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재고찰
역대상 21장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대상 21장은 구약 본문들 가운데 가장 큰 난제를 던져주는 본문임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유사 본문인 삼하 24장과 비교해 볼 때 심각한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상 21:1에 나오는 ןטשׂ의 출현은 가장 난해한 해석학적 이슈들 가운데 하나로서 독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다 준다. 삼하 24:1은 인구조사의 배경을 “하나님의 진노”와 연결시키는 반면, 대상 21:1은 인구조사가 사탄의 정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언뜻 보기에 이 두 본문에 제시된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배경과 그 원인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윌리엄 존스톤(William Johnston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하 24:1과의 차이점들은 두드러진다. 삼하 24:1에는 사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스라 엘을 ‘다시’대적하는 것은 여호와의 진노이다.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다윗을 격동하고 명령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자는 여호와 그 분이다. . . 역대기 상은 이런 개념들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2) William Johnstone, 1 and 2 Chronicles, vol. 1, JSOTSup 253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225.
특히 이와 같은 신학적 난제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성경신학적 이슈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여 보다 균형 잡힌 성경해석을 제시해야할 책임을 절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해석학적 시도들은 그리 만족스런 결실을 맺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 심지어 성경학자들조차도 다윗의 인구조사 문제를 다룰 때 사탄의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하심”혹은 사탄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섭리”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접근도 하나의 가능한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삼하 24:1의 “하나님의 진노”를 사탄의 시험에 대한 허용적 개념으로만 이해해야 하는가? 또한 대상 21:1의 ןטשׂ은 하나님의 섭리아래 심판의 도구로 등장하는 천상적 존재로만 반드시 보아야 하는가?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이슈들을 염두에 두고서 유사 본문인 삼하 24장과 대상 21장의 상이성에 집중할 것이며, 특히 논쟁의 중심 이슈인 대상 21:1의 טןשׂ 의 정체를 본문분석에 근거한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규명함으로써 이 난제에 대한 하나의 해석학적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2. 삼하 24:1과 대상 21:1의 상이성과 난제들
2.1. 삼하 24:1-25과 대상 21:1-22:1과의 비교
삼하 24:1과 대상 21:1의 난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삼하 24장과 대상 21장 전체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유사 본문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두드러진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삼하 24장은 “다시”([syw)라는 표현으로 시작하지만, 대상 21:1에는 이런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로 학자들은 히, “야삽”([sy)이라는 표현이 선행 단락인 삼하 21:1-14을 연상시켜준다고 본다. 둘째, 앞서 지적한 바대로 삼하 24:1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시행한 것으로 소개하는 반면, 대상 21:1은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고 기술한다. 셋째, 대상 21:1에는 삼하 24:2의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표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넷째, 대하 21:2은 삼하 24:2의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를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로 변경시킨다. 다섯째, 인구조사의 숫자에 차이가 나타난다. 삼하 24:9은 이스라엘은 800,000명으로 유다는 500,000명으로 소개하는 반면, 대상 21:5은 이스라엘 전체 숫자를 1,100,000으로 소개하며 유다의 숫자를 470,000으로 보고한다. 3)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입장들이 제시되어 왔다. 어떤 학자들은 이런 차이를 사본의 보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본다 (참조, Richard L. Pratt, Jr., 1 and 2 Chronicles [Mentor, 1998], 168). 또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본다. (참조, Sara Japhet, I & II Chronicles, 377-78). 하지만 이 문제의 유익한 대안으로는, H. G. M. Williamson, 1 and 2 Chronicles,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82), 145을 참고하라.
그 외에도 이 두 유사 본문은 여러 가지 차이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4)그 외 다른 차이점들을 살펴보려면, Sara Japhet, I & II Chronicles, 373-382를 보라.
