로 멀리 떨어트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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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비교를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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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역사 사건을 선택하고, 그리고 사건들 간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다음에 이 사건들이 도대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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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무엘서>, <열왕기><역대기>를 볼 때,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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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엘서><열왕기>는 히브리 구약성경에서는 서로 이웃하는 두 권의 책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성경에는 서로 이웃하는 네 권의 책이고,

그 책은 500년 기간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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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대기>는 책의 시작 시간이 매우 옛적이고, 책의 끝나는 시간이 늦습니다.

즉 아담부터, 바로 인류 시작의 조상부터 말하고,

책이 끝나는 시간 또한 비교적 늦는데, 이것이 주요한 차이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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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무엘서><열왕기>는 포로로 떠나는 사건으로 끝나지만,

<역대기>의 마지막은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더러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하소서라고 말씀한 것이 <역대기>의 마지막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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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자의 임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임무를 달성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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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열왕기>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왜 포로로 잡혀갔는지, 그 잘못된 이유를 설명한다면,

<역대기>, 백성들이 이미 잘못을 다 깨달아서, 이젠 그들이 일어나도록 격려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축 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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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열왕기>는 사건이 일어난 지 빠른 시일 안에 기록한 것이고,

<역대기>는 사건이 일어난 후 오랜 세월 후에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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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열왕기>는 대부분이 정치적인 역사의 기록이고,

<역대기>는 동일한 시기에 종교적인 역사에 중점을 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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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열왕기>는 선지자의 각도에서 본 것이며,

<역대기>는 제사장의 각도에서 본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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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열왕기>는 북왕국과 남왕국 왕을 양쪽 다 논하고 있고,

하지만 <역대기>도 같은 시기를 논하고 있지만, 북왕국의 왕은 한 명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저자가 북왕국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인데, 아마 여러분이 이 점을 주의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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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엇보다도, <열왕기>는 왕들의 인간적 실패와, 그로 인한 재앙에 강조점을 둡니다.

그렇지만 <역대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강조점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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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열왕기>는 저자가 왕들의 악들을 펼쳐 보여주고,

<역대기>는 왕들의 덕성을 강조해 펼쳐 보여주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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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래서 <열왕기>는 왕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하지만 <역대기>는 왕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것은 그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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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저자는 역사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선택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왕의 악행을 선택했고,

<역대기>의 저자는 왕의 선행을 선택했는데, 동일한 왕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와 역대기는, 악행과 선행이 각각 기록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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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열왕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도덕성이고, 핵심 단어는 공의인데,

이 왕들이 공의가 있는가/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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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대기>, 종교적 의식, 성전과, 제사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관의 중점은 도덕적 이슈보다는, 신앙적 이슈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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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열왕기>는 선지자가 기록한 것이며,

<역대기>는 제사장이 기록한 것인데,

그래서 서로의 관점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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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이 책들의 여러 차이점들인데, 우리가 한번 질문해 봅시다.

왜 이렇게 다르게 기록하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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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사무엘서><열왕기>에 나오는 사건들 중에

<역대기>에 빠진 사건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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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에는 열왕기의 많은 사건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역대기>를 비교해서 보면, 각 왕마다 차지하는 성경 장수가, 두 책에서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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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사무엘서><열왕기>에서, 사울이 차지했던 분량은 대략 1/6이였고,

하지만 <역대기>에는 사울의 기록이 아예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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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에서 적어도 절반이 사울에 대해 논했고,

(미안합니다. 사울이 아니라, 사무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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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에서 다윗이 차지했던 분량은 대략 2/3였고,

<열왕기>는 솔로몬이 대략 절반의 분량을 차지했고,

분열 왕국이 대략 나머지 절반 분량을 차지했는데, 왜 이렇습니까 왜 이렇게 분량이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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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의 역사기록상 특징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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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볼게요. <역대기>에서 저자가 생략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첫째, 저자가 사무엘과 관계된 것들을, 몽땅 생략했는데,

