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의 서론
(1) 서론의 내용
조직신학의 첫 머리에서는 기독교회의 교의들이 왜 고금을 통하여 신뢰할 만한 진리들인가? 그리고 이것들을 처음 부터 끝까지 권위있게 하는 규범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고 해답하여 서론을 삼고 본론에서는 그 해답을 전제로 하고, 기초하여 논술을 진행한다. 그러나 서론은 주로 말씀 계시의 내용을 다루는 조직신학 전반의 개요이어야 한다.
(2) 서론의 접근 방법 : 재래 신학의 오류와 바른 출발점
바빙크가 종교와 계시를 논 할 때 재래적인 방법으로 종교 일반에서 계시에로 나아가는 경험적인 방법에서 시작했다. 이는 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다. 거의 조직신학 교과서가 종교 일반에서 계시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접근 방식이다. 이는 기독교가 어디에 설 수 있는 가를 따지기 위해 종교 일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계시에로 나아가고 거기서 기독교 신학을 논한다.
신학대학에서 조직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계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모든 종교는 다 계시에 의존을 하는데 그 계시가 어디서 왔느냐"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주로 나타나신 그 하나님에게서 온 특별 계시에서 시작한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그 계시는 신들에게서 왔으니 모든 종교는 다 신들의 계시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이는 이방 종교들도 귀신들의 계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교수가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한 것이 아니고 바빙크의 개혁 교의학 제 1권 계시론에 보면 그와 비슷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바빙크가 개혁신학의 완성이라도 신학의 출발점에 있어서 그 접근 방식에 있어서 바른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틸레란 학자는 "모든 일반 종교들이 다 계시에 의존하고 있다"고 인용한다.
창조 계시, 죄로 타락되어 있는 상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 계시와를 바로 구분하지 못하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빙크가 모든 종교는 다 신들을 경배의 대상을 가지며 그 신들에게서 계시가 온 것처럼 논의를 전개하지만 신들의 계시에 의존한다는 그 이야기는 대단히 그릇될 뿐만 아니라 계시의 유래와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그러한 추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귀신은 계시하지 못한다. 모든 종교가 서 있는 곳은 그와 같은 귀신들의 계시가 아니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계시에 의존하고 있다. 종교 일반을 말 할 때 종교는 초자연적 세력이나 존재와 관계를 맺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의는 물론 성경적인 정의가 아니다. 종교는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오는 계시에 의존한다고 주장한 것이 잘못이다. 어떤 종교든지 모든 종교들이 자기들 속으로부터 끌어내서 저들이 주장하는 진리가 이루어졌다고 하기보다는 외부로부터 특별한 방법으로 오는 계시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기독교 신학의 서론이 종교 일반에서 출발하여 계시에로 진행하는 그와 같은 접근 방식을 갖는다. 재래신학이 다 이 접근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바빙크와 같은 개혁신학의 완성자라 하는 신학자도 종교 일반에서 출발하여 계시에로 진행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종교 일반에서 시작하여 그 종교들이 주장하는 계시를 다루는 것을 신학의 바른 접근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들이 주장하는 그들이 의존하는 자기 신들의 계시를 사실로, 즉 계시가 신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인정을 해 준다. 그래서 신들은 계시하는 가능성이 있고, 그 신들로부터 계시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바빙크의 스승 카위퍼와 비빙크를 비롯한 신학자들이 현금까지 재래의 접근 방식에 의한 신학의 접근시도 곧 종교 일반에서 계시에로 나아가는 시도는 개혁신학의 출발점을 바르게 인정하지 못한 떼서 비롯된 것이다.
즉 신들의 계시라는 단어는 기독교 신학의 초보도 바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그릇된 논리이다.