2.2. 논쟁의 중심이슈-인구조사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두드러진 상이점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신학적 난제는 의심할 나위 없이 두 번째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본문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삼하 24:1
♦ MT
hnEm] &le rmoale !h,B; dwID;Ata, ts,Y:w" laer;c]yIB] t/rj}l' hw:hy]A#a' #s,YOw"
.hd;Why]Ata,w] laer;c]yIAta,
♦ NIV
Again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Israel, and he incited David against
them, saying, "Go and take a census of Israel and Judah."
♦ RSV
Again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Israel, and he incited David
against them, saying, 'Go, number Israel and Judah."
♦ NKJV
Again the anger of the LORD was aroused against Israel, and He moved David against them to say, "Go, number Israel and Judah."
♦ 개역성경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대상 21:1
♦ MT
.laer;c]yIAta, t/nm]li dywID;Ata, ts,Y:w" laer;c]yIAl[' @f;c; dmo[}Y"w"
♦ NIV
Satan rose up against Israel and incited David to take a census of Israel.
♦ RSV
Satan stood up against Israel, and incited David to number Israel.
♦ NKJV
Now Satan stood up against Israel, and moved David to number Israel.
♦ 개역성경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이상 살펴보았듯이 각각의 본문에는 인구조사의 원인과 그 주체를 서로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더욱이 대상 21:1에 나타나는 사탄의 출현은 가장 주목해 볼만하다. 이런 차이점은 독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안겨다 주며, 그로 인해 수많은 해석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되었던 다양한 접근 방식들을 먼저 고찰해 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이런 대안적 해석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볼 것이며, 나아가 보다 나은 해석학적 대안을 향해 그 발걸음을 옮겨볼 것이다.
3. 두 유사 본문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
이와 같은 난제에 직면한 학자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각각의 해석학적 대안들을 제시해왔다. 학자들은 두 본문을 논리에 맞도록 상호 조화시키거나 아니면 후대의 편집적 관점으로 설명함으로써 이 난제를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입장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최근의 학자들은 새로운 해석학적 관점의 필요성을 인식한 뒤 이전과는 다른 대안적 입장을 제시해 왔다. 그럼 지금부터 그들의 입장과 그 논지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3.1. 상호 조화적 접근
이런 입장은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접근방식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인구조사의 원인을 “하나님”과 “사탄”으로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두 본문이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이런 조화적 접근은 일찍이 역대기 탈굼에서 나타나고 있다. 역대기 탈굼은 21:1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ארשׁי תי ינממל דיודב ירגתאו לארשׁי לע אנטס הוהי םיקאו ל
(And the Lord raised up the adversary against Israel and he was aroused against David to number Israel) 5)세일헤머, 『구약신학개론: 정경적 접근』(서울: 솔로몬, 2003), 514-515.
나아가 학자들은 이 두 본문의 조화를 위해 사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적 개념을 도입한다. 즉 이들에 따르면 삼하 24:1은 인구조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는 반면, 대상 21:1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사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6)조화적 접근 방식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려면, 세일헤머, 『구약신학개론: 정경적 접근』, 513-517을 보라.
그러므로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되면,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유혹하는 사탄의 역사를 허용하심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박윤선 박사는 이와 같은 입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여기 “이스라엘을 향하여”란 말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 민중의 죄를 벌하시려고 그 지도자 다윗이 사단의 유혹에 빠짐을 허용하 셨다. 여기[삼하 24:1]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감동시키사”라고 하였지만 대상 21:1에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하였다. 여기 “격동하였다”는 말은 “감동시켰다”는 말과 같은 단어이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을 격동시켜 범죄케 하신 것은 아니고 사단의 격동함을 막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신 것이다. 사람이 죄의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내버려 두심도 일종의 벌이다. 이 때에 하나님이 일반 민중의 죄를 벌하시기 위해 왕의 실수함을 그대로 방임하셨던 것이다. 7)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서울: 영음사, 1984), 255.
