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의 다른 점 10가지
by 유 경천
오늘날 교회들은 진화론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획득한 형질이 유전되어 교회가 진화되어 현대의 교회들로 살아남았다고 믿는 것 같다. 교회도 점진적으로 진보해 왔으며, 계속 발전해 오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교회는 모든 역사가운데 교회들이 밟아온 시행착오들을 수정, 또는 보완해 오면서 탄생된 가장 훌륭하고 진보된 상태의 교회라고 자처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 역사상 현 시대만큼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시대는 없었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으신 주님은 다르게 대답하신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현대의 교회들은 초기의 교회들보다 훨씬 더 발전되고 개선된 환경과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옛날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향상된 신앙 상태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교회는 초대교회보다 더 나은 예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 열린 예배, 젊은이들만을 위한 예배, 야외 예배, 찾아가는 예배, 음악예배, 째즈 워십, 워십 댄스, 1부에서 8부까지의 다양한 예배 시간대와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예배로 인해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예 배,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적절한 시간 안배와 그에 맞는 예배프로그램 등이 그와 같은 것들이다.
<현대 교회는 아주 잘 개발된 영적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다.> -- 주일학교 프로그램, 청소년 을 위한 특별프로그램, 대학생 프로그램, 제자훈련프로그램, 영성강화훈련, 은사개발훈련, 양육프로그램, 교회성장프로그램, 공동체생활프로그램, 평신도프로그램, 순장제도와 구역장 제도, 새벽기도, 백일작정기도, 금요철야기도, 성경읽기운동, 성경쓰기운동, Q.T, 선교훈련프로그램, 단기선교여행, 수많은 무슨 ‘운동’(제자운동, 세계복음화운동, 회복운동, 생명운동, 나눔 운동, 말씀운동, 성시화운동, 사랑의 집짓기운동, 기독교 새물결운동, 프로미스키퍼운동, 등등) <현대 교회는 초대교회들이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 아름답게 잘 지어진 교회당, 넓은 주차장, 교회버스, 빨간 네온, 성가대와 오케스트라, 장엄한 파이프오르간, 전자 악기들, 최고의 음향기기, 프로젝트빔과 같은 영상시설, 녹음기, 복사기, 컴퓨터, 인터넷 싸이트, 잡지, 신문을 포함한 다양한 인쇄물들, 수없이 많은 신앙서적들과 주석서들, 음반들 그리고 방송국까지..
이와 같이 수많은 것들을 현대교회들이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들의 영적 상태는 초대교회의 그것보다 결코 앞서지 못한다. 아니 훨씬 더 못하다. 최소한도 ‘사도행전’에 나타나있는 교회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통해서 나타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과 현대의 교회들을 비교한 다음의 10가지 차이점은 오늘날 우리들의 눈으로 목격하는 대다수의 교회들 모습이 과연 성경적이며 올바른 길로 걷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찍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다른 하나님의 경륜을 믿는 우리로써는 사도행전 초기의 교회들이 갖는 특수성과 교리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준 뜨거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헌신은 분명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과 현저한 격차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자기 소유를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행4:32)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자기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자기 자신의 대한 끔찍한 사랑은(딤후3:2) 자기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마치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사람이 정확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교회의 삶과 개인의 삶을 엄격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자신의 영역을 조금만 침범 받더라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계획해놓은 선(대개는 십일조)에서 한 푼도 더 내놓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자신의 시간마저도 주일의 대예배시간 말고는 절대 할애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몸으로 봉사는 하려고 해도 금전적 손해는 절대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2. “그들 가운데 부족한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 이는 땅이나 집을 소유한 자들이 다 그 것을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행4:34)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서 헌금했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벌어서 헌금하려고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행20:35), 그리스도인들은 나눠 줄 수 있을 만큼 이미 충분히 갖고 있기에 헌금의 원칙은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드리는 것이다.(고전16:2, 고전4:7)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이 그녀가 가진 생활비의 전부였다면 그것으로 생활을 지탱하며 돈을 벌어 헌금하겠다고 했던들 오늘날 사람들이라면 당연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직은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성도들을 도울 수 없다고 핑계 대는 사람들.
지금은 학생 또는 실업자니까 장차 취직해서 돈 벌면 교회를 섬기겠다고 미루는 사람들.
