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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의노트 : 홍성건 목사님

에반젤(복음) 2020. 3. 1. 16:15



성령강의노트 : 홍성건 목사님

 

-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고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자칫 신앙생활이 경험에 의해 말씀으로 내려진 뿌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말씀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를 모른다. 은혜를 받은 사람 같으면서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방언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방언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이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교회에서는 성령세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세례가 바로 성령세례라고 생각한다. 성령세례는 거듭나는 것이다. 중생을 체험하는 것이다. 병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생명이 더 중요한 것이다. 딱딱해지고 성경에 있는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잘라버리고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자기편의주의로 적용하는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 감정적이든 지적이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DTS 훈련받는 것도 교회 이론을 정리하고 듣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사상도 아니요 이론도 아니다. 인정도 아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시고 말씀을 믿는자의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게 하시는 것이다.

- 실제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진리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성경말씀에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말씀을 참고하고 말씀의 역사가 자기 삶에 일어나는 사람을 DTS강사의 선임기준으로 한다. 유명하다는 사람을 강사의 선임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성경말씀에 몇가지 큰 제목들을 본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본다. 첫 번째 성령님은 누구신가? 둘째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셋째 성령세례는 무엇인가 넷째 성령충만함은 무엇인가 다섯째 성령세례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등이다.

- (1) 성령은 누구신가? 방언, 불, 뜨거움, 은사, 많다 적다로 표현, 불을 받으라, 내안에서 뜨거우면 성령이 계시는 것이고 안뜨거우면 성령이 안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성령을 받으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 우리가 집을 방문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들 다르다. 집주인이 문을 열지 않고 밖에서 말하고 가게 하는 사람, 문을 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가게 하는 사람, 안에 들어오게 하는 사람, 안에서 커피를 마시게하는 사람, 방하나를 보여주는 사람, 집전체를 개방시켜 놓고 열쇄를 맡겨놓고 마음대로 바꾸도록 허용하는 사람경우도 있다.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면 불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내마음의 방안에 중심이 되어 나의 삶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번성하고 변화시키고 묶인 것이 있으면 풀어주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신다. 내 삶 안에 예수님이 오시면 성령이 내 삶에 들어오시면 내 삶을 주관하신다. 기쁨과 능력의 삶을 살 수 있다. 성령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안에 들어 올 수 없다.


- 성령은 느낌이나 물질이 아니다. 인격체이다. 내 삶 전체를 성령님께서 붙잡을 수 있도록 내 자신을 굽히는 것이다. 성령을 이용해서 내가 무엇을 해보겠다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 병고침을 했다 하드라도 성령님께서 하신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거실 친구 식구 가정 모든 것이 성령님의 것으로 인정한다.

- 교만은 금물이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더 사용할 수 없다. 그분의 영광의 도구로 사용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한다.


- 성령은 인격체이다. 내가 그에게 사로잡힘을 받아야 한다.

요 14: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예수님과 늘 함께 계시던 제자들은 근심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낸다고 했다. 예수님이 보혜사이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는 것이 성령을 보낸다는 것이다.


- 보혜사의 원어가 다 다르다. 근접한 단어만 쁹는다. 카운셀러, 위로자, 돕는자, 가르치는자, 인도자, 격려자의 뜻으로 번역되었다.

- 또 다른 보혜사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야 보낼 수 있다. 내가 가는 것이 실상은 유익하다.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서 아버지께로 간다. 성령은 시공을 초월하여 임재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땅에 있으면 갈리리에는 없었다. 그러나 성령님은 동시에 어디에나 계신다.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내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가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령님이 계시는 지금이 더 유익하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라고 했다.

- 성령님은 내 삶에 전반적인 면을 주도하시는 분이시다. 방언, 은사, 뜨거움만이 성령이 아니다. 성령은 인격이시다.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만 인격체이다. 짐승은 인격체가 아니다.

고전 2: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첫째는 안다는 것은 인격체이다.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인격체이다.

