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전체 강해설교와 마가복음 1장 강해설교

에반젤(복음) 2019. 8. 17. 10:56



1: 전도사역을 시작하심

1-11, 세례 요한의 증거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고 증거한다. 베드로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다(16:16). 요한도 그가 쓴 요한복음 끝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증거하였다(20:30-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1:12) 의미와 다르게, 그가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셨다는 의미이다. 요한은 그에 대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거했고(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독생하신 아들](전통본문)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했다(1:18).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11:27). 또 그가 새벽녘에 풍랑 이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배에 있던 제자들은 그에게 경배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했다(14:33).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아들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2-5] 선지자 이사야[선지자들](전통본문)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전통본문)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요한이 세례를 베풀며](전통본문)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마가는 말라기 3:1과 이사야 40:3의 예언을 인용하였다. 이 예언들이 세례 요한에게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다(46:10). 그가 그의 행하실 일을 예언하시는 것은 우리로 소망 중에 하나님을 기대하다가 그 일이 이루어질 때 그를 더욱 확신케 하려 하심이다. 과거의 예언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도 확신하고 소망하게 된다.

요한이 베푼 세례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이었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버리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회개는 죄사함의 필수 조건이다(2:38; 3:19). 죄사함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복이다. 죄가 사람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기 때문에, 죄사함은 행복의 첫걸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사함을 위한 회개가 필요하다. 주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다(5:32).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후에 베드로를 통해 3천명을 회개시키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버려두시면 선지자 예레미야 때처럼 41년간의 사역이 결실 없는 사역이 될 수도 있다. 씨를 심으시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고전 3:7). 메시아의 오심은 이렇게 준비되었다.



[6-8]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신끈]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것은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나타낸다(왕하 1:8). 요한은 광야생활과 설교사역에 적합한 검소한 복장을 하였다. 세례 요한은 먹는 음식도 단순하여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석청(石淸, 멜리 아그리온 mevli a[grion)은 들판에서 얻을 수 있는 야생꿀을 가리킨다. 반찬이 많은 식탁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해야 한다(30:8; 6:11).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를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보다 능력의 차이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요한복음 1:34에 보면, 세례 요한은 메시아께서 신적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자신은 그 분의 신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천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물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하고 성령세례는 실제로 죄씻음을 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단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사람을 중생시키시고 죄씻음을 주실 것이다. 이것은 그가 승천하신 후, 성령의 강림으로 성취되었다(1:5). 오늘날 예수님 믿는 자들은 다 성령세례를 받았다. 고린도전서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디도서 3:5-6,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9-11]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땅의 북부에 있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로부터 남쪽의 사해까지 이어지는 긴 강이며 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은 남쪽의 유대 지역이었다(3:1; 1:5).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 곧 우리의 죄를 짊어진 대속제물로 세례를 받으셨다고 보인다. 요한복음에 보면, 세례 요한은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증거하였다(1:29, 32-34).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셨다. 또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혹은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것은 마태, 마가, 누가 등 세 복음서가 다 증거하는 하나님의 친 음성의 증거이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고 성령께서 그에게 내려오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또한 인간 예수께서 메시아 신분을 확인하신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탄생 때부터 신적 메시아이시지만, 인간 예수의 메시아 의식은 아마 점진적으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물론 누가복음 2장에 증거된 대로, 그는 열두 살 때에 벌써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에 관계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그의 부모에게 말씀하셨다(2:49, KJV). 이제 아버지께서는 그를 전도 사역에 내보내시기 전에 그의 메시아 신분을 밝히 증거하셨고 인간 예수님은 그 사실을 확인하시고 확신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의 증거를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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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은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의 한 기본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마가는 마가복음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친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들으셨다. 우리는 네 권의 복음서들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충분한 증언들을 들었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받았다.

