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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교회론과 한국교회

에반젤(복음) 2020. 2. 23. 21:20



칼빈의 교회론과 한국교회


 



이정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한국 신학이 지나치게 서구 의존적이라는 지적을 자주 받는데, 이는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한국에 수많은 신학교와 신학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여전히 외국학자나 외국학파의 영향 하에 있으며 창조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칼빈 출생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추모 열기는 세계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제자 존 녹스가 창설한 장로교회중에서도 한국장로교회는 칼빈을 가장 존경하고 아버지처럼 의존하는듯하다. 한국교회가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면 칼빈에게서 도움과 지도를 받으려고 한다. 이 점에서도 한국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의존성을 보인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가 위기나 문제를 만났을 때 칼빈의 교회관으로부터 그 해답을 얻으려했던 논문들을 수집하여 분석하고, 과연 그들이 어떠한 해답을 얻었으며 그러한 해석이 정당하였는지를 검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칼빈의 교회론을 연구한 논문들 중에서 한국교회에의 적용보다는 단순히 그 주제 자체를 연구한 논문들은 제외하고, 한국교회의 특별한 문제나 이슈와 관련된 논문들만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는데, 그 논문들을 연대순으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1934 채필근, 칼빈의 교회관과 교회정책

1960 허순길, 칼빈과 에큐메니즘

1962 조동진, 교회의 분리와 통일에 대한 칼빈의 해석

1963 한철하, 완전론자와 분리주의자에 대한 칼빈의 논박

1966 홍반식, 칼빈주의와 교회합동운동

1974 박윤선, 칼빈주의 교회론

1975 김의환, 칼빈주의 교회관

1986 박건택, 칼빈의 교회관을 통해 본 한국교회

1990 정원태, 칼빈의 교회관과 개혁과제

1995 유태주, 칼빈의 참 교회와 거짓 교회 비교론과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

1999 이형기, 에큐메니칼 운동에 나타난 교회의 목적에 비추어 본 칼빈의 직제론

2002 오덕교, 칼빈의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분열운동: 신사참배를 중심으로

2003 최덕성, 칼빈의 교회관과 신사참배 거부운동

2004 최 영, 교회개혁모델로서의 칼빈의 교회론

 

이 논문들의 대다수는 교단분리의 정당성을 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그 외에는 한국교회의 세속화,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직제론과 같은 문제들을 개혁하기 위한 모델로서 칼빈의 교회관이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본 논문은 주제별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1. 신사참배

 

고신의 최덕성은 “칼빈의 교회관과 신사참배 거부운동” 제하의 논문에서 칼빈의 교회관을 근거로 일제시대에 시작된 한상동 계열의 교회분리운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한상동은 일제말기의 한국교회가 모두 배도하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이탈하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 기존의 노회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노회들을 조직하는 한국교회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최덕성은 “칼빈의 교회관에 비추어보면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이 일제말기의 한국교회의 현장을 목격했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주한 외국 선교사들조차 탈퇴해버린 교단, 우상숭배를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벨리알(천조대신)을 동시에 섬기던 교회, 배교하고 이단으로 전락한 종교집단이 아니던가? 칼빈의 교회관에 따르면 그 “교회”로부터 떠나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일이었다. 떠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며, 유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왜 그는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를 그토록 악평하였는가? 이에 대해 그는 다섯 가지 이유를 열거하였다. 첫째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를 파괴하고 신도 교리를 가르쳤다. 둘째 신도 침례를 받은 목사가 성례를 행함으로써 성례를 오염시켰다. 셋째 신도의 천조대신과 여호와 하나님을 동시에 예배함으로써 예배를 오염시켰다. 넷째 바른 말씀의 선포를 방해하고 고발하였다. 다섯째 총회장을 비롯한 목회자들이 배교성명서에 서명하고 신도 사제로부터 계를 받았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일제말기의 모든 한국교회에서 일어났다면, 구태여 칼빈의 교회관에 호소하지 않고서도 그런 교회로부터 떠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덕성의 정죄는 한국교회사 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물론 일제말기의 신사참배 요구가 집요하였으며 많은 한국교회가 그로 인해 타협한 것이 사실이지만, 심지어 같은 고신의 이상규도 그와 견해를 달리 하면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주기철 목사가 한상동 목사의 분리주의적 행동에 동조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최덕성은 동일한 비판을 가한 김명혁에 대해서도 “그는 「기독교강요」 제4권 1장만 읽었지 ‘분리하지 않는 죄’를 책망한 제2장은 읽어보지 않은 듯하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면, 그가 한상동 목사의 한국교회 정죄와 독선적 분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4권 2장은 어떤 경우에 분리를 정당화 혹은 심지어 의무화하는가? 칼빈은 제4권 1장에서 모든 종류의 분리를 정죄하고 어떤 경우에도 교회에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다음, 2장에서는 로마교회로부터의 분리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최고 대적자”이며, 따라서 그가 있는 곳은 “사탄의 작전실(Satan's cabal)”이다. 로마교회는 말씀과 성례가 철저히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수많은 비행에 치명적인 참여를 하지 않고 철수하는 데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스스로 자취를 감출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리를 정당화하였다.

