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자(히브리서 10:19~31)
* 본문요약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 길은 예수께서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살아있는 길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과 양심에 주님의 피가 뿌려지고 우리의 몸이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모이기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진리를 받은 후 고의로 죄를 범하면(주님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면) 더욱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찬 양 : 184장 (새 252) 나의 죄를 씻기는
444장 (새 390) 예수가 거느리시니
* 본문해설
1. 더욱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자(19~25절)
19)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담대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20) 그 길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휘장을 뚫고)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새롭고 살아있는 길)입니다. 그 휘장이 곧 그의 육체입니다.
21) 또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22)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서 악한 양심(죄악된 양심, 죄에 오염된 악한 양심)
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23) 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신실하신 분이시니),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붙잡고(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키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모이기를 중단하는, 모이기를 소홀히 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서로 격려하여(권면하여)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리합시다(더욱 모이기에 힘씁시다).
- 참 마음(22절) : 순전한 마음.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간절한 마음.
- 온전한 믿음(22절) :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
- 굳게 붙잡고(23절) :
있어야 할 자리를 굳게 지키는 것으로, 주님을 믿는 믿음과 주께서 주신 사명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합니다.
- 서로 돌아보아(24절) :
저 사람에게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지, 내가 도울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서로 생각하고 서로 관찰하라는 뜻.
2. 불경건에 대한 심판(26~31절)
26)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가르침을 받아서 진리를 깨닫고도)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고의적으로, 일부러 계속하여 죄를 범한다면 다시는 그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드릴 수 있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반역자들을 삼켜버릴 맹렬할 불을 무서운(두려운) 마음으
로 기다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모세의 율법을 어긴 자도) 두 세 증인만 있으면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데,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모독한) 자의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습니까(가혹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생각하여 보십시오.
30)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속한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신 32:35)라고 말씀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신 32:36)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26절) : 히브리서 6: 4~6의 본문해설을 참조하십시오.
- 짐짓 죄를 범한 즉(26절) :
짐짓 죄를 범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일시적인 일탈이나 생활 속에서 범하는 실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 세례까지 받은 사람이 강요나 핍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짐짓 죄를 범하면’이란 말이 원어에서는 현재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는 일, 신앙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상습적으로 행하면, 이런 일을 계속하면 그런 자가 당하는 벌이 크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시편 19:13에서는 이것을 ‘고범죄’라고 했습니다.
-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26절)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를 용서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으니, 그런 자에게 예수님 이외의 또 다른 희생 제사는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마지막 은혜라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그러므로 더욱 그 은혜 속으로 들어가십시오(19~25절).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주께서 우리가 받을 벌을 모두 다 받으셨으므로, 죄에 대한 모든 빚이 다 갚아졌습니다. 우리의 죄는 모두 용서되었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하신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로 인정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는데, 우리는 그 앞에 나아갈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2)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해서 운명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폭으로 찢어졌습니다. 꼭꼭 닫힌 대문이 열린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누구든, 어떤 죄를 지은 자이든 상관없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3)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할 인도자가 예비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도 얻었고, 그 앞으로 나아갈 길도 열렸으나, 여전히 우리는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잘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할 아주 훌륭한 인도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길로 인도하십니다.
● 묵상 :
예수님의 피로 우리 앞에 가로막혔던 장애물이 다 없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가령 불난 집에 소방대원이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해도 그 길을 향하여 달려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신앙의 대로를 행하여 힘써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렸으므로 그의 백성들(성도들)은 결코 신앙의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더욱 힘써 주님을 찾고 부르십시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만나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2. 신앙의 타락은 나태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신앙의 타락은 나태함에서, 모이기를 싫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짐짓 죄를 범하는 일도 결국 모이기를 폐하는 대단히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됩니다(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은 대개 다음과 같은 일들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1) 인터넷 예배의 위험
일부의 사람들이 공동예배 없이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요즘에 TV나 컴퓨터의 발달로 다른 교회의 예배 실황을 집에서 편히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어 교회에 나가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신앙 습관입니다. 주께 드리는 예배는 항상 주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의 예배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든지 감옥에 있는 것처럼 주께서 인정하실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혼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께 예배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주님의 백성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2) 개인적인 불쾌감
교인들 간의 인간관계와 같은 일들로 인하여 개인적인 불쾌감 때문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인 감정보다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배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는데, 단지 내가 저 사람 보기 싫은 것 때문에 함께 예배드리는 자리를 피하는 것은, 예배는 드리고 싶은데 예수님은 싫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3) 신앙을 고상한 취미로 여기는 태도
신앙생활을 그저 고상한 취미 정도로 여기는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서 기분 내키면 가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도 아주 위험한 신앙습관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모두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예배에 우리의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4) 주변의 강요에 의하여
히브리서 공동체의 경우 박해나 핍박으로 인하여 모이기를 두려워하다가 신앙의 나태에 빠졌습니다. 주일에도 일하는 직장이라면 직장을 그만 두십시오. 주께서 새로운 일거리를 주실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 목숨까지도 거는 마당에 직장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5) 세상일에 분주하여
또는 자신의 일로 분주하여 주님을 만날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결국 신앙의 나태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세상 일이 바쁜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주께 향해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밥은 먹고 잠은 잡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중요한 모임에는 참석합니다. 그러면서 사사건건 예배에 빠지고, 주님 섬기는 일에만 바쁜 일 핑계를 댄다면 주님께로부터 마음이 떠난 것입니다.
● 묵상 :
주께 드리는 예배는 항상 주님의 백성들과 함께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우리가 항상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성도들이 함께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개인의 감정이나 마음의 불편함 때문에 영생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3.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이 세상은 물론 신앙의 세계도 대단히 혼탁해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점점 시끄러워질 것이고, 믿는 자들의 생활태도가 점점 나태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고 멍 하니 있다가는“저 사람도 그러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휩쓸려 믿음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모이기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1) 서로 돌아보고
성도들끼리 서로 관찰합니다. 무슨 죄를 범했는지를 서로 감시하고 살피라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 누가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혹시 내가 무엇을 도와줄 일은 없는지 서로 살피고 서로 돌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걱정해주고 살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또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혼란의 때에는 결코 혼자서는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 여기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서로 선한 일을 격려하며
주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함께 하십시오. 나 혼자 하면 “아무개가 한 일이다”하며 그 일을 한 그 사람에게만 영광이 되지만, 성도들이 함께 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런 일도 하네”하고 말하니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착하고 선한 일을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십시오. 전도는 선하고 착한 일로 하는 것입니다. 전도지 몇 장으로 전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착하고 선한 일을 지속하여 하십시오.
3) 모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교회(에클레시아)는 ‘모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함께 주님을 섬기는 그 모임 자체가 교회입니다. 건물은 ‘예배당(禮拜堂)’일뿐입니다.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잘 모이면 믿음도 자랍니다. 잘 모여야 공동체도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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