- 두 번째는 성령께서는 의지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그 뜻대로 9가지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그분의 뜻대로 역사하신다. 생각하시는 분이다.

롬 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15: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엡 4: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셋째 생각하시는 분이다.

넷째 사랑을 하신다.

- 성령님은 he로 표현했다. it로 표현하지 않았다. 성경에서 성령은 인격체라는 표현이 그가 오시면이지 그것이 오면이 아니었다. 이것으로도 인격체라는 것이 증명된다.

다섯째 인도자이시다.

-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가운대로 인도하신다.

요 16: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공부 잘하고 교회생활 열심히 했다고 진리로 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며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요 14: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롬 8: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성령님은 ① 인도자, ② 교사, ③ 증보기도자이시다. 중보기도자는 두분이시다. 예수님과 성령님이시다. 이 두분은 병들어 눕지 않고 정확히 기도한다. 110,000명의 중보기도자 보다 더 능력과 힘이 있으신 분이다.


- 성령을 내안에 모시면 은혜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못받는 것은 기적이다.

- 세상사람은 염려를 가불해가면서 산다. 그러나 믿는 자는 감사를 가불해가면서 산다.

-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든든한 빽이 쳐저 있다.


④ 말씀하시는 성령님이시다.

행 13: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 말씀하시는 성령님이므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바나바와 사울을 세우라고 하셨다. 사람을 부리고 직분을 맡긴다.

- 교회를 투자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크게 잘못된 사람이다. 이 가운데 어떤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사람을 세우시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성령님께서 해 주십시요라고 맡겨야 한다. 내 뜻대로 하지마라.

- 홍성건 목사에게 줄서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홍성건 목사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 사람을 임용하기 때문이다. 홍성건은 급사에 불과하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성령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말씀에 업드려 말씀대로 하시도록 간구한다.

- 성가대가 노래만 잘 한다고 성가대가 아니다. 성령의 붙잡힘을 당하는 성가대가 되어야한다. 성령에 붙잡힘을 당하는 성가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요 16: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홍성건 목사는 한때는 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학 3학년 7월 3일에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그 전에는 성령께서 인도하시지 않았다. 내뜻대로 내힘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 열심히 모범적으로 전통과 타성에 젖어 해온 신앙생활이었다.

- 성령세례 받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주지 못했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절대로 자기는 주님을 따를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이것은 자기의 뜻이었지 성령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인하게 된 것이다.

-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전도를 하되 결과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힘입고 성령님이 하신 것으로 돌려야 한다. 자기 힘으로 한 것으로 교만을 부려서는 안된다.

-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고 뼈를 삭게 한다.

고후 7: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회개, 소망, 간절한 마음은 주님 앞에 나가기 위한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도록 기도한다. 모든 교회나 사회단체의 청년회가 변화되어야 한다. 세상적인 근심을 하지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근심해야 한다.


둘째 사람으로 하여금 거듭나게 한다.

요 3: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 성령께서 생명을 전해 주시옵소서. 내 설득력으로 하면 안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이다. 입술로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구원했다고 하지말고 성령님이 구원했다고 자랑하라. 그러면 성령님이 너를 계속 사용하실 것이다.


셋째 진리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 자기힘으로선 이 말씀을 알 수 없다. 성경책이 열리는 조건이 성령님이 여는 성경이 열리는 성경이다. 자기힘으로 성경책을 알려고 하면 닫힌 책이다. 열린책과 닫힌책 두가지가 있다.

- 홍성건 목사님은 대학3학년때 증보기도 묵상 등을 가르치면서 체플실에서 체플안하는 10시부터 12시까지 매일 2시간씩 성경과 노트를 가지고 공부한 것이 성경지식의 기틀을 잡았다고 말씀하셨다. 체플실에 앉으면 성령님께 묻는다. I am ready. Are you ready? 성령님은 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 성령님이 옆에 계시므로 주석성경이 필요없다. 성령님의 지도를 받으면 월사금이 없다.