또 어떤 이들은 삼하 21:1의 사탄의 등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도구적 측면을 강조해 준다고 본다. 톰슨(J. A. Thompso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하튼 사무엘 본문은 사탄과 다윗의 악한 의도들이 여호와의 진노의 도구로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역대기 본문은 그런 궁극적 원인(the ultimate cause)보다는 직접적인 원인(the immediate cause)에 초점을 두고 있다. 8)J. A. Thompson, 1, 2 Chronicles, NAC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4), 161.
요약하자면, 이 두 본문은 다윗을 유혹한 장본인은 사탄이었으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유혹을 허용한 것임을 나타내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두 본문은 서로 상충되는 논리를 보여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측면 즉 “사탄의 유혹”과 “하나님의 허용하심”이라는 두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본문 그 자체의 의미로부터 벗어나 본문의 의미를 논리적 사유에 끼어 맞추는 인상을 남긴다. 하나님의 허용적 관점에서 볼 때, 인구조사의 죄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유혹한 장본인은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사탄이 된다. 다윗을 죄악에 빠뜨린 장본인은 사탄일 뿐이며 하나님은 단지 그것을 허용하신 것뿐이다. 하지만 삼하 24:1은 분명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진술한다. “감동시키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תוס는 여러 가지 용법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자극하다” 혹은 “충동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9)Wallis, "תוס", TDNT, vol. X (Grand Rapids: Eerdmans, 1999), 207-210을 보라.
그러므로 이 단어의 전반적인 용법은 적극적으로 자극시켜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암시하고 있다. 10)Wallis, 207-210."תוס", 특히 이 단어는 심각한 파멸의 결과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의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11)Wallis, "תוס"207-210.
그렇다면 삼하 24:1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적극성과 주도성을 암시해 준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적 개념은 본문의 의도와는 다소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이와 같은 조화적 입장은 대상 21:1의 사탄의 정체를, 인간을 유혹하는 (타락한) 천사 개념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대상 21:1의 사탄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타탕한 본문분석인가? 나아가 대상 21:1의 사탄을 오직 천상적 존재로만 보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조화적 접근과 다른 해석의 가능성도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상호 조화적 접근 방식을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여지도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3.2. 편집 비평적 접근
전통적인 조화적 접근의 문제점을 인식한 성경 학자들은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역대기 기자의 독특한 신학적 관점과 그 의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이들은 역대기 기자가 기존의 삼하 24:1의 본문을 자신의 시각에 따라 혹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요청에 따라 이 본문을 수정하고 교정하였으며, 그로 인해 대상 21:1은 삼하 24:1에 대한 신학적 재기술로 이해한다. 하지만 편집 비평적 접근은 어떤 일치된 견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숱한 해석들을 양산시켜왔다. 이런 접근 방식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브라운(Roddy Braun)과 같은 학자는 역대기 기자가 페르시아의 이원론을 경계하기 위해 삼하 24:1을 수정했다고 주장한다. 12)로디 브라운, 『역대상』, WBC 성경주석, 김의원 역 (서울: 솔로몬, 2001), 387.
그에 따르면, 역대기 기자가 속해있었던 그 당시에 페르시아의 이원론이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대기 기자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악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말하지 못하도록 본문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가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둘째, 맥콘빌(J. G. McConville)과 같은 학자는 대상 21:1의 사탄의 등장은 악이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활동한다는 유대교의 이원론적 경향을 나타내 주는 특징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역대기 기자는 사무엘서 기자보다는 사탄의 독자적인 역할을 보다 더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다.13) J. G. McConville, I & II Chronicles, The Daily Study Bible Serie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4), 70.
