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한복음 강해

요한복음 3장 강해설교 거듭남의 비밀...그리고 여러가지 강해설교(요한복음)

에반젤(복음) 2019. 8. 17. 15:22



오늘 본문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니고데모는 이미 하나님나라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있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니고데모야 네가 지금 하나님나라의 표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너는 아직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있지도 않아-그래서 너는 먼저 하나님나라에 들어와야 해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다시 태어남, 거듭남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거듭났습니까?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거듭나서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있습니까? 우리는 단순하게 내가 하나님나라에 들어왔다,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로만 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거듭났고 구원을 받았다면, 거듭난 증거가 있어야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아래에서도 예수님을 거듭남을 다시 태어남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경우에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에게는 반드시 증거가 따릅니다. 또 거듭남을 바람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어디서 부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거듭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난 다음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바람이 태풍이 되어서 확실한 증거를 남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듭났다면, 구원받았다면 반드시 그 거듭남의 증거가 있어야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0. 이러므로 (거듭나고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고 거듭났다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나야합니다.

그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앞에 나오는 산상설교입니다. 산상설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는가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산상설교는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우리가 거듭났다면 이런 열매가 있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산상설교의 말씀을 100프로 완벽하게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운데 누가 한 순간도 남을 마음으로도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운데 누가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절대 이 산상설교의 말씀을 100프로 완벽하게는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작은 열매라도 있어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사과나무가 있고, 배나무가 있습니다. 사과가 구원받은 자의 열매이고, 배가 구원받지 못한 자의 열매라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배가 아니라 사과의 열매가 반드시 열려야합니다. 그런데 사과가 아주 작은 사과일 수 있습니다. 또 썩은 사과일 수도 있습니다. 또 덜 익은 푸른 사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모양이든 사과가 열려야합니다. 그런데 나는 구원받은 사과나무라고 하면서 배의 열매가 열린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거듭난 자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요한 일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거듭난 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입니다.

요일5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거듭난자니) --

제일 먼저 거듭난 자는 예수를 그리스로 믿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의 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철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거듭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헬라어의 시제를 보면 믿는다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유일하신 구원자로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의 의로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내가 거듭난 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거듭난 자의 증거를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요일39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거듭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일518절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거듭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는 분명히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다. 그런데 나는 끊임없이 내 마음으로 죄를 짓고 있다. 그러면 나는 거듭나지 않은 자인가라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 일서 18절에 만일 (거듭난)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거듭나고 구원받은 우리가 죄가 없다 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일19절에 보면 거듭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듭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과 또 거듭난 자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 서로 모순이 되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요한일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제일 먼저 우리 양심이 증거 합니다. 또 우리 속에 있는 진리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듭난 자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 말씀을 거듭난 자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마음으로 미워하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자는 그렇게 마음에 남을 미워하는 죄를 짓다가도 반드시 그 죄를 회개하는 자입니다.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8절과 10절에서는 분명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듭난 자는 죄를 짓지만 반드시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왜 회개기도를 합니까? 대표기도하시는 분들도 왜 항상 회개기도를 먼저 합니까? 우리가 거듭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거듭난 자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항상 죄에 대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거듭난 자는 그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무엇보다 거듭난 자는 죄에 대해서 반드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려고 힘을 다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죄에 대해서 넘어졌는데, 이제 끊임없이 돌이키고 회개함으로 그 죄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는 자가 거듭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 지금 여러분이 거듭남으로 죄에 대해서 승리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저는 처음 거듭남을 경험했을 때 초등학교 때 컨닝한 죄에 대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후에 시험을 치는 부분에 있어서는 컨닝한 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대학교련시간에 정말 생각이 나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옆에 답안지가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답을 보고 썼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답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지웠지만 잠시라도 보고 쓴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이와 같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죄에 대해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세 번째 거듭난 자의 증거는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29절에 너희가 그(하나님)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하나님)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의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44). 그래서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신 줄 알면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또 마5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서 말씀하는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말하는 의란 항상 파당에 따른 의입니다 즉 자신의 파당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 파는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세상의 의입니다. 이번에 여당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내용이 과거에 야당이 낸 것과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지금의 야당은 이것이 여당의 안이라고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말하는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파당에 따른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절대적인 의입니다.

/또 세상이 말하는 의는 항상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의입니다. 이번에 국무총리가 사정을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명분은 항상 정의를 내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정을 칼을 내세워서 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 칼에 도리어 자신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이 말하는 의란 그 의를 내세워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의가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의입니다.