한편, 2장은 동시에 로마교회도 교회임을 인정하고 있다. 칼빈은 먼저 “교회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설명하였다.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집행이라는 교회의 양대 징표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교회는 완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다. 이러한 외적 징표는 “동일한 종교의 띠”로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요소가 유지되는 한 분리는 부당하다. 그러나 이 둘이 다 사라지면 “사람의 목이 찔리거나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때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교회의 죽음도 확실히 발생한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로마교회와의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두 가지 방편을 사용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첫째는 성찬이 오염된 반면 세례를 유지하셨고, 둘째는 다른 흔적들을 보존하여 “자기의 교회가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기초 자체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파괴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는 로마교회를 가리켜 “반쯤 부서진 교회”라고 보았다. 따라서 칼빈은 2장을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는 결코 교황의 독재 하에 있었던 교회들이 교회됨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로부터의 여하한 분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칼빈이 아직도 교회로 남아있는 로마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정당화하였는가?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로 칼빈은 이단과 분리자를 구별한 어거스틴의 정의를 수용하였다. 로마교회는 개신교회를 이단(heresy)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단순한 분리자(schismatic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칼빈은 개신교회가 먼저 분리한 것이 아니라 로마교회가 개신교회를 먼저 정죄하고 축출하였기 때문에 그 책임이 개신교회에 있지 않으며, “우리를 면죄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고 변명하였다. 그는 “종교개혁의 필요성” 제하의 논문에서도 개신교회의 분리가 능동적 분리가 아니라 수동적 분리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일제말기의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로 인하여 완전히 죽어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교회를 일으켜야 할 상황이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과연 최덕성의 다섯 가지 정죄가 사실이었는지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한국교회사적 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칼빈의 교회관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논의하려고 한다. 먼저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하면 분리하여 새로운 교회를 일으켜야 하는가? 칼빈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를 들어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는 유대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기며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는 등 가증한 죄악을 범할 때에도 선지자들은 이를 책망하고 개혁하려고 하였을 뿐 타락한 교회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는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교회 안에 우상을 만들고 섬긴 것도 아니었고 일제의 압박에 의해 강제로 요구한 신도의 기본적인 물품을 비치하고 교회가 폐쇄되지 않도록 일제가 요구한 순서를 형식적으로 예배에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주일 성경말씀이 전파되었고 성례가 정당하게 시행되었다. 칼빈은 완전히 순수하지 않아도 외적으로 기본만 유지되면 교회이며, 오히려 이와 같은 “교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경고하였다. 최덕성은 신도침례를 받은 목사가 세례를 베품으로써 성례가 오염되었다고 주장하였지만, 칼빈은 “부정한 사람이 성례를 베푼다고 하여... 그 성례가 덜 순수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교회당마다 ‘가미다마’라고 하는 귀신단지를 모셔놓고 일본귀신을 예배했다고 비판하였으나, 칼빈은 그런 것이 제거되기를 기다리면서 권면하고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실로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이 일제로부터 독립되자 강제로 비치한 물건들은 모두 철수되었다.

오히려 당시의 한국교회를 모두 정죄하고 분리를 시도한 집단에게 적용해야 될 칼빈의 권면은 1장 16절이 가장 적합하다.

 

비록 이런 유혹이 흔히 의에 대한 그릇된 열정 때문에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이 과도한 면밀함이 참된 거룩함과 열정보다 그릇된 성결감과 교만과 오만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담하게 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선동하고 기준 보유자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를 무시하고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선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행동한다.

