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서론
1. 제목 본서의 “계시록”이란 제목은 1:1의 “계시”(아포칼륍시스)란 낱말에서 유래되었다. 아포칼륍시스는 크게 2가지로 번역이 가능한데 ‘계시’로 번역한다면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드러냄’을 의미하고, 묵사로 번역한다면 좁은 의미인 ‘현세상의 종말과 새 천국의 도래 과정을 독특한 문학 양식을 통해 드러냄’을 의미한다. 헬라어 원전에서 본서의 제목은 ‘아포칼륍시스 이오안누’ 즉 ‘요한의 계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엄격한 측면에서 본서의 제목은 ‘아포칼륍시스 예수 크리스투’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요한에 의해 기록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전의 제목의 전통을 따라 영어성경은 ‘ARevelation df John', 한글성경 개정판에서는 ’요한계시록‘으로 제목을 삼고 있다. 2. 기록자 전통적으로 본서의 기자가 사도 요한이라고 주장되어 왔으나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봄으로 사도 요한이 기록자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ㄱ. 본서에 4번이나 기록자의 이름이 나타난다. ㄴ. 2세기 초 사도 요한이 기록자임을 공인하였다. ㄷ. 본서가 요한복음과 비교해 독특성 차이 뿐 ‘로고스, 어린양, 태초 이전의 존재, 은혜와 보혈 강조 등’ 그 유사성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3. 기록연대 혹자는 본서의 기록연대를 네로 황제(A.D.60년대)의 통치일 것으로 간주하지만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것이 도미티안 황제(A.D.81-96년) 때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므로 본서의 기록 연대 역시 그 무렵 더 정확히는 도미티안 통치 말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일단 사도 요한이 본서를 기록할 당시에 살았던 신자들임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본서는 지닌 복음으로 볼 때 그 당시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셨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ㄱ. 요한 당시 교회가 받은 환난은 모든 세대의 참된 신자들이 당하고 이겨내야 할 환난의 예표이며(딤후3:12), 환난의 절정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마24:29-32). ㄴ. 본서 전반부에서 언급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당시에 존재했던 교회일 뿐 아니라 전체 교회의 대표격으로서 일곱교회에 주신 교훈과 책망은 모든 세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교훈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ㄷ. 본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선언하고 있으며 특정한 시대에 국한하지 않고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22:18)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서의 해석 방법 목회자라면 누구나 요한계시록을 강해해야 하겠다는 필요성과 강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한두 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계시록을 강해하려고 하면 칼빈도 주석하지 않은 이 책을 감히 어떻게 접근해서 해석할 것인지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잘못 해석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단에 빠지거나 이단이 아닐지라도 특이한 주장을 했다고 교단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케어드(G.B.Caird)가 지적한 대로 “천년왕국주의자 파피아 때로부터 현재까지 계시록이 영광주의자들과 분파주의자들의 낙원이 되었으며 각자는 자신의 특이한 교리를 정당화시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정통주의자들의 의혹을 가중시키는데 그것을 사용한”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의 계시록 해석에 대한 열망이 넘쳐 계시록의 주석이나 강해서가 많이 출판되었다. 반가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내용이 다양해서 동일한 책을 두고 주석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고, 이와 같은 다양한 목소리는 어쩌면 상대적으로 대부분 계시록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계시록 해석의 현주소는 암흑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1. 해석의 역사 ㄱ. 티코니우스의 영적 해석(-400) - 선과 악의 오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해야 된다고 봄 (어거스틴과 대부분의 카톨릭 신학자들이 따라간 해석 노선) ㄴ. 조아킴의 해석 - 계시록과 12세기 사건들과 상응 관계를 찾아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이슬람, 거짓 선지자는 당시 이단분파들, 바벨론은 로마, 짐승의 7머리 중 제5머리는 프레드릭 6세 ,제6머리는 살라딘, 제7머리는 적그리스도 등으로 해석하고 적그리스도의 멸망 후에 천년왕국이 온다고 해석했다. ㄷ. 종교개혁자들의 해석 - 조아킴과 프란체스코 수도단의 해석원리를 기초로 해서 계시록을 해석하되 교황 혹은 교황청을 적그리스도로 보았다.(역사주의 해석) ㄹ. 미래주의 해석의 등장 - 교황청측의(예수회) 리베이라(Ribeira -1601) 는 계시록의 내용이 근접미래와 말세에 해당될 뿐이고 중간시대를 예견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바벨론은 미래의 타락한 로마, 적그리스도는 말세의 인물로 해석했다. ㅁ. 과거주의 해석의 등장 - 리베이라의 형제 알카사(ALcasar)는 철저한 과거주의 해석에 따라 계시록 4-11장은 교회의 유대주의와의 투쟁 , 12-19장은 교회의 이교사상과의 투쟁, 20-22장은 현재의 승리와 지배 등으로 해석했다. 17세기 이후 현재까지의 계시록 해석 동향은 과거주의(preterist), 미래주의(futurist), 역사주의(historicist), 상징주의(idealist) 해석법으로 대분된다.