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골로새서 강해

골로새서 2:20-23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1. 30. 19:48

골로새서 2:20-23 연구 

 

    양희화

 

1. 들어가는 말

 

 골로새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에 속하고, 바울 소서신의 하나이기도 하다. 골로새는 소아시아의 브루기아도의 한 도시로서, 라오디게아 및 히에라볼리에 가깝고(4:13), 함께 초대그리스도 교회의 한 중심지였다. 바울은 골로새를 방문한 일이 없었으므로, 그 교회는 바울이 설립한 것이 아니고(2:1, 1:4, 7-9),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4:12-13)가 복음의 기초를 닦은 곳이었다(1:7). 그러나 그 중에 빌레몬 같은 바울과 친한 유력한 신자도 있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히 사랑을 쏟은 교회의 하나였다.

 

 바울은 골로새에 복음을 전한 ‘에바브라’로부터 이곳 교회가 위험한 이단사상(그노시스적)에 침범되어, 그것이 복음의 순정함과 교회의 평화를 부식(腐食)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정통적 복음의 변증을 행하여, 이단을 배격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때문에, 바울이 로마에서 옥중에 매어 있었던 것은 59년에서 61년경 까지로 추정되므로, 본서를 쓴 것은 60년(혹은 61년)경으로 생각되며 본문 2:20-23은 주로 금욕주의에 대한 경고로써 당시 골로새 교회 공동체에서 거짓 교사들은 극히 엄격한 규율을 육체에 가함으로써 하나님을 숭배코자 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금욕주의가 전혀 무익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유대적 그노시스학파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2. 그노시스학파(Gnosticism)

 

 그노시스학파(Gnosticism)는 바울 교리를 배척하고 오랜 전통의 할례를 금하며, 안식일과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철저히 지키고,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며, 인성을 주장하는 에비온파(Ebionites)와 예수는 아담이 다시 사람이 되어 나왔고, 앞으로도 다시 육신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엘카이파(Elkesai)와 함께 대표적인 유대교적 이단이었다.

 그노시스학파(Gnosticism)는 주후 1~2세기경 헬레니즘 시대에 로마,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등 지중해 동해안 지역을 따라 널리 형성되어 있는 이단이었다. 그노시스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인식, 앎, 지식, 깨달음" 으로 번역되며 헬라어로 "영지" 또는 "지식" 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적 주지주의를 주창하고 이성 편중에 기독교적 신앙지식 이상의 신비적이고 고차원적인 신앙지식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신앙적 태도는 신앙의 실체를 벗어나 괴변에 빠지고 그 결과 그리스 철학 및 동양의 세계관과 기독교의 혼합이 생겨나 순수하고 소박한 신앙심을 현혹시켰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술사 "시몬" 이 처음이었으며 2세기의 "사토르닐로스"(Satornilos), "바실리데스"(Basilides), 3세기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등이 있었다. 이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주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구별하여 전자를 "데미우르고스"(제작자)라는 하급신으로 분류하였으며 또 우주가 이 하급신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영과 물질을 이원적으로 대립시켜 그리스도가 취한 육신은 가상의 육신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그리스도 가현설"(Docetism)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영의 힘으로 육체를 벗어나 영적 변화하는데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정통기독교로 부터 배척되어 3세기 이후로는 쇠퇴하였다. 그노시스파들은 우주의 기원과 죄악의 기원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해석하려는 헬라철학과 신플라톤주의를 접목시켰던 것이다. 하나님의 신권을 인정하면서 현존세계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노력에 주관적인 견해가 항상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결과는 이단적인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 운동은 여러 사상의 혼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주장이 지역과 사람에 따라 차이가 생겨났다.  

 그노시스파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타티안"(Tatian) 은 저스틴의 제자로서 기독교를 위한 변증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주후 165년 시리아의 그노시스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디아테사론" 이란 책을 저술하여 그의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사복음서를 단일복음서로 개편하였으며 탈 유대주의를 시도하였고 예수의 족보나 유대적 배경을 삭제하고 극단적 금욕주의를 옹호하였다. 또한 결혼과 육식을 배격하고 성찬의 포도주를 물로 대신하였으며 구약을 경시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를 부인하였다. 디아테사론은 5세기경까지 시리아를 배경으로 널리 애독되었으며 시리아 교회의 변질을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미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에서 그 형태를 볼 수 있는 그노시스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동방의 종교사상과 이교철학, 그리스신화, 점성학 등의 내용이 기독교 교리와 무분별하게 혼합된 것으로 참된 인식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매력을 주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그노시스주의는 오래 동안 교회 내부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때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가져 오기도 하였다.  

