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본서의 제목을 저자의 이름을 원용하여 '예헤츠케엘(하나님께서 강건하게 하신다)'이라 하고 있다.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과 한글 개역성경도 이와 같은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
저자 및 기록연대 |
■ 저자 본서의 저자는 에스겔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본서에 나타난 것들 외에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의 생애에 관해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결혼했었다는 것과 그의 아내가 그보다 먼저 죽었다는 사실뿐이다(24:18). 그리고 포로로 잡혀왔던 장로들이 그에게 나아와 유다의 장래를 물어볼 만큼 유다 민족에 대해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으며(8:1;20:1)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내를 순식간에 잃었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을 복종시켰다(24:15-18). 또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인 자기 동족을 뜨겁게 사랑했던 애국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인 자기 동족이 심판을 받게될 것을 알게 되자 곧 하나님께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9:8;11:13).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그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한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는 사릴을 알 수 있다(34:11-16). 그의 이러한 모습은 심판의 예언에서 볼 수 있는 강직하고 날카로운 면들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의 균형잡힌 인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늘 민감하였고 또 선지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담대하였으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목자로서 백성들의 죄악에 대하여 늘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 기록 연대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로서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었다. 그는 B.C. 59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 왕과 왕족 및 귀족, 그리고 유다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사로잡아 갈 때(왕하 24:12,14) 그 포로들 가운데 섞여 있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지위는 상당히 높았던 것 같다. 그는 그발 강가에 있는 델아빕(Tel-Abib)이라고 불리는 니푸르(Nippur) 근처에서 포로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힌지 5년째 되는 해인 B.C. 593년에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다. 그때 에스겔의 나이는 1:1에 근거해 볼 때 30세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것은 사로잡힌지 27년째 되던 해인 B.C. 571년 즉, 그의 나이 52세 되던 해로써 그는 약 22년 동안을 선지자로 사역하였다(29:17). 본서는 이 기간 동안 에스겔에 의해 기록되었다. |
역사적 배경 |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다니엘처럼 팔레스타인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던 사람이었다. 당시 에스겔 주변 정세는 무척이나 혼란스루었다. B.C.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은 신흥 바벨론의 세력에 압도되어 점차 그 위세를 잃어 가고 있었다. 결국 B.C. 612년에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는 바벨로노가 메대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고 말았다. 3년 후에 애굽의 바로느고 2세는 앗수르를 돕기 위하여 북진하여, 예날 애굽의 영향력을 팔레스타인과 아람 지역에 발휘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유다왕 요시야는 반 앗수르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앗수르를 돕기 위해 북진하는 애굽의 군대를 므깃도에서 저지하였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 곳에서 전사하고 말았다(왕하 23:29,30;대하 35:20-24). 결국 애굽은 이므 깃도 전쟁으로 인하여 앗수르를 돕지 못하였다. 따라서 요시야 왕을 이어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유다의 왕위에 올랐다. 그나바로느고는 그를 3개월 만에 폐위하고(대하 36:3), 그의 형인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이름을 고쳐서 왕위에 올려 놓았다(대하 36:4). B.C. 605년에 바벨론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 군대를 전멸시키고 블레셋 평지까지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제패하게 되었다(왕하 24:7). 같은 해에 느부갓네살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여호야김은 그에게 충성을 약속하였다. 몇년 후인 B.C 601년에 바벨론은 다시 애굽을 치기 위하여 애굽 국경 지역까지 진격하여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양쪽 군대는 모두가 별 소득을 얻지 못하였다. 이때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을 섬길 것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곧 예루살렘에 군대를 보내어 성을 공격하였다(B.C. 598년; 왕하 24:2). 이 때 여호야김은 죽고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B.C. 598년 12월; 왕하 24:6). 그러나 그는 겨우 3개월 10일 밖에 왕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B.C. 597년에 느부갓네살이 다시 공격해 왔을 때 에스겔도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가게 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긴 대신에 그의 숙부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5-6년 후에 바벨론을 배반하였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B.C. 588년에 예루살렘을 다시 포위하고 맹공격을 가하여 B.C. 586년 드디어 성을 함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과 그 후계자들에 의해 B.C. 539년까지 그 맹위를 떨치다가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정복으로 인하여 모습을 감추었다. |
■ 주제 본서의 주제는 구조상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징계로서, 이것은 그들에게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징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배교의 죄악에서 구해 내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었다(1-24장). (2)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온 세상 나라들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고 움직이시는 온 우주의 통치자요 주권자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열방들도 심판으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25-32장)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그 가운데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회복시키시고 친히 그들의 영원한 목자가 되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야가 통치하실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을 영원토록 섬기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복들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 다가오고 있다(33-48장). ■ 에스겔의 신학 에스겔 서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있는 신학적인 사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사상이다. 본서에는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라는 구절과 이와 유사한 구절들이 65회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기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이 온 세계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실 뿐만 아니라, 이 진리를 만방에 알리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에스겔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패역한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을 통하여 더욱더 대조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 서에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강조되고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34장). 특히 성전을 떠나 바벨론의 페허 가운데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자기 백성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영원성과 절대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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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일람 |
1. 기록자 : 에스겔 2. 기록연대 : B.C. 593-565년 사이. 3. 기록장소 : 바벨론 4. 기록대상 : 바베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5. 핵심어 및 내용 : 에스겔의 핵심어는 "환상"과 "파수꾼"이다. 에스겔은 곧 일어나고 또한 오랜 기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이 환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울 뿐만 아니라 다양했다. 에스겔은 이러한 환상을 가지고 백성들을 권면하며 때로는 경고하기도 하는 하나님의 파수꾼 일을 잘 감당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