사무엘이 왕을 뽑아 세운 일들이, 역대기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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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울의 일은 거의 전부를 생략했고, 사울의 죽음만 기록했는데,

이는 저자가. 독자들이 왕의 잘한 점만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어서,

사울이 왕일 때 한 일 대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잘한 게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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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역대기>에 아주 많이 언급했지만, 그의 어떤 사건들을 생략하였을까요

그가 사울과 갈등한 기록이 생략되었고, 그가 헤브론에서 7년간 다스린 일도 생략되었고,

다윗에게 여러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생략되었고, 압살롬의 반역 사건도 생략되었고,

무엇보다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 이것이 다윗 통치의 전환점인데요, 이러한 것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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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일부러 왕의 좋은 면만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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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해야 할 좋은 말이 없다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왕이 잘못 하였더라도, 저자는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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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밧세바의 사건은, 어떤 중요한 역사의 전환기였는데,

저자가 의외로 이것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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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역대기>에서 좋은 왕이었고, 솔로몬도 그렇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들이 수많은 처첩을 거느린 것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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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우상을 궁으로 들여 온 것도 언급하지 않았고,

이로써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것도 언급하지 않았고,

그가 산당을 없애는데 실패한 것, 그의 이방 신전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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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이후 분열 왕국 시대에 들어서, 북왕국 왕들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 모두가 나쁜 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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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왕국 왕들을 논할 때, 저자는 많은 분량을 어린 요시야 왕, 그리고 히스기야 왕에게 할애했고,

남왕국의 나쁜 왕들은 거의 <역대기>에 언급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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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무슨 선입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일부러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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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관심가지는 몇 가지 일이, <역대기> 전체를 관통하는데,

그 일은 사울 왕 통치 때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하지만 다윗, 솔로몬과 몇몇 유다 왕과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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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그는 다윗의 왕족 자손에만 관심을 가졌고,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이 왕이 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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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북왕국의 왕들 모두는 역대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이 왕이 되는 역사만 기록했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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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도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이 아니고,

베냐민 지파이기 때문이며,

북왕국도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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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에는 안 나오지만, <역대기>에서 한 사람을 특별히 기록하였는데,

그는 바로 스룹바벨이며, 그는 다윗의 직접적인 후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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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에서 귀환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그에게 두었는데,

이는 귀환한 사람들 중에서, 스룹바벨만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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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자는, 역대기 서두에서 족보를 길게 기록하였는데,

그 중에 반장이나 되는 긴 분량으로 스룹바벨의 가계 족보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아주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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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다윗왕의 가문을 우상화 하는 것은 아니지만, *idolizing

저는 이것을 이상적인 idealizing’ 왕실이라고 부르는데,

다윗 왕실을 이렇게 매우 우호적인 눈으로, 역대기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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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의 뛰어난 점을 강조하지도 않으면서도, *idolizing 아님

그들의 연약한 부분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ideali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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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역대기 저자는, 좋은 왕들의 통치에, 특별하게 강조한 점이 있었을까요

, 있었는데요.

저자는 이 왕들의 두 가지 태도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언약궤성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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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왕들이 언약궤를 어떻게 대우한 것과

언약궤를 두는 성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에, 저자의 특별한 관심을 두었는데,

언약궤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속에 거주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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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자는,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옮겨온 것을 강조했고,

다윗이 성전 건축하기를 바랬고, 그래서 건축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을 강조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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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건축자재를 모으고, 설계도를 그렸고, 제사 의식을 정비하고, 성가대와 악장을 준비하였습니다.

