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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의 원리

에반젤(복음) 2020. 2. 25. 12:19



신약교회의 원리  



어떤 교회에서 누구와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성경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이 하나님의 교회를 정의하고 있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의 바른 결론에 이를 수 없다.
오순절날 교회가 생긴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세기를 거쳐오는 동안에 교회에 대한 하나님 말씀의 명확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통, 혁신, 관습 및 이상(理想)의 형태로 나타난 여러가지 인간적인 그릇된 생각의 혼합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옴으로 인해서 더러워졌다.
역사는 반복하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말이다. 주 예수께서는 당시에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 자들을 이와 같은 이유로 책망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고 책망하시고 또 그 들은 "그들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책망하셨다(막 7:6∼13).
그러므로 먼저 어떤 것이 교회가 아닌가를 깨닫는다면 교회에 관한 그릇된 생각의 잔재들을 다소나마 제거한 후에 어떤 것이 참 교회인가를 알아보자.
신약성경에는 오로지 두가지 형태의 교회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유의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첫째는, 오순절날부터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시에 있을 교회의 휴거(携擧) 때까지의 중생한 모든 신자들로 구성되는 총체적 형태의 교회이다.
둘째는 예배나 기도나 성경공부나 상호의 덕 세움을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어느 일정한 지역에 있는 신자들로 구성된 지역 교회이다.
이제 이 문제를 다음 주제로 나누어 생각하여 보자.

첫째, 교회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
둘째,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셋째, 지역 교회


* 교회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을 살펴보자.

1.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흔히 큰 건물을 가리키며 자기는 "제일 큰 교회에 다닌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 교회는 저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집회를 가지기 위한 건물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 몇 구절만 찾아서 우리의 상식으로 비추어 보아도 쉽게 증명될 수 있다.
사도행전 8:3에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바울이 건물을 허물었다는 말이겠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곳에 지역 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11:22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건물이 귀가 있어 소문을 들었다는 말이겠는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한 무리의 신자들이 들었다는 말이다. 계시 록 2:7,11,17… 등의 말씀도 찾아보라.
사도행전 14:27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모았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벽돌과 돌을 모아 가지고 건물을 세웠다는 말이겠는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함께 모았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15:3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그들이 건물의 전송을 받았다는 말이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지역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떠나 보냈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18:22에 보면 바울이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바울이 건물의 안부를 물었다는 것이겠는가? 아니면 주의 자녀들의 안부를 물었다는 것이겠는가?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라"고 권고하였다(행 20:28). 이것은 건물 이 양 떼들과 같이 목자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이겠는가?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는 어느 개인의 집 안에 세워진 건물이었겠는가? 골로새서 4:15, 고린도전서 16:19 과 빌레몬서 2절을 찾아보라.
에베소서 5:25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건물을 사랑하셔서 그 건물에게 자신을 주셨다는 말이겠는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신자 전체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신약에 묘사된 교회는 그것이 총체적 형태이든 지역적 형태이든 사람이 세운 어떠한 건물을 가리킨 적이 없고 단순히 남녀 그리스도인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교회는 교파나 종교단체가 아니다.
예를 들면,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 침례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등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장로교 교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래도 교회라면 장감성(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를 일컫는 말) 중의 하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거듭난 사람은 다 천주교인인가? 장로교인인가? 교회라면 성결교, 감리교, 장로교인가? 생각해 보자. 단연코 아니다. 우리는 이 여러 교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참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이 많이 있음을 기쁨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 어느 교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그가 성경이 거듭난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참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3. 교회는 직장이 아니다.
교회는 특별한 신학 훈련을 받고 사람의 성직 수여식을 거쳐 "목사"라고 부름을 받는 특수한 계급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한 가정의 식구들을 가리켜서 누구는 군인이고, 누구는 공무원이고 또 누구는 목사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유명한 목사의 이름을 들며 ○ ○ ○ 목사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일이 최우선이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4. 교회는 친목단체나 협회가 아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친목단체나 특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가입하는 협회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교회는 그저 생명이 없는 친목단체나 협회가 아니라 생명의 연합체이다. 거듭난 신자는 이 유기체에 성령님에 의해서 연합된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유기체는, 말하자면 사람의 몸처럼 한 생명으로 연결된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가 우리의 마음 속에 새기고자 하시는 진리를 설명하시려고 비유를 사용하신다.
아마 교회의 가장 뚜렷한 비유는 여러 가지 지체를 가진 사람의 몸, 그것일 것이다. 에베소서 1:22,23, 2:16, 3:6, 고린도전서 12:7∼27을 찾아 보라. 어떻게 해서 눈, 귀, 코, 입, 손, 발 등등과 같은 우리 몸의 여러가지 지체들이 자기 들을 연합시킬, "자기의 마음에 드는 몸"을 찾으려고 공간을 떠돌아 다녔겠는가? 아니다. 이 지체들은 신비하고도 기적적인 출생의 과정에 의해서 우리 몸에 연합된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고전 12:13).
성경은,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 곧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마음 속에 모실 때에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능력에 의해서 교회에 연합된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자 개개 인은 또한 하늘에 계신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모든 신자와도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유일하게 머리가 되어 계시고, 모든 신자가 지체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 곧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위대한 진리이다.

