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빌립보서 강해

빌립보서 4장: 네로 황제의 궁전에까지 들어간 생명

에반젤(복음) 2019. 12. 10. 19:24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말씀은 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늙은이들이 좋아하는 말씀은 6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풍성한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씀은 19절(……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모든 성도들이 좋아하는 말씀은 4절(항상 기뻐하라)입니다. 이 말씀들이 빌립보서 4장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이 문맥 안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인 것도 있답니다.

 

빌립보서는 4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끝내면서 바울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여태 앞의 말이 그렇게 길었나 봅니다. 해당자가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연세가 지긋한…… 그리고 교회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 창립멤버로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바로 유오디아와 순두게 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의 환상을 본 바울과 자주장사 루디아와 감옥의 간수 등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당시 자주 장사는 거부인지라 루디아의 도움이 매우 커 빌립보 교회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비중이 컸던 교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여성 지도자의 불화와 갈등은 교회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밟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 4장에 와서야 본 마음을 보이는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것임을 감지할 수 있지요? 참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교회에서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결국 상처와 깨어짐으로 분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일은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고요? 그것도 나름 교회 생활하는 요령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의무와 책임은 어쩌시고요^^

 

바울은 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그리스도인 한 지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 지체들은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한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지요(엡 4:16) 그래서 한 마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엄마 교회는 분열되어서 세워진 교회인데 잘 되고 있다고요? 예, 그것도 교회가 세워지는 방법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교회가 교회를 정상적으로 개척하는 분립개척이 더 아름답지요.ㅎㅎ

 

이 권고다음에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의 신앙의 진수를 토로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는 이 말들은 이후 모든 기독교인들의 살아있는 지침서가 됩니다. 삶의 교안이나 학습지도안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들이 우리 시대에 와서 잘 못 적용되고 있습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즉, 제 논에 물 대듯이, 자신들에게만 이롭게 쓴다는 것입니다. 문맥 속에서 보지 않고 한 구절만 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를 끝내면서 이것을 바로 잡습니다.

 

첫째, 베풀어서 기쁠까요? 기뻐서 베풀까요? 이것이 바로 잡을 첫 번째 것입니다.

보통 베풀어서 기쁩니다. 좋은 일을 하고 나면 기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기쁨을 회복하려면 다시 베풀어야 하나요? 기쁘기 위하여 또 좋은 일을 찾아서 해야 하나요? 이에 반하여 기쁜 마음을 먼저 갖고 베푼다 칩시다. 선한 일을 마쳐도 기쁨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또 다른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이냐? 환경이 먼저이냐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힘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을 만나면 갖고 있던 힘까지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를 만나면 일이 잘 될 것 같고 신이 납니다. 그래서 늘 소망적입니다. 그러나 후자를 만나면 되던 일도 잘 안될 것아 시들해 집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 집니다.

제 아내는 전자입니다. 아내는 혼자 있어도 잘 놉니다. 별로 신나는 일이 없는 집안일을 하면서도 콧노래를 부릅니다. 소녀시대입니다. 그런 아내랑 함께 있으면 저는 힘이 납니다. 아직 사명을 이루지 못 했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언젠가 사명을 이룰 것 같습니다. 썩 좋은 환경이 아닌데도 마음은 늘 천국을 사는 사람 같습니다. 저는 원래 후자이었던 같습니다. 일이 잘 되어야 기뻐하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환경이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천국 살 일이 없지요. 그러니 꼭 사명을 다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랑 오래 살면서 저는 전자를 전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 있어도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제 안에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 안에는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주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힘이 납니다. 기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4:4-5) 눈 여겨 보십시오! 그가 명령하는 “기뻐하라”는 기쁨이 먼저이지 기쁨의 원인이 먼저가 아닙니다. 즉, “~하니까 기쁘다”가 아니라, “기쁘니까 ~하다”입니다. 기쁨의 순서가 다릅니다. 이것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감정이나 환경의 결과 즉, 관용을 베풀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기뻐해서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기쁨은 원인을 초월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교인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뜬금없이, 문맥상 어색해도, 생각 날 때마다, 계속 기뻐하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비결! 그것은 순서를 바꾸는 것입니다.

 

둘째, 6절과 7절, 그리고 12절과 13절은 함께 묶어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잡을 두 번째 것입니다.

 

6절과 7절을 따로 보면?

6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아뢰면? 그러면 응답하리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있으면 좋겠습니다. 6절만 보면 기도하는 대로 응답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대로 다 응답이 되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 명령에 순종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만드는 격이 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항상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6절과 7절은 묶어 보아야 합니다.

7절”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절의 ‘그리하면’은 바로 앞의 6절 전체를 받습니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대로 안 이루어져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평안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으니까!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그런 그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잡고 있으니까!

6,7절은 명령과 약속의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기도실에 6절과 7절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령만 있고 약속이 없는 이상한 기도실이 되어 버립니다. 

 

또 하나!

12절과 13절을 따로 보면?

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절만 보면 나는 슈퍼맨, 요술공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애석하게도 저자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과 13절은 묶어 보아야 합니다.

12절”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배고픔과 배부름, 풍부와 궁핍, 모든 형편에 처해진 적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인해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악 조건 속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2절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지 13절 때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능력의 원천이 자족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본문 마지막 인사말에서 나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4:22)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은 황제 가문과 관련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바울을 심문하면서 혹은 관심을 갖고 접근하면서 신앙을 받아 들였던 1:13절에 나오는 시위대안과 기타 모든 사람들로 개종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악 조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는 외적인 여건에 초연하여 자족을 배웠기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악명 높은 네로 황제의 궁전에까지 들어 간 것입니다. 궁전에 떨어진 씨는 얼마 안 가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자족의 능력이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셋째, 물질문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공급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잡을 세 번째 것입니다.

19절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중의 하나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20절에서는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안 되게끔 아예 못을 꽝! 박아 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서 볼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누구에게 채우신다는 것입니까? 공급의 객체가 누구입니까? 예, 빌립보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헌금이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이를 흠향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말이지 우리에게 그 복을 허락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헌금에 대한 응답이지, 하나님의 일반적인 공급하심이 아닙니다.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 근거하여 물질을 구하는 기도는 잘 못 하시는 기도입니다. 대신에 드리십시오. 계속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차라리 더 좋은 기도입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 주님에 대한 철저한 신앙고백과 강한 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그 관계는 주님과 연합된 생명적 관계입니다. 능력은 이런 관계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