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방법 찬양할 때 우리 몸은 어떻게 하는가? 찬양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우리는 예배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 1절에는 이렇게 권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 드려서 헌신하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분명 말씀에서는 우리의 몸으로 드리는 그 예배가 바로 ‘영적예배’라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보자. 소리내어 노래로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몸을 사용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입술을 열어 소리내어 노래하는 것이다(시119:171).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청을 주시고 입을 주신 것은 소리를 내라고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찬양할 때 입술을 꽉 다물고 기도하는지, 묵상을 하는지 그냥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꼭 소리를 내야 예배입니까?”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소리를 내서 찬양하는 것 자체가 거룩한 영적 예배인 것이다. 찬양할 때 찬양 안하고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다. 찬양하며 예배드릴 때 같이 찬양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다. 무조건 가만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바라는 것만이 예배가 아니다. 그러므로 찬양할 때는 소리내서 찬양해야 한다. 손바닥을 치며 성경은 찬양할 때 손바닥을 치면서 하라고 한다(시47:1). 손바닥을 친다는 것은 우리 몸으로 하는 표현 방법 중 하나다. 언제 손바닥을 치는가? 우리는 기쁠 때나 누누를 환영할 때, 신날 때, 축하할 때 박수를 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찬양할 때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박수를 친다. 우리 마음의 기쁨을 표현하는 한 수단으로 박수를 치면서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기묘하고 놀랍기 때문에 열광하면서 손바닥을 치는 것이다. 일어서서 찬양하면서 일어설 수 있다(대상23:30, 대하20:19). 이렇게 일어서서 찬양하는 것도 역시 예배다. 언제 우리가 일어서는가? 존경하는 사람 혹은 높은 사람이 들어올 때 일어선다. 일어선다는 것은 예의와 존경의 표현이다. 또한,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일어난다. 유명한 가수들의 콘서트를 보면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것 역시도 사랑과 존경의 표현인 것이다. 찬양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느껴지면 모두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느끼면 느낄수록 일어서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뻐하는 표시로 일어나게 된다. 손을 들고 구약성경에서 찬양하는 형태 중에 제일 많은 것은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시134:2). 히브리말로 그것은 ‘야다’라고 하는데 “두 손을 들어 경배하다”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90회 이상 사용했다. 그렇다면 두 손을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손을 든다. 노래 공연장에 가 보면, 가수가 노래할 때 회중이 손을 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찬양할 때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환영의 의미다. 또한 그 찬양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항복하고 순복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를 의탁하는 것이다. 처음에 찬양하면서 손을 올리는 것은 정말 힘이 든다. 그러나 올려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나의 찬양을 받고 계신 것이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그렇게 표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신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 만이 나를 다스리네!” 라는 찬양이 있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두 손을 들고 하는 것과 손을 들지 않고 입으로만 하는 것을 직접 비교해 보기 바란다. 굽혀 엎드리고, 무릎을 꿇고 우리가 찬양하면서 무릎을 꿇을 수 있다(시95:6). 그것 역시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표현 방식이다. 대개 우리는 섬김의 표시나 충성과 존경의 표현으로 무릎을 꿇는다. 어떤 찬양은 정말 하나님을 왕으로 선포하며 우리의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찬양들이 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라든지 “겸손하게 우리 무릎 꿇고 주 이름 앞에 영광 돌리세”라는 찬양을 어떻게 우리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그것은 무릎을 꿇는 것이다. 손까지 들면 더 좋다. 그때 우리 마음의 것들이 표현되는 것이다. 몸을 굽히고 찬양하거나 엎드려서 찬양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표현이다(느8:6). 천주교의 사제들이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엎드려서 받는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죽었다는 표현이라고 들었다. 그것 역시도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표현이다. 큰소리로 큰소리를 내는 것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며 갈급함의 표현이다(시47:1). 특히 큰소리로 하면 더 효과적인 찬양이 있다. 우리가 큰소리를 낼 때 오는 장점이 있다. 첫째, 소리를 평소보다 크게 내면 다른 생각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찬양할 때 다른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경우 큰소리를 내면 다른 생각들이 사라진다. 둘째, 소리를 크게 내면 우리의 눈과 귀가 하나님께 집중하게 된다. 찬양을 크게 하면 집중이 잘된다. 셋째, 소리를 크게 내면 우리의 간절함이 더 잘 표현된다. 잠잠히 혹은 침묵으로 크게 소리를 외쳐서 부를 찬양이 있는가 하면 찬양할 때 잠잠하게 부를 찬양이 있다(시62:1,5). 소리를 적게 내면서 조용하게 부를 때 우리는 더 깊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의 임재 앞에 잠잠해’ 같은 찬양을 할 때 큰소리로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찬양은 무릎을 꿇거나 일어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을 들고 잠잠하게 내 귀에 들릴까 말까 할 정도로 한다면 더욱 은혜가 넘칠 것이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임재가 역사 앞에 잠잠해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아예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하고 잠잠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바라는 ‘예배’를 드린다. 그때는 인간의 어떤 말이나 음성조차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어서 자기 자신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복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흠뻑 맛보는 시간이다. 춤을 추며 인간은 흥겨우면 자연히 춤을 춘다. 원래 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찬양할 때 춤도 추라고 하신다(시149:3). 