둘째로, 예수께서 오셔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죄사함의 일이다. 이것은 그가 오시기 전에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 증거되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 죄가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었고 죄사함은 그 해결책이다. 죄가 모든 사람의 모든 불행의 근본적 원인이다. 그런데 죄사함은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대속의 제물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죄는 용서될 수 없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사역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또 이것은 단순히 물세례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세례, 곧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역사로만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의 회개와 믿음으로 나타난다.

12-20,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심



[12-13]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광야는 거칠고 들짐승이 있고 온갖 위험이 있고 특히 마귀의 시험이 있는 곳이다. 마태복음 4:2에 보면, 그는 40일간 금식하셨다. 40일간의 금식과 사탄에게 시험받으심은 그의 전도사역을 위한 준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을 수 없으나 인간 예수님은 받으셨다. 그는 친히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셨다(4:15). 첫 사람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마귀의 시험에 넘어졌었다. 그러나 둘째 사람(고전 15:47) 예수께서는 승리하셨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다. 신앙생활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전통본문)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세례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하나님께는 완전한 시간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사역이 끝났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릴리에서 본격적인 전도사역을 시작하셨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땅의 북부 지방이다. 예루살렘은 남부 유대 지방에 있었다. 예수님의 공적 전도사역은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방에서가 아니고 갈릴리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지역이나 외적인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그의 자유로운 뜻에 따른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내용을 가리킨다. 죄인들은 그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파하셨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작정하신다.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찼다. 그때는 다니엘이 예언한 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때이다.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곧 로마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이 신약교회이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주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파하셨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는 죄를 깨닫고 죄를 버리고 돌이키는 것이다. 우리는 십계명을 어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죄와, 온갖 부도덕의 죄, 즉 불효,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등을 가리킨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가리키며(1:2-4),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과 칭의(稱義)와 영생이다(고전 1:22-23; 3:23-24; 6:23; 3:16). 사람은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얻는다.


 

[16-20]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의 사명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2:17). 사도 바울도,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말하였다(딤전 1:15). 전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맡기신 일이며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것은 교회의 최대의 임무와 사명이며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이다. 주께서는 이 중요한 일을 위해 전도자들을 부르셨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으려면 그 이름에 대해 들어야 하고 들으려면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구원을 위해서는 전도가 필요하고 전도를 위해서는 전도자가 필요하다. 누군가 사람들에게로 가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10).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필요하시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는 주와 함께 있으면서 주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한다. 오늘날 전도자는 성경에 정통하여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이해해야 한다. 또 전도자는 주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11:29). 또 전도자는 주께서 가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을 각오해야 한다(딤후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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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나라가 곧 신약교회이다. 죄인들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나라에 들어온다.

둘째로,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는 모든 불경건과 부도덕을 깨닫고 버리고 돌이켜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한다. 누구든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셋째로, 전도는 예수님의 사명이었고 신약교회의 사명이다. 우리는 전도를 중요하게 여기자. 전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에게 맡기신 일이다. 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 곧 지옥 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다. 전도는 교회의 최대의 임무요 사명이다. 우리는 전도지를 주위에 배포하자.

21-34, 귀신들림과 열병을 고쳐주심

[21-22]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처음 전도하신 마을이었다. 그는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지내셨고 가버나움에서 전도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율법이 명한 성도의 생활 규칙이었다. 그 날에는 육신의 일을 쉬어야 하였고 세속적인 일을 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고(31:13-15) 공적인 집회로 모여야 했다(23:3).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되었지만, 그 완성은 위축된 방식으로가 아니고 풍성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신약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7일 중 하루 이상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지킨다.

