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초대교회 당시의 이름은 지금 그리스의 윗쪽 북지방을 마게도냐라고 하고 아랫쪽 지방을 아가야라고 합니다.그리고 고린도교회는 그 아가야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에 기근을 당한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그 위의 마게도냐 지방에서 얘기해서 여러교회들이 이 일에 참여하기로 하고, 그 고린도교회가 이런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도 하자, 그렇게 작정을 하게 됐고, 또 바울 사도도 이 고린도 교회의 결심과 헌신을 인하여 가서 실컷 자랑을 했는데, 이제 너희가 준비가 안되고 우리가 자랑한 것이 헛 된 것이 될 것같은 걱정이 된다,,(실제로 헌금준비가 잘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형제들을 보내는 것은 나중에 마게도냐에서 온 사람들을데리고 가야되는데, 그때 갔다고 너희가 제대로 준비 안된 것을 보면 이 무슨 망신이냐, 여기 있는대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니 열심을 내라 그리고 너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9장 전체를 할애해서 헌금을 독려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장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너희들 약속을 지켜라 나를 망신스럽게 하지마라, 내 기대에 어긋나지 마라, 그리고 너희가 잘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자칫 잘못 읽으면 '약속한 헌금을 꼭 내라' 이렇게 얼른 보입니다.그러나 이 9장의 헌금에 대한 독려는 아주 깊은 사도바울의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그 진심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로써 대단히 유익합니다.우리는 먼저 사도바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성경이 증언하는 몇가지 중요한 증언들을 조합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고린도후서 1장 24절에 가시면,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나는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하지 않는다. 내가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않는다. 나는 기쁨으로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 시작부터 있었던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가졌던 어떤 섭섭함 어떤 불만에 대하여 사도바울이 그의 이 고린도후서를 보내면서 저들에게 처음부터 내어놓은 자신의 지위, 자신의 진심에 관한 해명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강제력을 행사하거나 우월감을 가지고 너희를 가르칠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희를 섬기려할 뿐이다. 나는 너희에게 그런 식의 폭력이나 권력을 휘둘러 내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이게 중요한 선언이예요.그리고 4장에 가면 5절에,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이렇게 자신의 입장과 자세를 분명히 합니다. `나는 너희의 종이다.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있지, 나는 너희의 상전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이런 얘기들은 다 왜 등장할까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그런데 그런 낮아짐과 양보하는 말들은 뭣땜에 이런 성경의 중요한 자기고백으로 등장하는 것일까요?빌립보 4장에 가면 그 답이 비슷하게 나옵니다.감옥에 갖힌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가 도움을 주고와서 격려한데 대한 그 답신입니다.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사도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라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여기의 선언은 이중적인 이해를 가능케 합니다.자존심을 세우는 것인지, 자존심을 세우는 게 아니라면 도움을 준 교회라는 쌀쌀맞은 답신을 보냈는가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바울의 의도는 이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서 고맙다는 것이지, 내 필요를 채워준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도움이 돼서 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섬김과 격려와 그 기쁨을 나누는 일에 참여해서 내가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그러니 이 말은 사도바울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증언이 돼죠. `내가 너희에게 주관하는 상전이 되려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너희의 종이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한 약속을 헌금을 꼭 준비해서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헌금의 중요성이 아니라, 너희가 이 기쁜 일에 참여하여 그 기쁨을 너희 스스로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니 해봐라,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봐라` 이런 뜻입니다.그러니까 우리가 의역을 하면 `나를 봐라, 내가 도대체 이 일로 무슨 자랑할 것이 있으며 무슨 내세울 어떤 자존심이 있느냐? 무슨 유익이 있느냐? 나 이런 거 다 포기하고도 왜 이렇게 내가 열심을 떠는지 아느냐? 내가 뭣 땜에 너희들 보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이 약속에 너희 약속한대로 꼭 지키라고 애원하다시피 매달리는 이유를 알겠느냐? 너희 한번 해봐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누구를 돕는 일이 얼마나 굉장한 기쁨인지, 하나님의 하나님되시는 어떤 중요한 성품인지 너희가 그 기쁨에 참여해 봐라! 제발 해봐라! 너희들 이것 실패하지 마라`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그 빌립보서 1장 20절에 가면 시작부터 그랬었거든요.