 

합신의 오덕교도 “한국장로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분열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일제말기의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로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부패한 교회로부터 떠나지 않고 교회를 개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칼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부패한 교회라도 떠나지 말고 (그 안에서) 개혁할 것을 가르쳤다”고 말하면서 신사참배로 인한 분열이 칼빈의 견해와 반하는 행동임을 지적하였다.

 

2. 합동과 통합 교단의 분열

 

1959년 한국교회 최대의 교단 분열이 발생하였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통합측은 칼빈의 교회관을 의존하여 자파의 분열을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보수측은 칼빈에 호소하였다. 조동진은 “교회의 분리와 통일에 대한 칼빈의 해석” 제하의 논문에서 분열 초기 합동측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며 어렵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노선을 지키자고 호소하였다. 그는 칼빈을 인용하여 “참된 가견적 교회는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극히 소수의 집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진정한 교회의 소수를 그리스도께서 친히 지키심으로 유지되고 계속된다”고 격려하였다. 또한 “변절한 교회는 점점 부유해지고 위세를 떨치는 반면” 순수한 교회는 적지만 “그 본래의 명맥을 고난 중에서 이어간다”고 비교하였다. 이는 분열 초기 통합과 합동의 교세와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으며, 이는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과도 일치하지만, 항상 수적 열세나 어려운 형편에 있는 집단이 더 정당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는 논문 제목과는 달리 분열의 이유나 정당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칼빈의 견해에 “통일(unity)과 순결(purity)간의 긴장”이 있기 때문에 “그가 교회의 통일과 분리에 대하여 취한 태도와 해석의 어떠한 한계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결론 내렸다. 실로 칼빈이 개신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 포용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로마교회에 대해서는 준열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서로 모순되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교황이나 로마교회에 대하여 개신교회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이 이를 반영한다.

한편, 분열을 정당화하는 상황에서 한철하는 「기독교강요」 제4권 1장 12-16장을 번역하여 “완전론자와 분리주의자에 대한 칼빈의 논박”이라는 제목으로 「신학지남」에 발표하였다. 이는 아마도 본 주제에 대하여 직접적인 논의를 피하고 간접적으로 교단 분열이 칼빈에 반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합동은 통합으로부터, 통합은 합동으로부터 분리한 이유로 제시되는 어떠한 것도 칼빈의 분리 금지조항에 들어있어서 분열을 정당화할 수 없다. 칼빈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나 비본질적인 교리상의 차이나 의견차이가 교회분열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였으며, 설령 분리한다 하더라도 “사악한 자들과의 친밀한 동지관계로부터 떠나는 것과 그들을 미워하면서 교회의 교제를 거부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구별하였다. 그러나 통합과 합동은 정당화될 수 없는 분리 이후에 반목하면서 교제를 거부함으로써 칼빈으로부터 이탈하였다. T. H. L. Parker가 본 대로, “연합의 개념은 칼빈의 교회관의 가장 심장부에 있다.” 이 글을 발표한 한철하는 얼마 후에 총신에서 장신으로 옮겨갔다.

