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스크랩] 생수의 근원인 교회에서 기도합시다(겔47: 1-5)

에반젤(복음) 2019. 7. 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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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근원인 교회에서 기도합시다(471-5)

(Lets Pray in the Church the Origin of Living Water)

성경본문: 에스겔47:1-5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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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큰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아주 크게 부흥하고 성장한 교회인데 이 교회에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 교회에 새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몇 해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를 썼지만 교회가 좀처럼 부흥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교인이 줄고 교회가 약해져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느 주일 날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교회를 운영할 수 없어서 다음 주일에 고별 예배를 드리고 교회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방 신문에다가도 크게 다음 주일에 교회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라는 광고를 실었습니다.

그 신문 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장례식을 치른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교회 장례식을 치른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모였습니다.

교회에 등록만 하고 출석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호기심을 갖고 다 모였습니다.

목사님은 짧게 고별사를 하고 교회의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모두 한 줄로 서라고 하고 목사님이 앞장서서 강대상 앞에 놓은 큰 관에 작별 인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먼저 목사님이 관 뚜껑을 열고 그 관 속을 들여다보고 다시 관을 닫았습니다.

줄을 지어 서 있던 성도들도 회개하는 마음 반, 호기심 반으로 앞으로 나가 관 속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관 속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 속에는 큰 거울이 놓여 있어서 들여다보는 사람의 자신의 얼굴이 관 속에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교회가 부흥되지 않아서 교회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것은 결국 성도들 자신들이 죽은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 탓할 것 없이 자신이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교회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 관을 보고서야 교인들이 비로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교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정말 죽었다. 이제는 새로 태어나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교회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 낮예배도 나오고, 주일 저녁 예배도 나오고, 수요예배도 나왔습니다.

 

모두들 목사님 설교가 재미가 없어서 안 모인다고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목사님의 흉만 잡던 교인들이 비로소 자기 자신들의 영혼이 죽어 있었고, 자기 자신들이 기도하지 않았고 자기들 때문에 교회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제야 교인들이 정신을 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성도들이 새벽에도 기도하러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주일 예배 축도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던 교인들이 남전도회, 여전도회로 모여 전도 전략을 짜고 주위의 동네로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교회가 그 주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고 성경 읽지 않고 주일 낮예배도 예사로 빼 먹고, 주일 저녁 예배에는 몇 명밖에 안 나오시고, 수요 예배에도 안 나오시는 분이 많으면, 이 교회가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교회는 바로 여러분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중요한 곳입니다.

교회를 살리는 데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이 미국의 교회 성도들처럼 깊은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죽음에서 살아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 흉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고 좀더 부지런을 떨어서 새벽에 일어나서 교회로 와서 기도도 좀 하시고, 더러운 것이 있으면 청소도 하시고, 잠자는 교회, 죽어 가는 교회를 여러분 스스로가 한번 기도로 깨워 보시고 전도해서 살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서 간곡히 부탁 드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부탁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죽어 가는 교회를 제발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로 전도로 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사님 흉만 보고 책 잡기만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한 마디 말하기만 하면 솔깃해서 우리 교회 목사님은 설교도 재미도 없고 맨날 성경의 따분한 이야기만 해 대고 언젠가는 이 교회를 떠나야 할려나 봐. 어디 아무 부담 없는 교회에나 가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주일날 다 빼 먹고 놀러 가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그렇게 편하게 예수를 믿고 싶어.

 

여러분 자신이 그러다 보니까 교회가 소리 없이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천번제 새벽 기도회를 한다고 선포해 놓았더니 목사님하고 사모님밖에 안나오고 우리 교회 교인은 한 사람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 기도할 때 다른 교회 교인들이라도 어떤 사람들이라도 좋사오니 제발 우리 교회에서 새벽 기도하는 성도 열 명만 나오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더니 이번 주부터 하나님이 새벽 기도할 사람들을 보내 주시기 시작하는데 멀리 있는 부평감리교회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나오시고, 청천동 교회의 전도사님 사모님이 나오시고, 연수동교회의 집사님이 나오시고 계십니다.

