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시는 성령 (고전 12:3-12)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 시간에 “도우시는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성령에 무관심하거나 제한한다면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유념해야 합니다.
한 소년이 돌을 옮기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돌이 너무 커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지치고 낙심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다가와 "얘야,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보렴." "네, 이미 모든 방법을 다 써봤는데 꼼짝도 안 해요." "정말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니?" "네…." 그러자 아버지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너는 한 가지 방법을 쓰지 않았어. 너는 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잖니." 소년은 아버지가 큰 도움이신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전능하신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가 방법을 다 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혜사라,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즉 ‘곁’을 의미하는 ‘파라’와 ‘변호자, 위로자, 중보자’를 뜻하는 ‘클레토스’가 합해진 단어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1. 믿음 주셔서 도우십니다.
본문 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께서 믿음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믿은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성령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믿음 주셔서 예수를 주라고 부르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도 예수님도 보지 못했고, 천지창조도 천국도 지옥도 보지 못했지만 말씀이 믿어진다는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서도 믿어지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께서는 은사를 통해 도우십니다.
4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라고 하면서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9가지 은사를 소개합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인데 넓게는 천지와 만물, 생명, 부모 형제와 같은 일반적인 것에서부터 복음, 의, 영생, 구원, 성령 등의 특별한 것을 말하며, 좁게는 성령께서 직접 나타나게 도와주시는 것들을 은사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말씀 지혜 지식 예언 병고침 믿음 능력 방언 통역 꿈 이상 이런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은사를 주시는 것은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9가지 중에서 몇 가지나 도움을 받고 계십니까? 말씀이나 믿음이나 꿈 같은 것은 가깝다고 보지만, 예언 받아본 적 있습니까? 병고침 방언 통역은 어떻습니까?
은사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것입니다. 은사만 지나치게 좇아다녀도 문제지만 너무 무관심해도 문제입니다. 너무 무관심하기 때문에 믿음생활이 어렵고, 10년이 가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고전1:1-2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이걸 말씀하신 이유는 이젠 하나님을 믿으니, 이젠 귀신의 영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를 속이고 멸망에 빠뜨리지만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고 복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라면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가 여럿이듯 우리는 다른 지체의 절대로 필요합니다.
3. 성령께서는 직분을 통해서 도우십니다.
5절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이 말씀 속에 성령께서 직분을 통해서 도우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2:28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 엡4:11-12에서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고 하면서 세우신 목적을 말씀하기를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행20:28에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연단하여 세우신 것은 필요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없다면 교회는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 방황하고 말 것입니다.
4. 성령께서는 지체를 통해서 도우십니다.
12절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우리들은 한 몸으로 그 머리에 붙은 여러 지체와 같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잘 붙들어야 합니다.
골2:19에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했듯이 머리 되신 주님만 잘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혹은 지체를 통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중풍병이 무서운 것은 중풍은 뇌의 신경에 이상이 와서 지체와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머리 되신 주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영적 중풍에 걸립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지체들과의 관계도 끊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잘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잘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예배할 때도 성령께서 지체들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장작이 하나일 때는 불이 꺼지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활활 타는 것처럼 우리 성도는 예배함으로 혹은 모이는 것 그 자체로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상공간에서 예배하는 것으로 만족하다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5. 성령께서는 친히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
롬8:26-27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여러 해 전에 어떤 사람이 미국에 와서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그 방법은 가정에서 만든 ‘로자리오 묵주’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로자리오 = 묵주 같은 말인데, “매일 아침 묵주를 어루만지며 ‘나는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라고 중얼거리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이 놀아났습니다.
기독교는 이런 황당한 미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수 이름으로 직접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지만 몸과 마음을 드려 시작하면 하나님이 소원을 주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때로는 누군가 생각이 나면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요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말씀만이 아니라 기도의 제목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14:17에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듯 우리 안에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16:7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신 것처럼 성령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도우셨던 것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하셔 동일하게 도우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함께하신 성령님을 더욱 믿고 여쭙고 기도하고 더욱 찬양하여서 우리 삶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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