- 총에 비유하면 총알은 말씀이고 공이를 치는 것은 성령이다.(강남야간책임간사님의 말씀)

- 사도행전 1장이 성령에 대해서 쓰여져 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신다.(강북야간 책임간사님의 말씀)

 

2000년 4월19일 (수) 성령강의 : 홍성건 목사님

- 독수리는 높이 나르므로 멀리 바라보고 시력이 3.0이상이고 힘있게 살아간다. 닭은 30센티 밖에 못보기 때문에 날개가 있어도 나르지 못하고 시력이 없어서 앞만 보고 멀리 볼 수 없다.

- 거울 앞에서 자기를 보고 너는 닭이 아니요 독수리이다. 라고 선포한다.

- 우리 안에 있는 보혜사 성령님은 독수리 같은 눈을 우리에게 준다.

- 성령께서는 인격이시다. 내가 그에게 붙잡힘바 되어야 한다. 그가 나를 사로잡고 나는 사로잡힘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태도이다.

* 성령께서 하시는 5가지 일

(1)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회개케 해서 돌이키게 하시는 일

(2) 사람을 거듭나게 하신다.

(3)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시고 가르치시는 분이다.

(4)성령은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나게 한다. 성장하게 한다.


- 예수를 믿고 예수를 영접하는 그 순간 영적으로 갖난아이라고 한다. 영적으로 성장해간다. 몸이 성장해 가듯이 영도 같이 성장해 간다.

- 영적 갖난아이시기, 어린이시기, 청소년시기, 청년시기, 장년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백향목은 끝없이 자라난다. 성령충만도 끝없이 자라나는 것이다.

-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단계는 4단계로 나눈다. ① 영적인 갖난아이, ② 영적인 유년시기, ③ 영적인 청년시기, ④ 영적인 아비시기이다.

① 영적인 갖난아이 : 소아과의사가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보살핀다. 만 2살전에 소아과의사가 가장 많이 신경쓴다. 왜냐하면 감염이 잘되고 약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거듭났을 때 그 시기를 잘 교육하고 영적 힘을 담아 주어야 한다. 이시기는 말씀을 사모하는 일을 한다.

② 영적인 유년시기 : 죄를 짖고 정죄감을 가진다. 죄의 문제를 해결 못하는 시기,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많은 사람이 이 단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죄를 해결하고 처리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③ 영적인 청년시기 : 아버지를 정확히 알게 될 때 율법주의를 떠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말씀의 능력을 알고 마귀와 대적한다. 귀신을 떠나라. 귀신이 청년시기를 인식한다. 귀신이 겁을 낸다. 이 단계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인 것이다.

④ 영적인 아비시기 : 노력과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돌배와 참배가 있다. 돌배는 수분도 없도 단맛도 없다. 참배는 크고 수분이 많고 달다. 어떤 집이 돌배 10그루가 있다. 옆집이 참배가 10그루가 있다. 돌배집이 거름도 주고 열심히 병충해 막고 투자를 많이 했다. 열매가 많이 맺혔다. 평생 그렇게 해도 돌배는 돌배일 뿐이다. 접을 붙여야 한다. 예수믿는 자가 착각하는 것이 자기는 돌배인데 참배인줄 착각하고 있다. 자기의 생각대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돌배일 뿐이다. 자기자신을 복종시켜서 성령중심의 삶을 살도록 변화시키는 접을 붙여야 한다.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사도바울은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내마음은 주의 내속에 선을 행하는 마음은 있다. 그러나 선을 행할 능력은 내안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수영을 배우는 자는 처음은 물에 가라앉아 버린다. 물에 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가라앉는다. 자기 힘을 빼고 물의 힘에 맡겨야 한다. 영적성장도 자기힘으로 하는 것을 그치고 성령께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

롬 7: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마음으로 원하는 하나님의 법을 죄의 법이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적인 삶이다. 사과는 만류인력의 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나르는 새는 나르므로 만류인력의 법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 참새를 나르게 하는 다른 법이 있다. 이것이 참새가 날라가는 법이 생명의 법이다. 참새가 나르는 법이 만류인력의 법(죄의 법)을 이긴다면 이것은 영적인 삶이다. 그러나 포수가 참새를 총소았을 때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적용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죽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법이 나에게 임할 때는 죄의 법은 물러가는 것이다.