(권성수 저 요한계시록 참고) 2. 계시록의 해석법 그동안 나타난 계시록을 이해하는 주요 해석법은 크게 네 가지이다. 과거적 관점, 역사주의적 관점, 미래주의적 관점, 이상주의적 해석이다. ㄱ. 과거적 해석법 - 여기에는 2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계시록을 로마정권과 투쟁한 A.D.70년에 발생한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하여 계시록의 마지막 심판 예언을 이스라엘에 한정해야 한다고 이해한다. 다음은 계시록이 신자들의 박해자로서 큰 성 바벨론인 로마 제국이 기원후 5세기에 멸망함을 예언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 시대적 광범위한 심판을 가리키는 많은 분명한 예언들이 기원후 5세기 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국한하는 것은 더 많은 난제에 직면한다. 즉 이상의 과거적 해석법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포함한 미래적인 예언을 모두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ㄴ. 미래적 해석법 - 1:19의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네가 본 것”(1장),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22장)으로 나누어 대부분의 내용을 미래에 성취될 것으로 보는 견해다. 미래적 해석법에도 세대주의적 미래주의와 수정된 미래주의 두 형태가 존재한다. 두 형태 모두 4-22장까지 역사의 마지막 직전의 미래를 가리킨다는데 동의하나 세대주의적 미래주의는 환상들의 순서를 매우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대체로 미래 사건들의 역사적 순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와는 달리 수정된 미래주의는 다소 유동적으로 교회가 참된 이스라엘이며, 환난 전 휴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ㄷ. 상징적 해석법 - 고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우화적 해석법에서 시작한 해석법으로문자적 해석보다 선과 악의 투쟁사, 즉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주장한다. 한 때 악은 선을 능가하는 것 같지만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법은 세대주의를 배격한 무천년주의와 흡사하다. 비유와 상징이 많은 계시록이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친 분석보다 성경을 기초로 비유답게 상징답게 접근해야 한다. 성경을 안다면 누구나 계시록의 해석이 가능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을 읽을 때 성경에서 비롯된 여러 상징과 비유가 담고 있는 내용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로 생각만 모아도 그것이 해석이 된다. 예) 계11:8의 "큰 성(바벨론)=소돔=애굽=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그렇다면 답은 세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즉 시체가 그 길가에 있었다는 건 성도는 세상에 대해서 죽고 세상도 우리에 대하여 죽은 모습을 의미한다. ㄹ. 역사적 해석법 - 본서의 내용을 사도 요한의 시대부터 세계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모든 역사의 추도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본서의 내용을 교회사에 적용할 것인지 일반 역사에까지 확대할 것인지에 따라서 둘로 나뉜다. 즉 본서의 내용을 연대표적으로 해석하여 역사에 짜 맞추려는데 치중한다. 이상의 해석법에서 나타난 대로 계시록의 성취시기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과거주의는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성취된 것으로, 미래주의는 마지막 위기 중에 성취될 것으로, 역사주의는 교회사 전 기간 동안 성취될 것으로, 상징주의에서는 반복된 모형 속에 성취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상징적으로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있다. 둘 다 인정한다면 내용을 어느 정도로 문자적로 보고, 어느 정도를 상징적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그리고 계시록의 내용 중 어느 정도는 문자적인 해석으로부터 상징적인 해석으로 가는 과정에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그 중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가장 문자적인 해석이고, 무천년설이 가장 상징적인 해석이며, 기타 역사적 전천년설은 문자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 해석이고, 후천년설은 상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 해석이다. 최근에는 학자들 사이에 계시록이 일종의 묵시문헌이라는 시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문자적 해석에 비해 상징적인 해석이 강조되는 실정이다. 계시록 자체가 그 성격을 예언이라고 하였고(1:3, 22:7,10.18.19) 어린양이 죽었던 자임을 드러냄으로써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이 인간 역사의 통치자라는 것을 주제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계시록은 묵시라기보다는 예언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 종합적으로 요한 계시록은 형태상 묵시이면서 기능상 예언인 혼합형(hybrid)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묵시의 경우 계시록의 해석이 상징주의적인 방향이 될 수밖에 없고, 예언의 경우 구약 예언 문헌을 해석할 때처럼 계시록을 대체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요한 계시록은 형태상 묵시에 가깝고 기능상 예언에 가까운 혼합형 문헌이기 때문에 묵시문헌처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예언문헌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혼합된 채 해석될 수밖에 없다. 