예수께서는 당시의 경건한 유대인들의 규례와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고(4:16) 거기서 가르치셨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 시대에 생긴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로 오늘날 예배당과 비슷한 곳이며 그들은 안식일에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성경말씀을 배웠다. 회당 예배는 오늘날 교회의 예배와 비슷하였다. 신약 성도들도 성수주일, 십일조, 예배당 중심의 생활 같은 경건한 습관을 가져야 하고 우리의 자녀들도 그런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당에 모인 경건한 모든 사람들은 그의 교훈에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권세와 권위로 가르치셨다. 사람들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25-28]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더러운 귀신더러운 영이라는 단어이다. 악한 천사 곧 악한 영이 귀신이다. 귀신은 사람 속에서 더러운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며 사람으로 더러운 일을 행하게 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을 미워하고 음란하고 거짓되고 탐욕적인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고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우리가 과거에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는데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했고 우리가 그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말했다(2:1-5).

회당에서 만난 그 더러운 귀신은 나사렛 출신의 청년 예수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임을 알고 있었고 그가 자신을 멸할 수 있는 자임을 알고 두려워하였다. 그는 예수가 평범한 한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히 구별하신 자이며 더러운 귀신들을 멸할 수 있는 신적 권세를 가진 자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악령도 상당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는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 구원은 범죄한 인간들에게만 주어졌고 범죄한 천사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귀신을 꾸짖고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그의 말씀은 권위가 있는 말씀이었다.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왔다. 그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였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다 놀라 서로 물었다.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들까지도 복종시키셨다. 그의 소문은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다. 귀신들을 복종시키는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는 신적 구주이시다.

[29-31]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주께서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는데,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말하자, 그는 나아가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누가복음 4:39는 그가 열병을 꾸짖으셨다고 증거한다. 그러자 그의 열병이 떠나고 그는 그들에게 수종들었다. 예수께서는 열병 환자를 고쳐주셨다. 그는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셨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32-34]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날이 저물어 해가 질 때, 사람들은 모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예수께 데려왔다. 본문은 온 동네가 문앞에 모였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과장법일 것이다. 그러나 온 동네의 모든 사람이 모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치셨고 많은 귀신들을 내쫓으셨다. 그러나 귀신들이 그를 알아보므로 그들의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그들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신 그의 사명을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병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각가지 병들과 불행들이 있다. 그것들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죄 때문에 왔다. 죄 없는 천국에는 병도 불행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각종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그의 행하신 일들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가 각종 병자들을 고치신 것은 그의 신적 인격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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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자. 예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 귀신은 그에게 복종하였다. 또 그는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다. 또 그는 가버나움에서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 그는 신적 능력을 가진 주님이시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자.

또 우리는 예수께서 참된 의사이심을 깨닫자. 그는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고쳐주셨다. 그는 사람을 영육으로 온전케 하실 수 있는 의사, 특히 우리의 죄악된 생각과 감정, 또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켜 주시는 구주, 곧 우리의 인격의 결점와 약점을 변화시켜 주시는 구주이시다. 그는 단번에 법적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깨끗케 하셨고 우리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고, 또 비록 우리의 성화가 매우 더디고 불완전하지만, 오래 참으시며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날마다 점점 더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주의는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는 기적을 전하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다(고전 1:22-24). 방언, 병고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한 삶이다(고전 13:1-2). 바울은 거짓된 기적주의를 경계했다(살후 2:9-12). 기독교는 초자연적 기적과 은사를 믿지만, 기적주의나 은사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성경의 교훈을 열심히 배우고 믿고 행하는 것으로 충분한 줄 알아야 한다.

