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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시 110:1~3)

에반젤(복음) 2021. 10. 11. 11:04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시 110:1~3)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이 시간에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모두 청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교회에 청년이 많다면 희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청년다운 청년들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은어 중에 ‘이태백’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태백이 놀던 달아 그 이태백이 아니고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의 세계에서도 무의미한 백수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새벽이슬 같은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호14:5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하신 것처럼 세벽이슬 같은 청년은 온 세상을 꽃피고 향내 나게 하고 열매 맺고 복되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문에 그 청년의 비밀이 나타납니다. 3절에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기에 그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3절의 “주의 권능의 날”이란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로 이 날에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나오더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야 청년이 되겠습니까? 젊게 살려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노인이 없습니다. 청년만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청년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4:16에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했습니다.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늙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렙을 보세요. 수14:10-12에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고백입니다. 몸도 마음도 늙지 않았습니다. 다 같은 몸인데 갈렙은 왜 안 늙은 건가요? 그것을 최근 현대의학이 밝혀냈습니다. 미국의 노인학 전문의사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헨리 S,로지 박사는 Younger Next Year(젊게 사는 법)이라는 책에서 젊게 살려면 자기 뇌를 속이라고 말합니다. 젊게 생각하고 젊게 살면 청춘의 호르몬이 많이 생겨나서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젊은이들처럼 달리고, 사냥하고, 도전하고, 웃고, 놀고, 사랑하고, 스스로 치유하면서 젊게 살면서 몸에 좋은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땀이 나도록 운동을 하면, 땀과 함께 수백 개의 화학신호가 몸 구석구석에 보내지면서, 고장 난 곳을 스스로 찾아내어 치료하고, 퇴화를 가로 막고, 성장을 촉진시킨다 합니다.


104세 드신 분이 계신데 뭔가 하시면서 종일 움직이신답니다. 할 일 없으면 몸을 손바닥으로 두들기고라도 계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약들이 우리 몸에서 나옵니다. 치료하는 성장호르몬이 나오고 타액 침도 밝게 하고 젊게 합니다. 그래서 한나라의 괴경은 자주 침을 삼켜서 178세까지 살면서도 얼굴이 젊은이 같았다고 합니다.


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부실하게 영양을 섭취하고. 운동을 게을리 하면 우리의 몸은 그것을 겨울로 인식하여 최대한 빨리 생명력을 쇠퇴시켜 삶을 종료하라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는 것입니다. 잠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했듯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은 더 큽니다. 그래서 욜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노인들도 성령이 임하면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됩니다. 못한다. 안 한다. 일이 무섭다. 마치지 못할 일 생각도 하지 말라. 그러면서 현실에만 안주하는 사람은 은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다른 교회 일군들 부러워 마세요. 성령이 임하면 우리들도 그런 일군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비밀이 3절에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여기 거룩한 옷은 제사장복입니다(출28:2). 구약에는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이지만 신약에는 예수 믿는 성도가 제사장입니다(벧전2:9). 즉 교역자나 성도나 제사장처럼 날마다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하면 새벽이슬 같이 여러분도 젊어지고 교회도 젊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새벽이슬 같은 청년으로 변화합니다. 큰 일군들이 생겨나고 오기도 합니다.


파주에 직원도 많지 않는 조그만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어느 기업이 은퇴교역자들을 섬기는데 매달 40만원씩 100분 정도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벌이고 있는 사역이 많은데, 수입 전체를 드리는 무리한 듯 했지만 믿음으로 나가니까 지금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기업이 몇 배로 커졌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다 하지 않을 테니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도 날마다 젊은이들에게 하는 설교를 하겠습니다. 일군이 되어라. 꿈을 가져라. 하나님의 일을 하자. 이런 말씀이 대상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잘한 것입니다. 교회는 젊어야 합니다. 성도는 젊은이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기도이고, 최고의 봉사도 기도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기도하다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눅7:11-15에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장례행렬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열대 지방이라서 죽으면 그날 매장하고 어린 청년이라면 소문나게 장사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과부나 고아와 나그네는 율법에도 명시한 특별한 구제대상입니다. 존재감이 없습니다. 거기다 어머니만 부각되고 독자이니 아버지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12절에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많다고 하니까 아마도 수백 명은 될 것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나인성 사람들은 그 청년의 시체를 메고 그 뒤를 그토록 많이 따랐을까요? 온 성이 나서서 청년을 장사했습니다.


궂은 일 다하며 섬겼어도 죽으면 냉냉하기 쉬운게 인간인데 온 성이 나섰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가 어떤 존재였기에 누구의 강요도 없는데 그의 뒤를 구름떼 같이 따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푸는 열쇠는 예수님께서 부르신 청년이라는 명칭과 나인이라는 성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의 시체를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왜 청년이라 하셨을까요? 청년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늙은 그런 청년이라면 예수님께서 청년이라 부르시지 않습니다. 청년 같은 진짜 청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청년이었습니다. 저 골로다로 올라가시는 청년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뒤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따랐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 받은 잊지 못할 은혜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청년의 장례 행렬에서 그의 생전에 성을 구하거나 성민을 살렸다든지 어떤 감동적인 삶과 사건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때 다릅니다.


그리고 성경이 나인성을 소개하면서 “나인이란 성”이라고 그 성 이름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이것이 힌트입니다. 나인이란 '사랑스럽고, 즐겁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청년은 나인 성을 빛낸 사람입니다. 나인 성의 영웅입니다. 그는 성민을 구했습니다. 그는 성민을 위해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서 자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청년은 아름답습니다. 청년은 불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죄악과 비리에 항거하여 싸우다가 매를 맞고 옥에도 갇히기도 합니다. 불의를 보고도 못 본체 하는 건 청년이 아닙니다. 혹은 청년은 이기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하여 한 목숨 바치기도 하고 친구를 위해 강에 뛰어들다가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혹은 청년은 진실하고 예절 바르며 겸손합니다. 혹은 청년은 보다 뛰어난 판단력으로 구태의연하지 않고 날마다 발전하는 진취력이 있습니다. 혹은 청년은 이상적인 꿈과 희망에 불타는 강한 도전의 사람입니다. 그 청년은 살아나자 일어나 말도 한 것처럼 죽었다 깨도 터져 나오는 불타는 이상과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를 청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마디로 청년이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새벽이슬 같은 청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인성의 청년 한 사람이 나인성을 감동시켰습니다. 예루살렘에도 120명의 청년들이 예루살렘을 복음화하고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시대의 문제가 있다면 청년이 부족해서 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과 같은 갈렙과 같은 청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 성령 충만 받으시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영원하신 청년 예수님을 바라보며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