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표로 보는 교회사
2. 초대 기독교의 상징 | |
상징 | 해설 |
ALPHA-OMEGA |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뜻함 |
ANCHOR(닻) | 신앙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상징물 |
BREAD AND WINE | 성찬식-그리스도의 희생(죽으심)을 기념함 |
CHI-RHO | 그리스어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첫 두 글자 |
CROSS(십자가) | 그리스도의 죽으심 |
DOVE(비둘기) | 그리스도의 수세(受洗)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 |
FIRE(불) |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
FISH(물고기) | 그리스어 단어 ICHTHUS-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머리말 글자로 예수께서 5천명을 먹이신 이적사건과 사람을 낚는 어부를 뜻하는 상징적 의미 |
LAMB(양) | 그리스도의 (참다운) 자기희생 |
SHEPHERD(목자) |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분임을 가리킴 |
SHIP(선박) | 교회(노아의 방주)를 가리킴 |
VINE(포도나무) |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과의 연합도미이나 성찬식에서의 포도주를 뜻함 |
5. 3세기 교부 | ||||
이름 | 연대 | 목회 장소 | 대표 저서 | 주요 내용 |
이레니우스 | 2세기 후반 | 서머나 | 폴리갑에게 공부한 그는 선교사요 변증가였으며 영지주의에 강력한 반대를 표방하였고 전천년설을 옹호했으며 리용의 주교로 그곳에서 순교했다. | |
클레멘트 | 150-215년경 | 알렉산드리아 | 철학 수업을 쌓았던 그는 성년에 이르러 개종했으며 로고스이론을 강조했고 성서를 은유적 해석방법으로 접근했다. 고전적인 그리스도인 찬양시인 '선한목자'를 저술했다. | |
터툴리안 | 160-220년경 | 카르타고 | 로마군대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그는 중년 시기에 몬타누스파로 개종했으며 그의 업적은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시켰다는 데에 있다. | |
히폴리투스 | 170-236년경 | 로마 | 이레니우스에게서 공부한 그는 알레고리적인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했기 때문에 당대 로마의 주교들에게 배척받았다. 후에 사르디니아지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사망했다. | |
율리우스 | 160-240년경 | 팔레스틴 | 오리겐에서 공부한 그는 천지창조로부터 서기 221년까지 역사적인 자료연구서를 발간했다. | |
오리겐 | 185-254년경 | 알렉산드리아 | 202년에 순교한 레오니다스의 아들. 클레멘트에게서 공부했다. 203년 클레멘트 사후 교리문답학교 책임자가 되었으며 성서의 알레고리적 해석에 주목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다. 극도의 수도생활을 했고 교회내 반대세력을 피해 망명생활한 후 로마인에 의해 고문 끝에 순교했다. | |
씨프리안 | 200-258년경 | 카르타고 | 수사학을 공부한 그는 245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247년부터 카르타고의 주교가 됐다. 터툴리안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감독의 권위를 강조했다. 박해시 배교자들의 문제에 엄격한 입장을 취하였고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시 순교했다. | |
그레고리 | 213-270년경 | 팔레스틴 소아시아 | 오리겐에게 공부한 후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만능학자'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신 가이사랴 지방의 주교직을 맡았다. |
7. 신약성경 정경화에 논란이 된 책 | |||
문제의 책 | 수용 입장 | 거부 입장 | 결과 |
히브리서 | 동방교회에서는 바울의 저서로 높이 평가함 | 서방교회에서는 바울 저작성을 의심함 | 수용됨 |
야고보서 | 동방교회에서 온전한 저서로 인정함 | 서방교회에서 저작성 시비가 대두됨 | 수용됨 |
베드로후서 | 베드로의 저서로 인정함 | 본문 2장과 유다서의 내용문제로 저자에 이의 제기됨 | 수용됨 |