셋째, 어떤 이들은 대상 21:1에 나오는 ןטשׂ이라는 단어가 욥 1-2장과 슥 3:1과는 달리 관사가 빠져있다는 점에 집중하면서 이 단어가 이 곳에서 고유명사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역대기 기자가 21:1에서 ןטשׂ을 고유 명사화시킴으로써 사탄의 신학적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음을 말해준다. 14)H. G. M. Williamson, 1 and 2 Chronicles, 143.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역대기 기자는 삼하 24:1의 신학적 난제를, 욥 1-2장과 슥 3:1에 등장하는 사탄의 개념을 통해 이 문제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편집 비평학자들은 역대기 기자의 관점과 의도를 부각시키고 있으나, 실상 그들이 말하는 역대기 기자의 관점이란 그들의 가설로부터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역대기 기자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편집 비평학자 자신들의 가설과 추론을 역대기 기자의 신학 혹은 의도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역대기 기자가 그런 방식으로 해석했는지 혹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는 증명될 수 없는 문제이다.
3.3. 최근의 대안들
최근의 몇 몇 학자들은 삼하 24:1에 대한 역대기 기자의 이차적인 수정 혹은 편집에 의한 신학적 재기술을 강조하는 편집 비평적 접근에 다소 회의를 느끼면서 대상 21:1에 대한 새로운 해석적 대안들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면, 라이트(John W. Wright)와 같은 학자는 삼하 21:1의 전통적인 해석에 도전하며 획기적인 해석학적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The Innocence of David in 1 Chronicles 21” 15)John W. Wright, "The Innocence of David in 1 Chronicles 21," JSOT 60 (1993), 87-105.
라는 논문에서 전통적인 조화적 접근방식과 편집 비평적 접근과는 다른 새로운 입장을 피력한다. 첫째, 라이트는 역대기 기자의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의 인구조사는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 왕조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다윗이 행한 인구 조사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에 따르면, 대상 21:1에 등장하는 사탄은 군사적 대적자를 가리키며, 이 대적자와 맞서기 위해 다윗은 당연히 병력을 점검하기 위한 차원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16)John W. Wright, "The Innocence of David in 1 Chronicles 21,"92-95.
그러므로 다윗의 인구조사는 타당한 것이다. 만약 인구조사가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여기서 라이트는 역대기 기자가 요압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역대기 기자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요압이 다윗의 인구조사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John W. Wright, "The Innocence of David in 1 Chronicles 21," 94-98.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삼하 24장과는 달리 요압의 불성실을 크게 부각시킨다: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21:6). 그렇다면 왜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있는가? 라이트에 따르면, 다윗은 공동체의 대리자로서 공동체의 잘못을 대신하여 회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역대기 기자는 다윗 왕조를 보다 더 긍정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라이트는 대상 27:24의 진술은 이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확고하게 뒷받침해 준다고 주장한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조사하기를 시작하고 끝내지 못하여서 그 일로 인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지라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 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 결론적으로 라이트는 대상 21장에서 다윗의 죄가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압의 잘못이 강조되고 있으며, 다윗은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무죄한 자로서 공동체를 위해 대신하여 죄를 자복하는 의로운 자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라이트의 주장은 우리의 관심 밖에 있었던 이슈들에 집중함으로써 매우 독특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은 몇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첫째, 다윗이 행한 인구조사는 정당하며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21:8에서 다윗은 분명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라이트는 다윗이 말하는 “이 일”을 요압의 불충성으로 이해하지만 이런 해석은 보다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다윗이 행한 잘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 둘째, 대상 27:24의 진술을 근거로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을 요압의 불충성으로 돌리는 라이트의 입장은 이 구절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적 해석의 가능성들을 살펴보지 못한 우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면, NIV는 “그 일로 인하여”를 “이 인구조사로 인하여”라고 번역하고 있다. 18)Joab son of Zeruiah began to count the men but did not finish. Wrath came on Israel on account of this numbering, and the number was not entered in the book of the annals of King David.
이상으로 우리는 21:1과 관련된 라이트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그의 논지는 수용하기 어렵지만 사탄의 정체에 대한 그의 해석은 주목해 볼만하다. 그는 21:1의 사탄을 천상적 존재로 이해했던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역대기 상의 전후 문맥을 살펴본 뒤, 사탄의 정체를 이스라엘의 대적 특히 군사적 대적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21:1에 나타난 사탄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4. 대상 21:1에 나오는 ןטשׂ은 누구인가?
