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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용서 받으려면 용서하라 (마 6:14∼15)

에반젤(복음) 2020. 10. 8. 00:46

용서 받으려면 용서하라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시간에 “용서 받으려면 용서하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흔히들 우리 기독교를 가리켜서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그럼 사랑의 뿌리가 무엇일까요? 용서입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결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도 결국은 용서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의 여러 간구 가운데서 용서의 기도를 보충적으로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신 것은 그만큼 용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텐데 어떤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죄도 용서하시는데 조건이 딱 둘 있어요. 하나는 그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나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 받을 자격


본문 14∼15절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것이 용서 받을 자격입니다.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두 가지는 지켜야 합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의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는 이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얌체는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릿광대 이야기


옛날 어떤 나라의 왕궁에 왕을 웃기면서 즐겁게 하는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행동으로 왕과 신하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어릿광대가 공놀이를 하다가 그만 실수로 왕이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왕은 그의 경솔한 행동에 너무나도 화가 나 자기도 모르게 그 어릿광대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잠시 후 왕은 자기의 명령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왕으로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그 명령을 다시금 돌이키는 것은 왕의 권위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곰곰이 생각하던 나머지 그를 사형에 처하기는 하지만,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줌으로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어릿광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너의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 그러니 네가 죽을 방법을 스스로 선택해서 내게 말하도록 하라. 자,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잘 생각해서, 네가 죽을 방법을 내게 말하도록 하라."


어릿광대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드디어 해가 서산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릿광대는 다시금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 죽을 각오가 되어 있겠지? 그래 어디 죽을 방법을 말해보아라." 그때 어릿광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저는 폐하의 은혜로 제가 죽을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었습니다.”“어떤 방법인가?” “폐하 저는 늙어서 죽는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대답입니까? 물론 왕은 약속대로 그를 웃으면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만일 그 어릿광대가 왕에게 불평을 말한다든지, 원망을 한다든지, 또는 살겠다고 도망을 쳐버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필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릿광대는 자기를 살리고, 자기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오직 왕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왕이 시키는 대로 왕의 말대로 해서 왕의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시키는 대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용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받지 못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강퍅했습니다. 그들은 용서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하루는 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에게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을 가운데 세우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그 여인을 정죄했습니다. 그리고는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들었던 돌을 모두 내려놓고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다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중요한 사랑은 내버리고 선악의 율법의 조항만 가지고 용서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십일조도 그러지요?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리면서 십일조의 정신인 의와 인과 신은 버리죠? 사랑을 버리니 어찌 용서가 됩니까? 그 결과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나를 용서하고, 내 가족을 용서하고, 내 이웃을 용서하고,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투완 선교사 이야기


네덜란드령 뉴기니아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투완이라는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에게는 원주민들과의 파인애플 소유권을 둘러싼 7년간의 투쟁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 과일이 없는 것을 보고 원주민들에게 품삯을 지불하여 파인애플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시험거리가 생겼는데 파일애플이 자라가 익기도 전에 파인애플을 누군가가 다 따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심었지만 익기도 전에 말도 없이 도둑질해 가니 화가 났습니다.


나중에 보니 도둑질해 간 사람들은 괘씸하게도 다름 아닌 품삯을 받고 나무를 심었던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품삯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심었기에 자신들 것이라고 말도 아닌 주장을 하며 계속 따가니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큰 개를 풀어놓기도 하고, 그들을 위해 개설한 병원 문도 닫기도 하고, 그들을 위해 만든 생필품 가게를 닫기도 하고, 너희 것이라면 가져가라 하며 과수를 뽑아가라 하며 없앴다가 다시 새로 심었다가를 반복하며 반응해 보았지만 여전히 파인애플을 도적질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사는 깨닫습니다. 이 농장이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내가 내 농장인 것처럼 화를 내야 하나? 그 때부터 선교사는 원주민들이 가져가도 아무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만 보기로 했습니다. 선교사가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다 가져가도 화내지 않고 가만히 계시나요? “예, 이 농장은 이제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것이니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필요하면 우리 함께 나누십시다.” 이렇게 변화된 선교사의 모습을 본 원주민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 더 이상 도둑질하지 않고 나와서 농장의 일을 도와주고 집에 돌아가서는 가족들을 데리고 모두 모두 교회 나왔습니다.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악감을 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도 선교사를 용서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선교에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니 사람들도 변하고 내가 용서하니 사람들도 마음 문 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셔서 선교사역에 열매를 맺어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심 같이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함이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내 영혼이 살고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