요한 2, 3서 | 요한의 저서로 인정함 | 초대교회의 문서로 인용에 문제시됨 | 수용됨 |
유다서 | 초대교회의 문서로 인용됨 | 저자에 이의가 제기됨 | 수용됨 |
요한계시록 |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 요한의 저서로 인정함 | 천년왕국설을 반대하는 유세비우스에 의해 제기됨 | 수용됨 |
헤르마스의 목자서 | 신으로부터 온 계시를 담고 있는 유익한 교훈서임 | 비사도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 후대의 저서임 | 거부됨 |
디다케 | 순수한 사도적 전승을 담은 기록임 | 사도적 기원이 불분명한 후대의 저서임 | 거부됨 |
베드로묵시록 | 베드로 저적성에 기인하며 요한계시록과 유사함 | 본문의 출처 근거가 의심스러움 | 거부됨 |
8. 니케아회의 이전의 이단종파 | |||
이단 | 지도자 | 역사적 사실 | 가르침의 특징 |
에비온파 | 1세기 후반 팔레스틴 지방에서 발생한 후 소아시아에 전파되었고 대부분 유대인계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었으며 히브리적인 마태복음을 중시했다. | 구원에 필요한 부분인 모세율법의 보편성을 가르쳤으며 바울에 대한 반감을 지니며 예수는 메시아지만 단지 세례시 성령이 임한 인간일 뿐이라 했다. 특히 천년왕국의 임박을 기대한다. | |
노스틱파 | 마술사 시몬 (1세기) | 특히 그리스 플라톤 철학에 기초하여 동방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일반대중에 대한 포교는 미흡했고 교회지도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제국 전체에 걸쳐 다양한 종교운동형태를 보여주었으며 이들의 가르침 때문에 교회는 신앙과 신약성서 정경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교회는 진리의 보고로서 사도의 계승원칙을 강조하게 되었다. | 그들은 독특하고도 탁월한 '영지'(gnosis)를 지닌 자로서 신성이 어떤 '영적인' 개인들의 몸 안에 주입되었다고 믿는다. 물질은 악으로 규정하며 영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ale는 철저한 이원론에 근거(Pleroma). 성(性)과 결혼에 대한 극단적 금욕주의를 취하여 유대교와 구약성서를 거부하며 성서를 알레고리(은유)적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육체는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믿는다. |
몬타누스파 | 몬타누스 (2세기) | 브루기아 지방에서 발생하여 후에 로마와 북아프리카에 널리 성행했다. | 금욕적이며 천년왕국을 고대했고 정통 기독교 교리에 비교적 충실했으나 그들 자신을 성령의 대변자로 간주하며 예언자적 계시를 믿고 방언을 하며 신자들의 만인사제직을 주장. 어떤 류의 오락 및 여흥도 배격하고 오로지 순교자의 길을 추구했다. |
마니교파 | 마니 (215-277) | 페르시아에서 발생, 배화교의 영향으로 성장했고 마니는 그의 육체를 벗고 환생했으며 그의 시체는 페르시아 거리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 창조의 이원론적(빛과 어두움) 견해를 지니며 그리스도는 빛으로, 사단은 어둠으로 묘사한다. |
9. 로마제국의 10대 기독교 박해사건 | |||
연도 | 황제 | 박해의 유형 및 범위 | 대표적인 순교자 |
64 | 네로 | 로마와 근교에서 박해를 가함. | 바울, 베드로 |
90년경 | 도미티아누스 |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일시적이고도 산발적인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의 황제숭배 거부로 비롯되었다. | 로마의 클레멘트 |
98-117 | 트라야누스 | 점차 박해가 강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비애국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발견 즉시 처형되었다. | 이그나티우스 |
117-138 | 하드리아누스 | 황제 숭배 계속.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하는 자는 처벌. | 텔레스포루스 |
161-180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기독교를 사상적으로 배격한 스토아주의자. 그리스도인들을 자연재해의 장본인으로 규정. | 순교자 저스틴 |
202-211 | 셉티무스 세베루스 | 기독교로의 개종을 금지. | 레오니다스 |