롬 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영적성장의 출발은 내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령을 의지할 때 성령이 임한다. 내 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살아갈 만한 힘도 없습니다. 육신의 힘을 인정하지 아니할 때 성령님이 임재하신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 성령의 법안에서 살기를 원해야 한다. 간절히 소망할 때 성령세례를 주신다. 예수님 모습드러나게 하면 성령의 힘을 의지하게 된다.

- 엘리베이터타는 것, 차를 타는 것, 전철을 타는 것 나는 그 속에 거하면 역사하시고 움직여 이동하는 것은 엘리베이터 차 전철이 하듯이 우리가 성령님 안에 거하면 성령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성령세례 받기 전에는 완전무장한 보병이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는 잿트기의 조종사와 같다. 성령으로만 우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5) 우리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드리기만 하면 일꾼으로 살게 하도록 능력을 부어주시고 권능을 부어 주신다.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사마리아와 온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자기 손으로 돌을 치면 자기 손만 아프다. 성령의 힘으로 하면 다이너마이트로 돌을 깨뜨림과 같이 깨어진다.

행 1: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물세례가 곧 성령세례라고 전통교회에서는 잘못 생각했다. 그러나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분명히 다르다.

요 1: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요 1: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 1: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 성령세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이다. 좋은 집에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자이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 성령세례는 성령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이다.

눅 24: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 옷을 바꾸어 입듯이 능력을 바꾸어 입는 것이다. 세상의 능력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바꾸어 입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너무 사랑했다. 그러나 닭울기 전에 3번 부인한다고 했을 때 그는 죽어도 주님을 따른다고 했지만 그것은 자기자신의 생각이었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후부터는 베드로는 감옥에 가고 죽음을 당해도 예수님을 따랐다. 이것은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다.

*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차이점

고전 12: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성령은 우리를 마시는 것이다. 물세례는 물속에서 우리가 물을 마셔버리는 것이다. 물을 우리가 마셨다고 가정하면 물이 내 안으로 들어 온다. 내안에 물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성령이 나를 마시기 때문에 내가 성령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양자의 차이점이다.

요 7: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요 7: 41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 나를 믿는 자는 내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

겔 47: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겔 47: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겔 47: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겔 47: 4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겔 47: 5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① 물이 발목에 왔다. : 세상삶이 의미가 없다. 주님의 삶을 살도록 바뀌는 것이다. 우표수집취미가 재미없어지고 바둑이 재미가 없어진다. 성령세례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습관이 바뀐다. 주님과 살고 싶어 한다. 성령의 충만함의 1단계인 것이다. 예수안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단계이다. 성령세례는 한번만 오지만 성령충만은 계속 변하며 끊임없이 오신다.

② 물이 무릎에 왔다. : 성령의 충만함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이다. 은밀한 기도 신실한 기도 중보기도를 하는 삶을 사는 단계이다. 나에 대한 기도를 초월한 남을 위한 기도의 단계까지 가는 것이다.

③ 물이 허리에 왔다. :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능력을 말한다. 성령의 능력이 자연스럽고 성숙한 삶으로 바뀐다.

④ 물이 키를 넘겼다 : 성령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성령과 내가 하나가 된다. 100% 성령께 맡기는 삶이다.

- 성령이 깊어질수록 내 힘은 반감된다는 특징이 있다. 내 힘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할 때 약하고 약할 때 강해집니다. 라고 바울은 고백했다.