*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이제 우리는 유일한 자료의 근원이 되는 신약성경에 묘사된 참 교회는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교회란 말의 성경적 정의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였다. 그리고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이다. 이 단어는 "…으로부터" 혹은 "…으로부터 나온"이란 뜻을 가진 "에크"라는 단어와 "부름"이란 뜻을 가진 "칼레오"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이로써 "교회"라는 근본 뜻은 분명하다. 교회란 곧 "부름을 받아 나온 무리"를 말한다.
"에클레시아"란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도 300년 동안이나 자주 쓰이던 말이다. 이 말은 어느 시(市)의 시민들 가운데서 그 시의 공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아 나온 의원들의 모임을 묘사하는데 쓰였다(행 19:30). 이와 같이 이 단어는 기독교에서 기원된 것도 아니며 또 어떤 신비한 뜻을 지닌 낱말도 아니다.
우리 말의 "교회"는 "에클레시아"에 합당한 번역이 아니다. 이 말을 "모임"이라고 번역했더라면 훨씬 더 좋을 뻔 했다. 총체적 형태의 "교회"라는 말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모심으로 성령님의 중생의 능력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서로에게 연합되어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하고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신자의 총체(總體)를 뜻한다.

2.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계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계시를 주목하여 보자.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자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3∼18).

이 성경 말씀은 대단히 중대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교회에 대해서 언급된 첫 말씀이며 또 이 말씀은 다른 이가 아닌 교회의 구매자시요, 창조자시요, 머리이신 이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의 세 가지의 사실들을 생각하여 보자.

(1) 그리스도께서 하신 질문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직접 자신이 인자라고 주장하신 첫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간접적으로 "인자"라는 사람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묘사에 의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태복음 8:20, 9:6, 10: 16, 12:8,32,40, 13:37,41을 찾아보라. 그러나 이제 그분은 조용하고도 단도직입적으로 자기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엄청난 주장을 하신다.


(2) 베드로의 대답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이 고백에는 인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두개의 신성한 칭호가 포함되어 있다. 이 고백의 근원과 복됨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목하여 보라.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3)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서 나타내신 계시(18절)

교회의 터―"이 반석 위에"
그리스도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셨을 때 이 '반석'은 '베드로'라는 로마 카톨릭의 주장은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뜻하신 것이 베드로였다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 다. "내가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베드로 자신도 그의 서신서에서 반석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수정과 같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전서 2:4∼10, 5:11을 읽어보라. 그리고 에베소서 2:20, 고린도전서 3:11과 비교하여 보라.

교회의 건축자―"세우리니"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는 일을 제한된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절대 특권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미래 시상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영광을 받아 교회의 머리가 되실 때까지는 존재할 수가 없었기 때문 이다.