계시록의 내용을 어느 정도 상징적으로 보고,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은 문맥의 규제를 깊이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권성수 저 요한계시록 참고) 3. 계시록의 구조 1장 : 서론으로 인사말과 함께 계시록의 주제를 소개하고 동시에 계시록의 주인공인 왕 중의 왕이시오, 구속주를 소개하는 것이고 2-3장 : 소아시아 7교회에 대한 주님의 편지이고 4-5장 :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과 그 앞에서 그 분의 계획을 집행하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6-22장 : 연대기적이냐? 반복적인 진행이냐? 그러나 연대기도 반복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각도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1. 연대기적 구조란? 계시록의 내용이 연대기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7인 7나팔 7대접이 역사 속에서 순서대로 진행되고 7대접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그 후에 천년왕국이 임하고 그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고 그 후에 신천신지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즉 계시록을 지상의 역사 속에 나타나 전개될 예언서로 보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계1:19에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한 말씀과 4:1에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구조분석은 “장차 될 일”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인 나머지 본문을 자신이 생각한 역사적 사건과 두들겨 맞춘 것으로 그 내용은 이 설을 주장하는 자마다 다르다. 쥬영흠박사는 이 설에 대하여 몇 가지 지적하기를 복음선교 기간을 계1:1-5:14로 잡았는데 계22:17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하신 말씀은 복음선교가 아닌가? 그리고 계9:1-13:18을 사탄 하늘 권세 진동으로 잡았는데 그 부분에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승천, 12:9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등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또 17장의 대음녀 심판 이후에 대바벨론 심판이 있다면 큰음녀가 큰바벨론이라는 계시록 자체의 해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7인은 인간 파괴에 초점이 있고 7나팔은 자연 파괴에 초점이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파괴되고 다음에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인가? 그 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 마디로 연대기적 구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과 짜 맞추기에 급급하고 시대에 따라 내용 또한 바뀌는 사례가 많을 뿐 아니라 세부적인 내용은 터치하지 못한 체 넘어가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이루신 구원을 전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계시록 역시 신령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빌1:6의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한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구속주 하나님의 성화의 역사를 다각도로 묘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과 부합하다. 2. 반복진행적 구조란? 주석가 윌리엄 헨드릭슨은 계시록이 7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이 서로 병행하고 각기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교회와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제시하는 이 구조에 따르면 1부(1-3장)는 영화된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과 7교회에 대한 내용으로 당시 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에게도 교훈이 된다. 제2부(4-7장)는 어린양이 두루마리의 인을 떼는 장면으로 교회의 고통과 시련으로 보이며, 제3부(8-11장)은 7나팔로서 교회가 신원되고 보호받으며 승리함을 보여준다. 제4부(12-14장)는 여인의 출산, 바다짐승과 땅짐승이 사단의 조종 하에 움직이는 장면으로 교회와 사단과의 적대관계를 보여준다. 제5부(15-16장)는 7대잡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보여준다. 제6부(17-19장)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상징하는 바벨론과 짐승의 멸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7부(20-22장)는 그리스도의 대적들의 멸망과 마지막 심판과 그리스도의 교회의 마지막 승리와 갱신된 우주를 보여준다. 위에서 분석한 일곱 부분은 서로 각도를 달리해서 하나님의 종말계획이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계시록이 반복 진행형적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은 위에서 보듯 심판과 구원의 유형이 반복될 뿐 아니라, 7편지, 7인, 7나팔, 7대접 등 동일한 구조적 유형들이 반복된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중요한 주제들과 이미지들과 구절들 역시 반복되고 있다. 계시록의 구조가 반복진행적이라는 것은 예언문헌(선지서)과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문헌의 특징에도 맞다. 3. 양극구조 계시록에 양극 대립의 관계가 나온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진짜와 가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적대와 전쟁이 이루어진다. 전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고 후자는 가짜 삼위일체의 통제 하에 있다. 성부는 창시자이고 성자 어린양은 집행자이시며 성령은 증언자이시다. 