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전도의 창

지역사회에 교회 알리기

에반젤(복음) 2021. 7. 16. 13:00

지역사회에 교회 알리기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가면 갈수록 전도가 힘들어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교회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전도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말도 있지만 교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개혁교회는 적극적으로 전도하려고 할 필요가 없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교인만 잘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전도해도 소용없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서도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이 명령이 일차적으로는 사도들이 받은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교회는 사도적인 교회이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전도에 관해 가장 기본적인 사항부터 언급해 보자.

1. 신자는 자기 교회를 자랑해야 한다.

 

이것을 모르는 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자기 교회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전도해서 교회에 데려왔는데 우리 교회 분위기 때문에 그 사람이 교회에 남아 있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전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에는 전도하라고 닦달하기 보다는 교회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교인들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교회가 사랑이 넘치면 전도하지 말라고 해도 전도할 것이다.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 교회 구성원들로 인해 교회 분위기는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바뀌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날마다 살아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살아나는 길이고, 세상의 빛이 되는 방식이다.


2.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전도지를 나누려고 하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믿지 않는 이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은 전도라기보다는 교회를 알리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 교회가 어디 있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교회건물을 가리키면서 교회를 소개하면 된다. 그렇더라도 전도지가 그냥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면 안된다. 전도지를 잘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전도지 내용과 구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전도지 내용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전도지를 구상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담임목사를 잘 소개하는 전도지를 만든다든가, 교인들의 스토리가 담긴 전도지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것을 넘어서 전도지에 티슈나 사탕을 끼워서 나누어 준다든지, 차나 음료수를 대접한다든지, 기계를 사서 호떡과 붕어빵을 구워주기도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전도해야 하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굳이 전도라고 부르지 말고 교회를 알린다는 마음으로 하면 좋겠다. 불신자들은 우리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중요하다.

 

3. 목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존교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개척교회라면 더더욱 목사가 앞장서서 전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는 전도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닦달한다고 말한다. 웃기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목사가 나가서 적극적으로 전도하지 않더라도 전도는 목사가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배에 찾아오는 불신자나 이사 와서 교회를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목사가 제일 중요하다. 목사의 설교가 제일 중요하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목사가 전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극단적인 말 같지만 목사가 전도하고, 또한 목사가 교인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만큼 목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교회는 목사에게 잡무에 시달리도록 할 것이 아니라 설교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는 목사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전도를 잘 할 수 있는 길이다.


4.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요즘 교인들은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교회를 충분히 검색해 보고 교회를 방문한다. 그래서 교회는 카페든지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교회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카페나 홈페이지 관리가 만만찮을 것이다.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지 않는 한 그냥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카페나 홈페이지를 차라리 만들지 아니한 만 못한 경우도 많다. 몇 년 전의 내용에서 중단되어 있고,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이 교회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이에 전문적인 관리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 교회가 죽지는 않았구나’ 하는 인상이 들도록 한 달에 한 두 번씩 설교문이나 설교동영상을 올리는 것 등은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을 전도라고 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교회 알리기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것은 사실 전도라기보다는 지역사회에 교회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사회에 교회를 알리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보자.

1. 모든 교회는 지역교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에 사회에서 ‘마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도 마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너무나 개인주의화된 사회이기에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맞는 말이다.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최근에 개신교회 내에서 ‘마을목회’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 마을목회는 시골에 더 어울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도시라고 해서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교회는 기본적으로 지역교회이기 때문에 지역과 어떻게 연관을 맺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듯이 교회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에 교회가 빛과 소금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고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이에 교회는 지역사회와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지역교회성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지역교회성은 그 범위를 훨씬 더 넓게 잡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교회건물 주위로 와서 교인들이 마실 가듯이 주중에도 서로 왕래할 수 있고, 지역사회를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이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2. 지역사회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교회가 개척된 후에 지역사회의 필요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시행한 적이 있다. 몇몇 이들이 열심을 내어 정철영어프로그램을 시행한 적도 있고, 나니아 연대기 책읽기 모임을 시행한 적도 있다. 대부분 지역사회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요즘 부모들은 자기들이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교회든지 어디든지 상관없이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는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프로그램을 하는 곳을 찾는다. 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당연히 옮겨가고, 더 많은 시간동안 자기 아이들을 맡아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성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주민센터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교회는 그런 프로그램을 따라갈 수가 없다. 주민센터 등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굳이 흉내 내서 따라할 필요가 없다. 이에 지역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단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도 지역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서 꾸준히 섬기는 것이 교회를 알리는 길이 될 것이다.

 


3. 교회 구성원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전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이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인들을 동원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교회 구성원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자신들이 봉사하면서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역사회의 필요와 맞아 떨어지면 그것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길이 될 것이다.

본인은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마침 인근에 기독교학교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접촉이 되었고, 그 학교 채플과 학급전도, 학부모기도회 등을 통해 교회가 소개되었고, 학생들이 한 두 명 교회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목사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손발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을 돕는 일이다. 집사의 일이 바로 이것이다. 먼저, 교회의 식구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의 연약한 지체들을 돌아보는 것을 할 때에 지역사회의 연약한 고리와 접촉하고 돕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4. 신자가 지역사회 속에 밀착되어 생활하기를 격려해야 한다.

 

교회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교인들의 일상생활이다. 교인들의 삶이 지역사회에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성도 가정을 심방했을 때의 일이다.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그 성도께서 주위에서 자기에게 통장을 하라고 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통장을 하시라고 격려했다. 이후에 그 분이 통장이 되어서 일하고 있다. 통장이 되니 지역민들에게 교회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좋아했다. 그 성도님 소개로 교회에 등록한 분이 아직은 없지만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고 있다.

교회에서 필요한 물품을 살 때에 인터넷으로 싼 가격의 물품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지역의 가게에서 적극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 조금 비싼 가격에 물품을 산다고 하더라도 지역사회와 접촉하는 면을 넓혀야 한다. 이렇게 교인들이 지역사회에 밀착해서 생활하기를 격려하는 것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이다. 교회는 산 위의 동네라고 하셨다. 숨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숨길 수 없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이 보고 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중요하다. 교회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모습이 중요하다. 신자의 삶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전도의 핵심이다. 교회는 오직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신자는 오직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말에 빗대어 말해 보자면 ‘전도에 왕도는 없다.’ 우리는 빚진 자이다. 우리는 주장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믿게 하신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믿는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때문에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나는 빚진 자라’(롬 1:14)라고 말한 의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믿는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태도야말로 전도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