교회의 소유권―"내 교회"
그리스도께서만이 "내 교회"라는 이 세 글자를 사용하실 권리가 있으시다. 교회는 어떤 유명한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하여 그분이 사신 그분의 소유물이다(엡 1:14). 그러므로 교회 활동에 대한 모든 명령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아야만 한다.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교회의 자재(資材)
교회의 자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룩해진, 곧 하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나온 모든 신자의 무리들이다.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고전 1:2).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믿는 자들"(행 5:14), "제자들"(행 9:1), "그리스도인들"(행 11:26), "성도들"(엡 1:1), "형제들"(약 2:1), "제사장들"(벧전 2:5,9)이라 부르며, 이들이 바로 교회 구성원들이다.


교회의 영구성―"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람은 죽을 때 보이는 세계에서 사라진다. 그리스도인인 경우 그의 영은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더욱 좋은 것이다(빌 1:23, 고후 5:6∼8).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토록 지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회는 신자들이 죽는다고 해서 그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항상 더 늘어 만 가는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 없다.

3. 교회의 형성(행 2∼3장).
사도행전 1∼2장은 역사상 가장 큰 사건들 가운데 하나를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마태복음 16:18에 기록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예언의 성취이다. 그분이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교회가 이제 실현된 것이다.

(1) 교회 형성을 위한 준비(행 1:4∼15)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전에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오셔서 세례를 주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고 명하셨다. 사도행전 1:4, 요한복음 7:37∼39, 14:16∼18, 16:7∼15을 찾아보라. 성령님의 강림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입히어 그들로 범세계적인 증인이 되게 함이었다(행 1:8).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분의 재림의 약속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행 1:9∼11). 약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였다(행 1:14,15).

(2) 교회의 형성(행 2:1∼4)
창세 전부터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것이 이제 형성되었다(엡 3:9). 성령님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사 그들을 한 몸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가 되셨고 각 신자는 그 몸에 지체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걸작인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오순절날은 교회가 출생한 날이다. 제자들이 이제 한 몸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각 신자 안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힘을 주시므로 그리스도를 그처럼 힘있게 증거하여 3,000명의 심령들이 구원함을 받아 교회에 더해지게 되었다(행 2:41).
이 120명의 제자들이 어떻게 한 몸을 이루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쓰여지고 있는 좋은 예화가 하나 있다. 서로 모양과 크기가 다른 120개의 금덩이를 납작하고 커다란 냄비 위에 서로 맞대어 놓았다고 상상하여 보자. 그리고 거기에 아주 강한 전류가 흐르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커다란 금덩이로 융합하여 보자. 그래도 그 금덩이 하나 하나의 모양과 크기에는 변동이 오지 않는다.
이와 같이 120명의 제자들도 성령님에 의해서 융합되어 한 몸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제자 각자의 개성과 독특한 인격에는 변동이 오지 않았다. 베드로는 여전히 베드로였고 요한도 여전히 요한이었다. 그러나 제자 각자는 이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서로에게 연합되어 유기적 단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3) 교회 형성의 결과는 교회였다.
신자 각자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오순절날 형성된 몸에 연합함으로써 성경에 이른바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고전 12:13).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신자 각자는 이 위대한 진리를 굳게 잡으라! 그리고 신자 각자는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의 이 일체성(一體性)을 외적으로 나타냄에 있어 이것을 방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굳게 결심하라. 거듭난 신자 개개인은 그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전세계에 있는 모든 신자와 하나가 되어 있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 각자는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 4:3). 그리할 때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라고 한 성경이 선언하는 바 그 진리를 즐기게 될 것이다.

4. 교회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
신약성경에는 교회에 관해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다양한 명칭들을 상고해 보는 것은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1) 한 무리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한 우리는 유대 민족이요 한 무리는 교회이다. 교회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자비로운 돌보심을 받으며 그들은 절대적으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른다.