특히 우리 민족은 유난히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민족도 보스 안에서 춤추는 민족은 우리 외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찬양할 때 우리가 입으로만 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몸으로도 찬양하기 원하신다. 춤은 그 표현 방법으로 아주 훌륭하다. 특히 간증이 담긴 경쾌한 찬양은 몸을 움직이면서 찬양하는 것이 더욱 은혜롭다. 악기를 가지고 시편 150편에는 여러 가지 악기들이 나온다.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제금 등.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연주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다. 악기를 가지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많은 악기를 가지고 같이 연주할 때 반드시 악기가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악기로 찬양 예배를 드릴 때는 그 악기들 사이에 ‘조화와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찬양팀의 악기 연주자들은 충분한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새 노래로 ‘새 노래’는 말 그대로 새로 나온 노래들이다. 하나님은 새 노래를 좋아하신다(시33:3). 새로운 찬양을 만드는 것은 프로들만 하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화성학에 안 맞고, 엉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노래를 주시면 새롭게 찬양할 수 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곡들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는다. 거룩한 상상력을 사용하라. 상상력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만 상상력이 있다. 개나 고양이에게는 상상력이 없다. 상상은 우리만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인간들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상상력을 주신 것은 쓸데없는 ‘공상’이나 ‘망상’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고 서로를 섬기기 위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할 때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거룩한 상상력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찬양할 때 가사를 상상하면서 노래하기를 권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항상 더 크고 넓고 깊은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할 때 “이 가사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이 곡이 노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상해 보면 우리에게 더 놀라운 은혜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활짝 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원 얻는 사랑의 관계속에 들어가는 것이 ‘예배의 필수조건’이다. 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 알 수 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은 이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찬양하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마음을 열기를 거절하므로 놀라운 예배도 사라진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그 찬양을 수술시 메스와 같이 사용하셔서 우리의 아픈 부위를 수술하시고 꿰매실 것이다. 그리고는 공허한 그 속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찬양을 할 수 있게 된다. 전심으로 열정을 다하라. 찬양으로 예배할 때 소극적으로 드리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열심을 다해야 한다. 찬양할 때는 ‘마음만 중요하다’는 핑계가 안 통한다. 우리의 마음이 겉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마음으로만 드리는 예배는 소극적이다. 성경에서는 전심으로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라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시86:12, 138:1). 전심으로 찬양한다는 것은 모든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적당히 다른 생각들을 하는 것은 ‘전심’이 아니다. 찬양할 때 나의 모든 생각, 상상, 마음을 동원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결과는 어떠한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전심으로 예배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믿음으로 드리라. 찬양할 때 우리는 믿음으로 그 찬양을 불러야 한다. 창세기 4장 3절부터 7절까지에 두 사람의 예배가 나온다. 우리가 아는 ‘가인과 아벨의 예배’다. 아벨이 드린 예배를 하나님이 열납하고 가인이 드린 제사를 열납하지 아니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 4절에 그 원인이 나온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그 차이는 ‘믿음’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내가 어떤 상태일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찬양을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믿음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시작해 보기 바란다. 입으로 선포하고 서로에게 선포하고 찬양하면 더 큰 은혜가 있을 것이다. 마음을 청결히 하라. 찬양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는가?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마5:8). 그러므로 찬양하기 전에 마음을 청결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음을 청결하게 만든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형식적으로만 회개하지 말고 마음에 찔리는 것, 허물,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회개하고 찬양하기 시작해야 한다. 어떤 때는 찬양하는 중에 죄악들이 생각나는 수가 있다. 그때는 회개하라고 성령님이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때 즉시 회개하면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에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께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감사함으로 드리라(시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여기서 말하는 문은 성전 문, 즉 예배드리러 들어가는 첫 시작을 말한다. 그러므로 찬양할 기분이 아니거나 찬양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감사하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 오늘도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걸어다닐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두 끼라도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감사를 선포하면 어느덧 성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일어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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