4.1. 구약의 ןטשׂ
우리는 대상 21:1의 사탄의 정체를 규명하기에 앞서 구약에 나타난 사탄의 의미와 그 용례들을 고찰해 보는 것이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먼저 구약에 나타난 사탄의 정의와 그 용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4.1.1. 사탄의 정의
히브리어 명사 ןטשׂ은 동사형 ןטשׂ과 연관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 동사는 구약에서 단지 여섯 번 등장한다(시 38:20; 71:13; 109:4, 20, 29; 슥 3:1). 각각의 단락에서 이 동사는 대체로 “고소하다”(accuse), “비난하다”(slander)와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고소하다”는 말과 “비난하다”는 말은 비슷한 의미로 쓰일 수 없다. “고소”라는 말은 잘못된 것 일 수도 있고 적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난”이라는 말은 언제나 거짓된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동사는 주로 “비난하다”(slander)의 의미를 더욱 많이 함축하고 있다. 19)Victor P. Hamilton, "Satan",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 5 (New York: Doubleday, 1992), 985.
하지만 이 단어의 명사형은 이와 같이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20)예를 들면, 삼하 19:23의 경우는 고소나 비난의 부정적인 의미를 띄지 않는다.
때때로 이 명사형은 “비난자”라는 뜻뿐만 아니라, “고소자”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대적자”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명사형 ןטשׂ의 의미는 문맥에 따라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1)Victor P. Hamilton, "Satan", 986.
4.2.2. ןטשׂ의 다양한 용례들
4.2.2.1. 지상적 존재로서의 ןטשׂ
구약에 나타난 명사형 ןטשׂ은 다양한 용례로 쓰이고 있으며 총 26회 등장하는데 대체로 지상적 존재와 천상적 존재로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지상적 존재로서의 ןט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ןטשׂ이 지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경우는 먼저 다윗에게 해당된다. 삼상 29:4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있는 다윗이 결국 그들의 대적(ןט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블레셋의 대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둘째,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처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에게 다윗은 나의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삼하 19:18-20). 세 번째 경우는 솔로몬의 시대와 관련이 있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계획할 당시 평화의 시대가 이루어진다. 왕상 5:4은 이 때를 “대적”이 없는 시대로 소개한다. 여기서 ןטשׂ은 군사적 대적들을 가리킨다. 솔로몬 왕국의 후기 때에 여호와는 솔로몬을 대항하는 두 ןטשׂ을 일으킨다. 하나는 에돔의 하닷이며(왕상 11:14), 또 다른 대적은 아람의 르손이다(왕상 11:23, 25). 이처럼 ןטשׂ은 지상의 대적자들로서 이해되고 있다. 끝으로 시 109:6도 지상의 대적자를 소개하고 있다.
4.2.2.2. 천상적 존재로서의 사탄
ןטשׂ이 천상적 존재로서 표현되고 있는 구절은 대상 21:1을 제외하면 민 22:22, 23; 욥 1-2장 그리고 슥 3:1-2 뿐이다. 대체로 천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ןטשׂ은 총 18회 등장하며, 그 중 두 가지 경우(대상 21:1은 제외)는 정관사가 빠져있다(민 22:22, 32). 14회 등장하는 욥 1-2장과 슥 3:1-2에는 ןטשׂ이 정관사를 수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체로 천상적 존재로 등장하는 ןטשׂ은 “그 대적자”(the Accuser/the Adversary)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22)그러므로 여기서 정관사는 “한 특정한 존재”(a certain one of)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정관사가 없이도 사용된다. 천상적 존재로 소개되는 첫 번째 경우는 민 22:22, 32에 등장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천사는 발람을 견책하는 ןטשׂ으로 묘사된다. ןטשׂ이 천상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두 번째 경우는 욥 1-2장에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이 ןטשׂ이 천상회의에 속한 합법적 존재인가 아니면 외부 침입자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음(욥 1:7)을 고려해 볼 때,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 다음 주목할만한 본문은 슥 3:1-2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탄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있는 대 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며 그를 고소한다. 이 때에 여호와께서 사탄을 꾸짖으시며 여호수아의 옷을 새롭게 입혀주신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포로기 후 공동체를 대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해 주고 있다.
