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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복음) 2020. 10. 3. 21:04

주기도문강해 1

 

이렇게 기도하라 (마 6:9-13)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시고 저녁에는 또 다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에 두시고서는 언제나 먼저 기도로서 준비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며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본문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주기도문에 나타난 방식대로 그 정신에 따라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는지 주기도문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주기도문적인 기도는 어떤 것인가? 한 마디로 말씀 중심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서로 한 짝입니다. 하루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때 예수님은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며, 둘째는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니라. 바로 이 두 가지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높이 계신 하나님입니다. 이 문구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높여야 함을 발견합니다. 주기도문에는 모두 6개의 간구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처음 나오는 3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 돌리는 마음도 없이 사람에게 보이려고만 기도했습니다. 자기들이 영광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잘못을 지적하시면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국이 낳은 명장 가운데 찰스 조지 고든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수단에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입니다. 그는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서 그 자신이 직접 군인들을 이끌고 싸움터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든 장군이 기거하는 막사 앞에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하얀 손수건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그 손수건이 걸려 있을 때에는 특별한 용무가 아닌 한 그의 막사 안으로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그 손수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고든 장군이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기념비를 제작하며 동상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반대로 만들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작위를 주고 포상금을 지급하려 했으나 그것마저 사양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그를 겨우 설득해서, 그의 업적을 새겨 넣은 자그마한 금메달 하나만 그에게 수여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유족들은 그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보여야 할 금메달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 금메달은 그가 애지중지하던 것이기에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그 금메달의 행방을 찾아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그 금메달을 녹여서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아끼던 것을 오늘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바쳤다."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삶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를 바랍니다.


2.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십계명의 내용 중 제5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드려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보면 "나"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로 쓰여 있을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모두 우리입니다. 나 개인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지 말고 이웃을 위한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옛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기도에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에 급급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어느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가 따로 서서 자신을 뽐내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런 기도여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나는 물론 언제나 우리여야 합니다. 이웃을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의 본받아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여 응답 받고 사랑 받는 기도의 사람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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