235-236 | 트라키아의 막시미누스 | 기독교 성직자 처단. 황제가 암살한 전임황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 | 우르술라 |
249-251 | 데키우스 | 최초로 제국 전체에 박해의 손길을 펼친 그는 황제숭배의 향기로운 제물을 요구했고 기독교의 완전한 파멸과 더불어 이교신앙으로 복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 파비아누스 |
257-260 | 발레리아누스 |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하며 그들의 공민권을 박탈했다. | 오리겐 |
303-311 |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 가장 혹독한 박해로서 교회는 파괴되었고 성서는 불태워졌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박탈위기에 처했으며 로마신들에 대한 숭배가 강요되었다. | 마우리티우스 |
10. 니케아회의 이후의 교부들 | ||||
이름 | 연도 | 목회지 | 대표 저서 | 주요 사실 |
락탄티우스 | 240년경-320년 | 이탈리아 | 그의 아버지는 이교도였으며 성년기에 개종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 아들의 가정교사로 활동했다. | |
유세비우스 | 263-339년경 | 가이사랴 | 교회사의 아버지. 가이사랴의 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그곳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후 안디옥의 감독 요청을 사양했다. | |
힐라리 | 291년경-371년 | 포아티에 | 말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아리안주의에 서방측 반대론자로 활동. 350년 포아티에 지역 감독을 맡았다. | |
아다나시우스 | 296년경-373년 | 알렉산드리아 | 정통 삼위일체론자의 대표적인 변증가. 알렉산더 주교의 비서 일을 보면서 니케아회의에 참석했다. 328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 후 다섯 차례의 망명생활과 철저한 금욕생활을 했다. | |
바질 | 329년경-379년 | 카파도키아 |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여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금욕생활로 일관. 카파도키아 지역 가이사랴의 감독이 된 후 아리안주의와 논쟁을 벌였으며 나병환자 진료소를 세웠다. | |
닛사의 그레고리 | 330-394년경 | 카파도키아 | 바질의 동생으로 오리겐의 영향으로 은유론자가 되면서 결혼 후에도 철저한 금욕생활을 추구했다. 372년 닛사의 감독이 되었고 아리안주의와 싸웠으며 삼위일체론 가운데 본체와 위격의 구분을 최초로 주장했으며 콘스탄티노플회의에 참석했다. | |
낫시안수스의 | 330-390년경 | 카파도키아 콘스탄티노플 | 낫시안수스 감독의 아들. 바질과 함께 그리스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저한 금욕주의자. 374년 낫시안수스의 감독이 된 후에 381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일도 보았으나 곧 사임. 아리안주의에 반대한 당대의 웅변가요 시인. | |
암브로시우스 | 340년경-397년 | 밀라노 | 고올(프랑스)지방 총독의 아들. 관료가 되려고 준비 중에 북이탈리아 집정관이 됨. 374년 밀라노의 감독을 맡았으며 그 후 금욕생활을 표방했으며 아리안파와 논쟁을 벌였고 데살로니가인을 학살하는 황제 데오도시우스에 맞서 싸웠다. 그의 설교는 어거스틴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 |
요한 크리소스톰 | 374년경-407년 |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 별명은 '달변가'. 고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였으며 그의 설교는 윤리적인 실천에 큰 비중을 두었고 로마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수사학을 공부했으며 수도생활을 자청했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됐으나 여황제 에우독시아에 의해 추방되어 망명지에서 여생을 마쳤다. | |