- 온도계와 온도조절계가 있다. 온도계가 올라가면 온도조절계는 그 온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내린다. 온도조절계는 변화와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온도계로 사는 사람은 성내면 같이 성낸다. 낙심하면 같이 낙심한다. 거러나 온도조절계는 낙심을 위로로 바꾼다. 절망이 소망으로, 아픔은 치료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겔 47: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겔 47: 7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겔 47: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겔 47: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 47: 10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겔 47: 11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겔 47: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성령의 능력으로 살겠습니다. 항복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진펄과 개펄은 소금땅이라 못쓴다. 영적으로는 무기력함만 있다. 온도계의 삶을 산다. 소금땅이 된다. 소금에 절린 조기는 절대 석지 않는다. 소금으로 쫄려 놓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은 것도 아닌 조기의 모습니다. 우리의 영적상태가 정지상태인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도록 해야 한다.

- 날마다 성령을 의지하면서 성령안에서 살면 성령은 놀랍게 역사하신다.

- 성령세례는 한번만 받는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계속해서 받으라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신다.

- 성령세례 받을 사람, 성령충만으로 받을 사람,

* 성령세례는 어떻게 받을 것인가? : are you ready?


READY

① R : Ready 준비 : 감사하지 않는 삶도 죄이다. 나쁜 일에도 감사해야 한다. 성경을 소홀히 한 것, 기도를 소홀히 한 것, 교만, 시기, 질투, 비방, 판단, 개으른 사람, 자주 화를 내는 사람,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 재정 잘못 사용하는 등 모든 것이 죄이다. 회개는 감정이 아니라 회개란 의지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이다.

② E : Expect(갈망) : 갈망해야 한다.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갈급함으로 갈망해야 한다.성령으로 살겠습니다. 이시간 성령을 주셔야 합니다. 받지 않으면 나는 살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파송된 어떤 장로님이 성령강의시간의 기도시간에 저는 방언해야 합니다. 하면서 홍성건목사님 앞으로 나왔다. 목사님이 하세요 하고 하니 방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간절히 갈망하고 소망하면 주께서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③ A : Ask(구하는 것) : 명백하게 구한다. 기도한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반드시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④ D : Drink(마신다) : 믿음으로 받아 들인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면 받는다는 것을 믿으라 그리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믿어야 역사하신다. 주시옵소서는 줄때까지 하는 것인데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하면 주신다. 그것을 얻은 줄을 아느니라.

- 주신줄을 믿고 감사하면 이루어진다.

요일 5: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⑤ Y : yield(순종) 방언의 은사를 주신다.

- 방언으로 세례를 받고 방언 기도를 한다. 말씀안에서 성령세례받는다. 손을 높이 들고 기도드립니다. 손을 높이 드는 것은 복종 항복을 의미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내생각 의지 짐 모두 내려 놓겠습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생명수가 흘러 가듯 흘러가야 합니다. 갈망하는 마음을 채워주시옵소서.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하며 성령을 구할 때 역사하시며 마음의 밭을 바꾸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00년 4월 20일 (목) 성령강의 : 홍성건 목사님

- 주님을 사랑합니까? 아멘 저도 사랑합니다. 아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이 진리인줄 믿습니다. 단지 하나의 지식을 공부하는 시간도 아니고 그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한번도 거짓말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 말씀하신 바에 대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밤에 그런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

- 초대교회때 성령께서 하신 것과 지금도 성령의 행하시는 원리는 같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때는 그렇게 행했구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성령께서 그렇게 행하고 계시는 구나 이렇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안에서 다섯번의 성령세례예가 나옵니다.(AD30년에서 60년 사이 30년 동안)

① 첫 번째 일어난 말씀(행2:1-4)

행 2: 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간절하고 갈급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구하면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언어를 주고 말하게 하는 자는 성령이시고 말하는 자는 사람이십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 모음과 자음을 주면서 말을 만들어서 어떤 언어를 형성시키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할 때 그저 가만 있으면 절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그저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처리하지 마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결정하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입을 벌리고 입술을 움직이고 혀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가면서 도움을 구할때에 그속에서 진리를 아는 한 사람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엄청난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격은 역사 예수님에 대한 고귀한 일들이 이사람을 통해서 행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행 8: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행 8: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행 8: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행 8: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흩어져 있다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빌립이 복음전파한 것을 checking할려는 것이 아니었고 성령받기를 기도하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거듭나기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들은 예수를 믿은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받는다는 말은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성령께서 내 삶에 모든 일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출발점으로 합니다. 이때까지 주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고 성령을 받은 사람을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성령세례받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성령받기를 위해 안수했다고 말했습니다.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라고 확실한 용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역에 유명한 마술장이가 예수를 믿고 이제 빌립을 따라 다니다가 이것을 보았습니다.

