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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현상으로서의 종교

에반젤(복음) 2020. 2. 21. 13:48



1. 보편적 현상으로서의 종교

종교란 인간의 보편적 현상이며,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뚜렷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옷을 벗고 사는 인간이나, 입고 사는 인간들이나, 개인과 민족들에서 볼 수 있는 종교의 탁월한 의의와 그 놀라운 감화를 부정할 수 없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 같이 종교성이 있고 그 종교심이 약화되기는 하여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기독교가 들어 있어야 될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무 종교가 될 수 없어서 잡다한 종교가 대신 한다. 그러나 이방 종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 종교성은 왜 없어지지 않는가?

이는 하나님께로 창조를 받을 때 신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안에 종교의 씨앗은 소실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심은 항상 있 는데, 그것은 신을 섬기고, 신과의 인격적, 생명적인 관계라고 한다.

참된 신앙은 전인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부분적인 감정의 일로 종교 의식을 혼동하면 안 된다. 선과 악이 분명히 서지 않으면 참 복음이 없고, 복음이 없으면 의식적인 종교 생활만 있는데, 이는 종교성을 발휘하고 싶기 때문이다. 창조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되었고 종교는 창조의 원리이다.

 

* 종교가 타락하면 어떻게 되며, 무엇 때문에 타락하는가?

무당 종교로부터 시작하여 변질된 기독교까지 저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 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에게서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타락하여 피조물을 섬길 때, 종교의 힘으로 피조물을 향한 자들을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종교가 있다. 이는 십자가의 구속으로 본래의 목적인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이것을 기독교 윤리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 가정을  희생시키면 안 된다.

 

(1) 종교의 본질

종교라는 용어의 뜻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신들에 관한 지식과 관련되는 것을 계속적이고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며, 지킬 때는 그 거룩성으로 인하여 세속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가리키며 한 마디로 말하면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섬기는 것이다. 사람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는 이방 종교라 하고 참 종교는 신이 사람을 찾아오시는 종교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는 유일한 종교이다.

 

A. 참 하나님을 지식하며 봉사하는 바른 양식이다.

B. 사람이 하나님에게 봉사와 존영을 드리는 덕행이다.

C. 존중하는 경외를 하며, 감사하는 예배와 사람의 봉사로 나타나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다.

D. 순수하고 참 된 종교는 엄정한 경외를 하는 하나님의 신뢰이다. 그리고 그 경외는 자원적 존경과 율법이 요구하는 바와 같은

    합리적 예배를 포함하는 것이다.

E. 종교의 기원은 원시적 초자연적 계시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설명은 하나님의 계시에서만 발견된다.

 

더 많은 연구를 위하여 "학"을 하려면 현상을 연구해야 하고 현상을 모아다가 비교하고 거기서 무엇이 본질인지 알아야 할 텐데, 종교의 본질은 독단적인 학적 방법이 아닌 성경으로부터 잘못된 종교성을 발견 해 낼 수 있다.

기록된 말씀은 성경이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며 말씀이 하나님의 해석이다.  따라서 창조와 인간에 관한 모든 해석이 성경에 있고, 성경에서만 바른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전제론 적인 논증으로 기독교만이 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하나님의 해석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이며 신인의 인격적 관계로서 생명적 관계이다. 한마디로 종교라는 것으 지으신 분을 섬김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봉사 받을 예배 모범을 정하신다. 피조물은 최선을 다하는 예배와 찬양과 봉사가 포함된 경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구약의 예배에 관한 긴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이유들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 계시, 특별 종교는 기독교요, 그러한 의미로 종교란 기독교를 의미한다.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성경 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데 이방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심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임을 알고 자신을 내어 맡김이 신앙이다.

 

(2) 종교의 3 요소

A. 지식은 신앙의 대상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 이것이 신앙의 첫 번째 요소이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되면 그 지식에 의해 우리의 모든 생이 지배되고 주장되는 실존적 지식이다.

 

B. 지식 후에 찬동과 동의로 시인하는 것이다.

신을 아는 지식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만족함이 아니라, 그 지식이 나를 사로잡아 끌어 들인다.

 

C. 알고 동의하고 나를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신뢰이다.

신앙에는 신뢰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맡으셨으니 내어 맡기는 것이다. 세상적인 축복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하나님이 나를 영생에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을 확실히 기대하는 것이다.

슐라이허막허 이후에 지식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일이나 절대 의존이 중시되고, 의식의 영역, 지식은 경시 되었다. 심지어는 신학이 무슨 "학"이냐고 했다.

그러나 신학을 해서 복음으로 가르쳐 복음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새 생명의 원리로 살게 하는 것이 종교의 일이다. 종교는 교회당에 만의 일이 아니고 감정의 일만도 아니다.