4.1.2. 대상 21:1의 ןטשׂ
4.1.2.1 천상적 존재인가 지상적 존재인가?
끝으로 우리는 논쟁의 핵심이 되는 대상 21:1의 사탄의 정체에 대하여 논의해 볼 것이다. 대상 21:1의 사탄의 정체를 규명할 때, 학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진다. 어떤 학자들은 이 사탄을 천상적 존재로 보는 반면, 어떤 이들은 이 사탄을 지상적 존재로 간주한다. 대체로 많은 학자들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두 견해를 잠시 살펴본 뒤 그 타당성의 여부를 진단해 볼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여러 학자들은 대상 21:1에 나오는 사탄을 고유명사(a proper name)로 취급한다.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욥 1-2장과 슥 3:1과는 달리 정관사를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근거로서 그들은 대상 21:1의 표현들과 욥 1-2장 및 슥 3:1의 표현들과의 유사성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대상 21:1은 욥 2:3에 등장하는 동사, “격동하다”(תסיו)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슥 3:1에 나오는 “서다”(דמעיו)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 점에 주목한 학자들은 대상 21:1의 사탄이 이 두 본문과 밀접한 연관성을 암시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대기 기자가 정관사를 생략시켜 고유명사화 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런 용법이 천상적 존재로서의 사탄을 고정화시켜줌으로써 (사탄의 개념에 대한) 후대의 발전된 신학적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23)H. G. M. Williamson, 1 and 2 Chronicles, 143-144; Victor P. Hamilton, "Satan", 986-987; Leslie C. Allen, 1, 2 Chronicles, The Communicator's Commentary (Waco: Word Books, 1987), 139.
그러나 과연 대상 21:1의 사탄을 고유명사로 보는 것은 타당한 해석인가? 근래에 몇 몇 학자들은 대상 21:1의 사탄을 고유명사로 보는 입장에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이들은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전환되는 과정이 21:1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천상적 존재를 뜻한다면 욥 1-2장과 슥3:1의 경우처럼 정관사가 있어야 하지만, 대상 21:1의 경우에는 정관사가 없기 때문에 사탄을 불특정명사(an indeterminate noun)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해한다. 24)Sara Japhet, I & II Chronicles, 374-375; Marvin E. Tate, "Satan in the Old Testament," Review & Expositor 98.04 (2001), 464-466; John W. Wright, "The Innocence of David in 1 Chronicles 21," 92-95.
또한 그녀는 대상 21:1의 배경과 욥 1-2장 및 슥3장의 배경과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욥 1-2장과 슥 3장에서는 사탄이 천상적 존재로서 천상 회의에 등장하여 인간을 고소하고 하나님을 자극시키지만, 삼하 21:1에는 그 배경이 지상이며 사탄의 충동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다. 이런 차이점은 대상 21:1의 사탄을 욥 1-2장과 슥 3장에 나타난 천상적 존재와 동일시하는데 어려움을 던져준다. 25)Sara Japhet, I & II Chronicles, 375.
여기서 우리는 대상 21:1의 사탄의 정체에 관하여 또 다른 가능한 해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대상 21:1의 사탄을 천상적 존재보다는 지상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구약에서 사탄의 용법은 천상적 존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대적들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대상 21:1의 사탄을 지상적 존재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암시들이 역대기 상 본문에 나타나고 있다.
첫째, 대상 21장은 다윗 왕의 치적에 대한 기사(대상 14:3-22:1)에서 다윗 왕 통치 말기(대상 22:2-29:30)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26)John W. Wright, "The Innocence of David in 1 Chronicles 21," 93.
