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진정한 회복 (요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시간에 “가정의 진정한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호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과 이선이 교수는 ‘가정의 위기와 회복’이라는 글에서 “한국 사회의 많은 가정이 파괴와 해체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저출산 이혼 유기 살인 불륜 독거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든 다음에 “이 모든 시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 결혼의 거룩성을 경시하고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에덴동산과 같은 가정은 불가능할까요? 우리는 이 진정한 가정 회복을 본문 요 2장에서 봅니다. 진정한 가정의 회복은? 1. 예수를 주로 모실 때 옵니다. 1-2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가나의 혼인집에 예상보다 많은 손님들이 왔던지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흥겨워야 할 잔치집은 난감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청함을 받았다" 한 것처럼 거기서 예수님은 주가 아니라 손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할 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절) 하셨는데 이처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거나 높이지 않고 내 뜻대로 산다면 주님은 아무 것도 상관하실 수 없는 손님입니다. 그러나 5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한 대로 어머니 마리아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위치를 정상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통하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주로 삼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 되며 항상 예배하며 경외할 때 가정에 행복이 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늘 예배하는 가정이 정답입니다. 서기 1948년 5월 14일 독립하기까지 방황하며 살아 간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싸들고 다녔던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흙을 싸들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잊지 않으려고 목에 조그만 흙 자루를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무덤에 뿌렸습니다. 다음에는 토라(성경)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토라는 유대인들의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 다음엔 안식일이었습니다. 1900년 동안 나라 잃고 방황했지만 안식일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메시아 신앙을 잊지 않고 상기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는데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잊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최고로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이 군대에 가도 식탁에 아들 숟가락, 젓가락을 놓습니다. 유학 간 자녀, 출타 중에 있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매월 초하루 월삭이면 어디로 흩어졌든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랬기에 유대인들은 1900년 동안 떠돌아다니면서 나라도 집도 없어도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시144:15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시128편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질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1-4절) 했습니다. 2. 질서를 존중하는데서 옵니다. 5-8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이 말씀에서 볼 때 마리아는 잔칫집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잔칫집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얼토당토하지 않는 일을 시킵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마리아의 친척집이었을 것이다. 혹은 잔치를 준비하는 한 일원이었을 것이다. 추측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 했는데 이 말씀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여자여”의 원문 헬라어 ‘귀나이’는 ‘귀네’의 존칭 호격으로 공석에서 왕후를 부를 때 사용하던 존칭입니다. 이 용어는 상대적으로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 즉 메시아적인 영광을 반증하는 단어일 뿐 아니라 어머니를 존중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가정에서 질서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특히 부모에 대해서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까마귀의 새끼는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이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부릅니다. 까마귀 같은 미물도 효도하더라는 말입니다. 팔반가(八反歌)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를 비교하며 자녀에게 반성해 보게 하는 여덟 가지 노래를 팔반가라고 합니다. 그 가사를 조금 소개하면 아이들은 아무리 지껄여도 부모는 듣기 싫지 않지만 자녀는 부모가 한 번 말해도 잔소리 많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의 오줌똥도 싫지 않지만 자녀는 늙은이의 침 뱉는 것조차 싫어한다.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떡을 사오기에 부모를 공양할 줄 알았더니 아이는 배 부르는데 부모는 맛도 못 보았구나. 자식의 마음이 어찌 그리 부모 사랑만 못하는고. 부모는 두 분이나 형제들이 서로 안 모신다고 다투지만 아이는 열이라도 남 주기를 싫어한다. 또 아이는 배불러도 배고프지 않느냐고 늘 묻는데 부모는 배고프고 추워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대여! 힘을 다하여 부모를 공양하라. 그대의 먹고 입는 것이 당초 부모의 것이니라. 부모는 자식 아프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내지만 자녀는 부모가 아프면 고칠 생각 않고 연로하셔서라고 넘어가 버립니다. 부모사랑과 자녀효도는 그 질이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부모에게 잘하는 자손들도 있습니다. 그 가정은 대대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엡6:2-3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구절은 무슨 말씀입니까? 복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더 크게 주시려고 해도 부모에게 잘못하면 더 큰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어른이 존경 받는 가정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음으로 양으로 가정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3. 서로 사랑하는데서 옵니다. 9-10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연회장이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칭찬합니다. 왜 이제야 가져왔느냐? 왜 진즉 알려주지 않았느냐? 할 말이 많겠지만 칭찬만 합니다. 가족이란 것이 그래요. 모든 단점과 결점에 다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다 소화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끝납니다. 자녀를 입양해서 죽인 ㅈㅇ이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한데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주택 청약이라든지 자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입양한 것이지 영혼을 진정 사랑해서 입양한 것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 기독교의 가르침도 아니요, 우리 신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의 일탈이요 범죄일 뿐입니다. 가정에 율법이 등장하면 불행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은혜이기 쉽지만, 부부관계는 율법이기 쉽습니다. 자녀에게는 한없이 잘하면서 배우자에게는 율법의 잣대를 갖다 댄다면 그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에덴동산은 싸늘한 동산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에덴동산에 사탄이 틈 타지 않도록 가족을 위한 기도 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가정이 더욱 건강해지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집에서 가정의 회복을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을 주로 삼아 날마다 경외하고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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