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과 성령세례, 은사와 직임의 차이점
주홍근 목사
은진 교회 담임, 바울성경연구원 원장으로 15년간 교역자 성경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저서에 「바울 성서 연구」와 「게일의 생애와 사상」, 「금식」, 「쿰란의 노래」 등이 있다. 장신대 신대원 졸. 기독교교육학 박사.
성령충만과 성령세례, 은사와 직임에 관하여 말하려면 먼저 예수님께 임한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하여 살펴야 할 것이다.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모두 이기신 예수님은 역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로 가셨으며, 안식일 날 이곳 나사렛의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회중 앞에서 다음의 이사야서 대목을 찾아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대목을 읽으신 후 예수님은 회당에 모인 회중들에게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신다 <눅 4:18-21>. 이 장면은 광야에서 돌아온 예수님이 이제 막 그의 첫 공생애를 시작하는 장면의 기록이다. 이 장면의 전후맥락을 잘 살펴보자.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영적 권위를 부여받고 그 직임을 감당하게 된다. 즉 성령충만한 가운데 다양한 성령의 은사로써 복음사역을 능력 있게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의 직임(인류 구속사역)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절정을 이루고 재림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이 첫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위의 대목, 곧 “...내게 기름을 부으사...”을 회중들에게 읽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기름 부음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찾아보자.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은 왕과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 직능을 감당하던 자들이었는데 다윗, 엘리사, 아론(출 28:41, 30:30, 40:13, 시 89: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날부터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됐다(삼상 16:13). 특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성경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여호수아와 수룹바벨을 지칭하고 있으며, 후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를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아)’라고 칭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권위를 얻어 직분을 갖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을 말한다. 기름부음 받은 후에는 능력과 성령의 각양 은사들이 동반됐다. 예수 그리스도께는 이 모든 것이 충만하게 드러나서 메시아 사역들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였으며 그의 제자들과 성도에게서도 예수님께 임한 같은 성령의 충만함과 권위가 나타나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복음 사역들을 효과 있고, 책임 있게 잘 감당하게 된 것이다.
성령 세례
성령 세례는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베풀어진 성령 세례와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다락방 사건을 들 수 있다(막 1:8-11, 행 2:1-4; 행 1:5).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 물세례는 회개와 정결, 불세례는 심판, 성령 세례는 메시아의 구원과 영적 자세의 의미와 관련이 되어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 세례를 받게 됨으로써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교회사적으로는 성령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성령의 활동에 주목하게 만든 중요한 공적으로 20세기에 와서 나타난 ‘오순절 운동’을 들 수 있다. 성령 세례가 두드러지게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찰스 피니에 의해서였다. 피니는 그의 부흥운동에서 성령의 세례를 강조했으며, 그의 조직신학에 성령세례론을 체계화 시켰다. 오순절 운동가들은 피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오순절 신학의 토대가 된 피니의 조직신학은 오순절 성령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피니보다 더욱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복음주의자 토레이였다. 얼마 전 작고한 대천덕(아처 토레이) 신부의 친 조부인 토레이의 성령세례론은 오순절 성령세례론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임하게 되면 그 사람은 방언을 말하거나 예언을 말하거나(삼상 10:6),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쓰러지거나(왕상 8:11), 기적을 행하거나,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행하거나,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 등을 얻게 된다.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성령 세례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선포했다(행 2:38).
성령의 세례를 받은 교회는 복음전파는 물론, 포로 된 자와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눈 먼 자를 치유하고, 사탄을 결박하고,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귀신들을 내어 쫓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성령의 권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눅 11:20>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권위를 얻어 직분을 갖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고 말씀하셨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의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달려가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됐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 첫 순교자가 됐고, 빌립 집사는 성령이 충만하여 사마리아를 구원했으며(행 8:5),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재무장관을 구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을 받게 되면 적잖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성경은 성령세례를 받은 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실 때 보여주신 원칙이다. 세상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려는 것, 명예욕, 세상을 지배하려는 통치욕구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기름 붓듯 받으신 성령의 무한한 권위와 능력을 오직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만 사용하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도 잘 반영되어 있다. 바울은 언제나 질병(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이는 놀라운 성령의 권능을 행했던 바울에게 ‘영적 교만’의 함정을 파놓은 사단의 시험을 이길 하나님의 안정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성령 충만함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로 영접하면 그 사람의 인격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이전의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구조였다면, 이제 예수를 주로 받은 그의 내적 구조는 그리스도 중심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데, 그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게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이후에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내주하고 계시면 그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모시고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임재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뜻과 성령을 따르게 되어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했다. 이는 신자의 중심이 그리스도이며, 그의 역동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증거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고 계시고, 내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면 사람들은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사도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는 것과 같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이 하시는 일을 하게 되며, 성령은 그 사람 안과 밖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시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외적 능력과 내적 열매의 나타남은 개인의 인격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성령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추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능력들은 주님의 뜻과 일치하여 나타나므로 사역에 능력과 권위가 따르게 되고, 교회에 널리 알려져 존경을 받게 되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기반이 된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의 외형적 능력뿐 아니라 그 능력을 담고 있는 그의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나타난 외형적 능력들이나 열매들은 내적인 그리스도 중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랑의 실천에 뿌리를 둔 사역성과였음을 의심할 수 없다.