당시 분열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되고 있으나, 보수측은 그것이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보수 신학자들은 칼빈에 호소하여 칼빈도 WCC를 반대했을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허순길은 “칼빈과 에큐메니칼이즘”에서 칼빈이 교회 통일의 사상을 기초하였고 자신이 제네바에서 추방당했을 때에도 자기 지지자들에게 그 교회에서 떠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교회연합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칼빈을 “현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라고 내세우지만,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WCC를 “그의 모든 힘을 기울여 반대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칼빈이 다른 면에서는 아량이 크고 유달리 관대했지만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앞에서는 추호도 양보할 줄 몰랐는데, WCC는 자유주의에게 “합법적 좌석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의환도 “칼빈주의 교회관”에서 칼빈은 먼저 교회의 본질을 중시하여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집중하였고 그런 다음에 연합을 생각하였는데, WCC는 자유주의의 만유구원론을 추종하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파괴하는 “비성경적 연합운동”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WCC가 기독교의 본질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의 추종집단인가? WCC는 칼빈이 참 교회의 두 가지 요건으로 제시한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시행을 불가능하게 하는가?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에서 WCC에 가입한 교단들의 실제를 볼 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WCC 가입이 칼빈의 기준에서 볼 때 교회 분열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그리고 WCC는 교회도 교단도 교파도 아니며 단지 가입교단들의 연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가입교단들의 입장이다. WCC가 세계 다양한 교단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으로 만인구원론이나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한 적도 없으며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적도 없다. 더욱이 WCC는 가입교단들에게 강제로 교리나 성례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분명히 칼빈은 교회분리보다는 교회연합을 강조하였고, 교리상의 차이가 존재하여도 루터나 멜랑크톤과의 연합을 희망하였으며, “만일 내가 도움이 된다면 나는 바다를 열 번 건너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Otto Weber의 말대로, “칼빈은 에큐메니칼한 신학자였으며, 그는 교회의 재연합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실제로 교회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교회론적 구조를 준비하였다. 칼빈은 본질적 교리와 비본질적 교리를 구별하고 다양한 아디아포라를 인정함으로써 모든 개신교회가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참된 교리의 모든 조항들이 같은 종류에 속하지 않는다. 어떤 교리는 모든 사람이 우리 종교의 정당한 원리로 확인하고 의문될 수 없는 것으로 당연히 알아야 하는 필수적인 교리들이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그리스도는 신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와 같은 것들이다. 한편, 다른 조항의 교리들은 교회들 간에 논란이 있지만 신앙의 통일성을 파괴하지는 않는 교리들이다... 이 비본질적 사안들에 대한 의견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분열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홍반식은 “칼빈주의와 교회합동운동”에서 비록 칼빈이 비본질적 이유로 분리하는 것을 금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교단 분리가 필요한 때가 있다는 현실론을 주장하였다:

 

교파의 존재가 범죄 행위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교파 형성의 동기와 성격에 따라서 범죄 행위로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범죄 행위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구원에 관계된 큰 교리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교리적 의견 차이로써 항상 논쟁만을 거듭하기보다는 따로이 모여 예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론은 분명히 칼빈을 이탈한 자의적 주장이며, 한국교회에서 보는 대로 수많은 교단분열과 교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분열논리라는 점에서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분열되어버린 교회나 교단에 대하여 칼빈은 아마도 서로 미워하지 말고 점차 재결합을 추구하라고 권면할 것이다.

 

3. 합신 분열

 

1981년 합신 교단의 분열은 신학교의 분열이 교단의 분열을 결과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신학교 교수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합신의 지도자였던 박윤선은 분열 이전에 쓴 “칼빈주의 교회론”에서 교권주의자들의 존재를 경고하면서 교회개혁을 암시하였다: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교권주의자가 어느 교파에서든지 기회만 있으면 일어나서 진리보다 권리를 위하여 싸우는 불행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교단만이 참 교회라고 생각하고 다른 교단을 무시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 교리를 위반하는 것으로,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다른 교파들과도 어느 정도 합작하여 복음 전할 길을 겸손히 모색함이 필요하다”고 온건한 입장을 피력하였다.

한편, 박건택은 합신 개교 6주년 기념대회에서 발표한 “칼빈의 교회관을 통해 본 한국교회” 제하의 논문에서 교단분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칼빈의 종교개혁의 성공은 루터의 그것처럼 기존교회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기존교회 밖에서 새 교회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새 교회 설립의 가능성을 후대에 물려주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은 분명 종교개혁의 두 가지 원인(잘못 믿음에서, 잘못 행함에서)에서 볼 때 개혁의 결과이다...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분파적” 개혁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 기존교회 밖의 새 교회를 형태화하고 있다. 그것은 기존교회가 종교개혁의 개혁적 원리를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아니면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교회가 이 일에 게을리 하면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숨겨진 7000명은 언제고 새 유형교회를 갖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의지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여 분리하는 것은 칼빈의 입장과 상반되는 행위이며, 더욱이 주관적 판단이 개재되기 때문에 그 객관적 정당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고 하는 교회개혁은 교회분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칼빈은 고린도교회를 예로 들면서, 그 교회는 일부만이 아니라 전체가 오염되었고 한 가지 죄가 아니라 수많은 죄악들이 넘쳐났으며 적은 잘못이 아니라 가공할 비행들이 있었으며 도덕뿐 아니라 교리도 타락하여 부활을 부정하기도 하고 복음을 부정하기도 하였으나, 바울은 결코 어떤 분열도 용납하지 않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하물며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시행이 계속되고 있는데, 단지 개혁의지가 약하다고 하여, 그것도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교회를 아무 거리낌 없이 분리한다면 어떻게 교회의 연합과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4. 한국교회의 개혁

 

개신원의 정원태는 “칼빈의 교회관과 한국교회의 개혁과제”에서 한국교회에 칼빈이 제시한 참된 표지가 있는가 묻고 부정적으로 답변하였다. 그는 한국교회의 설교가 부정직과 부도덕을 지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기복신앙적 축복 설교로 그들의 잘못된 마음을 담대케 하기까지 하니 언제 한국교계와 사회가 맑아지겠는가”라고 통탄하면서,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말씀을 열심히 연구함으로써 그 본질을 파악하여 순수한 말씀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성찬식 거행에도 불성실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더 자주 더 성심으로 할 것을 촉구하였다.

