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마1;1, 20:28절, 150.256.316장.A
마태복음은 마태가 기록했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마태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의 주제와 핵심은 예수의 자기 계시와 하나님의 나라 선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 나타났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에 의해서 기록된 마태복음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 24장에서는 유대 민족에게 임할 재난들과 성전 파괴가 그 시대의 종말론적 대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마태복음에 기록된 이 예언들이 성취되기 이전, 다시 말씀드려서 A.D. 70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되 특히 62년경에 마태를 통해서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약 30년의 세월이 흘러간 뒤였습니다.
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서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미 30년 전에 너희들이 죽인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 메시아라고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계속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해야 자신들이 가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면 그 예수님을 죽인 자신들이 가짜가 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자신들이 가짜가 되기 싫어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마태복음은 심판을 외치고 있습니다.
1.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과의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며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마태복음에는 구약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인용하고 해석하고 있는가를 관심 있게 살펴보면 우리들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전혀 다른 관점으로 구약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완전한 계시의 불빛 아래서 바라보아야 구약이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약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구약만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구약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구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로마)의 집권자들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 처형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적인 권위를 주장하고 사죄의 권세를 내세우자,유대인들은 이를 근거로 고소하였습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곧 왕이라는 말인데 그들은 이 말로 예수님을 고소하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정치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무조건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로마의 왕이 곧 유대인의 왕으로 대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거부하고,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합니다.(마26:11). 이것은 반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21: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음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대로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율법의 말씀을 이용합니다.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어떤 음모였느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므로써 모든 군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죄에 대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죽은 것으로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그의 제자(弟子)들과 군중(群衆)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멀어지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여 복음 운동과 복음 선포를 종식시키려고 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십자가 사건은 정말 큰 일이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으로서의,메시아가 될 것을 기대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實在)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슬픔과 환멸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후반부에 기록된 것과 같은 그리스도의 부활(復活) 사건(事件)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활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내용들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자기 주장과 그가 선포한 복음이 옳았다고 하나님이 인정했다는 선언입니다.(롬1:4절).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로 인정되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모두를 위하고,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곧 구원자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의 모든 계시(구약)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미래 지향적인 계시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그의 제자들의 선포(마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을 되돌아보는 관점으로서 구약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유대인들에게 증거 했습니다.
2.유대인의 의식과 충격입니다. 마태는 주후 62년경에 마태복음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30 여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의 저주를 위해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하나님의 구원을 특별히 예언과 성취라고 하는 맥락 속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마태복음은 유대주의 전통하에서 살았고 배웠던 유대인들에게 충분히 놀라움과 의심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기대하며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가 오시는 날에는 유대인들은, 모든 고통과 억압에서 해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토록 오시리라고 예언된 구약의 말씀 따라 오셨습니다.
자기들 곁에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를 시기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라는 분은 구약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의 탄생과 출생과 그의 사역 모두를 구약 성경과 함께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이 소망이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그 메시야를 믿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구약 모세가 준 율법을 잘 지켜서 의인이라고 자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가 준 율법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율법의 말씀인 살인을 실제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라고 한 이상 그들은 예수가 필요 없는 자들입니다.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자,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스스로 법을 지켜서 의인이라고 한 이상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요, 독사에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1차 독자는 유대인들입니다.
그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증거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기에 마태복음은 용어 선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가능한 자제합니다.
그러면서 간접적인 표현인 하늘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루 약 30년의 세월이 흘러간 뒤였습니다. 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된 그 그리스도(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서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미 30년 전에 너희들이 죽인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 메시아라고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계속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해야 자신들이 가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면 그 예수님을 죽인 자신들이 가짜가 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자신들이 가짜가 되기 싫어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마태복음 심판을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같은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3.왜 그리스도 중심으로 기록되는가 마태복음을 비롯한 모든 신약 성경은 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는가 마태복음의 시작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말은 구약의 예언된 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조된 것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마1:1절을 직역해 보면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책이라할 수 있습니다. 1절에서 마태는 다윗의 자손을 강조하면서 다윗의 왕국과 영원히 설 한 나라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국과의 연계성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통치자이신 왕으로서 메시아 됨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 마태의 의도였습니다. 그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강조된 것은 그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은 하나님의 희생의 고난과 영광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어린양의 희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용서를 받고 생명을 얻은 것처럼 어린양 되시는 메시아의 희생은 곧 하나님의 희생이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표현입니다.
이런 희생과 자비로 인하여 우리들은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태복음은 예수님 자신이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그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우리들이 왜 죄인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죄인의 길에서 구원받는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또한 구원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이 같은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느냐면 예수님께서 가지고 온 천국의 백성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제자 된 성도들은 철저히 자신의 부족과 통회 자복하는 심령, 가난한 심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 그대로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救援)과 생명(生命)을 얻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들을 쟁취해서, 자신(自信)의 노력(努力)으로 얻은 결과로 설명하려고 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늘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제자도의 모습입니다. 그런 희생과 헌신의 삶 속에서도 날마다 기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유대인들이 방해하려고 하였으나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성육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부름받음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는데 도구로 쓰임받기 위하여서 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고 간절히 부르짖어 간구하여 성령충만을 받아 주어진 사역을 잘감당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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