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굉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마음으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예수의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체면을 세우거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양보하시고 섬기시고 인내하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의 자기증명입니다!하나님 정체성에의 성실하심입니다!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 그의 생애와 인생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어야 하는지, 도전을 받아야 마땅합니다!우리는 사도바울이 이런 면에서 `내가 너희를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 기쁨을 돕기 위해서다` 라는 말이 고린도후서 11장에는 이런 식으로 소개됩니다.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부끄러운 얘기하는 겁니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도망친 얘기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을 한 이유가 뭐라고요?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 변명하는 이 고린도후서 11장 얘기는 너무 놀랍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기꾼이겠느냐? 내가 어떻게 거짓교사이겠느냐? 사기꾼이고 거짓교사라면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럴 것 아니냐? 나한테 유익을 얻고 보상을 받을 일이 뭐 있었느냐?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번 퇴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을 당하고,, 굶고 춥고 헐벗었던 길들에서 더 줄려로 내가 살아서 너희의 기쁨이 되고싶고 너희 자랑의 일조를 하고싶다!` 이렇게 말하는 사도바울의 자신에 대한 설명은 그걸로 무슨 유익도 구하지않고, 오직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보이신 것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영광을 잠시 감추신것같이,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찾아오시사 우리의 못난 자리에 오사, 우리를 끌어안으신 것같이, 이렇게 사도바울이 자신의 행보를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무엇을 했으며 그게 구체적으로 한 인생과 현장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되는가를 자기도 모르게 증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그가 광주리 타고 도망간 것만 여기에 나오지않고,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이게 사랑이죠!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환상이지 않습니다.그건 대상을 갖고 있고 대상을 위하여 애가 타는 겁니다!애가 타는 건 말로 해서 책임을 면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사도바울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우리도 사도바울 같이` 이렇게 말하지마시고,,그것이 예수입니다!예수가 오신 이유고 목적이고 우리에게 행하셔서 우리 모두를 죄와 수치에서 불러내어 의와 진리와 영광과 자랑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이미 이루신 것입니다! 그 일을 바울이 한 것같이 해야 됩니다!`선교를 해야되고 봉사를 해야되고,,`가 아니고,각각의 자기인생을 십자가로 중생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로써의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요구하신 영광을 증언해야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이런 얘기를 성경에서 여러 위인들을 통하여 뚜렷이 증거받고 있는데, 위인이라는 말은 평범한 사람고 비교할려고 위인이라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위인이라는 뜻에서 입니다. 대표적인 모세만 해도 보십시요.모세는 하나님 앞에 율법받으러 올라갔을 때 남은 백성들이 모세가 늦게 내려오는 것을 인하여 마음에 의심이 들고 불안해져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합니다. 모세가 내려와서 하나님의 분노로 격분하고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갈아마시우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죠.하나님이 뭐라 그러셨는지 기억하죠? `이 백성을 진멸하고 너로 새민족을 만들겠다!`그러자 모세가 이런 참 놀라운 말을 합니다.`하나님 그리하지 마시고 저들을 다 멸하시려면 저도 함께 죽게 해 주십시요!` 라고 말합니다.이게 뭘까요? 십자가 사건에 그대로 드러난 것 아닌가요!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대신 죽으시는 것 아닙니까? 우리를 살리시려고!그걸 이렇게 무슨 신파조나 순전히 감정적 문제로 이해하지 마시고, 역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시시는 영원한 목적입니다!그러니 어느 한순간에 하고 어느때는 잊어버려도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을 살듯이 생각하지 않았을 때도 시간이 흐르듯이 생각나지 않는 20대와 30대를 보냈듯이,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바로 이 하나님으로 모세가 한 이 말,`이들을 멸하시려면 제 이름도 생명책에서 빼 주십시요!`하나님이 뭐라고 대꾸하시죠? `좋다 용서하마!` 왜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고 있는 증언이죠!!하나님이 스스로를 설명하고 증언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의 종된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거죠!뭘 통해서?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통해서 그가 알죠!사도바울도 그렇게 합니다.