본교회 교인은 아무도 새벽기도를 안하고 타교회 교인들만으로 우리 교회 1000일 작정 일천번제 새벽기도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일천번제 새벽기도회를 하든말든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지가 하다가 지치면 얼마 못가서 쓰러져 버리겠지. 그 때에 실컷 비웃어나 주자.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주님의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 그런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목사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성막 덮개는 수달의 가죽을 모아서 기워서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는 신발을 해 신으려고 수달 가죽을 한 바닥씩 두 바닥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든 가정의 신발 해 신을 그 수달 가죽을 조금씩 조금씩 다 모아서 그것들을 한 군데 모아서 기워서 성막 덮개를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목사님 혼자서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의 정성어린 기도와 번제물이 함께 어울어지기를 우리 하나님은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 탓만 하지 마시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제 교회를 위해서 정성을 모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어 가는 우리 교회를 살려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십시오.

작은 부서라도 택해서 봉사하십시오.

성전에 우리의 마음을 두고 정성을 두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마음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아끼고 섬기고 봉사하여 교회가 교회 되게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이 살고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첫째로, 교회는 생명을 주는 물이 솟아 흐르는 곳입니다.

오늘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환상 중에 에스겔을 이끌고 간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솟아 나와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47:1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갈급할 대로 갈급한 기간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목마름이 저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불러 환상 가운데서 생명수가 흘러 넘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포로기의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기 목마른 성도가 있습니까? 수가성의 여인처럼 목이 말라 방황하여 살아가는 갈급한 심령이 있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영광 성전에서 흘러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로 시원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생명의 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피의 90%가 물입니다. 뇌의 80%, 살의 75%, 심지어 뼈의 25%도 물입니다. 또한 물은 체온을 조절하고, 비타민 등 영양분을 운반하고 배설물을 처리합니다. 이처럼 물은 인간의 육체에도 생명의 근원입니다. 밥을 굶고서는 여러 날 살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찍 죽습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9개월 동안 물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태어나 약 65백 갤론의 물을 마시다가 죽습니다. 인간은 물에서 태어나 물의 덕분으로 살다가 죽습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기원 200년대의 초대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이렇게 신앙생활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 속에 있어야 살 수 있으며 활동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살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서는 인생은 살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 551절에 보면 목마른 자들을 물로 초청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요,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다른 것으로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수로만 시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봉독한 본문에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여주신 것은 뜻이 깊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이여, 주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시원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생수의 근원은 성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둘째로 생각하려는 것은 생명수의 근원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보여 주셨을까요? 성전이 생명수 샘물의 근원이 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 교회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강대상 문지방 밑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은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떠나서는 참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성전의 전신인 광야의 회막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034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역대하 31517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전 앞에 기둥들을 만들었으니 고가 35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5규빗이라...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의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의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야긴과 보아스는 성전 앞에 세웠던 두 기둥으로서 성전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야긴이라고 한 것은 이곳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라는 뜻으로 성전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능력을 두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의 교회도 야긴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교회는 보아스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셔서 그 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 주신 교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주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하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모로카이 섬에서 나환자 선교를 하다가 나환자로서 세상을 떠난 성 다미안은 어려서부터 성전을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섯 살 났을 때 그의 부모는 다미안을 데리고 공진회라는 축제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만한 진기한 것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것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린 다미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걱정이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성전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다미안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아주 놀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미안은 떠들썩한 축제의 장소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이 성전을 늘 사모한 그는 위대한 성자의 삶을 살아서 지금까지도 성인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마음을 두고 귀중하게 여기시고 성전을 섬기시는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는 높이 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의 영광 제단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오신 성도 여러분,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전 강대상 앞에서 하나님께 겸손하게 꿇어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서 일천번제 새벽기도로 내 생명을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놓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시원한 성령의 생수를 끊임없이 공급받아서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여호와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이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심하게 고통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귀에는 이러한 말씀이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9절에서 말씀하듯이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지경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그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형편이 힘들어도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풍랑 속으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도 물위로 걷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로 걸을 수 있었으나 풍랑이 눈에 들어왔을 때는 물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풍랑보다 크시고 능력 있으신 주님을 바라볼 때만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풍랑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은 관상도 초월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믿고 찾고 기도하셔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크게 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이루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름대로의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분은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크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보지 못하여 쉽게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과 조건도 초월하십니다.

크신 하나님을 찾고 믿고 기도하시면서 삶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