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린도의 역사적 상황
고대 역사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주전 8세기부터 도시국가를 형성했던 고린도는 헬라본토와 펠로폰네소스를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2km 지점에 레헤움 항구가 있었고, 동쪽으로는 7kn 지점에 겐그레아 항구(롬 16:1)가 있었다. 이곳은 희랍의 목을 쥐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위치였으며, 남북으로는 육로를 연결하고 동서로는 해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고린도는 자연히 군사적으로나상업적으로 크게 번창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고린도는 주전 146년 로마의 장군 뭄미우스(Lucius Mummius)에 의해 점령되어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그 후 약 1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주전 44년에 로마 황제 시이저(Julius Caesar)의 칙령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었다. 주전 27년부터는 로마의 총독이 부임함으로써 고린도는 마케도니아 남쪽의 헬라 전 지역을 포함하는 아가야(Achaia) 지역의 행정 수도가 되었다.
이렇게 재건된 1세기 신약시대의 고린도는 과거의 고대 고린도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 번성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헬라인뿐 아니라 로마 제국의 각 지역으로부터 이주해 온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에는 약 3만명의 유대인들도 섞여 있었다.
이처럼 당시 고린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여러 종족들이 모이는 항구도시였기에 이들이 가져온 혼합주의가 성행했었고, 오늘날 항구도시들이 그러하듯이 온갖 범죄와 타락한 모습이 만연한 도시였다. 또한 마치 인종 전시장과 같았던 이 도시에는, 그 주민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신전들이 신상들의 박물관처럼 세워져 있어 종교혼합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고린도에 세워져 있던 12개 이상의 신전 중,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를 섬기는 신전에서는 성창(性娼)이 번성하였다. 이 신전에는 ‘성스러운 노예들’이라 하는, 매춘부 역할을 하는 여사제가 천 명 이상이나 거하고 있었고, 이들과 더불어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예배의 한 순서일 정도로 성적인 타락이 극심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자연히 고린도인들을 방탕한 자들로 만들었고, 성적으로 부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린도인들처럼 산다"(Korinthiazes-thai)는 말은 고대사에서 ‘성적으로 아주 문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격언이 되다시피 했다.
반 면 이러한 성적․도덕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부유한 도시로서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하여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학교들이 번성하였다. 고린도의 시민들은 지적인 자부심이 있었고,특히 수사학에 큰 가치를 두어서 지혜롭게 말하고 아름답게 말하는 것을 매우 가치있게 생각하였다. "고린도인들처럼 산다" 라는 격언과 마찬가지로, “고린도인들의 말” 이라는 표현은 매우 설득력 있고 달콤하게 수사학적으로 말을 한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신약시대 당시의 고린도는, 로마인들과 헬라인들 그리고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섞이면서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였고, 종교적 의식이 매우 타락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도시에 바울의 선교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1:1)가 세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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