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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논쟁

에반젤(복음) 2020. 2. 21. 11:51



 l. 도 입

1) 글을 쓰게 된 동기

초대/고대 교회는 수 많은 핍박과 오해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삼위일체 논쟁에 휘말려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삼위일체 논쟁의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과연 삼위일체 논쟁이 무엇이길래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끝을 못내는가?라는 의심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2) 글의 전개 방법 및 주안점

본래의 의도는 삼위일체가 고대교회에 끼쳤던 영향을 중심으로 전개해 볼까 했는데 거기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래서 글의 전개방법을 삼위일체의 역사와 시대적으로 나타난 삼위일체 대가들의 사상을 들어서 전개해 볼까 한다. 글의 주안점은 글쓴이의 수준에 맞는 범위내에서 삼위일체 대가들의 사상을 연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II 본 론

1) 성경적 근거

기독교의 교리적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이 빠져 있으면 이것은 사변적 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교리를 논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에 대해서 기록된 성서가 근거가 되어야 한다. 삼위일체 논쟁에 있어서도 예수의 구원사건이 삼위일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성서에 근거해서 찾아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유일성

*신명기 6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사야 45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아는이가 없나니 나밖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해가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는 다른이가 없는 줄을 우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다른이가 없느니라

*열왕기상 8 : 60

세상 만민에서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성경도처에서는 하나님이 오직 한분이심을 명확히 하고 있다.

(2) 하나님의 구별성

*3 :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4 :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6 :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셨노라”. 이렇게 한 분 하나님께서 세 개체로 존재하면서 아버지,아들,성령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였다.

(3) 하나님의 삼위 일체성

*28 :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후 13 :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있어서 신성이 동등하고 구별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터툴리안은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의 본질이지 하나의 인격이 아니다. 성자와 성부는 하나의 본질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성자와 성령은 성부의 본질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신성을 동시적으로 인정한다.

이상과 같이 기독교에서는 전통적 교리로서 삼위일체론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부르는데 그것은 성서적 증거와 일치한다.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구분된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오심을 전하는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적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2)초대, 고대 교회의 삼위일체 논쟁

 

(1) 삼위일체 논쟁의 시작

 

변증신학

;초대교회는 로마의 박해와 기독교 복음의 전파를 위해 헬라철학을 도입한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을 변증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초월적 존재로 설명하고 아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중재자로 말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들은 하나님의 최초의 피조물이며 아버지에 비해 저급한 군주신론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

 

군주신론

역동적 군주신론

;역동적 군주신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190년경 비잔티에서 로마로 이주해 온 피혁상 데오도투스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했다. 그는 아들 예수는 인간이었으며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기적을 행할 수 없는 신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황 빅토에 의해서 출교당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사모사타 출신의 바울에 의해서 더 깊이 있게 체계화되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교회는 268년 안디옥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는 이단으로 처단했다. 역동적 군주신론은 유대교적 기독교인들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이들은 유대교적인 성격이 강한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다신론도 배격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 믿으려고 하는 교회의 입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동적 군주신론은 에비온 주의의 색채를 유지했고 후대의 안디옥 학파의 기본적 흐름이 되었다.

 

형태론적 군주신론

;형티론적 군주신론을 최초로 체계화한 사람은 서머나 출신의 노에투스였다. 힙포리투스의 글에 의하면 노에투스는 강한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이나 세 역할, 즉 창조자로서, 구속자로서, 성화자로서 삼중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투스에 의해 주장된 우주적 모나드(Monad)와 같은 개념이다. 마치 태양이 열과 빛을 발산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는 탄생하시고 수난당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 즉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려고 어설픈 삼위일체를 주장하였으나 이러한 역할을 주장함으로써 성부수난서의 오류를 범하였다. 이 이름은 프락세아스에 의해 널리 퍼졌고 시벨리우스는 로마에서 히폴리투스의 공격을 받았다. 후에 이들은 역동적 군주신론주의자들과 함께 터툴리안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레니우스의 삼위일체론

;이레니우스는 군주신론과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경세 삼위일체론(Economy trinity)이었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들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아들의 낳으심과 성령의 보살핌은 동일한 선상에서 말하려 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성자는 자기 자신의 현현을 통하여 성부의 지식을 계시한다. 왜냐하면 성자의 현현은 성부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자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성부요, 성부 안에서 보이는 것은 성자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는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없다. 즉 성부의 지식은 성자요, 하나님의 아들의 지식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성부의 선하신 뜻을 따라 성부께서 원하시는 누구에게나 성부께서 원하시는 데로 성자가 섬기고 성령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였다.