그는 로마서 9장에서 자기백성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하죠. `내 마음에 한가지 소원이 있다. 그 소원은 내동족 내혈육 내백성을 구원해내는 일이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 예수에게서 끊어져도 좋다!`우린 그렇게는 말 못하죠. `저주를 받아 예수에게서 끊어져도 좋다!` 그렇게는 우린 말 못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한 것 아닌가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니까 우리편을 들기 위해서 하나님과 끊어지는 자리까지 가시죠. `나를 저주하십시요! 나를 죽이십시요!` 이렇게 가는 겁니다!!!이걸 치열함이나 지극함이라는 명분으로 이해하지 마시고,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를 만드시고 그의 영광과 주시고 싶은 복을 사랑이라는 정열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가지신 뜻입니다!그걸 이해하는 사람들, 알게 된 사람들의 증언들이 그 중의 대표적인 사도 바울이 여기 등장하는 거죠. `너희 그 헌금 꼭 해라` 저도 한번 할까요? `여러분 꼭 헌금하세요` 헌금 걷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 기쁨에 참여해라! 그 영광에 창여해라` 그런 얘기입니다.여러분 헌금 하는 것 어렵습니다. 저도 잘 압니다. 아깝습니다.하나님이 복은 요만큼 주시고 헌금은 많이 내라그러십니다. 정말요?하나님이 더 많이 하셨죠. 우린 다른 걸로 갚을 길이 없습니다!그러나 우리 신앙의 현실은 우리가 아직 어려서 그걸 감사하고 그걸 놀라워하고 감동스러워하지 않습니다!그 기간이 일을 한다는 걸 믿습니다. 그래서 그 일에 매인 자들이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는 겁니다! `내가 애타하고 내가 너희들에게 실패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목이 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바울이라는 사람의 어떤 위대함을 만들며 동시에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했겠지' 라는 핑계를 막아서는 것입니다! `바울도 했어! 너도 할 수 있어! 바울은 훨씬 나쁜 경력을 가진 전과자야! 그러나 너는 그것보다 낫잖아!`이렇게 우리에게 격려하는 겁니다.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것을 하려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앞에 서라는 거죠. 가족 앞에 서고, 그게 성경이 우리에게 하는 격려입니다.사도바울이 그의 전생애를 걸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바울의 인생을 우리가 성경에 있는 증언대로 이해하려면 통 이해가 가지않습니다.그는 에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펼펄 뛰던 사람이요, 그들을 잡아죽이기 위해서 (왜? 유일하신 하나님을 편들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아나니야를 통해서 사도바울의 입을 통해서 바울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를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이방과 임금들 앞에 서야하고 그리고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아나니야의 입술을 통해서 그렇게 바울에게 가르치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나를 모태로부터 준비하신 이가 나를 그의 종으로 불렀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앞 뒤가 맞지 않죠!십자가를 기준으로 해서 우리는 세계관, 인생관, 가치, 의미, 그리고 현실,, 이런 이해가 완전히 변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것이죠!사랑은 하는 것입니다! 받기 보다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어떤 행복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행복이고,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베푸는 것이며, 세상은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언젠가도 얘기했듯이 겸손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알지 못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그걸 모르고 하는 겸손은 다 교만의 거짓말입니다!겸손은 넉넉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사람보다 내가 더 못한 사람이다`라는 경험 속에서만 나옵니다!누가 그 증인이 됐죠? 바울이 그렇게 됐죠!바울이 할 말이 없죠.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왜요? 스데반을 죽였는데 무슨 할 말이 있어요.그의 평생에 그를 올가맸을 겁니다. 그러나 그 올가미가 그의 가슴을 아무리 찢어도 해결되지 않는 그의 이 과거가 모든 것이 형통하고 모든 것이 무흠한 자가 갈 수 있는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자리로 그를 끌고 간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이 하는 많은 원망이 뭡니까? `하나님 내가 잘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편들지 않습니다. 건강이 혹은 무슨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무슨 다른 이유들 때문에 내가 못합니다. 형편을 편하게 해 주시면 저도 마음껏 섬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르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일하심은 낮아지면 낮아진 만큼 깊이가 생기고, 흔들리면 흔들리는 넓이만큼 폭이 생기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시는 놀라움입니다! 그것은 창조와 부활의 능력입니다! 모세는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여 그들이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을 때 모세만은 그때까지도 죽지않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므리바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질을 내고, 하나님이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 그럴 때 성질을 부려서 지팡이로 반석을 쳤죠.