(2) 하나님의 밭
"…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고전 3:9).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려는 목적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어야 하는 밭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밭의 주인은 농부이신 하나님이시다(요 15:1 참조).

(3) 하나님의 집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하나님은 설계도에 의해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산 돌을 하나 하나 쌓아가고 계신다. 하나님이 이처럼 전심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집의 재료로 우리의 생명이 하나의 산 돌로 드려졌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4) 하나님의 성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성전이란 말만 들어도 우리는 예배를 연상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교회의 지체들, 참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을 통해서만 예배를 받으신다.


(5)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하나님은 구약시대처럼 사람이 손으로 만든 성막에 거하시지 않는다(행 17:24 참고). 이제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 가운데 거하신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 안에 거하시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거룩해야 한다.

(6)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써 주님의 어떠하심을 세상에 드러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주님이 교회를 통해 자신의 어떠하심을 세상에 드러낸다는 사실은 우리를 얼마나 감격스럽게 하는가! 성도 개개인이 이 몸의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부르신 교회를 어찌 사람의 사상이나 국적이나 교회의 예식이나 지도자 중심으로 나눌 수 있겠는가(고전 1:10∼17 참조).

(7) 한 새 사람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5).
교회 안에서는 인종의 차별이 없어졌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교회는 세상의 어떤 단체 가 아닌 하나님으로 인해 새로 피조된 유기체이다.

(8) 그리스도의 신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신부는 신랑의 애정의 대상인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며 교회를 그곳으로 영접해 들이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을 향해 신부로서 순결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만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해야 함이 마땅하다.


(9) 하나님의 권속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딤전 3:15).
사람의 집은 사람이 거하는 곳이다. 집은 집 주인의 특성을 지니며 집 주인의 성품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그림이 예술가의 집을 장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야 한다. 그 가족의 일원이 된 우리는 아버지를 닮아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어떤 품위를 지녀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10) 진리의 기둥과 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기둥은 건물을 지지해주며 터는 건물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 또한 기둥은 벽보판 구실도 한다. 교회도 이와 같다. 이처럼 교회는 진리를 사수하고 선포하려는 경륜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해 야 한다. 교회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해야 하며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함을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그분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엡 3:8,9).

* 교회 안에서의 교제

이제 우리는 지역교회 안에서의 교제에 관해 살펴보자. "지역교회"란, 어느 일정한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나 찬송이나 성경공부나 상호 덕을 세움을 목적으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 모임을 뜻한다.
어린 성도가 당면하는 가장 중대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이 교회 안에서의 교제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그의 결 정이 그의 전 생애를 흥하거나 망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각자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통한 영적 조명이 필요한 것이다. 사도행전 17:11,12, 야고보서 1:5∼7을 찾아보라.

1. 교회 안에서의 교제의 필요성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한 시간에 모여서 서로의 교제를 즐기며, 주님 앞에서 즐거워하며 또 함께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일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절기를 정해 놓으셨다. 신명기 12:5∼7의 말씀도 찾아 비교하여 보라. 신약성경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비슷한 것을 마련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그러한 교제에서 받는 상호의 위로와 격려와 힘과 덕 세움이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를 아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주님은 떡과 잔을 통한 주의 만찬을 세우심으로 이 함께 모이는 모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주셨다. 주님은 그분의 몸을 나타내는 떡과,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나타내는 포도주를 통해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셨다. 후에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이 예식에 관한 특별한 계시를 주셨다. 누가복음 22:19,20을 찾아보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1:23∼26과 대조하여 보라.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은 초기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지역적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말씀을 공부하며, 주의 만찬을 시행하며 또 복음을 증거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사도행전 2:41∼47, 4:23,32, 5:13,14, 8:4, 11:19∼26, 13:1∼4, 14:26,27, 16:4,5, 20:1, 20:17∼38, 고린도전서 12:1∼14 등을 찾아 읽어보라.
신약의 서신서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성도의 모임들에게 보낸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글들이다. 그러므로 이 서신서들 안에는 진귀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필요한 말씀이 가득 들어 있다 (딤후 3:16,17).
이 서신서들이 쓰여진 목적은 이 여러 모임들로 하여금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신령한 은사를 발휘하도록 격려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또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서 마침내 주님의 일에 필요한 일꾼이 되게 함이었다.

