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열왕기상,하 강해

엘리야를 고치시는 하나님

에반젤(복음) 2019. 8. 19. 18:56



엘리야를 고쳐주신 하나님

(왕상 19:1-14) “1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이 시간에 “엘리야를 고쳐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건강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육신이 건강해야 신앙생활도 잘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육신이 건강해야 영혼도 튼튼하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우리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까지도 돌보아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거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 하면서 가장 거북한 소리가 기도만 해라. 말씀만 전해라. 영적인 일만 해라. 예배만 드려라. 그런 말입니다. 언 듯 들으면 가장 신령한 말 같아도 가장 어리석은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지 않은 일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럴듯한 말이 우리를 망치고 하나님의 사역을 멍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가장 중요한 일 뿐 아니라 육신도 정신도 교육도 사업도 돌볼 수만 있다면 돌보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셨는데 이 말씀은 문법적으로 두 가지 다 긍정하신 말씀이지 떡을 부정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고 우리 교회 역시 해야 그래야 하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이걸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그 능력의 엘리야도 질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하나님 저를 불러가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우울병이었습니다.

우울병이란 영적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정신적 육체적인 스트레스가 쌓여서 생기는 병입니다. 혹시 사시다가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고 생명 불러달라고 기도한 적은 없습니까?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구나 몇 번쯤은 겪는 현상입니다.

우울병에 대해서 주요 증상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신증상으로는 생명감정의 저하, 불안, 절망, 비애감, 흥미상실, 무감동, 삶에 대한 무관심의 상태를 보이고 사고의 진행이 정체되고 결단력이 저하되며 주의력 집중이 되지 않고 사고내용도 비관적 허무적이며 열등감 부정적인 자아지각, 부정적 기대, 자기경험의 부정적 해석, 과소망상, 죄의식, 빈곤망상 등의 부정망상 등의 상태를 보인다.”고 했고

신체증상으로는 “무기력감, 수동적, 식욕 및 성욕의 저하, 수면장애, 월경불순, 전신권태감, 혹은 반대로 병적 건강감, 성욕 식욕의 증가, 혈압상승 등의 신체적 장애를 나타낸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믿음과 능력의 사람 엘리야도 이 병에 깊이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우울 증세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왕상19:4과 10절입니다. 그 중 왕상19:4은 자기 생명을 불러달라고 기도한 대목입니다.

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무리와의 대결에서 엘리야가 승리하긴 했지만 그 자신은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시옵소서 부르짖었습니다. 혹시 엘리야처럼 살고 싶지 않는 성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질병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잘 만드셨어요. 그럼에도 영혼과 정신과 육체에 질병이 있다면 무언가 원인이 있기 때문에 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하려면 원인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엘리야의 우울병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1. 한계를 넘는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왕상19:10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선지자들이 다 잡혀 죽는 가운데 혼자 남아서 우상숭배의 원흉인 이세벨과 싸우고 자기 목숨을 찾는 세력에게서 3년 6개월간 쫓겨 다니고 갈멜산 상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결전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는 하루도 아니고 수많은 날을 여호와를 위하여 인간의 한계를 넘어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한계를 넘는 일을 계속해 나갈 때 우리 인간은 쓰러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만 그래도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쁠지라도 쉴 때는 쉬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사람들이 몰려오는 그 때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쉬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기계도 오래 쓰면 피로현상이 온다고 합니다. 튼튼한 쇠로 만들어졌다고 영구한 것 아닙니다. 전자제품도 쉬지 않으면 피로현상이 와서 오류가 발생합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으면 껐다가 켜보시기 바랍니다.

