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양, 나쁜 양(겔34장11-14)
성경본문|에스겔34:11~14
11."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찌라
12.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13.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14.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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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많이 키우는 나라를 꼽는다면 영국,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호주, 카자흐스탄 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나라들은 양을 키워 털이나 가죽을 팔아 돈을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에 얽힌 이야기 많습니다.
특히 구약을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해 설명했고, 신약을 보면 예수님과 이스라엘,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위해 드리는 제사 가운데 속죄의 제물은 양이라야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양은 용도가 다양합니다.
제물로 사용했고 고기는 식용으로, 털은 옷으로, 가죽은 의복이나 신발로, 그리고 그 기름은 의약용이나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을 크게 둘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것은 좋은 양과 나쁜 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다, 나쁘다는 것은 털이나 고기나 가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의 성격, 품성, 행동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1. 모든 양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내가 내 양을 찾아서"라고 했고, 15절에서는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라고 했고, 17절을 보면 "나의 양떼 너희여"라고 했고, 22절에서는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라고 했습니다.
무려 다섯 차례나 "내 양, 내 양떼"라고 했습니다.
양의 주인이 누구냐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을 보면 "이스라엘아,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창조했고 내가 너를 구속했고 내가 너를 불렀기 때문에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의 것도, 방백들의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누가 주인입니까? 바울은 로마서14:8에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정정치는 하나님이 나라와 백성의 주인이 되시고, 주권을 행사하시는 정치체제이고 민주정치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그 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입니다.
사람이 주인노릇하고, 사람이 정치의 주체가 되다 보면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고, 부정과 불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를 따르고 인도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한 것처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은 물론 내가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2. 좋은 양과 나쁜 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양은 순하고 깨끗한 짐승이어서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쁜 양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 비가 자주 내리지 않기 때문에 땅이 메마르고 먼지가 풀석거리는 곳에서 양이 자라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 자라는 양은 더럽기 짝이없습니다.
저는 양을 안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목가적인 환상을 갖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이 양을 치는 베드윈 족 마을에 들어가던 날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흙먼지, 오줌, 똥으로 범벅된 양은 더럽고 냄새나는 양이었습니다. 품에 안기는커녕 손으로 만지기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냄새나고 더러운 양을 품에 안고 미소짓고 서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양을 먹이고 치는 목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비둘기 예찬론자였습니다.
비둘기는 순하고, 평화의 상징이고, 사랑의 상징이고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새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의 그런 생각을 깨뜨린 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저희 교회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있습니다. 봄이면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가 버립니다. 어느 날 비둘기 두 마리가 처마 밑의 제비집을 공격하고 제비들을 내쫓은 후 제비집을 헐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20여년을 남의 집 처마 밑을 전셋돈 한푼 안 내고 살아온 제비도 나쁜 놈들이지만 제비집을 헐고 심술을 부리는 비둘기야 말로 더 나쁜 놈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라고 해서 다 좋은 새 일수도, 그렇다고 다 나쁜 새 일수도 없는 것처럼 양도 좋은 양이 있고 나쁜 양이 있는 것입니다.
짐승얘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별로 값나가지 않는 개 한 마리를 집에서 키웠습니다. 웬만큼 자라면 식용으로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해 여름 주인은 키우던 개를 묶은 다음 인적이 드문 들판으로 끌고 갔습니다.
개고기는 두들겨 패야 좋다는 말을 들은 터라 개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개가 날뛰다가 묶었던 끈이 풀어졌습니다.
개는 주인한테 맞아죽지 않으려고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주인은 "이 놈이 어디로 도망쳤을까?" 궁금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개가 집에서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개를 껴안고 엉엉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누렁아 내가 다시 개고기를 먹으면 개자식이다"라고.
좋은 개가 있고 나쁜 개가 있는 것처럼, 양도 좋은 양이 있고 나쁜 양이 있습니다.
3. 어떤 양이 좋은 양입니까?
1. 제물로 죽는 양입니다.