제롬 | 345년경-420년 | 로마 안디옥 베들레헴 |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수사학을 배웠고 수도원운동의 주창자로 대부분의 생애를 사막에서 운둔생활로 보냈으며 당대에 히브리어에 능통한 극소수의 사람으로서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의 비서 일을 담당했다. 그의 영향으로 수많은 로마여성들이 금욕주의에 호응했으며 그의 후반 생애의 35년간은 베들레헴에서 보냈고 그의 불후의 역작인 라틴어성서(Vulgate)는 가톨릭 공식성서로 인정되었다. | |
몹수에스티아의 | 350년경-428년 | 안디옥 몹수에스티아 | 안디옥 신학파의 대부로 크리소스톰의 친구였던 그는 금욕생활을 청산하고 결혼했고 392년 몹수에스티아의 감독이 된 후 성서해석을 위해 문법적, 역사적 자료의 활용을 주장했다. 성서의 은유적 해석에 반대했고 네스토리우스(경교)의 지도자가 된 후 제2차 콘스탄티노플회의로 파문당했다. | |
어거스틴 | 354-430 | 북아프리카 | 그리스도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에게서 출생한 그는 카르타고에서 공부한 후 젊은 시절 마니교에 심취하였으나 386년 개종하여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에게 강화를 받았다. 395년 히포의 감독이 된 후 수도원생활을 동경했다. 마니교, 도나투스파, 펠라기안주의자들을 배격했으며 기독교 역사철학에 초석을 마련했고 그의 저서는 거의 중세 신학논쟁의 모든 부분에서 폭넓게 수용되었다. | |
씨릴 | 376-444 | 알렉산드리아 |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의 거장으로 412년경 감독직에 추대되었고 그를 적대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표리부동하게 처신하였으며 크리소스톰, 데오도르, 네스토리우스를 배척하였고 마리아 숭배를 옹호하였다. |
11. 초대교회(1~5세기) 감독제도의 발전 | ||
시기 | 출처 | 내용 설명 |
1세기 | 신약성서 | 모든 교회는 장로(감독)와 집사들은 사도들의 관리 아래 있었다. |
2세기 초엽 | 이그나티우스 | 감독직과 장로직은 구분되었고 각 교구들은 감독, 장로, 집사들에 의해 처리되었다. |
2세기 말엽 | 이레니우스 | 일정 지역의 교회들을 관할하는 지방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로 간주되었다. |
3세기 중엽 | 씨프리안 | 목회직분과 제사직분이 구분되어 장로는 제사(속죄)하는 사제로 여겼으며 로마주교의 우위성이 공인되었다. |
4세기 초엽 | 니케아회의 | 대주교는 그들 교구의 규모에 따라 관례상 지방주교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
4세기 말엽 | 콘스탄티노플회의 |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의 주교들을 총대주교(대감독)로 추대했으며 로마대주교 궐위시 그 권한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대행케 되었다. |
5세기 중엽 | 레오 1세 | 로마 대주교(교황)의 우위권 천명-레오 1세는 베드로 사도의 계승 원칙을 내세워 모든 교회는 로마교황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역설하였다. |
12. 로마대감독(대주교)이 교황이 된 요소 | |
요소 | 결과 |
신약성서 | 예수가 사도 베드로에게 모든 교회의 권한을 일임했다는 사실을 교황은 주장하고 있다. 이 내용은 레오 1세에 의해 처음 채택되었다. |
사도 계승권 |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사도 베드로의 최고 권위가 로마주교들에게 계승되는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 | 순교한 성자들을 존경하는 상황에서 로마는 두 사도의 순교지였다는 측면이 적극 고려되었고 또한 네로의 대박해시 로마교회는 굳건한 신앙을 견지했다. |
로마의 인구 | 도시와 교회의 규모가 주교의 권한과 관계가 있었다. |
제국의 수도 | 밀라노칙령 이후 대체로 황제들은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로마주교들의 자문을 구하게 되었다. |
언어 | 로마주교가 주창한 서방세계의 라틴어는 신학 논쟁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반면에 라틴어에 미숙한 동방기독교는 불분명한 의미만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
장소 | 다섯 지역의 대주교 도시 가운데 서방에서는 로마시민이 해당되었고 로마의 주교는 다른 지역의 대주교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
선교사 파송 | 로마교황 그레고리1세는 로마에 대해 우호적인 이방 민족들에게 전도사업을 펼쳤으며 반면, 동방교황들은 페르시아 민족과 회교도들에 대한 선교활동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