한신의 최 영도 “교회 개혁 모델로서의 칼빈의 교회론” 제하의 논문에서 한국교회의 말씀과 성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물량주의, 황금만능주의, 상업주의와 같은 세속주의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을 타고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서 일렁거린다”고 진단하고, 칼빈이 강조했던 것처럼 맘몬의 유혹을 뿌리치고 순수한 말씀을 회복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성례의 경시와 훈련(권징)의 부재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그가 제기한 문제는 교회 내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재화의 재분배”였다. 칼빈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였지만 성도의 교제 가운데 재화의 교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음을 상기시키면서, 실제로 이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야만 “형제적인 공동생활의 빛이 사회에 방사되고, 그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회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이와 같은 본질과 실천을 회복해야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공동체”가 될 수 있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칼빈의 교회론을 한국교회의 개혁모델로 제시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 과연 칼빈이 성도간의 재화 재분배를 주장하였는가? 실로 그는 “성도의 교제(the communion of saints)”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심각하게 이해하였다. 그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국법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재화의 재분배를 진지하게 권면하였다. 칼빈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부여한 은택은 무엇이든지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면서, “만일 정말로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 공동의 아버지이며 그리스도를 공동의 머리로 확신한다면, 그리고 형제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면, 그들이 받은 것들을 서로 나누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교회 수입의 분배에 있어서도 최소한 반은 가난한 교우들에게 주어져야 하며, 그러지 않고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은 “도적질(theft)”이며 “신성모독적인 약탈행위(sacrilegious plundering)”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5. 종교다원주의

 

한일장신대의 유태주는 “칼빈의 참 교회와 거짓 교회 비교론과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 제하의 논문에서 “한국교회가 직면한 거짓 교회의 사상은 바로 혼합주의 내지 종교다원주의”라고 규정하고 칼빈의 거짓 교회 구별논리가 한국교회에서 종교다원주의를 추방하는데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종교다원주의에 여러 형태가 있지만 그 공통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라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데, 이는 칼빈이 제시한 참 교회의 표지인 순수한 말씀의 선포와 “극적으로 상호배타적 입장”이어서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선포하는 교회는 거짓 교회가 자명하다고 판단하였다. 참 교회가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초석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다는 초석이 없어지면 교회는 존재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만일 칼빈이 종교다원주의를 알았다면,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를 참된 교회로 보았을까? 그는 모든 교회가 모든 교리에서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으나, 모든 교회가 동의해야 할 본질적 교리를 부인하면 이단과 거짓 교회로 전락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면 종교다원주의가 부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교리는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인가? 칼빈은 그것이 본질 중의 본질임을 분명히 하였다:

 

만일 교회의 기초가 선지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이며, 그것이 신자들에게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는 구원(salvation in Christ alone)을 믿으라고 요구하는데, 그 가르침을 제거해 버린다면 어떻게 건물이 계속 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회를 유지하게 받히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이 죽는다면 교회는 틀림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6. 직제론

 

한국에서 최초로 칼빈의 교회론에 관한 글을 발표한 사람은 평양신학교의 채필근으로, 1934년 「신학지남」에 “칼빈의 교회관과 교회정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특별히 칼빈의 직제론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교회가 초기부터 유교의 상하론적 권위주의 구조에 희생되지 말고 칼빈의 개혁적 직제론을 확립하기 원했다. 그래서 그는 4직분의 절대 평등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주의의 교회정치에서는 교직은 절대평등으로 아모 차별이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직분자와 평신도의 사이에서도 절대평등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직분자란 평신도들에 의해 선출된 신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로 직분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임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투표로 말미암아 위탁 받은 데서 더 지나지 않이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주권은 군주정체적이지마는 지상의 교회는 어대까지든지 민주정치적이 되어야 합당한 것이다.”

