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없는 믿음의 유산 (딤후 01:3-8)
출처 http://biblenet.co.kr/withbible/index.php?bo_table=bd01&wr_id=18690&page=&sca=&type=&ctype=&stz=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어린 손녀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아이는 자기 앞에 종이를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손녀가 할아버지 보고 이렇게 붇습니다. “할아버지, 나는 누가 만들었어요?” “하나님께서 만드셨지.” 할아버지는 이렇데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누가 만들었어요?” “하나님께서 만드셨지.” “...” 손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궁금해서 할아버지가 “너 무슨 생각을 하니?”하고 물었더니 손녀는 자못 진지하게 대답합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요새는 솜씨가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할아버지를 만드실 때는 쭈글쭈글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만드시고 나를 만드실 때는 예쁘게 만드셨네요.” 아이들의 참 깨끗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내려오는 전설같은 민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만드셔서 세상으로 보내려 하시는데 이 아기가 세상을 내려다보니 세상이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위험과 전쟁과 다툼이 있는지라 두렵고 무서워서 세상으로 내려가지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외롭고 힘들고 어려울 때 너를 감싸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하는 천사를 내가 함께 보내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첫째천사는 어머니요 둘째 천사는 선생님이니라.”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근본적인 위로는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내 정신세계를 지도해주는 이는 선생님입니다. 이 둘은 마치 천사와 같은 분들이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존 로렌스라고 하는 교수가 “Life's Choices(삶의 선택들)”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중요한 문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활하면서 배운다, 라고 하는 전제입니다. 우리는 말로 가르치려고 합니다. 말을 많이 해서 가르치려고 들지마는 가정교육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됩니다. 그냥 두고 좋은 본을 보이면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생활을 하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물어봅니다. “자녀들이 문제인데 어떻게 가르치면 될까요?”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두십시오.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만 잘하십시오. 어머니는 어머니로 할일만 잘하십시오. 그러면 그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저절로 배우고 저절로 크는 것입니다. 로렌스 교수의 말을 들어봅시다. 비평속에서 자란 아이는 비난을 배운다, 했습니다. 이것을 잘못했다 저것을 잘못했다, 많은 비평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커서도 남의 잘못만 지적하는 아이가 됩니다. 그런 어른이 됩니다. 그래서 밝게 보지를 못하고 뭐가 잘못되었고... 이거 참 구제불능입니다. 그런 인간이 됩니다. 또 적대감 속에서 자란 아이는 싸우는 아이가 됩니다. 보십시오. 부부싸움 하는 것 보고 자란 아이는 나가서 남들과 싸웁니다. 틀림없습니다. 조롱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부끄러움을 배우고, 수치감을 느끼면서 자란 아이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량 속에서 자란 아이는 인내를 배우고, 격려와 칭찬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 찬양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공정함 속에서 자란 아이는 정의를 배우고, 안전함에서 자란 아이는 믿음을 배우고, 인정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자신을 좋아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용납과 애정 속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자세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부분이 유전적인, 혹은 유산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산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체가 벌써 유산입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주었습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그 자체가 벌써 귀한 유산입니다. 그런데 제 얼굴 모습이 마음에 안든다고 이리저리 뜯어고치다가 망가지지 않습니까. 그냥 두십시오, 그냥. 소중한 생명이고 부모가 물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모발도 안잘랐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모가 물려준 소중한 것이다-이렇게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무엇입니까. 우리의 건강도 그렇습니다. 요새들어 의학이 많이 발전했다고들 합니다. 많은 것을 연구합니다. 뭐 건강을 위하는 것이라면 다들 정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하고 뭘 먹어야 하고 어떻게 운동을 해야하고... 난리를 칩니다마는 의학서적에서 말하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건강은 85%가 유전이라고 합니다. 난리를 쳐봐야 별것 아닙니다.