주목해야할 점은 21장의 근접 선행 단락인 대상 18-20장이 다윗의 군사적 정복 및 도전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서 기술되는 전투들은 대부분 이방 대적자들과 관련되어 있음은 주목해 볼만하다. 예를 들면, 이 단락에 나타난 다윗의 이방대적자들은 다음과 같다: 블레셋(대상 18:1); 모압(18:2); 소바 왕 하닷에셀(18:3-8); 에돔(18;12-13); 암몬과 아람(19:1-19); 암몬(20:1-3); 블레셋(20:4-8).
나아가 21:1에 나오는 “일어나 대적하고”(לע דםעיו)라는 표현은 여기서 “---을 대항하다” 혹은 “---에게 반역하다”는 의미를 뜻할 수 있다. 27)예를 들면, 대하 20:23; 26:18.
이것은 다분히 군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물론 לע דםע의 용법은 이런 군사적 의미로 제한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역대기 상의 문맥은 이와 같은 군사적 늬앙스를 시사해준다. 다시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어떤 이방 대적자가 다윗을 향해 반역을 시도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 또한 앞서 살펴보았듯이, ןטשׂ이라는 명사는 천상적 존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대적자들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사탄을 군사적 대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또한 대상 21:13에서 다윗은 자신이 대적의 손에 빠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것은 21:1의 사탄이 군사적 대적과 관련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일헤머(John H. Sailhamer)가 지적하고 있듯이, 구약 역사서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이방의 군사적 대적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28) 세일헤머,『구약신학개론: 정경적 접근』, 525-527.
예를 들면, 왕상 11:9-14은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심니라(המלשב הוהי ףנאתיו). . .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ןטש)이 되게 하시니”라고 말한다. 왕상 11:25도 “솔로몬의 일평생에 . .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ןטש)하고 미워하였더라”고 말한다. 이처럼 사탄은 이스라엘의 왕에게 도전하는 이방의 군사적 대적을 가리킬 수도 있다.
종합해 보자면, 역대기 상의 본문 배경과 타 본문에 나타난 사탄의 용례를 고려해 볼 때, 대상 21:1의 사탄은 천상적 존재라기보다는 지상적 존재, 특히 다윗에게 도전하는 이방의 군사적 대적자로 이해할 수 있다.
4.1.2.1. 사탄의 대적에 대한 다윗의 반응
21:1은 사탄이 다윗을 대적하여 그를 “격동”시켰다고 말한다. 여기서 “격동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תוס는 앞서 살펴본 대로, “유혹하다”라는 뜻보다는 “자극시키다”(induce)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사탄의 대적이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자극시키는 동기가 되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왜 다윗은 사탄의 대적에 직면하여 인구조사를 감행하였는가? 대상 21장이 군사적 전투를 소개하는 선행단락과 연결되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다윗은 이방 대적의 도전에 맞서 군사적 대응을 하기 위해 병력 조사를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다윗의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 이방의 군사적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다윗은 무엇을 가장 의지해야 하는가?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과연 무엇인가? 언약 공동체의 대리자로서 다윗은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여호와를 신뢰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군사력에 의존하고자 했다. 자신이 소유한 군사력이 대적의 도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윗에게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군사들의 숫자를 더 신뢰했던 것이다. 그의 이 같은 태도는 아람-북 이스라엘을 물리치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기 보다는 앗수르의 군사력을 의존했던 아하스 왕의 실패를 연상시킨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직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5. 결론 및 적용
지금까지 우리는 대상 21:1을 중심으로 다윗의 인구조사의 배경과 그 원인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비록 이 본문의 해석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난점들에게 불구하고, 다윗의 인구조사에 나타난 논점은 명확하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시적인 요소들(돈, 권력, 물량주의 기타)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며 나아가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더욱 신뢰해야만 함을 강조해 준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 . . .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사 8:13-14).
장세훈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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