이민족의 침입 | 이민족의 침입 후 서구세계의 몰락과정에서 제국 내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한 대다수 세력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통합되었다. |
이슬람의 정복 | 대주교 관구지역인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함락과 지속적인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이슬람군의 공격이 로마교황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
13. 고대교회의 주요 교리논쟁 | ||||
논쟁점 | 이단파 지도자 | 정통파 지도자 | 회의 | 결정된 사항 |
삼위일체론 | 아리우스 | 아다나시우스 | 니케아(325) | 그리스도는 '성부와 본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성과 본체성과 동등성을 지닌다.' |
기독론 | 아폴리나리우스 | 알렉산드리아의 씨릴 | 콘스탄티노플(381) | 그리스도는 두 가지 본성을 지닌 인격체로서 순수성, 불변성, 동일성을 지닌 분리할 수 없는 존재다. |
도나티스트 운동 | 도나투스 | 케실리안 | 아를(314)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
펠라기안주의 | 펠라기우스 | 힙포의 어거스틴 | 에베소(431) | 반(半)어거스틴주의 : 성만찬의 은총은 사람들의 원죄를 씻겨줄 수 있다. |
14.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 이단 | ||
이단학설 | 대표적인 변증가 | 주장하는 내용의 논점 |
모나키안주의(양자설) |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 | 예수는 수세(水洗)시 그리스도가 되었으며 죽은 후에는 성부에 의해 양자가 되었다. |
사벨리안주의 | 시벨리우스 |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며 세 가지 방편으로 자신을 계시한다. |
아리안주의 | 아리우스 | 그리스도는 최초의 피조물이다. |
반(半)아리안주의 | 앙키라의 바질 | 그리스도는 성부와 본체이나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 |
마케도니안주의 | 마케도니우스 | 성령은 하나의 피조물이다. |
15. 고대교회의 기독론 이단 | ||
이단학설 | 대표적인 변증가 | 주장하는 내용의 논점 |
아폴리나리안주의 | 아폴리나리우스 | 그리스도는 인간정신을 지니지 않았으며 대신 로고스(Logos)을 지니고 있다. |
네스토리안주의 | 네스토리우스 | 로고스는 두 본질(God-Man)이 하나의 인격과 실체 안에 동시에 내주한다기보다는 그 안에 분명한 두 존재 또는 인격이 있으며, 그 두 인격은 본질적 연합이 아니라 단지 도덕적 연합에 불과하다. |
유티키안주의 | 유티케스 |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은 로고스에 의해 흡수되었다. |
단성론 | 세베루스 | 그리스도는 하나의 본성을 지녔다(인격을 지니지 않는 그리스도의 인간본성을 수용하기란 곤란하다.) |
단의론 | 아라비아의 데오도르 | 그리스도는 인간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신의(神意)만을 지니고 있다. |
16. 펠라기우스 논쟁 | ||
입장 | 대표적인 변증가 | 주장하는 내용의 논점 |
펠라기안주의 | 펠라기우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으므로 그 자신이 구원에 필요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
어거스틴주의 | 힘포의 어거스틴 | 인간은 죄 가운데 죽으며 구원은 전적으로 신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그 대상은 신이 선택한다. |
반(半) 펠라기안주의 | 요한 카시안 | 신의 구원은 은총과 인간 의지의 협력 작업이며 구원에 있어서도 인간은 그 주도권을 행사해야만 한다. |
반(半) 어거스틴주의 | 아를의 케사리우스 | 신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구원에 필요한 것을 인간이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
출처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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