/또 세상이 말하는 의는 자기 기준에서 옳은 의입니다. 그래서 내 개인의 기준에 옳다고 하면 의이고, 내 기준에서 잘못되었다고 하면 불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사시대의 의입니다. 사사시대에는 자기가 옳다 생각하는 것을 의로 생각하고 자기 개인적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의는 공의입니다. 공의란 내 기준에 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볼 때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의를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은 부자의 하나님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가난 한자의 하나님이라고 보십니까? 하나님은 단순히 부자의 하나님이시거나 가난 한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231. 너는 거짓된 풍설(유언비어)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이 말씀에 보면 거짓된 풍설 즉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수가 무조건 선이 아니기에 다수를 따라서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수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를 따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심지어 가난 자의 송사라고 해서 동정심이나 감상으로 치우쳐서 두둔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땀을 흘려 일을 하여 최선을 다하여 부자가 된 사람을 절대 불의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게을러서 가난한 자게 된 자를 의롭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불의하게 부자가 된 사람에 대해서 절대 의롭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가난하게 된 사람에 대해서 절대 불의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부자이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하는 자에 대해서 불의하다고 하십니다. 또 가난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부당한 재판을 받거나 억울함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불의하다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월호사건이 일어난 지 일 주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때문에 왜 이렇게 피곤하게 세월을 끄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도대체 세월호 가족들이 무엇을 주장하는 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쪽에서 주장하는 것이 전부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편견일수도 있고, 오해일수 있고, 잘못된 유언비어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금 제일 크게 요구하는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진실규명입니다. 몇 가지 의혹스러운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정확하게 진실을 먼저 규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유가족들이 생각하는 진실이 오해이고 거짓이고 잘못된 유언비어이면 이제 그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진실 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자꾸 가만히 있자 덮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타깝게 울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중 76명의 부모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80%는 다니던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포기한 가족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세월호 유가족 다영 양의 아버지 김현동 집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우리의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교회는 이제 그만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그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고 반문합니다. 그는 "돈으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무마하는 것은 유가족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라며 "교회가 전반적으로 유가족들의 편이 아닌 다른 입장에만 서 있는 것만 같아 교인들 대부분은 교회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 속에 실의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김 집사는 "부디 우리 한국교회가 사회에 하나님의 의를 심을 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 진실을 밝히는 것에 함께 해주시고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힘써주셨으면 한다""교회가 지금까지 보여준 이런 식의 의식에 머물러 있다면 유가족 부모들은 교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유가족들의 말이 다 옳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 특히 그 중에서 교회를 다니는 유가족조차도 진실규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교회 복음주의 교회연합에서 세월호 1주기 성명에서 제일 먼저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무조건 복이 아닙니다.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공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의를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의를 행함으로 복을 받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불의가 아니라 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사람들이 말하는 상대적인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또 사람을 살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편이고, 의의 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으로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따라서 의를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네 번째 거듭난 자의 증거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일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낳으신 이(하나님)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하나님)에게서 난 자(믿음의 형제들)를 사랑하느니라 이 말씀에 보면 거듭난 자는 제일 먼저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거듭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거듭난 자는 하나님에게서 난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말씀에서도 우리가 만일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그 사람 속에는 영생이 없다,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 마음가운데 조금이라도 형제를 미워해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거듭난 자가 아닌가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워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미워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자라할지라도 순간적으로 형제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 형제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다시 출생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새 계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다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미워하는 것이 쉽습니까?

우리들은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5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구원받았고, 거듭났습니까? 그렇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일서에 의하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거듭난 증거로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가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권사님이 지난 목요일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오늘 내가 너무 피곤해서 여기서 나오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서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서로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왔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형제 사랑에 대해서 너무 거창하게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내 몸을 다 불태워 주겠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다고 해도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무엇이 형제 사랑입니까? 떨어져있을 때 서로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8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하는데, 여기서 사모란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모가지를 내 밀고 연인을 간절히 저리 보고 싶어 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서로 사랑함으로 보고 싶어 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사랑함이란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1331절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혜신이라는 정신과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관심이다-그러면서 어느 세월호 가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름도 없이 그냥 며칠씩 화장실청소를 하고 간 사람이다?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그들에게 큰 치유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참된 선교란...타인의 삶에 관심과 사랑으로 개입하는(함께 하는) 순간 감동과 전율을 타고 전달되는 바로 그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관심입니다. 또 관심을 가짐으로 그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감동과 전율을 타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눔 질문

나는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나에게 거듭난 증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중에서 특히 나에게 형제 사랑에 대한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는 서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 관심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과연 믿음의 형제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만일 사랑이 식었다면 왜 그런지에 대해서 말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