바울이 자기 내면에 열매를 맺으며 보여줄 수 있었던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성령의 열매들은 아홉 가지로 표현됐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 모든 열매들이 한 가지였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복수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내적인 배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강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영원한 아가페의 사랑과, 희락, 화평,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흘러나가는 오래 견뎌내는 참음, 남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과 경청의 자비, 기꺼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항상 나눌 수 있는 양선과,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신실하고 남에게도 거짓이 없는 충성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남의 권리를 옹호하며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성품으로서의 양선, 자신을 지나치지 않고 경계선을 지키며 능력을 나타내는 절제 등은 바울 자신을 아름답게 주의 광영이 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에 크나큰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도록 이끈 원동력이었다.
은사(charisma)Gift, Spiritual gift
신약 성경은 은사를 ‘카리스마’(단수 중성명사), 카리스마타(복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본래 의미는 ‘선물’ ‘은혜의 선물’, ‘성령의 선물’ 등이다. 신양 성경에 총 17회 나타나 있고, 때로는 ‘프뉴마티카’(성령의 선물, 성령의 은사: 고전 12:1, 14:1) 란 중성 복수명사로 사용됐고, 여성명사 ‘카리스’(은혜, 은사 벧전 4:10, 롬 12:6, 고전 1:4, 엡 4:7)나 중성명사 ‘프뉴마’(영, 성령 롬 8:23, 고후 1:22, 고후 5:5)도 성령의 은사의 의미로 사용됐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은사에 대한 사상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사로 언급된 것들로는 ‘각양 좋은 것’ 특히 ‘구원’(롬 5:15), ‘영생’(요 4:10, 롬 6:23), ‘성령’(행 2:38, 고전 12:4) 등이 있는데, 최고의 은사는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316, 롬 8:32). 하나님은 이 은사를 주셨으므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은혜’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움, 그리고 하나님의 풍요하심, 위대하심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풍성하심에서 오는 하나님이 그의 공동체인 교회에 주시는 선물로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는 선물이다. 성령의 은사는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에 제 기능과 역할을 효과 있게 담당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은사는 세 그룹으로 되어 있는데 그 첫째 그룹은 지식과 관련된 것으로 초자연적 지식과 지혜와 믿음이 관련되어 있다. 이 은사가 예수께서는 이 은사로써 나다나엘을 미리 아시고 그를 부르셨고,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성령의 외적 능력과 내적 열매의 나타남은 개인의 인격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성령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추게 된다.
두 번째 그룹은 예언과 방언과 방언 통역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는 언어의 영역에서 교회와 각 사람에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그의 선지자에게 알리시고 그 백성에게 드러내셨다. 그런데 이제는 성령을 중심에 모신 신도들에게 성령은 말씀하시며, 그의 지체들을 세우시고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비밀의 말씀들을 나타내셔서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세 번째 그룹은 초자연적인 은사를 행하는 것인데 이는 병 고침과 이적을 행하는 은사로서 믿음과 동반하여 나타나는 은사이다.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 내려오신 후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치료할 때에 믿음을 언급하셨고, 폭풍이 몰아치는 선상에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면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다.
이러한 능력들은 하나님 통치의 증거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께 나타난 은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에 유익을 주었던 것처럼,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유능하게 해준다. 그리스도인이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여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서로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작용함으로써 교회가 든든하게 서게 된다.
특히 은사는 전도의 구체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에 복음이 확산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은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향하게 하며,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총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성경에는 27가지의 각양 은사들이 언급돼 있는데 이 모든 은사들이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초대교회는 사랑을 따라 이 은사들을 행할 때 교회에 덕이 됨을 잘 알았고 이를 실천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이러한 은사들을 두려워하거나 꺼린 나머지 성령의 선물을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는 말씀처럼 세계 도처에서 성령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이 바로 은사를 가장 적절하고도 효과 있게 사용해야 할 시기라는 인식하에 은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잃어버린 교회의 은사와 능력들을 회복하려는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직임, 그리스도의 몸 세우는 것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직임을 주신다. 그리고 그 직임 위에 영적 권위와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신다.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자신이 감당해온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넘겨주기 위해서 그에게 안수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였고, 엘리야도 엘리사에게 안수하였고, 그의 두루마기를 엘리사에게 벗어주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엡 4:11) 그리고 감독, 장로, 집사 등 직임이 있었는데, 이 직무들에는 맡은 역할과 책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사들이 잘 나타났으며, 이 은사들은 각 사람의 직무에 권위와 능력이 효과 있게 나타남으로써 각각의 직임을 맡은 일군들은 유능한 사역자로 사역할 수 있었다. 각 사람은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사도들에게 안수를 받았고, 은사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함을 간구하였고, 성령 충만함은 그들이 받은 은사들에 적절한 능력들을 입혀 주었다. 특히 교회가 뚜렷하게 직무를 맡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은사대로 기능적으로 섬기며 교회를 도왔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직임은 받았으나 은사와 관련이 안 되어 있다든지, 은사가 나타나는데 그 은사를 소홀하게 여김으로써 기능적으로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약하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늘도 당신의 몸 된 교회를 굳게 세우기 위하여 성령의 뜻대로 가시적인 교회의 질서도 존중히 여기시면서, 각 사람을 세워서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각양 은사로써 주의 사역을 효과 있게 감당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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