35-45, 예수께서 하신 일들

[35-39]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미명에라는 말(엔뉘콘 리안 e[nnucon livan)‘(아직) 꽤 어두울 때즉 이른 새벽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그는 새벽기도를 하신 것이다. 그가 매일 새벽기도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확실히 새벽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새벽기도는 하루의 복잡한 일과가 시작되기 전,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에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또 밤에 충분히 잠을 잔 후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시작하는 것은 가장 귀하고 정성어린 일이다. 또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며 그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그러나 새벽기도를 생활화하려면 성도는 밤에 좀 일찍 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기도하신 것은 신비스런 일이지만, 그것이 인간 예수님의 사역에 필요하였다고 보이며, 그것은 모든 성도들과 특히 사역자들에게 본이 된다. 예수께서는 기도로 그의 전도사역을 수행하셨고 진행하셨다. 인간 예수께서는 그의 사역을 위해 기도로 날마다 새 힘을 공급받으셨다. 그와 같이, 오늘 우리 모든 사역자들은 기도로 우리의 직분을 수행하고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께 새 힘을 공급받아야 할 것이다. 신성(神性)을 가지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기도하셨다면, 죄악된 세상에서 죄성과 연약성을 가진 우리들이 어떻게 기도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도들과 초대 성도들은 기도에 전념하였다(6:4; 2:42).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모든 사람이 주를 찾는다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이는 내가 이를 위하여 왔음이니라.” 그는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셨다.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을 내어쫓으셨지만, 그것은 그의 주된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이를 위해 전도하는 일이었다. 그가 병을 고치신 것은 그의 신적 능력과 긍휼에 수반된 일이었다. 회개와 천국 선포를 통해 영혼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그의 더 중요한 사역이었다. 몸의 건강과 병의 치료도 귀하지만, 영혼의 구원은 더 가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은 단지 이 세상에서의 복된 삶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복이다. 죄의 결과는 질병과 죽음과 불행이었으나, 죄씻음의 구원은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다.

오늘날 전도는 일차적으로 전도자의 임무지만(28:19; 1:17; 딤후 2:2; 1:3), 넓게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귀한 일이다. 모든 성도는 가정복음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특히 믿는 아내들은 믿지 않는 남편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에게 순복하고 그들 앞에서 선하고 거룩한 행실을 보이면서(벧전 3:1-2) 전도해야 한다. 또 모든 성도는 이웃에게 친근히 하며 정직하고 선한 본을 보이면서 한 사람이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해야 한다.

[40] 한 문둥병자[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아왔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부정(不淨)하므로 진 밖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13:45-46). 그런데 그가 예수께 나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였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가 꿇어 엎드려 간구한 것은 그의 겸비함과 간절함을 보인다. 그의 질병은 그에게 유익하였다. 그는 그 고난을 인하여 겸손히 예수께 나아와 엎드렸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는 그의 말은 그가 예수님의 신적 인격과 능력을 믿었음을 나타낸다.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예수께서 자기의 나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놀라운 믿음이 있었다.

[41-42]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시고]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는 이런 불치의 병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으셨다. 그는 그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곧 그의 병이 그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졌다. 그것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었다. 나병을 고쳐주신 예수님,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늘날 주 예수께서는 나병보다 더 더럽고 나쁜 우리의 죄악을 깨끗이 씻어주셨고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셨다(3:23-24; 3:16).

[43-44]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예수께서는 그에게 엄히 경계하시고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그가 그에게 엄히 경계하신 것은, 그의 사명이 병고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임을 군중들로 오해하지 않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가 그에게 그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그의 깨끗케 됨을 인해 모세의 명한 것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율법의 규례대로(14:2-32) 하라고 하신 것이다.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그 사람은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했다. 그는 이 점에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지만, 자신에게 이루어진 그 놀라운 일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시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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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새벽기도를 실천하자. 새벽기도는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가장 좋은 시간에, 또 가장 적절한 때에 하는 정성어린 기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새벽기도를 생활화하려면 밤에 좀 일찍 자는 습관을 드려야 한다. 또 우리는 시시때때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께서는 새벽기도, 밤기도, 철야기도를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기도에 힘쓰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지 않고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둘째로, 예수께서는 나병을 깨끗케 해주실 뿐 아니라, 나병보다 더 더럽고 나쁜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해주시는 구주이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루시는 구원 사역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이며 죄씻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밖에 없다. 죄를 씻는 길은 예수의 피밖에 없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함이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 사역을 이루셨다. 이제 죄인들은 회개하고 이 속죄의 복음을 믿음으로 죄씻음의 구원을 받는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구원의 방법이며 신약교회에 주신 최대의 과제이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며 또 시시때때로 전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