<역대기>는 이것들을 상세히 기록했지만, <열왕기><사무엘서>에는 거의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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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배하는 장소(성전)에 대해 아주 관심이 있었고,

또한 솔로몬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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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솔로몬이 어떻게 성전을 건축했으며,

그의 부친 다윗은 건축하지 못했는데.. 그런 것들을 자세히 역대기에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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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성전을 봉헌드릴 때의 기도를 자세히 언급하였고,

주의 영광이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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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한 돌을 깎는 채석장을 얘기했으며,

당시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깎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지요.

이는 그들이 산(성전) 아래의 동굴에서 잘랐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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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이 <역대기>에 기록되었지만,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어요.

역대기에는 다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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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저자의 눈에는, 왕들은 모두 훌륭하게 보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성전에서의 예배를 도우고, 보존시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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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은 제사장이 말하는 것들입니다. 맞지요 *역대기는 제사장 에스라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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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왕의 행한 악행으로 인해, 그 땅에 재앙이 임했다고 나쁘게 말했지만,

제사장은 왕이 우리를 위해 성전을 건축했고, 성가대를 조직했고, 예배 의식을 정비했다고 좋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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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그들의 눈에 예배/경배 인도자였고, 찬양시 저자였으며, 성전건축을 원했던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솔로몬의 모든 것을 많은 분량으로 얘기했고,

그들이 성전을 위해 무엇을 공헌하였는가를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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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이후에 큰 내전이 발생했는데, 북방의 10지파가 남방의 2지파에서 이탈했어요.

이때 저자는 남왕국에만 관심 있는데, 이는 성전이 남왕국에 위치해 있었고,

하나님의 제사장 모두가 거기에 있었고,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도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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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대기 저자는, 자신이 관심하는 일만 계속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8명의 왕만 택하여 기록하였고, 그중 5명은 특별히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 외 남왕국의 12명 왕은 아예 생략했는데,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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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사 왕을 택하였는데, 이는 아사 왕이 유다와 베냐민에서 우상을 없앴고,

또한 그의 태후(왕의 모친)를 궁중에서 쫓아냈는데,

이는 왕후가 자기의 방에서 몰래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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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이 하나님과 언약했고, 그리고 성전을 금은으로 장식하여

제사장의 시각에서 보면, 그는 좋은 왕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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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여호사밧인데, 그는 아사의 아들입니다.

그는 레위인을 유다 각 성에 보내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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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암몬과 모압을 물리쳤는데, 그때 전쟁은 너희가 아니라,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말하였지요.

그래서 그들은 찬양하며 전쟁터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찬양/예배 사건이 기록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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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그가 나쁜 일을 한 가지 행하였는데,

이는 그가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취하였습니다. 대하18:1, 자기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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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북이 자동적으로 동맹을 맺게 되었고, *혼인관계로

그 결과 아주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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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남왕국 유다에 시집온 후,

왕위를 빼앗으려는 생각에, 다윗의 직계 자손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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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여호야다 제사장이 아달랴의 동기를 알고, 어린 요아스를 빼내어 숨겼습니다.

나중에 때가 되자, 그를 데리고 나와 왕이 되게 하였으며, 아달랴는 제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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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윗의 직계 자손이, 다시 한 번 제사장에 의해 보존 되었는데, *첫 번은 다윗을 보호한 제사장 아히멜렉

이러한 사건을 다른 데서는 읽지 못합니다. *왕하11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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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요아스인데, 그는 성전을 수리하는 것 같은 많은 좋은 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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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히스기야 인데, 유명한 좋은 왕이지요.

