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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히 쓰임 받는 사람 (딤후 2:19-21)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시간에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을 받느냐 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천히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을까요? 1. 깨끗해야 합니다.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여기 깨끗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카다리조'인데 '카다리조'는 ‘완전히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깨끗하다’란 도덕적인 의를 넘고, 죄를 용서 받는 수준을 넘어, 마음과 행실이 성령으로 변화를 받은 성화적 의를 말합니다. 엡4:23-24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식기도 대충 씻지 않습니다. 대충 씻어 음식을 담지 않지 않듯 아주 깨끗해야 쓸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심성이 착한 사람을 만나면 그것은 복이죠. 요셉 같은 사람이라면 복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 복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깨끗한 그릇, 이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맨 첫 번째 기준입니다. 금그릇도 은그릇도 더러우면 쓰실 수 없습니다. 반면 질그릇 나무그릇일지라도 깨끗하면 쓰십니다. 심리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으로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복수하려고 하는 '복수심', 이것이 끝없이 악을 폭발해 오르게 합니다. 둘째는 '야망', 경계를 넘어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질투' 지옥불과 같다 했습니다. 넷째는 '욕심' 만악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자존심'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상처라서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있을 때 그 마음은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더 근본적인 원인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악이라. 그리고 악은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입니다. 세상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거룩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주인의 쓰심에 합당해야 합니다. 21절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인 쓰기에 좋아야 합니다. 주인의 뜻과 취향에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태운 나귀와 같이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룹천사는 하나님의 뜻에 신속히 움직이되 돌이키는 법이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내 뜻과 내 계획과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쓰임 받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고 다음은 나의 달란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나를 밥 담을 그릇으로 만드셨다면 밥그릇으로 순종하고, 국그릇으로 만드셨다면 국그릇으로 순종하고, 작지만 간장 그릇으로 만드셨다면 그렇게 쓰시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내 은사대로 생긴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잘할 수 있고 편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이지 내가 내 계획 다 세워놓고 하나님에게 역사해 달라고만 하며 하나님을 부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사회를 위해서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어떻게'도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헌법대로 했다면 보통 사람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일군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었어. 일생 그 사람을 잊지 못할 거야’ 이렇게 칭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에서 성도들을 문안하며 인사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에 많은데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려울 때 가장 많이 도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통 이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교만했기 때문에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3. 준비된 그릇을 쓰십니다. 21절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기 준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유능한 일군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도 80년을 준비했습니다. 요셉도 감옥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바울도 가말리엘 문하에서 준비하고 예수를 만난 후에도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3년을 준비했습니다. 제자들도 3년을 준비했습니다.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여러 면에서 갖추어야 합니다. 세상 간단하지 않습니다. 실력만 있으면 되지 그러지 말고 갖출 것 다 갖추시기 바랍니다. 착실히 준비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때가 옵니다. 그리고 은사가 있다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소질이 있다고 갑자기 세계적인 인물이 되나요? 그만큼 소질을 기르고 힘쓰고 노력하고 갖출 것을 갖추고 하나님께서 쓰실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역에 대한 열 가지 계명이 있습니다. 1. 사역의 기초는 인품, 2. 사역의 본질은 봉사, 3. 사역의 동기는 사랑, 4. 사역의 기준은 희생, 5. 사역의 권위는 순종, 6.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7. 사역의 도구는 하나님 말씀과 기도, 8. 사역의 특권은 성장, 9. 사역의 능력은 성령, 10. 사역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외워야 할 말씀입니다. 이렇게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4. 강하고 담대한 자를 쓰십니다. 수1:9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히10:35에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주시는 상은 크게 써 주시는 상입니다. 귀하게 쓰이는 것도 좋지만 크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정치 경제 등 세상 일을 비롯해서 신앙까지도 세상의 큰 것은 다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대기업 담대하니까 대기업을 한 것입니다. 대기업이 내는 세금 때문에 우리가 풍족하게 먹고 삽니다. 세금이 과중하면 해외로 탈출하든지 망합니다. 대교회도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그만큼 담대한 믿음을 주셨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동네 구멍 가게만 생각하지 말고 세계를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며 일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천히 쓰임 받는다면 쓰임 받고도 버림을 받으나, 귀히 쓰임을 받으면 하늘의 상까지 받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할 일이 있어서 생존하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사야처럼 제단 숯불로 정결함을 받고, 그룹천사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며, 제자들처럼 준비하고,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여서 하나님께서 가장 크고 귀하게 쓰시는 복된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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