붉은 용은 성부의 흉내를 내고 바다 짐승은 성자 흉내를 내며 땅짐승(거짓선지자)는 성령 흉내를 낸다. 신부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종들이고 성도들이며 창녀 바벨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다. 신부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충성과 봉사를 바치고 창녀 바벨론은 가짜 삼위일체에게 봉사하고 협력하면서도 동시에 충돌하기도 한다. 신부 교회는 빛을 발하는 것 즉 증언하는 것이 사명이고 붉은 용 사단은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본색이다. 이런 교회는 그런 사단의 협박과 회유 앞에서 인내해야 한다. 나아가 신부 교회는 도덕을 오염시키는 창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천사들은 하늘에 있으면서 사명 완수를 위해 땅으로 파송되며 성도들은 하늘의 시민이면서 땅에 거주한다. 이에 비해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나서 땅에서 성도들을 박해하며 무저갱에 거주한다. 짐승은 무저갱 출신으로 땅에 파송되어 땅에 있는 정치세력들을 규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단을 숭배하게 한다. 창녀 바벨론은 이 땅에 속한 자들로서 이 땅에 거주한다. 이렇게 볼 때 이 땅은 하늘 출신자들과 무저갱 출신자들 간의 무서운 싸움처가 되고 있다. 이 양극구조는 옛창조에 속한 불완전한 교회(2-3장)와 새창조 속의 완전한 교회(21-22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실은 아직도 닫힌 책? 계시록은 읽고 듣고 지킴으로 복을 받도록 하는 열린 책이지만 비유와 상징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해석이 쉽지 않았다. 계시록이 개봉된 책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도전에 응전하여 보았지만 그 해석의 역사는 계시록 해석의 이슈들을 노출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 뿐 정작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남겨 두게 되었다. 즉 계시록에 담긴 메시지는 물론, 계시록의 성취시기가 언제이고, 계시록을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어느 정도 상징적으로 해석할 것이며, 천년왕국의 도래시기와 본질은 어떤 것이며, 계시록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하는 난제들을 던져 준 것이다. 이에 대해 이미 열렸으며 읽고 듣고 지킴으로 복이 되는 계시록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의 계시록 해석법의 무언가 중대한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발견한 듯하지만 정작 본문에 대한 해석은 없고 있다 해도 본문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고 그리 복되지 않는 내용일 뿐이다. 개혁주의 성경해석은 성령의 도움 가운데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오는 계시록 해석에서 밝혀지겠지만 계시록은 모든 시대에 주어진 책으로 문자와 상징을 동원하여 기록된 성도를 온전케 하는 성화의 복음이다. 요한 계시록을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부흥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석은 물론 가장 복되고 은혜로운 책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 계시록 자체의 증거 1. 열린 책이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2. 도전에 응전하는 자세 계1:1에 “계시, 묵시”(아포칼리쉬스)라는 낱말이 성경에서 특수한 장르의 문헌인 것을 암시하면서 특수한 해석을 요청한다. 계2:7.11.17.19.3:6.1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하신 말씀에서 계시록을 깨닫는 데는 영적인 귀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계5:1~5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경이 개봉되었듯 계시록 역시 구속사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암시한다. 계7:9 13~14 요한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장로 중 한사람이 해석해 줌으로 알게 되었다. 계12:9 용에 대한 계시록 자체의 해석을 계시록 해석에 참고하라. 계13:17~18 총명과 지혜가 있는 자는 이것을 해석해 보라는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계17:1~6, 7~18 요한은 큰 음녀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7절) 여겼으나 천사가 요한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전까지는 그것이 무슨 장면이지 해석할 수 없었다. 계시록의 내용분해 [1] 머리말(1:1-8) 1. 요한이 받은 계시(1:1-3). 2. 축복과 인사(1:4-8) [2] 아시아의 7교회에 보낸 편지(1:9-3:22) 1. 인자에 대한 환상(1:9-20). 2. 에베소 교회(2:1-7). 3. 서머나 교회(2:8-11) 4. 버가모 교회(2:12-17). 5. 두아디라 교회(2:18-29). 6. 사데 교회(3:1-6) 7. 빌라델비아 교회(3:7-13). 8. 라오디게아 교회(3:14-22) [3] 일곱 인 재앙(4:1-6:11). 1. 하나님의 보좌(4:1-11) 2. 일곱 인 봉한 책(5:1-14). 3. 차례로 개봉되는 여섯 개의 봉인(6:1-17) [4] 일곱 나팔 재앙(7:1-9:21). 1. 십사만 사천과 환난에서 나온 자들(7:1-17) 2. 일곱 번째 봉인(8:1-5) 3. 일곱 나팔 재앙의 전개(8:6-11:19). [5] 중간 삽화(10:1-13:18). 1. 작은 두루마리(10:1-11) 2. 두 증인(11:1-14). 3. 일곱째 나팔(11:15-19). 4. 일곱 환상(12:1-13:18) [6] 일곱 대접 재앙(14:1-16:21) 1. 일곱 대접 서론(14:1-20). 2. 일곱 대접재앙 전개(15:1-16:21) [7] 큰 음녀 바벨론(17:1-18) [8] 바벨론의 멸망(18:1-24). [9] 그리스도의 재림(19:1-21) [10] 천년왕국과 최후의 심판(20:1-22:5) [11] 맺는 말(22: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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