그는 수리한 성전 문을 다시 열었고, 이로써 사람들이 기쁨으로 유월절을 경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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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혁을 <열왕기>에서는 몇 마디로만 언급했고, <역대기>에는 세 장으로 길게 묘사했는데,

이는 그가 종교 개혁을 했고, 성전을 깨끗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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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요시야인데, <역대기>에 많은 분량으로 그가 어릴 때부터 왕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했고,

봄에 성전을 대 청소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청소할 때 율법서를 찾았고,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응당 준수해야 할 성전의식과 절기를 회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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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든 왕들은 우상을 반대했으며, 그래서 제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좋은 왕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상숭배는 나쁜 왕들이 모두 빠진 죄이고, 그래서 선지자들이 그 죄를 지적했는데,

하지만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귀환해서는 다시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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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그들 유대인들은 우상을 절대 숭배하지 않는데,

이는 바벨론 포로에서 배운 교훈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환 후 지난 2500년 동안 유대인들은 다시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데, 이는 참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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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은 이 점을 당연히 기뻐했는데,

선지자들은 보통 부도덕과 불의한 일에 강조점을 맞추었지만,

제사장이 더욱 걱정하는 것은 우상숭배 하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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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백성들이 알아야 되는 3R 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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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마지막은,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성전을 재건축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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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마음에 기억해야 할 사실은,

<역대기>를 기록한 대상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인데,

그들은 이방 땅에서 출생했고, 유대인의 성전을 보지 못했으며,

또한 다윗 자손의 통치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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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자는 그들에게 세 가지를 역대기를 통해 알려 주려고 하는데,

저는 그것을 세 개의 R’로 부릅니다.

저자는 귀환 백성들에게, 뿌리(Root), 왕실(Royalty), 신앙(Religion)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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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후, 제일 먼저 알아야 될 사실은,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했습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계속하여 아래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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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우선 먼저 자신들의 출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뿌리가 있었고, 그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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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재교육해야 했는데, *바벨론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다 잊어버렸음

이는 아담으로부터 아래로 계속 내려와서, 지금까지 온 얘기를 해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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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책을 읽어 보셨거나

아니면 그 영화를 보셨다면, 그 이야기가 사람을 아주 감동시킵니다.

미국에 어떤 흑인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서, 서아프리카의 어떤 한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에 그곳에 살던 쿤타 킨테 라는 소년이 납치되어 미국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이 흑인이 옛날 그 마을에 와서 자신의 뿌리를 찾았는데, 거기에 그의 친족이 아직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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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내가 어디 (지역)에서 왔는지를 알았고,

내가 어디 (부족)에 속했는지를 알았고, 자신이 인류 역사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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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자신들의 뿌리를 알 필요가 있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여 지금까지 계속 끊임없이 내려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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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 민족을, 세상 모든 인류 가운데서 택하여 내셨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는 이 모든 사실을, 귀환자들은 알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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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대기> 서두 족보 가 태초로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그들은 뿌리가 필요했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가진 민족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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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째로, 그들은 자신들이 왕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노예가 아니라요

전에 그들은 자신들의 왕이 있었고, 고국 땅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잠시 포로가 되긴 했지만요

이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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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들에게, 그들의 왕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건설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에 과거 왕 얘기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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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하기를 너희들은 유랑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고,

너희들은 왕의 제사장들이며, 왕의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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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에게 왕이 있고, 왕의 혈통도 여전히 보존 되었으며,

너희들은 다시 왕국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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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세 번째 사실은,

그들이 그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들의 지도자를 알라는 것을 너머서

자기들 민족이 존재하는 목적을 알라는 것인데, 그 목적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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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민족에게 제일 중요한 그들은 정체성은,

그들은 바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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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그들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절대적인 중심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귀환한 후,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성전재건과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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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귀환한 사람들 중 십분의 일이 제사장인데,

이 비율은 바벨론에 살던 전체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와 비교하면, 아주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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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이렇게, 바벨론 귀환자들 중에서 제사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까요

그 답은, 제사장들은 귀환할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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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안정되게 정착했고, 사업도 일으켰으며, 잘 살았고,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들은 거기에 성전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

그들은 돌아가서 하나님께 예배(제사)를 회복하길 원했고,

성전을 재건하길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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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룹바벨이 자원하는 백성들을 소집하고,

