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십자가 지난 주 어느날 기독교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분이 '십자가'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해 보이는 아가씨가 사람 키보다도 더 큰 십자가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매는데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봤더니 속이 텅 빈 십자가 였습니다.
얇은 베니어판으로 조립한 다음 겉에 나무결무늬의 벽지를 발라 만든 모양만 '십자가'였습니다.
아마도 교회당 강단 뒤 휘장 가운데 거는 십자가인 모양입니다.
아하! 십자가! 사형틀. 어깨에 매면 장정이라도 휘청거릴 만큼 무겁게 짓누르는 십자가!
내가 달려 죽어야 할 내 십자가를 내가 지고 사형장으로 향하는 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십자가는 예사로운 물건이 아닙니다.
언젠가 어느 시골교회에서 둥이 휜 소나무로 만든 진짜 십자가가
휘장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반지르르 하고 멋진(?)십자가를
살 돈이 없어서 누군가가 서투른 솜씨를 냈겠지요.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내 십자가를 내가 진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십자가를 지되 '속이 텅 빈 무늬만 십자가'를 지지 말고,
울퉁불퉁한 옹이가 그대로 있는 무거운 진짜 십자가를 매야 합니다.
멋진 십자가를 사서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그 '무늬만 십자가'를 진 아가씨를 보면서 쉽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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