 

터툴리안

;터툴리안은 군주신론과 영지주의에 반대하기 위하여 경제 삼위일체론을 더 깊게 파 헤쳤다. 신적인 계획이나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목적을 뜻하는데서 부터 성육신과 신적인 목적에 이르기까지 적용하였다. 터툴리안은 하나님께서 본래적으로 삼중적으로 계셨음을 말하였다.

하나님은 만물이 있기 전에 홀로 계셨고 친히 그분 자신의 우주와 위치와 모든 것이셨다. 그렇더라도 그분이 정말 홀로 계신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말씀을 자신과 함께 가지고 계셨다. 이 말씀은 출생된 말씀이며 곧 아들의 위격이며, 성부에 덧붙여진 제 2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제 3의 어떤 것으로써 성자의 대표 혹은 대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해서 나오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 제 3의 것이다. 이것은 꼭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가 뿌리에서 나온 제 3의 것인 것과 같다. 성령도 위격이며 신성은 삼위일체이다. 그러나 이 경세적 삼위일체가 어떻게 본래적인 하나님의 동일성에 위배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터툴리안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터툴리안은 여기에서 본질(Substania)과 개체(Persna)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본질이란 몇 사람이 공통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토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이 신성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즉 성부,성자,성령이 동일한 신적 본질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서로 나누인 것이 아니며, 하나의 동일한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동시에 개체라는 단어는 하나의 토지에 대해서 소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법적인 사람을 뜻한다. 이렇게 해서 본질이라는 단어로서는 삼위간의 통일성을 말하고 개체라는 단어로서는 삼위간의 구별성을 말하였다. “셋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고 정도에 있어서 이며 본질에 있어서가 아니고 형식에서이며, 능력에서가 아니고 그 양상에서 나누인다. 그렇지만 그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이름으로 이러한 정도의 형상들과 외아들로 생각되어 질 수 있다면 여전히 하나의 본질이며 하나의 조건이며 하나의 능력을 갖는다.

터툴리안은 성자와 성령을 제 2의 어떤 것, 3의 어떤 것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아들과 성령을 아버지에게 종속시키지 않았으며 성자와 성령이 본질적으로 성부에 동참하고 있음을 말한다.

 

아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클레멘트의 삼위일체 사상의 핵심은 그의 로고스론이다. 그에 의하면 로고스는 영원토록 아버지와 공재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지지 않을 때가 없었다. 로고스의 존재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시작이었으나 그 자체는 시작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조성자요, 빛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피조자의 머리가 되나 그의 신적 존재성 때문에 다른 모든 피조와는 다르다. 그는 아버지의 속성의 해석자요, 진리를 그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냈으며 인류의 교육자였다가 마지막에 사람이 되어 사람을 그 자신의 신성에 동참케 했다. 그는 하나님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초월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이성으로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는 특이한 방법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초월자이다. 그는 그의 말씀과 아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와 근원적으로 하나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등급적 계급으로 표현한 것이며 후에 아타나시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오리겐

;오리겐은 이레니우스와 터툴리나의 경세 삼위일체론을 벗어나서 삼위간의 통일성과 구별성을 말하기 위해서 두 가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 통일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동일본질(Homoousia)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것은 아들과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발출(ekporeuosis)되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시며 또한 존재를 초월해 계신다. 신은 불가변이며 수난을 초월해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을 인간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로고스 혹은 말씀이다. 이 로고스는 아버지로부터 분리나 나눔에 의하지 않고 영적인 방법으로 발출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언제나 낳고 계시므로 아들은 존재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령이 탄생한 것인지 탄생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성서를 깊이 연구하는 동시에 조심성있게 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한다. 이 성령이 예언자나 사도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영감을 준다고 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단계뿐만 아니라 성경에대해서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