아랍 사막을 가로 질러 고토로 돌아오려 했을 때,

제사장들의 반응은 아주 열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려 했지만, 과거에 아무도 성전을 본 자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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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사장들이 적극 귀환하겠다고 나섰고, 그 결과 귀환한 백성들 전체에서

제사장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고, 그들의 지도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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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역대기>에서 위 세 가지 목적을 똑똑히 볼 수 있는데,

너희들은 뿌리가 있는 민족이고, 역사가 있는 민족이고, 소속이 있고,

이것(역대기)이 너희들의 아주 특별한 가계 족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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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왕의 백성이고, 너희들은 왕국이며, 너희들에게 장차 왕이 있을 것이며,

이는 왕의 직계 자손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는 바로 스룹바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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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야웨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다시 돌아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귀환하는 제일 중요한 목적이며, 그래서 너희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세워야 할 것은 바로 성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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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너희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데,

너희들이 유대인이라 불리는 것은, ‘유다라는 뜻이 찬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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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너희들이 귀환하는 주요 목적이며,

그건 바로 하나님의 성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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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대기>는 돌아온 남은 자들에게 들려주는 한편의 설교라고 해도 됩니다.

그들이 돌아온 후 많이 낙심했는데, 재건 작업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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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유지만 해도 쉽지 않았고, 그들은 아주 가난했고, 성전 재건 작업도 늦어졌어요.

그래서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가 재건을 계속하라고 재촉하였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학개와 스가랴를 공부할 때 다시 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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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는, 그래도 그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삶에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주입시켜야 했었고,

이것이 또한 우리가 돌아온 이유이며,

우리가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함이지, 자신의 살 곳이 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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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슬프게도, 현재(20C) 거기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들이 살 안전한 집을 추구하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신들의 신분의 회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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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에 제가 이스라엘 총리 관저에서 총리와 45분간 대화를 나눈 것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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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막바지에 그가 말하기를 저는 불가지론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불가지론 agnosticism :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겠다는 입장. a(부정) + 그노시스(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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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스라엘의 총리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하나님이 위대한 기적들을 행하신 땅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말하기를 저는 그 기적들을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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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듣고 너무 슬펐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 돌아온 목적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 위함이며,

그들의 귀환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고, 그들의 소망의 중심이 바로 거기(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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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저자가 역대기를 쓴 목적입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예언서(사무엘서, 열왕기)와 상당히 다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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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서는 너희가 죄를 지어서,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는 책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선지서처럼 얘기하는 것이 늦었고, 그들이 이미 엉망이 되었습니다. *벌 다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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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저자가 그들에게 격려하기를 우리가 돌아가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과거 역사에 좋은 일들만 설명하면서, 그들의 분발을 촉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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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일관되게 연결해 보겠습니다.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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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건들이 결국은 그리스도께로 귀결되어, 하나 하나씩 실현되는데,

그래서 <마태복음>은 그리스도의 족보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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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갔는데, 마치 구약의 족보를 다시 한 번 듣는 식이지요.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뿌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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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과거에 유대인이었고, 현재도 여전히 유대인입니다.

우리는 그가 뿌리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은, 이 뿌리로부터 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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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분은 다윗 왕의 후손의 성취이고, 다윗의 직접적인 자손이며,

그는 이중적인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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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족보로는, 그는 법적인 왕이며, *법적인 왕 : 아버지의 피가 안 섞임, 그러나 법적인 아들

어머니 족보로는, 다윗의 육체/혈통적인 후계자입니다. *피는 모계로 섞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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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모두가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오래도록 소원해 왔던, 신앙과 성전의 성취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실은 또한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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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씀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거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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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구약부터 그들이 염원해 오던 예배와 성전은,

그 초점이 사실은 예수님이셨습니다. *무슨 돌로 지은 성전과 제사가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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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이 회복하길 원했던 3가지 (뿌리, 왕의 백성, 성전 예배)

사실은 그리스도께 다 수렴되는데,

이에 대해 시간이 부족해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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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세 가지는,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고,

우리가 이 세 가지를 계승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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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미 유대인의 뿌리에 접붙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유대인의 족보가, 바로 우리들의 족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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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대기상> 1-9장까지 족보를 읽을 때, 나는 바로 자신의 족보를 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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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미 그들의 뿌리에 접붙임을 받았고, 그들의 뿌리가 바로 나의 뿌리입니다.

