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히브리서 4:1~11)
* 본문요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에 자신을 결합하지 않아 그 안식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을 때, 혹 우리 중에 누구라도 그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 옛날 출애굽 때에 여호수아의 인도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만, 가나안 땅은 일시적인 안식이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가나안 땅이 영원한 안식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불순종하다가 멸망에 이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찬 양 : 474장 (새 486)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478장 (새 419)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 본문해설
1. 저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자(1~3절)
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남아있을 동안에,
여러분 가운데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십시오.
2)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받은(전해들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그 말씀을 믿은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과 같이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시 95:11)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이르지 못할 자(1절) :
원어의 뜻은 ‘하루가 늦다’입니다.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탐했던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격하자고 보고했고, 나머지 10명은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 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던 일이 40년 뒤로 미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원망했던 일을 후회하고 가나안 땅을 진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아 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을 합니다. 하루가 늦었던 것입니다.
- 그 안식(3절) :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노동(무위無爲)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완성(完成)을 뜻합니다.
2. 여호수아의 안식은 그 날의 안식을 예표한다(4~8절)
4) 제 7일(일곱째 날)에 관하여는 어딘가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그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창 2:2)라고 하셨습니다.
5) 그리고 또다시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시 95:11)라고
하셨습니다.
6) 이와 같이 복음을 먼저 전해들은 자들(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이라는 날을 다시 정하시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앞서 인용한 말씀대로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시 95:7~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혹은 여호수아가 준 안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영원한 안식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다른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9~11절)
9)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할 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 이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마치고 쉬셨던 것처럼
그 사람도 자기의 일을 쉬게 될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순종하지 않다가 멸망한 자들의 본을 따르지 말고,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 묵상 point
1. 하나님의 안식(1절)
히브리서가 말하는 안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 칠일 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안식은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구원의 총괄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안식이고, 하나님의 즐거움,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의 안식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히브리서에서는 장차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백성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2~5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옛날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영토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고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잘못된 믿음으로 그들은 그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등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매사에 불만 불평하던 자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또 가나안 땅에서 오직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교만을 떨던 이스라엘이 가장 저 흉악한 바벨론 사람들에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 묵상 : 우리도 저 안식에서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다가 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저 안식, 즉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며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4~8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이므로, 그 땅은 영원히 외적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가나안 땅 자체를 하나님의 안식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면서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던 것은 장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충성된 종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가 인도한 가나안 땅은 일시적인 안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안식은 영원한 안식이므로 예수님은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 묵상 : 선지자, 천사, 모세,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구약 시대에 뛰어났던 사람들과 예수님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존경의 범위를 넘어서 숭배하는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천사, 모세, 여호수아, 아브라함, 다윗, 마리아, 베드로, 바울, 그 누구라도 예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두는 어리석음을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1, 11절)
가나안 땅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이르는 과정 역시 성도들의 한 평생의 삶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 묵상 :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가나안 땅은 잠정적인 안식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집에 누워 평안함을 누리지만 이 평안함은 언젠가 끝이 날 평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영원한 참 안식의 자리를 향하여 가는 순례객입니다. 이 땅은 결코 영원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을 구하고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 믿음의 변두리에 있는 자들의 위험(1~3절)
하나님의 참된 안식은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한 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믿음을 화합한다는 것은 주신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은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무엇이 있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는 것이 곧 그 말씀에 화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가나안 땅에는 거인족인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그 거인족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빠져 진격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에 빠진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에 화합하지 못했으므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한 자, 믿음으로 반응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신앙의 변두리에 있는 자들은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그들의 삶의 모습이 히브리서가 보기에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대단히 위험하게 보입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원한 안식을 잃어버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하십시오(1절).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던 것처럼 우리도 언제든 하나님의 안식에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맥없이 살다가 세상에 휩쓸리는 자가 될 것을 늘 염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6. 하루가 늦었다(1절)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라’(1절)의 원어의 뜻은 ‘하루가 늦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의 말만 듣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원망한 사람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40년 뒤로 미루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을 40년 뒤로 미루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음 날 가나안 땅에 진격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으니 이 전쟁은 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듣지 않고 진격했다가 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을 합니다. 하루가 늦었던 것입니다.
● 묵상 1 : 하루가 아니라 단 1초만 늦어도 영원을 잃어버립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께서 천사장에게 나팔을 불라고 명하시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하루가 아니라 단 1초만 늦어도 영원한 안식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는 회복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7. 어떤 사람에게는 저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이 있을 때까지 만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혹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순간 저 안식에 들어갈 기회는 끝이 납니다.
● 묵상 :
그러나 문제는 저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를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갈 말씀이 선포되어도 그것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를 모르고, 그저 내 귀만 즐겁게 하는 말씀들만 찾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8. 참고 :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이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면서, 가나안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가나안 땅 북쪽의 일부 지역은 아주 풀이 잘 자라는 좋은 땅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 남방의 네게브 사막 지역입니다. 그곳은 비가 오지 않으면 바로 그 다음 날부터 곧바로 사막이 되는 곳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전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척박한 네게브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이유는, 그 땅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전혀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항상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눈에 보기에는 척박한 땅 같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리라는 것을 믿고 그곳에서 살면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버림받아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더 원했기 때문입니다. 남방 네게브에서 항상 하나님만 바라며 살기를 바라셨는데,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좋은 땅에 살기를 더 원했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사람들은 눈에 보기에 믿을만한 것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돈이나 집이나 직장이나, 이런 것들이 있어야 안심합니다. 이런 것들이 있어야 기도도 되고 예배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기도도 안 나온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우리들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주께서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리라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믿음의 변두리에 있지 말고 믿음의 중심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2. 혹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살게 하옵소서.
3. 가나안 남방 네게브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이유를 바로 깨달아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욱 찾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글쓴이 : 송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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