내 개인의 목표(취직, 결혼, 내 집 장만, 적금만기, 빚 상환, 자녀졸업 등등)를 이루고 나면 본격적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
이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3. “또 날마다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나누면서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으며”(행2:46)
초대 교회성도들은 날마다 모였으며, 매일 가르치고 전파했다.(행5:42)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정해진 날만 모이려고 한다.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이며(히10:32), 때에 맞든 맞지 않던 항상 말씀을 선포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는 것이다(딤후4:2) 그러나 매일 밥은 먹으면서, 날마다 돈 벌려고 출근은 하면서, 매일 TV는 보면서, 자주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 생활은 즐기면서도,
교회에는 최소한의 시간만을 할애하는 사람들.
바쁘다는 핑계로 모임에 빠지는 사람들.
각종 행사와 모임에 참석하느라 예배를 빠지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정해진 모임(대예배 또는 수요예배, 구역모임 등등)에만 참석하면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 하며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4. “그때에 이 일에 관한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귀에 들어가매 그들이 바나바 를 보내어 멀리 안디옥까지 가게 하니”(행11:22)
초대 교회는 끊임없이 사역자들을 내보냈다. 그러나 현대 교회들은 끊임없이 몸집을 불린다.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으로 바나바를 보냈고, 그는 안디옥의 교회에 정착했다.(행13:1) 그리고 또다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보냈다.(행13:3) 세상 모든 곳에 가서 말씀을 가르치고(마28:19), 교회들을 세우고(행16:5), 교회들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행15:40) 교회가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리고 다른 지역교회에 사람을 추천하기도 했다(롬16:1, 고후3:1)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들은 오는 것은 좋아해도 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오로지 양적 팽창이 부흥의 증거라 생각하며, 우리교회는 몇 만 명이니, 몇 십 만 명이니 하면서 그 수를 자랑하는 교회들.
다른 지역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교회당 건물을 건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선교한답시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기네 교단 교회와 신학교와 복지 센터 설립에만 열을 올리는 그런 교회들.
교인을 빼앗기면 흥분해서는 온갖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5.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데려와 그들이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임을 가지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더니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아 되었더라”(행11:26)
초대 교회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갖가지 호칭으로 불린다. 교회가 얻은 최고의 호칭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이며,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자랑스러워해야 한다.(행26:28, 벧전4:16)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그 이름보다는 다른 이름들로 불려지기를 바란다.
“ㅇㅇ교회 장로”, “ㅇㅇ교회 집사”로 불리는 사람들.(장로, 집사는 호칭이 아닐뿐더러, 교회 안에서의 직책이지 교회 밖에서 불리는 이름이 아니다!)
“ㅇㅇ선교회 간사” 무슨 단체나 협회의 “총무” “대표”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
“사장” “이사” “박사” “교수”등으로 불려야지만 얼굴에 화색이 도는 사람들.
명함 이름 앞에 꼭 “목사(REV.)” 또는 “신학박사”를 새겨 넣고 다니는 사람들.
회식자리에서 건네주는 술잔을 고사하며 “나는 그리스인이라 술 안 마십니다”라는 말 대신 “저 교회 다니는데요.”라는 말로 대신하며 부끄러워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6. “이에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능력대로 유대에 거하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또 그것을 실행하여 구호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11:29,30)
초대 교회성도들은 구호금을 교회 앞으로 보냈다. 그러나 현대 교회들은 구호금을 세상으로 보낸다. 교회가 구제해야하는 대상은 교회 안의 과부와 고아(딤전5:16)를 포함한 가난한 성도(갈2:10), 말씀에 수고하는 자들(딤전5:17,18), 그리고 또 다른 지역 교회들(고후8:1-5)과 같이 항상 교회(믿는 자들)가 우선한다.(갈6:10)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교회를 제쳐놓고 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돕는 데에 그들의 재정 을 쓰고 있으며,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다.
수해가 났다하면 제일 먼저 방송사나 신문사에 수재의연금을 기탁하고 그 이름과 액수가 공개되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
교회 안에 가나한 성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거지들과, 노숙자들, 고아원, 양로원으로만 퍼다 나르는 교회들.
단지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뒤쳐진 나라들(중국, 몽골, 인도, 베트남 등등)이라고 해서 어려운 교회를 돕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교회나 교단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물자를 보내 오히려 그들의 영성마저도 물질로 타락시키는데 일조 하는 교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7. “바울과 바나바도 안디옥에 머물며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with many other also)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선포하니라.”(행15:35)
초대 교회는 함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현대 교회들은 오직 한사람이 한다. 몸 안에는 여러 지체가 있으며(고전12:12) 각각의 지체들은 그 고유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이다.(고전12:14-31) 그래서 지역교회내의 모든 성도들은 사역을 분담하기도 하며, 또 함께 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성직자와 평신도를 너무도 확연히 구별해 놓고서 대부분의 사역은 소수 직분을 맡은 사역자들만이 담당하고 있다. 더욱이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신학교를 나온 목회자들)만이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신학교와 목사안수를 특별한 자격증처럼 여기는 사람들.