잘못된 출발은 기독교가 많은 종교 중의 하나이므로 종교라는 것이 어떤 지반 위에 서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 재래 신학자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재래 신학은 여러 많은 종교들이 어디에 근거하고 서 있는가를 따지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기독교로 가는 길을 찾는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계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도 종교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기독교라는 특별 종교에 접근할 수 있는가를 따지기 위해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그것을 연구해 볼 때 모든 종교가 게시에 의존한다는 귀결에 이른 것이다. 이 때 계시의 유래가 어디냐고 할 때 이제까지 바빙크를 포함한 신학자들은 계시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종교가 믿는 대상인 여러 신들이 여러 종교들에게 계시를 주었다는 것이 재래 신학의 접근 방식이고 벌코프도 그 선에 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기독교 역시 세계 모든 족속에 흩어져 있는 종교 중의 하나이며, 계시는 그 종교가 서 있는 기반 즉 그 근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기독교와 일반 종교들도 계시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그 계시의 유래를 성경적으로 모든 이방 종교들까지도 창조하시고 에덴에 있었던 그 계시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종교들의 대상인 그 신들이 계시를 한다고 이해한다. 하나님 외에 귀신들도 계시를 한다면 직접 받은 그 계시는 그들의 나름대로 특별계시가 된다는 오류에 빠진다. 이러한 이론은 기독교 신앙의 초보도 이해하지 못한 그릇된 논제이다.
계시란 창조주의 창조계시에 의존한다. 모든 종교가 다신론을 섬겨도 그들의 주장한 계시는 그들의 경배 대상에서 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출발하며 자신을 우리의 구속주로 나타내신 그 하나님에게서 온다. 일반 종교의 계시를 인정할 때 그 계시의 유래는 신들이 아니라 창조주로부터이다. 그렇다면 종교들이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천태만상일까?
이는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고 죄로 인해 올바른 식별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온 계시(자연계시, 특별계시)가 변질된 것을 모른 체 의존한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첫 부분에서 사람에게 종교의 씨가 하나님의 형상과 함께 우리 안에 생래적으로 영구히 심겨져 있다. 칼빈은 종교의 씨가 소멸되지 않도록 하나님게서 계속적으로 종교의 씨를 공급하신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로 돌이킴 보다 핑계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롬1:20~23).
이 종교의 싹이 창조계시에 근거함에도 왜 우상종교로 변했는가?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을 보면 외적 계시의 첫 번째가 창조이다. 창조란 하나님이 자신을 밖으로 나타내신 자기 계시의 시작이다. 이 계시는 동시적이면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창조계시가 종교심에 선행 한다. 왜냐하면 창조의 순서에 우주 창조 후 사람이며 사람 창조 전에 하나님 자기 계시는 거의 다 이루어져 있었고 그 자기 계시가 먼저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나타난 계시에서 시작해야 일반 종교도 바로 볼 수 있다. 종교의 씨라는 싹은 타락 때문에 조악 된 본성으로 아무리 고차원 적인 종교라 할지라도 타락한 인성과 본성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식별치 못해 우상 종교화 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종교 일반에서 기독교 신학에로 승귀의 기능성을 찾을 수가 없고 만일 찾으면 언젠가는 우상 종교가 된다. 우리는 성경 계시에서 종교에로 접근을 해야 한다.(기독교에서 일반종교로의 접근)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 계시에서 시작해서 종교로 가야 한다. 창조는 최초의 계시이며 자기 능력의 표현이며 자기 계시의 길이다. 자연 계시는 명료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계시의 절정은 성육신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성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계시에서부터 출발함으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 첫 장에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시작한 신의 계시와 신지식으로 창조계시와 특별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신 계시만이 바르고 합당한 계시이다. 마호메트만이 선지자이며 그를 통한 계시가 특별계시하고 주장 할 때 우리의 답변 어떻게 할 것인가? 유대교도 특별계시를 말하며 유일신과 특별계시가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는 계시가 합당한 계시이다. 종교를 의인화 한다면 서로 아들이라 주장해도 참 아들은 하나뿐이다. 계시를 반지로 비유하면 하나밖에 없는 반지를 알게 학 위해 낮은 차원의 것들을 보여 주셨는데, 제각기 자기가 받은 것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과 같다. 선택받은 우리들은 진짜인 창조의 계시인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그리고 구원의 계시로 종교를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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