여러분이 소중하게 지키는 위생 다 안지켜도 애시당초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건강합니다. 언젠가 “타임즈”를 보다가 실컷 웃었습니다. 어느 개인이 연구한 논문입니다마는 희한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치아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들 이를 닦는데 이닦는 그것이 말짱 헛것이라고 합니다. 닦는 것과 이의 건강과는 무관하다는 논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모택동이라고 하는 분은 한평생 한번도 이를 안닦았습니다. 왜 안닦느냐, 물으면 대답이 어느 동물이 이를 닦느냐, 입니다. 안닦아도 건강한데 거 왜 닦느라고 야단이냐, 했습니다. 하기야 요새는 이를 너무 닦다가 되레 망가뜨리는 일도 많습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타고난 것입니다. 저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가끔가끔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좋은 치아를 물려받았거든요. 우리 어머니는 치아가 나빴습니다. 그래 늘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아버지 쪽으로는 튼튼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86세까지 치아가 완전했습니다. 그래서 늘 음식은 굳은 것만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합니다. 그거 제가 위생을 지킨다고 될 일이 아니지요, 타고나야지. 요새와서 뭐 성인병이니 당뇨니 고혈압이니 암이니 하는데 그 85%가 유전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진찰을 할 때 “부모님은 어떠십니까?”하고 붇습니다. 아버지는 “90세고 어머니는 80세고” 그러면 “당신은 진찰할 것 없소. 그냥 가시오.” 합니다. 왜요? 그 사람은 암에 안걸리거든요. 그러나 “우리어머니가 서른 살에 암으로 돌아셨어요” 하면, “당신은 매년 세 번씩 체크하세요” 합니다. 결국 우리의 건강도 물려받은 것입니다. 소중하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 기능도 그렇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관과 세계관, 인간성도 소중하게 물려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 골먼이라고 하는 분이 “Primal Leadership' 이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 제가 이번 여행중에 이 책을 정독했습니다. 읽어나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날개가 있다, 하나는 감성이고 하나는 지성이다, 지성과 감성의 두 날개를 가지고 살고, 두 날개에 운명이 걸렸다, 그런데 감성은 물려받은 것이고 지성은 내가 얻는 것이다.’
여러분, 요새 그런 사람 많이 봅니다. 공부는 많이 했습니다. 많이 해서 박사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성이 틀려먹었습니다. 그래 운명이 곤두박질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아이고 거 공부하느라고 괜히 수고 많이 했구나, 생각을 합니다. 감성과 지성, 두 날개로 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운명이 걸렸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울의 동역자요, 특별히 바울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사랑하는 이 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에서 디모데를 굳게 세우고자 하여 그의 믿음의 속성을 말해줍니다. ‘네 속에 있는 거짓없는 믿음, 그것은 네 외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이다. 이것은 네가 생각하기 전에, 네 의식 이전에 소중하게 물려받은 것이다’라고 일깨워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성품, 때로는 우리의 믿음, 소중한 유산입니다. 물려받은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참 유산은 돈이 아닙니다. 간혹 돈을 주려고 자식에게 뭐 좀 잘해주려고 야단을 피우지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주면 자식을 잃어버린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쨌든 참 유산이란 정신적인 것입니다.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더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 법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을 보십시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네 후손에게 수천 대까지 복을 주리라, 수천 대까지.’ 그런가하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율법을 거역하면 삼사 대까지 벌을 주리라. 저주가 삼사 대까지 이어지리라’하십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두 말씀을 대비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복은 수천 대까지, 벌은 삼사 대까지. 오, 좋으신 하나님.’ 안그렇습니까?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미국에 가서 볼 때마다 그 땅은 정말 질투가 날 만큼 넓고 너무나들 잘산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는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이 땅에 온 청교도들을 복주셔서 이 땅이 이와같은 복을 누리는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차들이 허드슨강 밑을 뚫고 들어가고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이거 백 년 전에 만든 것이거든요. 우리 조상들은 백 년 전 그때 잠꼬대나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조상이 얼마나 훌륭했나, 경탄합니다. 그들의 화폐인 달러, 손에 딱 들고 보십시오. 작든 크든 뒷면에 보면 뭐라고 써 있습니까?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딱 박아놓았습니다. 이것을 이렇게 돈에다 쓸 수밖에 없었던 국회에서 결정할 때의 그들의 믿음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훌륭합니까. 오늘 우리 국회에서 한번 이거 결정해볼까요? 되나? 턱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 옛날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돈에다 딱 박아놓았습니다. 우리돈에는 이상한 것이 하나 그려져 있더라고요. 상상해보십시오, 그 조상들의 믿음. 그래 그 후손들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 축복이 유산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큽니까? 유산의 성격을 알고 믿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유산을 받았든지 여기서 멈추고, 적어도 우리가 다음으로 물려줄 유산은 자자손손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유산이어야 하겠습니다. 듣고 배우고, 보고 배우고, 느끼고 배우고, 생활에서 배우고, 삶에서 배우고, 사랑받으며 배우고, 믿고 따라가면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거짓없는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거짓없는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 참된 믿음,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의 참믿음, 교회를 섬기는 믿음을 말합니다. 특별히 거짓없는 믿음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에 대해서 무섭게 책망하십니다.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고 선행을 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이런 것은 거짓믿음입니다. 