장신의 이형기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나타난 교회의 목적에 비추어 본 칼빈의 직제론” 제하의 논문에서 칼빈의 직제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칼빈이 로마교회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하는 교회 본질론에 치중하면서 직제론이 상대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장로교회가 교회의 선교나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나아가 가부장적인 목사와 장로의 교회가 되어 평신도의 활동이 매우 부족하게 되었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칼빈의 직제론에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도입하여 평신도 사역을 확장해야 하며, “만인제사장론을 복음전도와 JPIC(창조질서의 보전)와 missio Dei를 위해서 크게 활용함으로써 장로교 교직체제의 경직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채필근이 주장하듯이 칼빈이 직분자 간의 그리고 직분자와 평신도 사이에 절대평등을 주창하였는가, 아니면 이형기가 지적하듯이 칼빈이 만인제사장설과 같은 평등의식이 없이 가부장적인 목사 중심의 직제론을 수립하였는가? 칼빈은 목사 간의 평등성과 상호불간섭의 원칙을 중시하였다. 그는 사도와 목사를 구별하면서 사도는 세계를 위한 사역을 하였지만 목사는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교회만을 위해 사역해야 된다고 가르쳤으며, “우리는 모든 참된 목사들이 어느 교회에 있든지 한 머리, 오로지 하나의 주권적이며 우주적인 감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동일한 권위와 평등한 권력을 가지며, 따라서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위나 지배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모든 직분 사이의 절대평등을 주장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칼빈은 제네바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목사에게 영혼을 돌보도록 위임되어 있기 때문에 명예와 존경심으로 대하고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와 천사 같이 대하며 “부모”와 같이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심지어 목사를 교회의 영혼과 심장으로도 비유하였다. 실로 「기독교강요」의 직제론 대부분은 목사직을 논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칼빈의 목회사역에서도 자신의 목사직에 강력한 권위를 부여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4직분 간의 절대평등이 아니라 목사 중심의 교회론을 가르쳤으며, 단지 목사간의 혹은 교회간의 평등성을 주장하였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장로교회가 칼빈의 교회론을 어떻게 사용하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로, 한국 장로교회는 존 칼빈을 그 신학적 창시자로 생각하고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중요한 이슈나 논쟁에서 칼빈에게 호소하여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는 객관적인 신학적 논의나 성경적 해결책보다 권위에 의존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주의적 입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칼빈의 교회론을 가장 많이 거론한 주제는 교회 분열로서, 자파의 분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하였다. 특히 능동적으로 분리를 주도한 보수적 집단이 그리하였으며, 반대측은 칼빈의 견해를 들어 분리를 정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한상동 계열의 분리나 합동측의 분리나 합신측의 분리는 칼빈의 교회관에서 볼 때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셋째로, WCC를 거짓교회 혹은 거짓교회들의 연합체로 규정한 것은 칼빈의 입장에 부합하지 않는다. 칼빈 출생 500주년과 한국의 WCC 세계대회 유치가 겹친 상황에서 다시 한국 장로교회가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칼빈의 관점에서도 안타까운 일이어서, WCC 문제에 대한 신학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종교다원주의와 추종교회들을 거짓교회로 규정한 것은 칼빈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는 신흥집단들만을 이단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나 역사적 그리스도와 같은 본질적 교리를 부정하는 신학적 집단과 추종자들을 이단으로 선언하고 교회 정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빈부양극화가 심화되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성도의 물질적 교제와 교회재정의 올바른 분배를 주장한 칼빈의 모범을 배우는 것은 한국교회의 개혁과 회복을 위해서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집사 제도의 남발과 로마 카톨릭적 오용을 극복하고 성경적인 집사제도를 회복하자는 칼빈의 주장에 경청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로, 칼빈의 직재론이 너무 목사 중심인 점을 지적하고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도입하여 보완하자는 주장은 매우 객관적이고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칼빈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유기체성을 강조하였지만 직제론에 있어서는 치우쳤고 특히 평신도를 수동적인 순종 대상으로만 본 것은 유기체적 교회론을 온전히 개발하지 못한 전통적 견해였다. 이런 점에서 칼빈을 절대시할 것이 아니라 그의 오류나 부족한 점을 솔직히 지적하고 다른 신학의 보완을 통하여 한국 장로교회를 발전시키는 바람직한 신학적 노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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