2. 누적된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3절에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왕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생명을 찾을 때 도망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이지만 왕과 왕후를 대항하여 싸운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어느 왕이 짐은 곧 국가라고 말한 것처럼 왕을 상대해서 싸운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잘 이기고 나가다가 어느 한 순간에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 경우 큰 승리 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 견뎌오다가도 조그만 신앙의 틈만 보이면 이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지는 날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심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그 밀린 스트레스가 문제를 일으킵니다. 스트레스를 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그도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서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나 홀로 남았다고 했듯이 그는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면 다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하나님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부라면 아담을 만드신 후에 하와를 만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햇볕도 들어오지 않고 나무 하나 풀 하나 없는 병실에 입원해 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우울증이었습니다. 방에서도 우울합니다. 사람들이 모인 텔레비전 앞에서 우울증이 풀어질까 가 봐도 풀리지 않습니다. 옥상 주차장에 있어도 우울함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잔디가 있고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아래 있었더니 한 시간 만에 우울증은 떠나고 정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살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친구도 필요하고 이웃도 필요하고 가족도 필요하고 나무도 풀도 동물도 다 필요한 존재입니다. 혼자도 살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육신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우울병의 또 다른 원인을 봅니다. 육신이 약해 졌을 때도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건강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상태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나이 많아지면 관절과 인대가 유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멜산 상에서 엘리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는데 이건 몸이 장작개비처럼 마른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영혼이 병들면 육체도 병들지만 반대로 육체가 병들어도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간이 나빠지면 대체로 짜증 화 분노 폭력 폭언 등의 정신적 특징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심장이 나빠지면 잘 놀라고 신경질적이고 지나치게 울거나 웃을 수도 있습니다. 비위장에 문제가 생기면 쓸데없는 생각에 깊어져 공상 망상 의처증 의부증 안절부절하는 등의 특징을 가집니다.

혹은 폐대장에 문제가 생기면 염세주의 비관 슬픔 지나친 동정심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고, 신방광이 약해지면 겁이 많고 무섭고 공포증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포삼초 즉 혈액순환이나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흐느낌 불안 초조 신경예민 노이로제 수치심 등이 심해진다고 합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해야 할 사항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은 사탄이 준다거나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문제라고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귀신만 추방하려고 하고, 병원에서는 뇌 치료만 하려고 하는데 영적인 것인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장부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살필 줄 알아야 진정 의술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경우 몸이 약해져서 온 우울증이었습니다. 그것도 알지 못하고 우울증이 심하다고 보호자가 신고하여 안 가려는 사람을 강제로 포박하여 정신병원 독방에 입원시키고 견딜 수 없어 소리 지르면 강한 주사나 전기충격기에 몇 번 당하게 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폐인이 되고 맙니다. 자손들도 잘 둬야 부모가 살지 미련하면 그것처럼 불효가 없습니다. 엘리야처럼 육신이 약할 때도 우울증이 옵니다.

4. 신앙에 틈이 생겨날 때입니다.

엘리야에게 어떤 신앙의 틈이 있었는지 성경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엘리야의 경우 갈멜산 상에서 대승리를 거둔 이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고 경고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악해도 성령이 충만할 때는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지만 어떤 일로 영적 균형이 깨어질 때 영육 간의 큰 낙심이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작은 신앙의 틈이 생겨날 수 있는데 그것이 방심일수도 있고 자만 교만일수도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다가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병든 엘리야를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어루만지시며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육체를 강하게 해주셨습니다. 대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몸에 단백질이 부족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피곤에 지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재우고 먹이고 재우고 먹이고는 계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야의 영적인 잘못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호렙산으로 불러 그곳에서 모세에게 그랬듯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한없이 조용하고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흔들리는 것 없어도 그곳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체험중심으로 살았던 엘리야의 신앙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체험과 능력 중에도 함께 하시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아무런 체험도 없이 나 혼자 내버려진 것 같아도 변함없이 함께 하시는 그 진리를 믿고 안심하고 기뻐하고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약속의 말씀을 믿고 힘을 얻는 반석 같은 말씀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최후까지 붙잡아줄 은사는 말씀 말고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를 고쳐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도 고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무엇을 하는 것도 좋지만 영육 간에 먼저 건강해야 신앙생활도 잘할 수 있고 남도 도울 수 있고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약하다면 왜 약한 것인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지혜와 말씀과 성령으로 영육 간에 건강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귀히 쓰시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