2.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위한 신약성경의 모형
사도행전과 서신서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위해 주신 성경적 모형이 나타나 있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구원의 도리를 변 경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이 교회 안에서의 교제의 모형도 변경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형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희생을 요구하든 또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한다.


3. 교회 안에서의 교제의 여러 가지 원칙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위한 교회 선택에 대한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신자들이 갈 수 있었던 곳이란 단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 선택의 문제를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오로지 오늘날의 기독교계의 무질서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린 성도가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위해 도움이 될 몇 가지의 성경적 원칙을 생각하여 보자.

(1)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적으로 건전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본이 되는 큰 진리들이 굳게 수호되고 성실하게 가르쳐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약성경에 분명하게 가르쳐지고 있는 이 몇 가지의 기본 진리들을 들어보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취급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절대 권위를 가지고 있다(딤후 3:15∼17).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및 인성―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 및 영원한 신성(神性)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동등하며 영원하다. 그분은 동정녀 탄생에 의해서 육신을 입으셨으며, 그분 안에 절대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동시에 보유하신다(딤전 3:16, 골 1:13∼20, 요 1:1∼4).

그리스도의 제물의 필요성 및 영원한 유효성―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의 승리의 부활과 영화만이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되는 유일한 기초가 되는 것을 믿어야 한다(롬 3:24∼26, 고전 15:1∼8, 요 3:14∼18).


인간의 타락한 본성―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상태에 있으며 또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요 3:1∼7, 롬 3:9∼24).

은혜로 받는 구원―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하나님의 아들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믿음과 또 그분을 생활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만이 필요하다(엡 2:1∼10, 행 20:20,21, 롬 4:1∼8, 11:6, 10:8∼13).

성령님의 신성 및 인격성―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죄인에게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하며 그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리스도의 소유로 영원히 인치는 일을하신다(요 16:13∼15, 엡 1:13,14, 4:30, 고전 6:19∼21).

믿지 않는 자들의 영원한 멸망―하나님의 아들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등한히 하거나 거절하거나 멸시하므로 회개하지 않고 죽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영원한 형벌이 있다(요 3:36, 막 9:43∼48, 요 12:47,48, 계 20: 11∼15).

이상의 사실들이 기본 진리들이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 11:2)라고 하였다. 이상의 기본 진리를 부정하는 단체가 있다면 거기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자리가 못된다(고후 6:14∼18).


(2)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약성경에 주어진 모형의 구비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어 계시고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있는 모든 신자의 일체성의 진리를 믿어야 하며 또 그 진리에 준하여 행동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을 신앙과 교리의 제반 문제에 대한 최후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그 무엇도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를 점유하거나 공유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신 어떠한 신령한 은사라도 혹 그것이 복음 전하는 자이든 목자나 교사이든 기타 다른 은사이든 그 은사를 사용하며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직분이 한 사람에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에베소서 4:1∼16을 찾아보라.
각 하나님의 교회는 그 모임의 경건한 질서의 유지와 징계에 대해서 그 모임의 머리되신 주 예수님께 독립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적으로 건전하며, 도덕적으로 깨끗한 생활을 하며, 또 그들과 함께 모이고자 원하는 모든 신자들을 그들의 모임 친교에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두 예식을 실행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후에 받는 물 세례, 곧 침례이다. 둘째는 매주일 준행하는 성찬 예식이다. 이 두가지 예식은 주님께서 명하셨고, 사도들이 준행했으며, 서신서에 교훈되어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임을 나타내야 한다. 주님의 만찬을 통해 주님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있어서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적인 방법으로 복음 활동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 복음 활동을 돕기 위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돈을 모금해서는 안된다.


