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열왕기상,하 강해

역대하 전체연구, 역대하 파노라마, 주제 - 인간의 거짓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에반젤(복음) 2019. 8. 19. 19:17



역대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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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인간의 거짓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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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는 열왕기 상하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분열왕국이 되었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역사을 해석하는 관점(觀點)이 다름니다.

열왕기 상하에서는 북왕국과 남왕국 즉 분열왕국의 역사를 교차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반면

역대하에서는 북왕국의 역사를 생략한 체 언급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느냐 하면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다윗 언약을 배반하고 떨어져 나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북왕국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에서는 솔로몬 왕(1-9)으로 시작하여 르호보암(10-12),아비야(13),아사(14-16),여호사밧(17-20),여호람(21),아하시야(22),요아스(23-24),아마샤(25),웃시야(26),요담(27),아하스(28),히스기야(29-32),므낫세,아몬(33),요시야(34-35),

여호아하스,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36),20(아합의 딸 아달랴 제외)의 왕들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북왕국과 구별된 특징이 있는데 북왕국은 반역으로 인하여 왕통이 자주 바뀌었으나

남왕국의 왕통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대상17:14)하고 언약하신 대로 바뀜이 없이 다윗의 자손으로 계승되어 내려왔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미 야곱이 임종 머리에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49:10)하고 예언한 바입니다.

그런데 이들 왕들은 왕위에 오를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잣대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다윗의 길로 행한 왕과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왕

즉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을 보수한 왕과 이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왕으로 나누어집니다.

왕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도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선한왕도 시작은 좋았으나 나중이 나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도 바울이 죄론의 결론으로 말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3:20)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서는 이를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의 중심주제는 성전입니다.

역대상에서 다윗이 성전을 건축할 자재와터와식양을 준비하였다가 솔로몬에게 위임(委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솔로몬은 그 터에 그 식양대로 성전을 건축했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성전이 중심주제가 되는가

이점이 성전낙성식때에 행한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서 엿볼 수가 있는데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晝夜)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6:20-21)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자신이 건축한 성전이라는 건물(建物)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전의 기능이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의 만남의 장소

즉 중보(中保)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보의 역할 중에 근본적인 문제가 ()하여 주옵소서한 죄()문제입니다

죄가 해결이 되어야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가 사하여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식양대로 지은 번제단에서 대속 제물이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중보의 역할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성전에 지성소는 있는데 번제단이 없다면 하나님과 만남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이 무엇에 대한 모형으로 주어졌는가 하는 답은 명백해진 셈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19,21)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전으로 임마누엘 하신 목적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한 중보(中保)의 역할을 담당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전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려줄 대제사장도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인 성전이 있고 이를 가능케 하는 번제단이 있고

대속제물을 드려줄 제사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대하는 열왕기와는 달리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역대상에서 다윗의 허물을 덮어준 기자는 역대하에서는 타락했던 솔로몬의 허물을 덮어준 체 일체 언급이 없습니다.

열왕기에서는 극악한 왕으로 묘사되어 있는 므낫세 왕까지도 그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33:12)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대속제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번제단은 그리스도께서 대속제물이 되어주실 것에 대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역대 왕들이 이를 배반하고 성전을 훼파하고 우상을 세우고 숭배하는 패역을 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계획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처해주셨는가

참으로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악한 왕이 성전을 헐고 더럽히면 선한 왕을 일으키셔서 다시 세우시고 성결케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전

헐려는 자와 세우려는 자의 격전(激戰)의 장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한 우리의 중보자로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려 하나 대적자는 이를 분쇄하려고 발악을 합니다.

그 절정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인 사건입니다.

저들은 성전을 헐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사흘 만에 다시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118:22-23,21:42)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서를 상고해보면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죄가 총공세(더하여)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공세를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심으로 격퇴하셨던 것입니다.

즉 죄가 50으로 공격을 해오면 100이라는 은혜로 막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가리켜서 선지자 이사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 하신다”(42:3)하고 말씀합니다. 이제 상고하고자 하는 역대하의 역사(歷史)상한 갈대,꺼져가는 등불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꺾지도 끄지도 않으셨습니다.

만일 이렇게 해주시지 않으셨다면 구원계획은 벌써 실패로 돌아가고 우리는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이 되고(1:9)말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榮光)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7:1-2)한 성전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36:19)하고 불길에 휩싸이게 되고 맙니다.

왜 그런가

죄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분명해야할 점은

솔로몬의 성전이 불에 따고 파괴당하게 된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었으나

참 성전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헐리게된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라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합니다.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신 부활을 말씀함과 같이

역대하도 성전이 파괴당한 것으로 끝나고 있지 아니합니다.

사로잡혀간 자들은 다시 돌아오고

성전을 건축하라”(36:23)하는 회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2의 성전을 건설하는 자들을 향해서

이 전(殿)의 나중 영광이 이전(以前)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9)하고 격려하십니다.

나중 영광이 이전(以前) 영광보다 크리라하신 성전은 임마누엘을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제도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1-22)한 진행형(進行形)입니다

이 성전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21:6)하고

완성(完成)이 될 것입니다.

역대기의 1차 독자들은 포로에서 귀환한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역대하는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성전이 불에 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똑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메시아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게 해주셨고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해주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해주셨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제도 자신들과 함께 계시고

약속하신 바를 기어코 성취하신다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대기가 신약의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바가 무엇인가?

첫째는 인간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3:20)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입니다.

그리하여 둘째는 유일하신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메시아언약 즉 복음진리를 보수하며 증거해야한다는 점입니다

결론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케”(고전10:11)하셨다는 것입니다.

본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경회하며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