제물로 사용된 짐승은 소, 염소, 비둘기, 양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죄 사함을 받는 속죄의 제물은 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던 날 밤도 어린양을 잡아 그 피는 문지방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먹었습니다. 제물로 바치는 양 가운데 가장 귀한 양은 처음 난 것 흠 없는 것이라야 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놓고 대신 죽는 양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놓고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2. 목자를 따라 가는 양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 잘 듣는 양이 좋은 양입니다.
효도가 무엇입니까?
부모 말 잘 듣고, 부모 마음 편하게 해주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누가 주님의 좋은 양입니까?
순종하고 어느 곳으로 인도하든지 믿고 따라가는 양입니다.
위인 전기를 읽어보면 하나같이 부모나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순종했기 때문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록펠러 등 그 이름은 얼마든지 꼽을 수 있습니다.
록펠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경건한 침례교 교인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어떤 일이있어도 록펠러를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게 했습니다. 록펠러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신앙과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장했습니다. 훗날 록펠러가 세계적인 부자이며 자선사업가로 성공한 뒤 자신의 성공 뒤에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인생 십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록펠러의 성공십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육신의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섬겨라.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허물과 약점이 있더라도 존경하고 섬겨라.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예배도 봉사도 본 교회에서 충성해라.
십일조를 드려라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라.
아침에 세운목표를 위해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전 기도로 시작하라.
잠자리에 들기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매일아침 성경을 읽으라.
힘껏 남을 도우라.
⑩ 예배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성경대로 순종하고 교회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좋은 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어떤 양이 나쁜 양 입니까?
1. 받은 은혜를 배신하는 양입니다.
18절을 보면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라고 했습니다. 좋은 꼴을 먹었다, 맑은 물을 마셨다는 것은 말씀을 먹고, 은혜를 과소평가하고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은혜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으며, 어떻게 해서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나쁜 양은 저 혼자 컸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나서 그 무엇이 되었고,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 섰다 하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배신해선 안될 몇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내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생명과 피를 주신 은혜를 배신하거나 떠나면 안됩니다.
경매중인 흑인 소녀를 링컨이 값을 지불하고 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온 후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먹인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돈주고 샀단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자유를 주겠다. 나를 떠나 가고픈 곳으로 가려므나." 그러자 그 소녀는 "선생님, 정말로 저에게 자유를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제 마음대로 해도 되겠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은 그 소녀에게 "그렇단다.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말하자 소녀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떠나지 않고 선생님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님을 떠나지 맙시다.
그 은혜를 배신하지 맙시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깁시다.
둘째, 사람들의 은혜를 배신하면 안됩니다.
부모님의 은혜, 형제자매, 이웃, 친구, 친척의 은혜 그리고 교회의 은혜도 잊어버리거나 배신하면 안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말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맙시다. 배신하지 맙시다.
2. 심술부리고 행패부리는 양입니다.
21절을 보면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어깨를 「카테프」라고 합니다.
그 뜻은 강력한 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뿔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힘과 권력으로 다른 양을 괴롭히는 것을 뜻합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호박에 말뚝 박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같은 속담은 심술난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내가 못먹는 감이라면 잘 싸두었다가 남이 먹게해야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고, 이웃이 집을 사고, 복을 받으면 박수를 치고, 기뻐하고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말로 부리는 행패를 언어폭력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을 통한 행패를 사이버폭력이라 합니다. 손이나 발이나 흉기로 부리는 행패를 저질 폭력이라고 합니다. 그 어느것도 좋은 것들이 아닙니다.
좋은 양이 됩시다.
좋은 편에 섭시다.
좋은 일을 합시다.
좋은 말을 합시다.
좋은 노래를 부르고,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사람을 사귑시다.
책도 좋은 책을 골라 읽고, 그림도 좋은 그림을 봅시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줍시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섬겨라, 서로 사랑하라"고.
본래부터 나쁜 양은 없습니다. 어쩌다가 나쁜 쪽에 섰을 뿐입니다. 돌아서면 됩니다. 거기서 나오면 됩니다.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주님의 어린 양, 순한 양, 좋은 양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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