 

 

3. 본문 주해

 

(1) 골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 에 따라 우리는 율법의 모든 요구에서 방면(放免) 되었다는 말이다 (롬 7:1-4).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 기독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그들이 "세상에"대하여는 죽은 자와 같은 관계를 가진다(갈 6:14). 다시 말하면,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시 그들이 율법(의문을 포함함)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시 그들이 율법(의문을 포함)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율법은 세상에 속한 자들(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만을 제재하기 때문이다.

  *의문에 순종하느냐 - "의문"은 여기서는 특히 율법의 의식적(意識的) 부분을 가리킨다. 거짓스승들은 구약의 음식물을 구분하는 의식적 명령을 과장하여 금욕주의를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신자들을 유혹하였다. 그러므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구약의 의식제도(음식물에 대한 금령 같은 것)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것부터 말해 둔다.

 

(2) 골 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 이것은 골로새의 거짓 스승들이 명한 금욕주의의 표어(標語)를 사도가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특히 어떤 음식물(혹은 혼인문제까지 언급함)에 대한 금령이다. 당시 교회에는 이런 금욕주의가

흔히 유행되었던 모양이다(딤전 4:3).

 

(3) 골 2:22-(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 이 문구에 대해 해석상 두 가지 의견이 있다.

 ① "이 모든 것"이란 말은 20-21절이 포함하는 의식(음식물, 기타에 관한 의식)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며, 이런 의식만을 위주로 하는 것은 영생(永生)에 이르게 하지 못하고 부패와 영멸(永滅)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라고 함.

② "이 모든 것"이란 말은, 윗절에서 말한 음식물(윗절 해석 참조)을 가리킨다고 하며, 부패에 돌아가고 마는 음식물의 문제가 천국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롬 14:7; 고전 6:13), 혹종의 음식물을 먹고 안 먹는  문제로써(롬14:1-3,6)신자들을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칼빈이 채용한 것으로서 자연스럽고 문맥에 적합해 보인다.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 위의 20-21절에 포함된 거짓스승들의  의식주의(儀式主義)는 단순한 구약의 의식이 아니고 구약의 의식을 과장한 거짓스승들의 것이었겠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조(人造)의 명령이요 교훈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구약의 의식도 포함함)의 작용도 도말(塗抹)되었다. 그렇다면, 신자들로서 인조의 의식주의를 좇을 필요가 무엇이랴?(마15:8-9;막7:6-7참.)

(4) 골 2: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 본절은 앞절까지에 논술된  거짓스승들의 주장(천사 숭배, 의식주의, 금욕주의)을 평가한다. "이런 것들."이 말은 앞절 끝에 있는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가리킨다. "자의적 숭배와." 이것은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客觀的啓示)에 의하여 실행하는 종교가 아니고 인간의 자의(自意)로 만든 그릇된 주장(예컨대 천사 숭배 - 18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짓스승들은 바울이 전한 천래(天來)의 계시로 세운 참된 종교에 반(反)하여 자의적으로 숭배의 대상을 정하였다. 모든 인조의 숭배는 진리가 아니다. 이런 숭배의 대상을 정하였다. 이런 숭배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니 벌을 면치 못한다. 나답과 아비후 형제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써 분향하다가 불에 타 죽는 벌을 받았다(레 10:1-2). 우리는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대로만 그를 예배할  것이다.

 

*"겸손." 이런 불건전한 겸손은 영적 교만을 내포한 것이지 진정한 겸손은 아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데." 이것은 금욕주의자들이 몸을 죄의 원천이라고 오해하여 그것을 고의적으로 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행주의(苦行主義)는 흔히 삼중(三重) 죄악에 빠지지 쉽다.

① 홀로 자기만이 경건한 줄 알기 쉽고,  

② 외식하기 쉽고,

③ 하나님이 주신 몸을 고의적으로 학대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

리에 따라 신앙을 위하여 고생을 당하게 됨은 귀한 일이니, 신자들마다 그리하기를 힘

쓸 것이다(빌1:29). 그러나 영적 허영심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고행을 일삼는 것은  부

당한 것이다.

 

*"지혜 있는 모양이나" 혹은 이와 달리 "지혜있다 하는 명성(名聲)"이라고 번역하는 이도 있다. 이 둘째 번역이 더욱 신임할 만하다.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이 문구의 뜻은 위에 언급된 고행주의가 육체(신체를 의미하지 않고 인가의 부패한 성품 곧, 죄성(罪成)을 의미함)를 금제(禁制)하는 데 하등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밖에도 또 한 가지 견해가 있다. 곧, "그것은 존귀로운 것이 아니고 다만 육체의 요구를 채워 줄 뿐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이 번역이 포함하는 의미는 거짓스승이 명성은 있으나 그 명성은 존귀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복음의 빛을 드러내는 일과 같은 존귀로운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육체의 욕심(명예심)을 채우고 마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에게 참된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여 주시는 것이다.

