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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자들의 특징 -스펄젼

에반젤(복음) 2020. 2. 29. 21:48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이것은 종교상 가장 중요한 질문의 하나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교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거듭났다고 생각합니다"하는 대답만으로는 안된다.
이름뿐인 교인들의 대다수는 성경적인 중생의 표나 증거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중생에 대한 성경의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요한일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죄의 습성을 멀리함)
첫째로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3:9, 5:18)했습니다.

거듭난 사람, 다시 말하면 중생한 사람은 죄를 짓던 못된 버릇을 끊어버리고
지난날에 행하던 죄악된 마음과 의지와 모든 나쁜 성벽(性癖)을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게 된다.

무슨 일에든지 죄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려 하며, 악을 행하고도 전연 마음 아프게 느끼지도 않던 지난 날,
마음 속에 일어나는 악과 더불어 고민하기는커녕 악을 벗으로 여겨왔던 과거의 모든 생활을
이제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죄를 미워하여 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죄에 대항하여 싸우며, 죄의 비참함을 깨달으며
그러한 죄의 멍에를 탄식하며 넘어질 때마다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심령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시는 죄를 즐거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장 미워하고 가증하게 여기기 때문에 다시는 그의 마음 속에 죄를 용납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다(요일 1:8).
죄를 무엇보다도 미워하며 심령으로부터의 간절한 소원이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뿐이다.
누구든지 그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나쁜 생각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일어나는 추하고 더러운 언행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야고보는 "우리는 다 실수가 많다"(약 3:2)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실수와 허물까지라도 다 원통하게 여겨 매일매일 참회하며,
언제나 하나님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전력을 기울여 그러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힘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
둘째로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
(요일 5:1)라고 말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구원하실 유일하신 구세주이심을 믿는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보내주신 거룩한 자이며
그분 외에 다른 구세주가 또 없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오직 무가치한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달으며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믿을만한 확실하고도 견고한 터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함 받은 것을 믿는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취하신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것을 확신하며 아무 두려움없이 죽음과 심판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공포와 의심을 가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전연 믿음이 없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구를 믿으려고 하느냐?"하고 반문해 보라.
그리고 또 "당신은 당신이 쌓은 선이나, 수양(修養)이나, 기도나, 교회를 봉사하는 일이나,
심지어 당신의 교회에 영생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자문 자답해 보라.

당신의 마음 속에 어떠한 대답이 떠오르는가 귀기울여 보라.

(의로운 생활을 힘씀)
셋째로 요한은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고 말했다.

거듭난 사람은 성도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일을 행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은 피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항상 바라보고 그의 가신 발자취를 따라 살고자 하며,
그의 명령대로 행하므로 그리스도의 친구임을 나타내려고 힘쓴다.
그렇다고하여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떠나지 않는 악을 인하여 탄식하며,
자기 마음 속에 다른 한 지배자가 있어서 은혜의 길을 가로 막으며,
하나님의 품에서 멀리 떠나게 하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그러나 마음 속에 거하는 악을 비록 완전히 빼어버리지 못하였을지라도
그는 결코 악의 세력에 본심으로 동조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기가 신자인지 아닌지를 전혀 분간할 수 없을만큼
의심하는 자리에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는 곧 용기를 회복하여 죤 뉴톤이 말한 것과 같이
"오늘 나의 나된 것은 내게 무슨 자격이 있어 된 것도 아니요,
내가 원하여서나 애씀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다"하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함)
넷째로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 3:14)하고 말했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모든 사람들을 한결같이 진실된 사랑으로 사랑한다.
특히 한 마음을 가진 믿음의 형제들에게는 더욱 뜨거운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말할 수 없이 악한 죄인에게라도
사랑으로 대하며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한편 자기와 함께 한 멍에 아래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는 더욱 열렬한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골육의 친척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
오히려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교제하기를 더 즐겨한다.

그들은 서로 한 집안 식구와 같이 여기며, 같은 적을 대항하여 싸우는 전우가 되며,
또한 같은 차에 동승한 반려자가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돕는다.
그들은 비록 사회적 지위나, 부나, 나라와 얼굴 빛이 서로 다를지라도
다 한 아버지의 아들과 딸들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이김)
다섯째로 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고 말했다.

거듭난 사람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세상의 표준에 의하여 하지 않는다.
그는 굳게 서서, 두려움 없이, 세상의 온갖 풍조에 휩쓸려 흘러 내려가지 않으며
남들이 무어라 한들 자기의 목표를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행복을 줄 듯이 속삭이는 주위의 모든 식물 중에서 향락을 구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허무하며 무익하며 무가치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즐거워하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그는 이미 모든 일의 경중을 다 판단해 놓았기 때문에
남에게 비난을 받든지 칭찬을 받든지 그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첫째 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며 이 목적을 향하여 전진할 뿐이다.

(정결한 생활을 계속함)
여섯째로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자기를 지키매"(요 5:18)하고 말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의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조심한다.
그래서 그는 죄에 물들지 않으려고 힘 쓸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할 바 모든 일에 정결한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려깊게 친구를 사귄다.
그는 악한 사귐이 마음을 더럽게 한다는 것과,
질병이 사람들에게 건강보다 해를 끼치듯이 악한 것들은 유익하기보다 손해를 끼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는 모든 시간을 아껴 쓸 줄 알며, 시간을 선용하려고 힘쓴다.

그는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군인과 같이 무장(武裝)을 늦추지 않고
유혹의 함정에 빠질까 늘 경계한다.
그리고 그는 항상 조심하며, 겸손하며, 기도하기를 힘쓴다.

중생의 표현: 이상은 거듭난 사람들에게 따르는 여섯가지 표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거듭난 사람들에게서 표현될 때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표현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조금 약하게 나타나며
어떤 사람에게서는 힘있게 나타나서 누가 보나 확실하고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표현된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또 어떤 것들은 저런 사람들에게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여하튼 이 여섯가지 표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에게 뚜렷이 나타나는 특징임에는 틀림없다.

끝으로 한마디로 결론을 내린다면
이 여섯가지 표를 가진 사람만이 중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누구든지 중생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러한 중생의 표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거듭났는가?
누구든지 이 물음에 확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내일의 양식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는,
깊은 궁핍 속에서 지내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고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한 한 그리스도인 사나이를 본 적이 있다.
만일 그가 인디안 추장만큼 부자였더라도 그에게는 약간의 근심거리가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아무 부족함이 없었으니 바로 그에게는 전혀 가난하지 않고
그의 근심을 언제나 무덤 속으로 가져가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이웃이 있었던 것이다.

- 스펄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