(3) 하나님의 교회는 영적으로 경건하고 신령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상에 말한 두 조건을 다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이 세번째 조건을 구비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영적으로 경건하고 신령해야 한다"는 말은 그 모임의 모든 집회가 신령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적으로 모인 모든 모임들이 다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래와 같은 몇가지의 사실들이 갖추어질 때 신령한 분위기는 조성될 것이다.
주 예수님께 대한 진실하고 열렬한 사랑이 있을 때―이것이야 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그들로 주님께 참된 기도와 찬미와 경배를 올릴 수 있게 하여 줄 것이다.
성경 지식의 분량에 관계없이 구주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에 대한 피차간의 뜨거운 사랑이 있을 때―이 사랑은 서로를 정중하게 돌아보며, 친절하며, 접대하며, 관대하며, 하나님의 양무리를 경건하게 돌아보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마음에 겸손이 있을 때―이것은 영적 자존심, 종교적 속물근성, 및 바리새인적 외식이 떠날 때 피어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 보다 진리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태도나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깊이 성별된 생활에 들어 갔다는 태도나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너보다는 낫다'는 태도는 다 바리새적인 외식이다.
모든 성도와의 관계에 있어 관대한 마음과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건전한 생활을 하며 만찬에 참여하기 원하는 모든 성도를 만찬에 환영하는 즐거운 마음이 있을 때―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환영을 받는다.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있을 때―이것은 요식화된 형식, 비판적인 마음, 시기하는 태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한 비난적 눈초리 및 다투기 좋아하는 마음으로 표현되는 율법주의의 마르게 하는 병이 떠날 때 보여질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영적 생활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위기는 어린 성도가 있을 자리가 못된다.

4.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처신
어린 성도가 이상에 말씀드린 것과 아주 비슷한 신자들의 모임을 발견하였을 때에 그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1) 그는 그 모임의 장로들을 찾아가 그가 그 모임의 교제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해야 한다. 그러면 장로들은 그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간증을 듣고자 할 것이며, 그가 어떻게 교회의 교제에 참여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듣고자 기대할 것이다. 장로들은 대개 그가 물에 잠기는 세례를 받았는지 혹은 받기를 원하는지를 물을 것이다.
(2) 그가 그 모임의 교제에 영접되면 그는 떡을 떼며 주님을 기억하는 예배 시간이나 기도집회나 성경 공부 모임 이나 성인 주일학교 시간이나 복음 전도집회와 같은 그 모임의 모든 집회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중요시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그에게는 다소의 노력과 시간과 정력과 금전의 희생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은 그의 생활에 주어지는 신령한 축복으로 풍성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는 그에게는 모임이 필요하고 모임은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상고하고 기도생활을 하며,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을 하며, 또한 경건한 생활을 하는 것을 통해서 그의 영적 생활을 향상시키도록 힘써야 한다.

(4)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가 어떤 것이든 그것을 불일 듯 하게 하여 사용해야 한다. 또한 그는 그 은사를 사용해서 그 모임의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 신자는 각기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다. 그러나 그 은사가 주님을 섬기는데 쓰여져야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딤후 1:6). 은사는 어디까지나 성도를 섬기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5) 그는 그 모임의 복음 및 외지 선교활동을 위해 규칙적으로, 은밀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후하게 물질을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는 그의 수입에서 일정한 양을 떼어 놓아야만 한다. 이것이 대단히 중대한 일인 것은 관대한 마음과 신령한 생활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신앙심이 깊은 체 하면서도 드리는 일에 아주 인색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두 장(章)에 걸쳐 이 성도 섬기는 은혜에 관한 것을 가르치셨다(고후 8∼9장).

주님께서 이 글을 읽는 성도 각자 각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여러 가지 숭고한 특권들을 더 깨닫게 하고 따라서 주 예수께와 그분의 교회를 향한 여러가지 사명을 완수하게 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니라"(딤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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