 

 

4. 요약 및 해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세상의 초등학문에 대해 죽었는데 어찌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 순종하느냐고 질문하였다. 또한 왜 그들이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율법적 규정에 얽매여 있는가 하고 질문하였다. 이런 것들은 쓰고 나면 부패하게 되는 것들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이었다. 이런 것들은 제멋대로의 예배(숭배)와 거짓된 겸손과 자기 몸을 괴롭히는 데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해설 -골로새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의 농간에 넘어가 옛날로 다시 돌아갈 위험이 있었다. 어쩌면 실제로 벌써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모른다.

 

① 골로새 교인들은 세상(의 원리)로 돌아가지 말아야 했다. 거짓 교사들의 주장은 초등학문이었다. 초등학문처럼 유치하고 빈약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점성술이나 어둠의 영적 세력을 숭배하는 것(세상 종교)이었다. 그러나 골로새 교인들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초등학문에 대해 죽었다. 그들은 세상의 원리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했었다. 세상에 대해 죽었는데 어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종교에 대한 이 세상의 개념에서 영원히 결별하였다.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어찌 세상의 종노릇으로 회귀한단 말인가?

 

② 골로새 교인들은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했었다. ‘이것을 손대지 말라, 저것을 만지지 말라, 저것을 먹지 말라.’ 거짓 교사들의 요구는 '새 율법'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수많은 규정들을 요구하는'새 종교'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고 인간의 율법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또 다른 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기계적으로 암기한 인간의 교훈일 뿐'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에게 일갈하셨다. “이 백성이 나더러 입에 발린 말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다. 그들이 나를 경배하는 것은 헛되다. 그들은 사람들의 명령을 교리로 가르치지 때문이다.’(마 154:7-9). 교회사에서 사람들의 규칙과 전통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던가!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 지독한 속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③ 골로새 교인들은 육체로 돌아가지 말아야 했었다. 거짓 교사들은 자의적인 숭배(스스로 택한 숭배)와 거짓된 겸손(자기를 낮추는 그들의 정책)과 몸을 괴롭게 하는 것(엄격한 금욕주의)을 주장했다. 이것들은 그들 스스로 이익을 얻어 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생각해 낸 활동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서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만 기여’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을 도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관행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교만함을 공경’ 한다. 그들의 금욕적 관행들은 ‘육신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일에만 기여’한다. 거짓 교사들은 사람들을 육체로부터 자유케 하기는 커녕 육체를 만족시키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바울은 말한다. ‘골로새 교인들이여, 왜 너희들이 그들처럼 살려고 하는가?’ 값없이 주어진 그리스도의 자유를 붙들라! 모질고 파괴적인 금욕의 속박의 굴레를 다시 쓰지 마라! 골로새인들은 인간들이 만든 새로운 종교성에 빠져들지 말아야 했었다. 이 세상의 종교는 세상 죄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확실히 못박혔다. 바울은 ‘종교 없는’ 기독교의 주창자이다. 돌아가지 말아야 된다. 전진, 또 전진해야 된다.

 

 

5. 나가는 말

 

 바울은 옥중에서 에바브라의 방문을 받고 그로부터 골로새의 형편을 듣자 이 서신을 집필하였다. 그 당시 골로새 교회가 이단에게 굴복하지는 않았으나 이단이 점차 잠식하여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로새 교회를 위협했던 이단의 성격은 저들에 대한 바울의 논박을 통해서 추측되고 있지만 문제의 이단은 유대주의적 그노시스 사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이단은 육체와 자연 전체를 천히 여겼으며 이들은 할례, 금식, 의식적인 금기사항 등을 지켰고, 금욕주의, 중개자로서의 천사 숭배, 영계에 들어가는 수단으로서의 신비적 체험을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만일 그리스도를 그러한 제도에 맞추려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구속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골로새서는, 문체, 용어에 있어서 모두 에베소서와 비슷하여 장중하고, 사상 특히 그리스도론은 웅대한데, 에베소서와는 달리 구체적으로 이단사상의 배격을 위주로 하고 있다. 즉 본서의 특질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속죄적 그리스도론에 다시 우주론적 그리스도론을 더하여,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이단 사상을 배격하고 있다. 그노시스적 사상은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금욕 사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하는 한편,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중시하고, 희생제사를 드려 숭배하는 천사 숭배를 강조하여, 바울은 이에 본 서신에서 이 이단 사상과 대결, 그리스도론을 특색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2:20-23의 말씀을 통해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행동, 습관, 생각)를 책망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활을 권면하고 있다.

 

 

 

*참고서적 -골로새서에 관한 몇 가지 주해 및 주석