누구한테 화낸 거예요? 백성들 한테 화를 낸 거죠.성경에 의하면 '그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지않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못할 말을 한 것 같습니다.하나님이 모세에게 그러시죠. `너 왜 내 자식들한테 지랄이냐? 너도 못 들어간다!` 이렇게 됐죠.우리는 그것을 엮을 실력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래요. 바울을 이해하고 보니까,`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부름받은 내 종이었다. 저들이 실패했지만 넌 저들과 함께 운명을 해라!`이것이 모세가 알아들은 말인 것 같습니다. 왜요? 시편 90편을 모세가 이렇게 쓰기 때문입니다.우리 성경에 번역된 것은 시적 수사학을 이해하지 못한 번역입니다.유진 피터슨에 <메세지> 에 나오는 시편 90편을 제가 읽을 테니까 여러분 눈으로 성경을 따라오면서 '이게 그런 말인가?' 한번 비교해 보십시요.하나님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안식처이셨습니다오래 전 산들이 생겨나기 전부터 주께서 땅을 지으시기 전부터 아주 오랜 옛적부터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우리를 흙으로 돌려보내지 마소서! 내 근원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지 마소서참으소서! 주께서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쥐고 계십니다! 천년이나 하루나 주께서 매한가지 입니다주께는 우리가 아련한 한순간의 꿈에 불과한지요해뜰때 멋떨어지게 돋아났다가 속절없이 베이고마는 풀잎에 불과한지요감당할 수 없는 주님의 진노에 우리는 껌짝달싹 할 수 없습니다주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놓치지 않으시고 어릴 적부터 저지른 악행을 주님의 책에 낱낱이 기록하셨습니다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잔뜩 찌푸린 주님의 얼굴 뿐입니다우리가 받을 댓가가 그것이 전부인지요 우리 수명은 칠 십남짓 운이 좋으면 팔십입니다그렇게 살아서 내놓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고통뿐입니다 수고와 고통과 묘비 하나가 전부입니다누가 그러한 진로를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터뜨리시는 그 노여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오 우리에게 제대로 사는 법을 일러주소서 지혜롭게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하나님 돌아오소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이제는 주님의 종들을 온유하게 대해 주소서 새벽에 깨어 주님의 사랑에 놀라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종일토록 기뻐 뛰며 춤추겠습니다 지금까지 힘든 나날을 주신만큼 이제 좋은 날도 주소서 불행이라면 평생동안 충분히 겪었습니다주님의 종들에게 드러내 주소서 주님의 능한 모습을, 주님의 자녀들을 다스리시고 그들에게 복주시는 모습을,주 우리의 하나님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하는 일을 잘 되게 하소서오 그렇게 해 주소서 우리가 하는 일이 틀림없게 해주소서굉장하지 않나요? 이렇게 떼를 쓸 수 있나요? 모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뭐가 위대하다는 거죠?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된 거죠! 그가 백성들 때문에 성질 한번 부렸다가 가너안애 못들어가게 된 것이 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죠! `맞습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해야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여러분 우리 이 시대를 살면서 여러분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고 원망과 불안밖에 없지 않습니까?예수믿는 사람은 달라야 됩니다! 우리가 가지는 이 사회의 어떤 불안 어떤 두려움 어떤 걱정들, 그것 보다 큰 세계 큰 힘 큰 약속 이 세상은 만들어낼 수 없는 가치와 소망과 운명과 그리고 명예에 관한 약속들을 성경이 하는 것이고,우리 인생에 적용하라는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신앙이 여러분 안에 허락되어 있습니다.힘 내셔서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듣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그 인생을 살아내는 멋진 여러분 각각의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기도하십시다.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우리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고 용서를 구할 수 있고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주님이 그 이름을 허락한 귀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시대의 제사장입니다. 이 시대의 왕입니다.왕은 폭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백성을 돌보는 자입니다. 우리야말로 그래야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그 멋진 인생을 그 위대한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되게 하셔서 하나님이 이 시대에도 일하고우리 자손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실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우리의 사명 우리의 책임 우리의 인생되게하여 주시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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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주일예배설교 녹취록 이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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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기부인 원문보기 글쓴이: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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