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빌립보서 강해

[스크랩] 제 63강/ 예순 세 번째 구원드라마(빌1:1-4:23)

에반젤(복음) 2019. 12. 10. 20:08



    

제 63강/ 예순 세 번째 구원드라마(빌1:1-4:23)

 

 

옥중에서 부르는 감사의 노래

 

I. 배경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교회이다. 바울이 단기간 머물러 있었지만 결과가 좋아서 교회가 세워졌다. 그 후 바울이 이 교회를 방문한 것은 3차 전도여행 왕복 길에서였다. 이 교회는 고린도 교회와는 달리 그다지 크고 번창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교회로 정이 넘쳤다. 빌립보 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대단히 친밀하여 이 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한두 번” 쓸 것을 보내주었다.(빌4:16) 그리고 고후에 언급된 마게도냐의 교회도 바로 이 빌립보 교회이다.(고후 8:1-5)
  몇 년이 흘렀다. 이 교회에 박해와 분쟁이 있었으나 복음의 운동은 힘차게 발전했다. 마침내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은 크게 놀랐다. 이들은 바울을 위해 헌금했다. 에바브로 디도를 로마로 보내서 바울을 돕게 했다. 바울을 돕던 에바브로 디도가 중병을 얻어 부득이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빌립보로 돌아가는 인편에 이 ‘기쁨과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근황을 알려주고 교회가 보내준 예물에 대한 감사의 뜻도 표하고 아울러 교회가 직면한 불화의 문제에 대해 교훈을 전하며 이 편지를 썼다.

 

II.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주제 - 그리스도의 겸손(1:1-2:18)
  1) 그리스도의 마음(2:1-11)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변함없는 우정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진심으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했다.(1:3)
  그러나 에바브로 디도의 소식으로 빌립보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했다. 이 권면의 근거는 우선 “그리스도 안에”이다. 빌립보 교인들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근거는 사랑의 설득이다. “만일 사랑에 무슨 위로함이 있거든”이라고 말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셋째 근거는 성령의 교제이다. 교인들 모두는 성령의 사람들이고 성령이 준 “하나됨을 지키도록”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근거는 성령 자신이 일으켜 준 ‘긍휼과 자비’의 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충성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근거는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이 이제 이 일치가 어떻게 깨지며 또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는 그들에게 다툼과 허영에 대해서 경고하고 겸손과 이타주의를 장려했다.(2:3-4) 다툼이란 싸움을 일으키는 당파심이다. 허영이란 잘난 듯이 뽐내는 자부심을 뜻한다. 다툼과 허영은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무서운 요인이다. 바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권한다.
  바울은 말씀의 근거로 초대교회의 찬송을 인용한다. 바로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 말씀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 받으라 말한다.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우다라는 것은 완전한 자기 부정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다. 여기서 종의 형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라는 사 53:12의 인용이다. 그리고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취한 참 인간성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겸손은 성육신으로 끝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힘에 의해 굴욕적인 죽음까지 계속되었다. 자기를 낮추셨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모든 권리와 이익을 포기하였다는 뜻이다.

  2) 세상의 빛이 됨(2:12-18)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빛들로 나타나서 그 명을 완성해야 한다. 여기에 빛들이라 발광체들이라는 말이다. 마치 달이나 별들이나 모든 성좌들이 밤 어두움을 향하여 밝은 빛을 발하듯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이 도덕적으로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이 되라는 말이다. 그들은 생명의 말씀을 밝힘으로써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쁜 소식을 널리 전 세계에 전파하여야 한다. 동시에 또한 세상에 빛이 되는 생활의 성품으로서 묵묵한 가운데 이를 밝혀야 한다.

 

2. 두 번째 주제- 바울의 모범적 생활(3:1-21)

  1) 참된 의(3:1-11)
  바울은 혁명적인 가치의 전도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지식으로 이 가치 전도가 시작되었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선언한다. 바울이 바라는 바 그가 날로 더욱 간절히 소원하는 것은 더욱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알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말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그 안에서 발견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다만 마지막 심판 때에 그렇게 발견되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현재 마음속에 이를 체험하고 있으며 또 이것은 그대로 계속해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완전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하고 그 결과 그가 얻는 한 가지는 새롭고도 참된 의이다. 이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여기서 말한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또 그가 요구하는 바 행위 두 가지를 다 말한다.

  2) 한 목표를 향하여(3:12-21)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리스도를 아는 인격적인 지식, 그의 뜻에 대한 복종, 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도덕적인 완성에 도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정진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아는 지식을 얻으려고 역주하였으나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라고 말한다. 다시 좀 더 확실하게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리라고 덧붙여 말한다. 그는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부연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경주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앞에 있는 것만을 잡으려고 계속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한다.(3:17) 이것은 자기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를 목표 삼아 정진하는 것을 배우고 따르라는 말이다.

 

3. 세 번째 주제- 항상 기뻐하는 삶(4:1-20)

  1) 언제나 감사하는 삶(4:1-9)
  바울은 이 교회를 개척할 때 돕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떠올렸다. 이 들은 부인들인데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몇몇 사람이 떠올랐다. 글라멘트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기의 동역자들이라고 했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고도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바울과 함께 할 잊지 못할 영원한 사람들이다. 자랑스러운 이 동역자들을 생각할 때 바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흘러 넘쳤다.

  2) 자족하는 삶(10-20)
  바울은 자신의 궁핍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이 귀한 선물을 보냈지만 마치 선물을 더 바라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불평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한다. “어떤 형편이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라고 했다. 바울은 그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에서 자족하기를 터득했다.
  이같이 바울이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은 그리스도요 또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바울은 언제나 그 자신이 ‘그리스도 나에’ 있는 것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고 그는 선언한다. 이 거룩한 능력을 설명하며 그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는데 이는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의 힘은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니 이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말했다. 바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을 뿐 아이라 그리스도가 주신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III. 신학적 의미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더욱이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쓴 서신이었기에 옥중서신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서신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빌립보서는 바울의 영적 투쟁을 신앙고백으로 표현한 서신이기에 그 안에는 깊은 신앙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1. 죽음과 씨름한 바울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죽은 것도 유익함이리라”(1:21) 이것은 죽음 자체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1:21)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신앙의 이해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2. 부활을 소망하며 살았던 바울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했다.(3:13-14) 그런데 이 고백은 바울 자신의 결단에서 오는 고백처럼 보이지만 이 고백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오는 소망 안에서 비로소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신앙 타입을 셋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타율(heteronomy)이다. 모든 가치 표준을 타인의 표준에 두고 그것을 모방하고 따르는 것이다. 둘은 자율(autonomy)이다. 주체성을 내세우며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셋은 신율(theonomy)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는 삶이다.
  바울은 철저하게 신율적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 때문에 죽는 것이 더욱 좋지만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라 말한 것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1: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