행 8: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행 8: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행 8: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주고 부탁하는 것을 보고 여기서 성령받는 것은 방언을 보고 성령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행 9: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 9: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 아나니아가 떠나 그집에 들어가서 안수하니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었다고 하는 표시로 후로 온 것입니다. 성령세례 받을 때에 병고침과 함께 일어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의 병이 낳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영적인 병이 낳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동안 주님없이 자기힘으로 혼자 살아가다 보니까 바삭 메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속에는 생명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힘을 얻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정도만 아니라 주의 나라를 사랑하는 찾는 일에 도구로 쓰임받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이런 여러 가지의 하나님의 치료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소성케 하시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홍성건목사님께서 주간반 간사모임에 기도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는데 간사님이 성령세례 받고 어머님의 병이 낳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누구도 방언으로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행 10: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행 10: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 성령께서 이 말씀을 하신데는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지만 여기서 배드로와 온 사람이 모두 여섯명이었는데 유대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오순절날 자기들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동일한 역사가 이들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두가지 사실 즉 이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보면서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 사도바울을 통해서 에배소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행19:1-5)

행 19: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 19: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행 19: 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행 19: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 19: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 19: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 2장 9장 10장 12장 19장에서 공통적으로 성령세례의 일반적인 현상이 방언이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같이 임하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평화롭게 임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에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께서는 그위에 부어주기 시작하시고 임하기 시작하십니다. 성령세례받고 성령충만함을 입어서 주를 섬길 수 있는 출발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전 14: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 특별히 방언에 대해서 설명드릴려고 하는 이유는 너무 많이 방언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방언이 은사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모든 은사가 다 중요한데 특별히 14장 전체가 방언과 예언을 따로 떼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상당히 왜곡되게 알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왜곡되게 이야기하는 것을 깨뜨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 방언의 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방언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방언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 가르치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하지도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14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함께 모여 공동기도를 할 때에 방언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개인기도에는 방언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방언은 본인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알아 듣는 것입니다.

- 사람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방언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고전 14: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 14: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 중보기도는 일방통행(one way)이 아니라 쌍방통행(two way)인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운데도 일방적으로 혼자서 한시간동안 내내 주 앞에 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릴 때에 예배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거나 말씀하시거나 역사하실 때 그 기회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공중예배 기도의 경우에는 반드시 통역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만마디 방언이 다섯마디 말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고전 14: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예언은 교회가 덕을 세웁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방언은 나 자신의 덕을 세웁니다. 건축한다는 말은 덕을 세우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든든히 서가라는 말은 예언으로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나 자신을 건축해 가는 것입니다.


-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방언자체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영적성장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방언받는 것이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언하는 것은 밥먹듯이 보통입니다. 방언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나를 든든히 서가게 하고 나를 건축하게 해서 내영의 힘을 얻게 만들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많이 해야 합니다. 말로 기도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말로 찬양하다가 방언으로 찬양하다가 이런 식으로 설거지하든지 운전하든지 걸어가든지 큰소리로 방언해야 합니다. 최소한 하루에 방언기도를 한시간 이상을 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선물을 더 많이 사용하셔야 합니다. 성령을 붙잡을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붙잡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자기힘으로 살아온 사람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이제는 더 이상 자기힘으로 하지 마시고 성령님께 맡기시고 성령안에 사시고 성령에 이끌림으로 사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 기도 : 오늘 저녁 우리안에 온세포세포안에 성령을 충만케 하시옵소서. 주님을 신뢰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 하신 것은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들으심이라. 또한 들으신줄 안즉 구한 것을 얻으신줄 앎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