남들이 보든말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른 믿음, 거짓없는 믿음은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생활화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깊은 신앙 속에서 모든 환난을 견디며 감사하는 그런 믿음을 말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군복차림으로 가끔 시간을 내어서 나가던 교회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시골교회인데, 그 교회의 입구를 들어서다 보면 계단을 몇단 올라가는 그 옆에 아주 퇴색하고 낡은 작은 목패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걸 자세히 보니 ‘김마리아 기념등’이라고 써 있습니다. 이상해서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있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장로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더니 그 장로님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오래전에 이 교회에 출석하던 나이 많은 권사님이 계셨는데 홀로 살면서 아들 하나를 키웠습니다. 훌륭하게 고부를 시키고 돈도 많이 벌어 부자도 되었는데 아들이 예수 믿지를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권면해도 믿지 않으므로 “나, 그러면 죽을 때 유언한다”했더니 이 아들이 “어머니, 그 유언만은 하지 마세요. 저는 예수를 안믿을 거니까요. 어머니가 그렇게 유언하시면 나는 불효자가 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래? 그럼 좋다. 예수 안 믿어도 좋다. 그런데 너 돈 좀 있으니 이렇게 하기로 하자. 내가 나가는 교회의 전등전기료는 네가 물어라. 평생 물어라” 하였습니다. 하니 “알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키겠습니다.”라고 아들은 대답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매달 전기요금 고지서가 아들한테 갑니다. 그는 매달 교회 전기료를 냅니다. 계속 내면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낼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이렇게 명령을 하셨을까?’ 그 아들, 마침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짐 스토벌이라고 하는 시각장애자이면서 저술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최근작에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역사적인 사실인 실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백만장자인 레드 스티븐슨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자기친구이면서 고문 변호사인 헤밀턴씨에게 유언장을 자세히 작성해서 맡겼습니다. 이제 본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고문 변호사가 자손들을 다 모아놓고 유언장을 공개합니다. 1년 전에 찍어놓은 비디오까지 있습니다, 확실하게. 유언장을 읽어나갑니다. 아들에게는 얼마, 딸에게는 얼마, 무엇은 얼마, 누구는 얼마, 해서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쓸 만큼 다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사랑하던 손자 24살 난 손자(이놈은 망나니입니다), 공부도 안하고 밖으로 나돌며 할아버지 속을 썩인 이 손자에게는 유산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언장이 별도로 하나 더 있는데 ‘최고의 유산’이라고 써놓고 봉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유산을 내 손자에게 주되 내가 12가지 과제를 줄 터이니 내 손자가 이 과제를 다 실천한 다음에 합당하거든 주십시오, 하고 봉을 해놓았습니다. 모든 자손이 다 유산을 받았지만 이 손자는 이런 조건이 있어서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 12가지 조건, 첫째는 그 할아버지의 친구네 목장에 가서 한 달 동안 일을 하라, 가장 어려운 일을. 손자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산 받을 욕심에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셋째... 조건이 이어지는데 어느 공장에 가서 일하라, 어느 고아원에 가서 일하라, 이런 것이었습니다. 손자는 12 과제대로 일을 해가기 시작합니다,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면서 많은 것을 깨달아 나갔습니다. 이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서 그는 귀중한 깨달음을 글로 써서 변호사에게 제출합니다.
스티븐슨이 이것을 보고 만족히 여겨서 그에게 유산을 주었습니다. 그 리포트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첫째로, 일은 자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일을 하여야 자부심이 생깁니다. 놀고 먹으려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자부심이 무너져서. ‘일은 자부심을 갖게 한다.’ 둘째는, 가족은 그냥 주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평생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집의 아들이라고 아들입니까. 부부라고 부부입니까. 자동적으로 가족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돈은 옳게 쓸 때 세상을 바꾼다, 돈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넷째, 고난은 인격형성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사람은 배우고 깨달으니까. 다섯째,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감사뿐이다, 부하고 가난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에 감사하게 될 때 삶은 풍요하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섯째, 우정은 평등에서 시작된다, 고자세로는 친구가 없다, 낮추어 평등하게 될 때 비로소 친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일곱째, 배움은 평생의 일이다, 하였습니다. 여덟째,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밝은 웃음뿐이다, 하였습니다.
여러분, 밝은 얼굴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도 있고 내 영혼을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밝은 얼굴이 영혼을 치유한다.’ 아홉째, 꿈은 자신이 성장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꿈만 꾸고 인격이 성장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인격이 이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열째, 즐거움은 나눔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기주의에는 행복이 없다, 나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없다, 참 행복은 나누면서부터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였고 열한째, 인생의 절정은 바로 오늘이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오늘이다, 하였습니다. 열두째,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뿐이다, 하였습니다. 12가지. 깨달아서 이것을 써서 변호사에게 갖다냅니다. 변호사는 만족히 여기고 그때가서 ‘최고의 유산’이라고 하는 봉투를 뜯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평생토록 키워왔던 자선단체기관을 손자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네가 맡아하라.’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입니까? 고아가 누구입니까? 부모가 없어서 고아가 아닙니다. 유산이 없어서 고아입니다. 유산이 없는 사람, 소중한 유산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내가 받은 유산도 소중하지마는 내가 물려주는 유산이 내 자녀와 가정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소중한, 거짓없는 깨끗한 믿음, 거룩한 신덕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서 자손만대 계계승승 복을 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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