종교는 전인의 일이요 전 창조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종교는 항상 개인의 영역과 가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내 인간 속의 "지,정,의"전체를 사로잡아 말씀대로 살게 만든다. 즉 새로운 실재가 되어 새로운 법으로 산다. 이러한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까지 변화시킨다. 우리는 예배만 하고 사회는 불신자가 하는 식은 잘못된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니 이 모든 영역을 예수님의 것으로 성별대 드려야 한다.

 

(3) 종교의 자리

A. 종교의 자리에 대한 일방적 견해

종교는 전인의 일이다. 이것이 우리의 성경적 견해인데 반해 헤겔은 종교를 지식의 일이라고 했다. 헤겔에 있어서 지식의 최고 단계는 철학적 지식이고 종교나 신학은 아직도 상징을 많이 사용함으로 그러한 면에서는 아직도 직접적인 최고의 지식과 말을 표현치 못하며 중간 과정에 있으니 종교는 지식의 일이라고 한다.

종교를 감정이라고 말한 사람은 슐라이허막허인데 그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쓴 이후의 신학을 함으로서 종교지식의 영역으로 하나님의 대상을 세워두지 못했다. 대상은 우리가 쉽게 알지 못한다.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을 써서 하나님과 세계와 영혼 같은 것은 우리가 과학적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초월해 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이거나 칸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재래의 신학처럼 초월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신학을 시작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경험의 대상이 못되니 우리는 현상계만 알 수 있다. 시공 세계만 우리의 지식이 성립하고 그 이상은 성립하지 않는다.

세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가?

오예베르트, 폴렌호벤(암스텔담)에 의해서 이루어진 기독교 철학은 실재 전체를 다루는 학문이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의 경험을 종합한 것을 세계라고 한다. 세계는 한계 개념이지 구체적인 지식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슐라이허막허가 하나님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초월 세계와 하나님에 대한 신학을 시작 할 수 없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슐라이허막허는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어서 절대자이게 의존하려는 감정이 있는데 그것이 종교라고 말한다.

여자는 감정이 예민하다. 그래서 종교는 여자가 열성이다. 남자는 종교와 멀어지고 독일은 주로 종교의 자리에 예술이 차지하였다.

칸트가 말하기를 윤리 의식을 가짐이 신 의식을 가짐 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내가 도덕적 지상 명령을 가짐을 말한다. 그래서 윤리적인 명령을 무상명령, 무제약적으로 해야한다는 당위로 알아야 한다.

 

B. 종교의 자리에 관한 성경적 견해

유일하고 정당한 성경적 견해에 의하면 종교는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성경 심리학에 있어 마음은 인간의 전 도덕적 생활의 중심이요 초점, 곧 영혼의 인격적 기관이라고 한다. 마음을 몸의 장기로 표현하면 심장이다. 몸의 피를 순환시켜 모든 기관에 보내어 사람의 생명을 살게 하는 구심기관이요 생명의 원천이며, 인격의 중심자리이다. 마음이라는 이 곳에서 지, 정, 의가 나온다. 이곳에 종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은 의지의 일이다. 종교의 자리는 마음은 전인적이며,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섬겨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

 

(4) 종교의 기원

많은 사람들이 진화설에 기초하여 종교가 무종교에서 기독교 최고급 종교까지 진화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종교가 진화 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존재로 인간이 창조 되었다.(신의 형상으로 창조 됨) 그 속에 종교의 씨가 숨겨진 것이요 파괴되지 않은 영원성이다.

그렇다면 종교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과 절대자에게 섬기고 의지하려는 성향이 무지함에 대한 공포로 두렵게 하거나 매혹해서 끌어 당긴다. 자유주의자는 통치의 수단으로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를 겸했다. 부족들은 지금도 통치와 제사장을 겸한다.

종교의 기원에 관한 성경적 견해는 하나님게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바르게 섬기도록 법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심인 것이다. 우리들의 목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러한 섬김이 곧 사람의 생명이요, 섬김이 없으면 생명이 없으므로 현세와 내세의 의미가 없다. 즉 종교성에 대한 바른 기원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그 안에 종교성을 가짐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밖에 없다는데 있다.

 

A. 지성설 : 종교의 본질을 지식에서 찾고 이것의 심리적 기초를 지성에 지적함

B. 의지설 : 종교를 도덕적 행동으로 정의함(칸트)

C. 감정설 : 종교를 감정으로 정의함(슐라이허 막허)

D. 심정설 : 이것이 유일하고 정확한 성경적임, 즉 인격이 종교의 좌소이다.(지,정,의)

 

종교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형상이 중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