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베소서 강해

[스크랩] 영적 전쟁

에반젤(복음) 2019. 12. 11. 14:03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세서와 빌레몬서 - 중 탁월한 기독론을 기록한다.  1-3장은 기독론에 근거하여 구원론을 설명한다. 신자들이 누구인가가 잘 소개된다. 그리고 4-6장은 구원론에 근거를 두고 기독인의 윤리가 소개된다. 신자들이 어떻게 신앙 삶을 살아야 하는가가 잘 설명된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한 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0-11) 그 이유도 설명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12
)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특정 장소인 가나안에만 거주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완전히 달랐다.그 차이는 시내산 율법 준수에 있었다.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이스라엘 사회의 우수함은 하나님 여호와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참 신임을 증명했다. 반면 이런 것을 싫어하는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반대하며 싸웠다. 이런 전쟁 또는 싸움을 우리는 성전(
聖戰: holy war)이라 부른다. 이 싸움은 혈과 육에 속했다. 혈과 육의 방식으로 수행된 영적 전쟁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 영적 전쟁은 혈과 육의 방식을 벗어났다. 신자들은 이스라엘처럼 보이는 장소에 별도로 모여 살지 않는다.
보이는 경계선을 초월한 사상과 철학, 가치관과 윤리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하나가 된다. 이런 면에서 신자들과 불신자들 사이 보이지 않는 충돌이 벌어진다. 구원의 은총으로 신자들은 하늘에 속한 자로 빛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아직도 어두움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

신자들이 세상 삶을 산다는 것은 곧 빛과 어둠 사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무장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악한 날에 신자들이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다(13). 그러나 신자들은 전쟁 관점에서 구원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번영 신학의 문제다. 번영신학은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보게 만들어 신자들을 오히려 무장해제시킨다
.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를 경고하듯이 서라!”고 제일 먼저 충고한다. 영적 전쟁의 심각성을 깨닫고 임전 자세를 취하란 뜻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장해야 한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인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
.

진리(알레데이아)의 허리띠에서 진리는 성경의 진리에 따라 인격과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진실함이다. 이 진실함만이 싸울 때 곧잘 흩어질 수 있는 옷을 꼭 묶어주는 허리띠 역할을 한다. (디카이오수네)의 흉배에서 의는 신자들의 삶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이다. 전투 수행할 때 자주 받을 수 있는 부상들에서 몸을 보호해주는 흉배 역할을 한다
.

언제 어디서나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된 평안의 복음은 벗은 발을 보호해주는 신발 역할을 한다. 벗은 발로 전쟁에 임할 수 없다. 복음을 잘 전하도록 늘 준비하는 자세는 영적 싸움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투구는 신체에서 가장 치명적인 머리를 보호한다. 구원도 그런 역할을 한다. 구원을 확신하는 신자만이 더욱 대범하게 전쟁에 임할 수 있다
.

지금까지 전쟁 수행을 잘 하도록 돕는 것들이 소개되었다. 무기들도 필요하다. 무기에는 방어용과 공격용이 있다. 믿음(피스티스)은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여기 믿음은 예수님을 인류의 구세주와 만유의 주로 믿고 신뢰함에서 나오는 변함없는 충성과 성실함이다. 이 믿음만이 자주 날아오는 악한 자의 모든 불 화살들을 소멸시킨다. 삶으로 표현된 바른 신앙고백만이 이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도록 돕는다
.

마지막으로 공격용으로 성령의 검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역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고 말했다(4:24). 그렇다면 신앙 삶에서 은사 계통의 교회들처럼 성령의 역할만 강조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성령의 역사는 악령의 역사일 수 있고 아니면 사역자 자신을 위한 불법적 사역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성적 열정은 신학적 지식에 따라야 한다
.

신앙 삶은 무장을 요하는 영적 전쟁의 성격을 띤다. 전쟁이나 싸움은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아주 치열한 무대이다. 그럼 승전의 방법과 비결은 무엇인가?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다름 아닌 진리, , 복음, 믿음, 구원,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에 세상 철학, 사상, 주의나 처세술, 영웅 이야기, 감동적 이야기나 예화 그리고 만담 같은 것들은 낄 자리가 없다. 그리고 번영신학, 양적 성장론, 승리주의, 적극적 사고방식 등등 한국 교회를 지배하는 신앙 양태들도 낄 수 없다
.

순수하게 성경 진리에 준한 실천적 신앙 삶만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기에 기독교 윤리도 포함된다. 가독교와 교회 그리고 목회자가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는 아주 분명하다. 기독교와 교회 그리고 목회는 자신들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와 목회는 영적 전쟁을 잘 수행하도록 세워진 임시 기구나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안주할 곳이 아니라 싸움을 계속 수행하여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

결국 영적 전쟁의 최종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빛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만큼 인간 사회에 빛이 가득해지며 어둠은 저절로 물러난다. 지금까지 기독교 복음이 들어간 나라와 민족마다 사회가 개방되며 전반적으로 발전했다는 역사가 이를 잘 증거한다. 이를 위해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

그리고 신약 시대 영적 전쟁은 구약 시대와 마찬 가지로 사상과 철학, 관습, 가치관과 윤리 분야에서 치러진다. 전쟁 방식만 다를 뿐이다. 신약 시대 나와 다르다고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 이것은 구약 시대처럼 육과 혈의 방법이다. 신자는 행위와 삶으로 기독교적인 것을 보여줌으로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와 만유의 주됨을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더더욱 그렇다. 기독교는 수많은 종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교리나 신학이라는 논리적 주장보다 삶과 윤리라는 실천으로 기독교의 우월함을 만인에게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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