이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은, 내 조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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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당신의 진정한 뿌리는 영적으로 유대인인데,

이것이 당신의 육체적 족보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면 나의 육체적 혈통 족보는, 내가 숨을 거두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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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역대기의 유대인의 족보가 나의 족보가 되었으며,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상속 받았고, 당신은 이제 그 복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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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은 이제 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뿌리는 유대인이고, 그 접붙여지는 감람나무는 유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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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왕의 백성이며,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고, *벧전2:9

당신은 왕자이고 공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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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이 길을 갈 때, 왕자나 공주 같은 모습으로 당당히 걸어가야 합니다.

저는 기가 꺾여서 고개를 떨군 크리스천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고개를 드십시오. 당신은 왕실의 왕자요 공주이니, 그와 같이 당당히 행동하십시오.

많은 다른 신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분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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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왕실의 가족이고, 장래에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기를 그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 중에서 백성들을 구원하리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땅에서 반드시 왕 노릇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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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차 다스릴 것이며, 우리는 영국의 왕실 가족이며,

우리는 그런 자부심으로 행동해야 하며, 하나님은 그렇게 살 책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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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지금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너의 몸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교회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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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신분적 권한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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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뿌리가 있는 사람들이고, 왕실 가족이며,

신앙으로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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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귀환한 그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이는 우리는 여전히 포로된 자이고, 우리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으며,

우리는 지금 외국 땅에서 순례자요, 나그네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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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말하기를 나는 영국 사람이고, 영국 또는 어디 에서 삽니다라고 하지요.

사실 당신은 여기에 속하지 않고, 당신이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당신은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다소 부적응자로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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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집시들은 자기들을 부적응자로 생각하지만

제가 말씀드릴게요. 세상 사람들은, 진짜 사회 부적응자는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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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그들이 너희를 싫어하는 것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 당신의 친구가 바로 당신과 관계를 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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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들은 이야기인데요. 한 번은 갓 회심한 어떤 여자 아이가,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인 C. H. 스펄전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친구들과 교제를 끊어야 합니까라고 하니,

스펄전이 말하기를 그런 걱정은 마라. 그들이 너와 관계를 끊을 것이다라고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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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일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은,

당신과 혈통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대가족들입니다.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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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믿는 친척’(교우)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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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당신이 이젠 새로운 가족, 바로 왕의 가족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이어서, 당신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대하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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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나서 담배를 끊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에는 담배를 끊어라는 말씀이 없고,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담배 냄새를 풍기면, 마치 당신이 방금 지옥에 갔다 온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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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크리스천 남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성전(자기 몸)에 행한 것은, 고약한 냄새가 나게 했고,

성전을 더럽혔고, 그리고 그 수명도 줄어들게 했어요.’

그러면서 그들은 담배를 끊습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여기면,

앞으로는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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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역대기>의 교훈을 유산으로 받고 있으며,

여러분들이 이후에도 이 책을 볼 때, 이 책이 다시는 지루한 역사라고 느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열왕기>의 역사서와 같지 않고, 다른 메시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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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래에 소망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가 여기에 왜 사는지를 알게 하며,

여기 타향에서 거주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참 정체성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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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각도로 역대기를 읽읍시다.

여기서 새로운 교훈들을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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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그 각각 의미는

히브리어는 Praises(찬양), 헬라어는 instrumental music(악기에 맞춘 음악)

영어는 헬라어를 음역했으니 음악, 한국어는 시 poem인데,

아마 중국어 성경에서 詩篇,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