설교 강단은 오직 ‘주의 종’만이 설 수 있는 곳이라며 높게 만들어 놓은 교회들.
말씀은 아무나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부목사에게 대예배는 제외한 다른 설교들을 할애하면서 생색내는 소위 담임 목사들.
장로회는 목회자가 보다 더 잘 사역하도록 돕는 친위대 정도로 생각하며, 사역은 절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8.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행17:11)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매일 성경을 탐구했다. 그러나 현대 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탐구는커녕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 진리의 말씀을 공부(study)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첩경임을 성경 스스로가 말씀하고 있지만(딤후2:15)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너무도 게을리 한다. 준비된 마음으로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들으며, 아멘으로 화답하기도 하지만, 돌아가서 는 그 들은 바 말씀이 진정 성경이 말하는 내용인지에 대해 검증하는 교인은 거의 없다. 그래서 비진리를 말해도, 성경의 내용이 아닌 것을 전해도 그저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니 까 다 옳고 틀림이 없다고 맹신하므로 멸망에 이른다. 그야말로 배우는 것 같지만 진리에는 이르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딤후3:7)
성경은 일요일에 교회 갈 때만 꺼내는 사람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신학생이나 목회자들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성경이 무어라 말하고 있는 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목사님이 무어라 말했는지가 중요한 사람들.
성경을 펴서 확인시켜 주려고 하면 도리어 의혹의 눈초리로 보내는 사람들.
성경이 아닌 것들에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정작 바른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우상숭배자”라고 힐난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9. “주(週)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나누려고 함께 나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행20:7-11)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듣기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현대 교회들은 말씀듣기를 지겨워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 원칙이다.(롬10:17) 그래서 저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모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했다. 사도 바울과의 이별을 앞둔 마지막 저녁을 그들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에 배려했다. 편안한 의자도 없이 그들은 저녁 내내 먹는 것도 잊은 채 말씀을 들었다. 아마도 오늘 날 같으면 마지막 이별의 전야를 송별 파티로 보낼 것이다. 이 얼마나 대조 적인 모습인가? 더욱이 진리와 교리 그리고 책망을 주는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현대의 교회들인 것이 다.(딤후4:3,4)
설교가 30분만 넘어가면 주리를 트는 사람들.
재밌게 설교하는 부흥강사의 유머에는 아멘과 박수로 화답하다가도 성경을 강론하면 곧 바로 잠에 빠져드는 사람들.
설교시간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먹고 놀고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가득 찬 수련회를 개최하는 교회들.
딱딱한 설교보다는 흥겹고 감미로운 음악으로 채워지는 예배를 선호하는 교회 안의 젊은이들.
다음날 출근해야하니까 저녁 설교의 오버타임은 절대 안 된다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반대 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10. “그들이 다 몹시 슬피 울며 바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그 말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며 배에까지 그와 함께 가니라.”(행20:37, 38)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서로 간에 뜨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 교회 성도들은 냉냉하기가 그지없다. 거짓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이다.(벧전1:22)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빌2:3), 다른 사람의 짐을 지며(갈6:2,) 다른 사람을 위해 뜨겁게 기도해주고(골4:12,) 그리고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섬기는 것이(빌2:30) 바로 사랑 이며, 형제애(兄弟愛)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들에서는 이런 감정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연적인 애정조차 발견할 수 없다.(딤후3:3)
각각의 성도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또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고사하고 교회 안의 성도들 얼굴조차도 이름조차도 다 모르는 사람들.
주차 시비 끝에 멱살을 잡은 상대가 알고 보니 자신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오랜만에 교회에 온 성도를 그저 소나 닭 보듯 하는 사람들.
이제 멀리 떠나 언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는 성도를 다음 주에 다시 만나는 사람처럼 악 수 한번하고 헤어지는 사람들.
공항이나 기차역에 배웅 나가는 것을 촌스러운 일로 여기거나, 바쁜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태연하게 자기 일 만 보는 이기적인 사람들.
어떻게 이런 현대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현대의 모든 교회들이여! 들으라! 그대들이 현재 자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도 보는 가운데 어디 한 번 자랑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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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국이 있는 풍경(기쁨이 있는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고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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